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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야한 옷이 성범죄를 유발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는 여성주의자들을 비판한 적이 있다.
무슨 근거로 야한 옷이 성범죄를 유발하지 않는다고 믿는가?
http://cafe.daum.net/Psychoanalyse/NSiD/461
그들의 그런 믿음에는 피해자에게 원인을 돌리면 가해자가 용서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한 몫 하는 것 같다.
복장 같은 외모만으로 여자를 쉽게 '잡년'이라고 단정짓고, '그러니까 당해도 싸다'는 남성의 시선에서 만들어진 언어를 부수기 위해 적극 차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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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쏟아지는 햇볕 사이로 종일 행진하며 '잡년'들이 가장 많이 외친 구호는 "성폭행은 가해자 탓, 피해자 탓 하지 마라", "입었어도 벗었어도, 함부로 손대지 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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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여자들이 벗고 다니며 성욕을 부추겨서'라는 변명으로는 성폭력을 정당화할 수 없으며(아니, 그럼 누구는 성욕이 없는 줄 아나?) 그렇게 맥락이 전혀 다른 두 사실을 뭉뚱그려서 '원래 남자는 여자랑 달라서 그렇다'며 당연한 인과로 치부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왜 유독 성폭행의 문제만이 피해자의 책임으로 전가되는 것인가?
"입었어도 벗었어도, 함부로 손대지 마라"
[잡년행진 체험기] 성폭력 원인은 옷차림이 아닌 권력이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62327&CMPT_CD=P0001
“성범죄 피해자에게 원인이 있다”에서 출발하여 “그러니까 가해자에게는 죄가 없다”라는 결론에 이르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험난한 시련을 거쳐야 한다.
우선 “원인” 개념과 “책임” 개념을 동일시해야 그런 결론에 이를 수 있다. 하지만 두 개념은 엄연히 구분된다.
A가 B에게 총으로 쏘아서 B가 죽었다고 하자. 이 때 총과 총알은 사망의 원인이다. 하지만 총이나 총알에게 책임이 있다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무생물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그렇다면 A에게 책임이 있나? 그건 상황에 따라 다르다. B가 총을 들고 난데 없이 A의 집에 침입하여 마구 난사하는 상황이었다고 하자. 이 때에는 정당방위가 인정되어 A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보는 것이 보통이다. A가 거리에서 총을 들고 난데 없이 난사해서 B가 맞아 죽었다면 A는 살인죄로 처벌될 것이다. 사람이 원인을 제공한 경우라도 상황에 따라 책임을 묻기도 하고 묻지 않기도 한다.
왜 여성주의자들은 “설사 야한 옷이 성범죄의 원인일지라도 그것이 피해자의 책임이라고 볼 수는 없다”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야한 옷은 절대로 성범죄의 원인이 될 수 없다”고 우기는 것일까? 그들은 정말로 원인 개념과 책임 개념이 똑 같다고 믿는 것일까?
논의의 편의상 “성범죄의 피해자에게 책임이 있다”라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고 “그러니까 가해자에게는 죄가 없다”가 자동으로 도출되는가? 아니다. 그런 도출을 위해서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책임이 영합 게임(zero sum game, 게임 이론에서 쓰이는 엄밀한 의미로 쓰지는 않았다)을 이룬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이런 상황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늘 문단속을 잘 하라고 잔소리를 했는데도 딸이 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고 외출했다. 결국 재수 없게도 그날 도둑이 들었다. 나중에 도둑을 잡아서 물어 보니 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는 집만 골라서 털었다고 한다. 이 때 어머니가 문단속을 제대로 안 했다고 딸을 비난한다고 하자.
그러면 도둑은 무죄가 되나? 아니다. 문단속을 안 해서 털기 쉬웠다는 점 때문에 절도범의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강간 피해자가 아주 어려서 강간하기 쉬웠다는 점 때문에 강간범의 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법정에서 양측이 공방을 벌일 때 영합 게임 비슷해 질 때도 있다.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따라서 설사 “성범죄의 피해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치더라도 “그러니까 가해자에게는 죄가 없다”는 도출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이번에는 강간 피해자에 대한 비난과 관련된 현실성 있는 시나리오를 살펴보자.
딸이 으슥한 곳에서 어떤 아는 남자와 단 둘이서 술을 진탕 마셨다. 결국 그 남자에게 강간 당했다. 이 때 어머니가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했느냐고 딸을 비난한다.
어머니는 단지 딸이 강간의 원인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강간 당한 것에 대한 책임까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딸을 비난하는 것이다. 이 때 어머니는 “그러니까 가해자에게는 죄가 없다”고 생각할까? 내가 보기에는 문단속을 안 한 집을 턴 도둑이나, 제압하기 쉬운 여자 아이를 강간한 강간범이나, 제압하기 쉽고 들기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강간을 한 강간범이나 죄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상대적으로 범죄를 저지르기 쉬운 상황이라고 해서 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21세기 한국에서 누가 원인 개념과 책임 개념을 혼동한단 말인가? 21세기 한국에서 누가 피해자의 책임과 가해자의 책임이 늘 영합 게임을 이룬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그런 사람들이 있기야 하겠지만 그들이 무슨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나? 그들이 대중 매체를 장악하고 있나? 그들이 판결에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나? 그들이 학계를 장악하고 있나?
가끔 “창녀 같이 입고 다니는 년은 당해도 싸다”라는 식의 말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심지어 자기 딸에게도 그런 말을 할지도 모른다. 그 사람의 딸이 실제로 강간 당했다고 하자. 그리고 강간범이 잡혀서 대면하게 되었다고 하자. 그 사람이 강간범에게 “그러니까 너는 무죄다”라고 이야기할 것 같은가? 아니면 죽여버리겠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것 같은가?
“창녀 같이 입고 다니는 년은 당해도 싸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것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입고 다니는 것에 화가 나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친구끼리 “너 죽었어”라고 말할 때 “친구가 죽었다고 믿고 있다” 또는 “살인을 하려고 하고 있다”라고 해석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화가 나서 하는 말이라고 해석할 것인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많은 여성주의자들이 풍차와 싸우는 동키호테와 비슷한 것 같다. 그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숙적과 비장하게 싸우고 있지만 옆에서 구경하는 나에게는 코미디로 보인다.
내가 보기에는 원인 개념과 책임 개념을 혼동하고, 피해자의 책임과 가해자의 책임이 영합 게임을 이룬다고 진지하게 믿으면서 썰을 푸는 21세기 한국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바로 일부 여성주의자들이다.
여성주의자들이여 한심한 지식으로 남들을 가르치겠다고 설치기 전에 과학 공부와 도덕 철학 공부 좀 해라. 계몽주의는 계몽하겠다고 나선 사람에게 내공이 있어야 설득력이 있다.
이덕하
2013-06-30
http://news.donga.com/3/all/20080217/8545002/1
이덕하님은 성충동을 '성 충동 + 폭행의 충동'으로 분해해서 이해하시고 성충동에 야한 옷차림이 기여하는 것은 분명하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신 것 같은데요. 범죄자가 성충동과 폭행의 충동을 정확히 구별해서 1차로 성충동이 발생하고 2차로 폭행의 충동이 발생해서 성폭행의 실행을 한다? 모르겠습니다. 무슨 나노초 단위로 구분하면 그렇게 구별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법적으로는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에서 그걸 구별하지는 않습니다. 야한 옷차림이 성폭행을 유발한다고 하려면 폭행의 유발까지도 같이 포섭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야한 옷차림이 폭행을 유발하나요?
그리고 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 다릅니다. 자연과학이 사회과학에 비해 사실(sein)의 비중이 높은 반면 사회과학은 자연과학에 비해 당위 혹은 바람직함(sollen)의 비중이 높습니다. 설령 나노초 단위에서 구분 할 때 1차 성충동, 2차 폭행의 충동을 일으키는 것이 신경과학이나 뇌과학에서 입증됐다고 할지라도 사회과학에서는 야한 옷차림이 성폭행을 유발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야한 옷차림이 성폭행을 유발한다고 해버리면 여자들의 옷차림의 자유가 크게 상실돼 버립니다.
사회과학에서는 이런 저런 사정, 불합리한 요소 합리적인 요소를 다 따져서 사회가 잘 굴러가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고 "야한 옷차림이 성폭행을 유발한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는 것이 포함돼서 "야한 옷차림은 성폭행을 유발하지 않는다"라고 말해집니다. 여성주의자들도 그렇게 이해하고 말을 하는 것일 겁니다.
1. 분명하다는 표현에 큰 의미를 두지 마십시오. 저는 이덕하님께서 성충동을 성충동+폭행의충동으로 결합으로 보고 그리고 성충동만 떼어서 그 성충동만 본다는 것을 주장한 것입니다. 제 표현을 "이덕하님은 성충동을 '성 충동 + 폭행의 충동'으로 분해해서 이해하시고 성충동에 야한 옷차림이 기여하는 것 같다"라고 수정해서 읽어주십시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이덕하님은 야한 옷차림이 (성충동이 아니라) 폭행의 충동을 일으킨다는 것을 증명해주십시오. 그것만 증명해주시면 됩니다.
2. 사회과학은 당위를 다루기도 합니다. 특히나 이런 규범적인 문제의 경우는 당위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법학은 사실상 철학입니다. 규범철학이죠. 규범철학에는 도덕철학과 법철학이 있습니다. 사회과학으로서 법(규범)학은 다른 사회과학과 다릅니다. 법학을 제외한 사회과학은 이덕하님께서 평소에 주장하시는 과학의 교권에 속하고 법학은 도덕철학의 교권에 속한다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그래서 "교통사고를 내지마라"라는 규범은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야한 옷을 입지 마라"라는 규범은 사회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1997년에는 여름(29.7%), 봄(28.2%), 가을(22.8%), 겨울(19.0%) 순으로 발생했지만 2006년에는 변화가 뚜렷해져 가을(29.3%), 여름(25.2%), 봄(25.2%), 겨울(18.8%)로 `가을'이 3위에서 1위로 올라섰다."
링크하신 기사 내용입니다.
여름에 가장 많은 성폭행이 발생하다가 그것이 가을로 바뀐 이유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 내용이 노출, 야한 옷차림과 성폭행은 관련성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은 아니지요.
여름보다 가을에 노출이 심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가을에 가장 많은 성폭행이 발생했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을이라는 계절에는 다양한 변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가을이 노출이 가장 심한 계절이 아니라는 것이
노출, 야한 옷차림과 성폭행이 관련성이 없다는 것을 곧바로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폭행은 노출이 가장 적은 계절(겨울) 을 제외하고 봄, 여름, 가을에 걸쳐 비교적 골고루 발생하고 있습니다.
몇% 정도의 차이, 그것도 년도에 따라서 다른 통계를 들이대면서 노출, 야한 옷차림과 성폭행이 관련성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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