폼생폼사. 폼으로 살고 폼으로 죽는다는 말이다.
실리를 챙기지 못하고 어설프게 격식만 차리느라고 손해보는 사람을 비꼬는 의미로 더 많이 쓰이는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특히 조선이 망한 이유가 격식만 따지는 유교 때문이라는 속설이 널리 퍼져 있는 한국에서는 더 그럴지 모른다.
그리고 맨날 국회에서 되도 않는 명분 따지느라규 난투극을 벌이는 국회의원들을 보면 폼생폼사라는 말이 더 부정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난 폼생폼사를 다르게 볼 것을 제안한다.
격식이나 명분이 아니라, 인간의 '품격'을 나타내는 말로서 '폼 난다'는 말을 사용하는 게 어떨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멋있다'라는 말하고 별 다를 게 없지만, 입에 착착 감기는 건 '폼 난다'는 게 더 좋으니까.
이런 의미로 '폼'을 보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는 낙관적인 생각을 난 품고 있다.

국정원 직원의 정치개입 여부와 정도에 대한 팩트논쟁. 그것은 좋다.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논쟁은 의미가 크지 않다.
그렇지만 위정자의 입장에서 팩트를 따지는 건 폼이 안 난다.
솔직히 절대적인 국가권력기관인 국정원의 직원이 방구석에서 댓글이나 달고 있는다는 게 얼마나 폼이 없는가.
문재인의 문앞혁명도 마찬가지다.
국가기관의 권력 남용을 밝혀내는 것은 좋다.
그러나 왜 굳이 그런 구질구질한 방식으로 해야만 했다는 말인가. 대선후보쯤이나 되는 사람이 그렇게 폼이 없어서야 어떡하는가.

윤창중도 마찬가지. 팩트를 따지는 것도 좋지만 폼의 관점에서 생각하자.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구질구질하다.
어차피 대변인직에서도 짤린 거 깨끗하게 '그래 내가 잘못했다. 술김에 실수했을지도 모르겠다, 대통령과 국민들께 누 끼쳐서 죄송하다'고만 말하고
그 뒤로는 언론에 나오지 않았다면 범죄경력은 남을지 몰라도 최소한 폼은 좀더 났을 것이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면 나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대학교 청소노동자 파업이 있었다.
기본적인 노동법을 준수 안하는 용역업체들에 대해서 고용주인 대학들이 아무 제재를 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고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할 수 있는 생활임금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었다.
학교 측에선 재정이 없다, 용역업체와 우리는 관련이 없다면서 발을 뺐고
파업을 지지하는 학생들은 학교들이 쌓아놓은 적립금이 얼마며, 교직원들에게 쓸데없이 주는 혜택이 얼마며 하는 팩트를 나열했다.
그렇지만 난 다른 입장에서 사건을 봤다.
아니 그래도 명색이 세계일류를 지향한다는 대학들이 임금 몇 푼 갖고 저따위 쪼잔한 짓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영화 굿 윌 헌팅처럼 청소부들도 문사철에 통달하고 학식있는 그런 학교를 만들 생각은 애초에 없는 듯했고
그저 돈 몇 푼 아껴서 수익사업에 투자할 돈 만드는 데 여념이 없어 보였다. 대학 당국들은 말이다.

전에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요즘은 여러 모로 까이는 김동길 연대 명예교수가 학생처장일 때의 얘기라고 한다.
학생들이 돈이 없어서 등록금을 내지 못하면 김동길이 그들을 학생처로 불렀단다.
그리고 꿀밤 한 대씩 먹이면서 돈 생기면 내라고 하고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학생 중 한 명은 결국 계속 돈이 없어서 자퇴했다지만
그는 지금까지도 그날의 그 에피소드를 좋게 기억하고 있다.
물론 자기 돈이 아니니까 그렇게 호탕한 것일 수도 있지만
내가 말하는 폼은 이러한 것이다.

옛날 서유럽 중세 때 귀족들의 어마어마한 부와 사회적 지위를 모든 사람이 인정했던 데에는
귀족들이 종종 '아랫것들'에게 너그럽게 베푸는 자선과 물질적-심리적 지원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거기서 권위가 나오고 권력은 채울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나오는 것이다.
제발 한국이 폼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폼생폼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