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란 무엇인가?
 

진화 생물학에서 신호(signal)가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 살펴보자. 신호로 정보가 전달된다. 하지만 정보가 전달된다고 해서 항상 신호라고 볼 수는 없다.

 

생물은 무생물을 보고도 정보를 얻는다. 우리는 짙은 먹구름을 보고 곧 비가 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먹구름이 “곧 비가 올 가능성이 크다”라는 신호를 우리에게 보낸다고 보기는 힘들다.

 

생물이 생물을 보고 정보를 얻는 경우에도 항상 신호가 개입되었다고 볼 수 없다. 사자가 얼룩말을 잡기 위해 몸을 숨겨서 조금씩 얼룩말 쪽으로 다가가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그 때 어떤 얼룩말이 사자를 발견한다. 이 때 얼룩말은 매우 중요한 정보를 얻은 것이다. 하지만 이 때 사자가 얼룩말에게 “내가 여기 있으니 잡혀 먹지 않으려면 조심해라”라는 신호를 보냈다고 보기는 힘들다. 사자가 나름대로 조심했지만 들킨 것이다.

 

수신자에게 어떤 정보를 전달하겠다는 ‘의도’가 있어야 신호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의도에 따옴표를 친 이유는 그 의도가 의식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의도가 무의식적으로 뇌 속에 존재할 필요도 없다. 독버섯이 화려한 무늬로 자신에게 독이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릴 때 이것을 진화 생물학자는 이것을 신호라고 부른다. 하지만 독버섯이 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품었을 리는 없다. 더 나아가 독버섯이 무의식적 수준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도’라는 개념을 크게 넓히면 “독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독버섯의 의도다”라는 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해관계의 충돌과 의사 소통 – 속임수의 문제
 

이해관계를 많이 공유하는 친족이나 친구끼리 신호를 주고 받음으로써 정보를 교환한다면 양측 모두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예컨대 맹수를 본 엄마가 자식에게 맹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린다면 자식의 생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자식이 생존하면 엄마 안에 있는 유전자에게 이득이 된다.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처럼 이해관계가 극단적으로 충돌하는 경우에도 신호를 주고 받는 것이 서로에게 이득이 될 수 있다. 독버섯의 경우를 살펴보자. 독버섯이 화려한 무늬라는 신호를 통해서 자신에게 독이 있다는 사실을 동물에게 알려서 동물이 자신을 먹지 않도록 영향을 끼친다면 둘 모두 이득을 본다. 독버섯은 잡아 먹히지 않아서 좋고 동물은 독을 먹지 않아서 좋다.

 

어떤 지역의 늑대는 가젤을 잡아 먹고 산다. 달리기에 능한 가젤이 늑대에게 “나는 달리기를 잘 한다”라는 의미의 신호를 보낸다고 하자. 늑대의 입장에서는 잘 달리는 가젤을 쫓는 것보다는 잘 못 달리는 가젤을 쫓는 것이 유리하다. 왜냐하면 그래야 잡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잘 달리는 가젤의 입장에서도 늑대가 자신을 쫓아오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 왜냐하면 늑대가 자신을 쫓아오면 최악의 경우에는 늑대에게 잡힐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많은 에너지를 도망가느라고 소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달리기를 잘 한다”라는 신호로 양측 모두 이득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충돌하면 속임수가 개입될 수 있다. 논의의 편의를 위해 가젤이 어떤 특유한 울음 소리를 내서 “나는 달리기를 잘 한다”라는 신호를 보낸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늑대는 그런 울음 소리를 내는 가젤은 쫓지 않는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잘 못 달리는 가젤도 그런 울음 소리를 내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속임수를 쓸 수 있을 것이다.

 

동물들이 집에다 가훈으로 “정직”이라고 써 놓고 그것을 애써 실천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속임수를 써서 이득을 본다면 동물은 속임수를 쓰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다. 어떤 신호를 누구나 쉽게 모방할 수 있다면 그 신호는 악용될 수 있다. 같은 군락(colony)에 사는 개미들처럼 서로 극단적으로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경우에는 속임수를 쓸 일이 거의 없겠지만 많은 경우 이해관계의 충돌이 존재한다. 심지어 자식과 부모 사이에서도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통상적인 경우 근친도가 1이 아니라 0.5이기 때문이다.

 

 

 

 

 

가젤의 뜀뛰기 – 정직한 신호의 예
 

늑대가 근처에 있을 때 일부 가젤은 뜀뛰기(stotting)를 한다. 높이 뛰어오르는 것이다. 옛날에는 이것이 동료 가젤에게 “늑대가 나타났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학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해석은 거의 가망이 없어 보인다. 울음 소리가 훨씬 더 효율적이다. 울음 소리는 뜀뛰기에 비해 신호를 보내는 동물에게 비용이 덜 든다. 또한 다른 곳을 보고 있어도 쉽게 신호를 받을 수 있다. 실제로 많은 동물들이 포식자가 나타났을 때 울음 소리를 냄으로써 주변 동물들에게 위험을 알린다. 울음 소리라는 더 효율적인 방식을 놔 두고 뜀뛰기가 경고 신호(alarm signal)로 진화했을 것 같지는 않다.

 

보통 뜀뛰기를 하면 늑대는 뜀뛰기를 한 가젤을 쫓지 않고 다른 가젤을 쫓는다. 뜀뛰기가 동료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신호라고 해석한다면 뜀뛰기를 하는 가젤을 늑대가 쫓지 않는 것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늑대가 “이 가젤은 동료 가젤을 위해 위험을 알리는 착한 가젤이기 때문에 목숨을 살려주어야겠군”이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늑대가 뜀뛰기를 하는 가젤을 쫓지 않는다는 점은 뜀뛰기가 동료 가젤들에게 보내는 신호가 아니라 늑대에게 보내는 신호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늑대가 그 신호를 받아서 얻는 것은 무엇인가? 늑대는 높이 뛰어오를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한 가젤을 쫓지 않음으로써 사냥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 만약 늑대가 그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뜀뛰기를 하는 가젤은 늑대가 자신을 쫓지 않기 때문에 이득이다. 늑대가 자신을 쫓아온다면 튼튼한 가젤이라 하더라도 잡히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게다가 잡히지 않는다 하더라도 도망 다니느라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

 

뜀뛰기라는 신호를 주고받음으로써 뜀뛰기를 한 가젤도 이득을 보고 뜀뛰기를 하는 가젤을 쫓지 않는 늑대도 이득을 본다. 그렇다면 누가 손해를 볼까? 부실한 가젤이 손해를 본다. 왜냐하면 늑대가 부실한 가젤을 쫓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실한 가젤도 뜀뛰기를 하면 될 것 아닌가? 그럴 수 없다. 왜냐하면 튼튼한 가젤만큼 높이 뛰어오를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늑대가 바보 같아서 뜀뛰기를 하는 가젤만 보면 무작정 쫓지 않는다면 부실한 가젤도 뜀뛰기를 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늑대가 영악해서 뜀뛰기를 잘 관찰하여 일정한 높이 이상으로 뛰어오르지 못한 가젤을 쫓는다면 뜀뛰기를 해도 소용이 없다. 오히려 자신이 높이 뛰어오를 수 없다는 것을 노출시키는 꼴이 될 수 있다. 나는 실험이나 관찰을 통해 늑대가 이렇게 영악한지 여부를 밝혔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은 없다.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할 때 거짓 신호가 판을 칠 수 있다. 만약 거짓 신호가 판을 칠 수밖에 없다면 신호 자체가 진화하기 힘들 것이다. 거짓 신호가 판을 친다면 아무도 그 신호를 믿지 않을 것이며 그렇다면 그런 신호를 보내느라 힘을 뺄 이유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부실한 가젤이 할 수 없을 만큼 높이 뛰어오르는 뜀뛰기처럼 속임수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이럴 때 정직한 신호가 심지어 포식자와 피식자 사이에서도 진화할 수 있는 것이다.

 

뜀뛰기가 늑대의 시선을 끌어서 동료를 보호하기 위한 이타적 행동이라는 해석도 있다. 어떤 새는 포식자가 다가올 때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다친 척 하여 포식자를 둥지에서 멀리 유인한다. 뜀뛰기를 이런 식으로 설명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만약 자신에게로 유인하려고 했다면 높이 뜀뛰기를 할 것이 아니라 다리를 절뚝거려야 할 것이다. 뜀뛰기는 자신이 부실하다는 정보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튼튼하다는 정보를 보내는 것이다.

 

자하비 부부(Amotz Zahavi와 Avishag Zahavi)는 뜀뛰기를 핸디캡 원리(handicap principle)로 설명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핸디캡 원리와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 정직한 신호에 핸디캡 원리가 항상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핸디캡 원리가 작동한다면 늑대가 상당히 가까이 다가왔을 때 뜀뛰기를 하는 것이, 뜀뛰기를 되도록 여러 번 하는 것이 신호로서 가치가 크다. 왜냐하면 늑대가 가까이 있을 때 뜀뛰기를 하는 것이 더 위험하며 뜀뛰기를 여러 번 할수록 힘이 더 빠지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는 이 신호의 모방할 수 없는 핵심은 매우 높이 뛰어오르는 것이다. 늑대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어도 높이 뛰어오를 수만 있다면 늑대에게 자신의 건강을 충분히 광고할 수 있다. 또한 늑대가 보기만 한다면 한 두 번 뛰어오르는 것으로 충분하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충분히 정직한 신호를 보낼 수 있다면 가젤은 굳이 늑대가 매우 가까이 다가왔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뜀뛰기를 하는 모험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핸디캡 원리
 

바둑, 장기, 골프, 권투, 스타크래프트, 달리기 등을 할 때 핸디캡이 있는 상태에서 게임을 하는 경우가 있다. 바둑에서는 몇 점을 깔아 주고 시작하고, 장기에서는 차나 포를 떼고 시작하고, 골프에서는 핸디캡을 정하고, 권투에서는 한 명이 왼 주먹으로는 때리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경기하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고, 스타크래프트에서는 일꾼을 하나 접어주고 시작할 수 있고, 달리기에서는 몇 미터 뒤에서 출발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게임을 해서 비겼다면 핸디캡을 감당한 쪽이 실력이 낫다고 볼 수 있다.

 

수컷 공작의 화려한 꼬리에도 이런 측면이 있다. 공작 A의 꼬리가 공작 B의 꼬리보다 더 화려하고 크다고 하자. 둘 모두 살아남았다고 하자. 다른 조건이 같다면 A가 더 건강하다고 추론할 수 있다. 왜냐하면 더 크고 화려한 꼬리를 만들려면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런 꼬리 때문에 움직이기도 불편하고 포식자의 눈에도 더 잘 띔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더 화려한 꼬리를 일종의 핸디캡이라고 볼 수 있다.

 

암컷 공작이 만약 더 튼튼한 수컷 공작과 짝짓기하고 싶으면 꼬리가 더 화려한 수컷과 짝짓기하면 된다. 그리고 실제로 암컷 공작은 더 화려한 수컷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태어난 새끼는 더 건강하다.

 

자하비 부부(Amotz Zahavi와 Avishag Zahavi)는 자신의 장점을 광고하기 위해 일부러 핸디캡을 떠 앉는 현상을 핸디캡 원리라고 이름 붙였으며 공작의 꼬리가 화려한 이유를 이런 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멸종으로 가는 길
 

20세기 중반까지 많은 진화 생물학자들이 종의 멸종을 막는 방향으로 생물이 진화할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핸디캡 원리에 따르면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수컷들이 암컷들을 유혹하기 위해 화려함 경쟁을 벌이면 종은 멸종의 방향으로 향하게 된다. 조금 더 화려한 수컷들이 더 많은 암컷을 유혹할 수 있다. 따라서 수컷들은 더욱더 화려해진다. 하지만 이 화려함 때문에 수컷들의 전체적인 생존율은 더 낮아진다. 실제로 더 화려한 조류들이 멸종 위기에 더 빠지는 것 같다.

 

항상 종의 보존이라는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난다는 생각은 순진하기 짝이 없다. 자연 선택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다. 어떤 특성이 당장 번식 경쟁에서 유리하면 그 특성이 진화하는 것이다. 그 특성 때문에 결국 종의 보존이 위험에 처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막는 메커니즘은 없다.

 

 

 

 

 

화려해서 죽으나 부실해서 죽으나 – 암컷의 입장
 

암컷은 왜 더 화려한 수컷과 짝짓기하려고 할까? 핸디캡 원리에 따르면 그 이유는 그런 수컷이 더 건강하기 때문이다. 그런 수컷과 짝짓기하면 더 건강한 자식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자식이 더 건강하다고 하자. 하지만 그 자식은 더 화려하다. 따라서 건강으로 얻는 생존상의 이득이 화려함으로 잃는 손해로 인해 무효가 될 수 있다. 덜 화려한 수컷과 짝짓기하면 그렇게 해서 태어난 자식이 덜 건강할 것이다. 따라서 부실하기 때문에 죽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더 화려한 수컷과 짝짓기해서 태어난 자식은 더 화려해서 죽을 가능성이 높다. 부실해서 죽으나 화려해서 죽으나 마찬가지 아닌가? 뒤집어 이야기하자면, 건강해서 살아남으나 덜 화려해서 살아남으나 마찬가지 아닌가?

 

하지만 이런 반론에서 고려하지 않은 점이 있다. 암컷이 더 화려한 수컷과 짝짓기를 해서 자식을 낳을 때 수컷만 낳는 것이 아니다. 자식 중에는 암컷도 있다. 더 화려한 수컷과 짝짓기해서 자식을 보면 암컷 자식의 경우 건강함은 물려받지만 화려함은 물려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공작의 암컷은 원래 화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만큼 이득이다.

 

또 한가지 고려할 점은 자식의 생존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수컷 자식이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아남아서 결국 짝짓기를 해야 엄마의 포괄 적응도에 도움이 된다. 만약 모든 암컷들이 더 화려한 수컷을 선호한다면 더 화려한 수컷 자식이 짝짓기에 더 성공할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복잡해진다. “왜 암컷이 더 화려한 수컷과 짝짓기하려 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과정에서 “암컷들이 더 화려한 수컷과 짝짓기하려고 하기 때문에”라는 논거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순환 논법에 빠질 수 있다.

 

암컷들이 더 화려한 수컷을 선호한다는 이유 때문에 더 화려한 수컷 자식을 낳는 것이 엄마에게 유리하고, 그 때문에 암컷이 더 화려한 수컷 자식을 낳기 위해 더 화려한 수컷을 선호하는 것이라는 설명은 순환 논법이 아니다. 이것은 일종의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이다. 이것을 줄달음 선택(runaway selection)이라고 핸디캡 원리와는 경쟁 관계에 있다. 이 글을 업그레이드하면서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해 좀 더 상세히 다룰 것이다.

 

 

 

 

 

왜 부실한 수컷은 사기를 치지 않나?
 

더 화려한 수컷들이 짝짓기에서 이득을 얻는다면 부실한 수컷도 더 화려한 꼬리를 만들어내면 될 것 아닌가? 가젤의 뜀뛰기의 경우에는 부실한 가젤이 아예 흉내를 낼 수 없었다. 그것은 체력의 한계 때문이다. 부실한 가젤이 아무리 힘껏 뛰어 올라도 건강한 가젤만큼 높이 뛰어 오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컷 공작의 경우에는 어떤가?

 

부실한 수컷 공작이 건강한 수컷 공작만큼 화려하고 긴 꼬리를 기르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왜 수컷 공작은 짝짓기에서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덜 화려하고 덜 긴 꼬리에 만족하나? 왜 부실한 수컷 공작은 건강한 수컷 공작의 더 화려하고 더 긴 꼬리를 모방함으로써 자신도 그에 못지 않게 건강하다고 “거짓말”을 하지 않나?

 

의태는 일종의 속임수다. 실제로 독이 있는 나방이 화려한 무늬로 자신에게 독이 있다는 것을 광고하면 포식자들이 그런 무늬가 있는 나방을 먹기를 꺼린다. 그러면 독이 없는 종의 나방이 그런 무늬를 비슷하게 흉내 내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일종의 속임수 전략이 사용되는 것이다. 독이 없는 나방이 포식자를 속이기 위해 독이 있는 나방의 화려한 무늬를 흉내 내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다면 부실한 수컷 공작이 암컷 공작을 속이기 위해 건강한 수컷 공작의 화려하고 긴 꼬리를 흉내내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핸디캡 원리는 그 이유를 제시한다. 부실한 수컷 공작은 화려함을 위한 비용을 댈 수 없는 것이다. 화려해지려면 발달과 유지를 위해 더 많은 비용이 들고 포식자에게 잡혀 먹기도 쉽다. 부실한 공작은 건강한 공작에 비해 더 화려해졌을 때 포식자에게 잡혀 먹힐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이것은 상당히 그럴 듯한 설명이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뭔가 이상하다. 위에서 화려해서 죽으나 부실해서 죽으나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했다. 비슷한 논리를 다른 식으로 적용할 수 있다. 부실한 수컷의 입장에서 볼 때 화려해서 포식자에게 잡혀 먹히나 화려하지 못해서 짝짓기에 성공하지 못하나 마찬가지 아닌가? 부실한 수컷이 건강한 수컷을 흉내 내서 화려하고 긴 꼬리를 만들어낸다면 포식자에게 잡혀 먹힐 위험이 크다. 하지만 용케 살아남는다면 짝짓기에서 선택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부실한 수컷의 입장에서 볼 때 건강한 수컷을 흉내 내는 것은 유력한 전략이 아닌가? 덜 화려한 꼬리를 만듦으로써 생존의 확률을 높이지만 짝짓기의 확률을 낮추는 전략과 더 화려한 꼬리를 만듦으로써 생존의 확률을 낮추지만 짝짓기의 확률을 높이는 전략 중에서 부실한 수컷은 왜 더 화려한 꼬리를 만드는 전략을 택하지 않는 것일까?

 

만약 부실한 수컷이 화려한 꼬리 전략을 택한다면 화려한 꼬리는 건강을 나타내는 정직한 신호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암컷이 화려한 꼬리를 선택할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수컷 공작의 꼬리가 화려하게 진화할 이유가 없을 지도 모른다.

 

 

 

 

 

Alan Grafen
 

아모츠 자하비가 1975년에 핸디캡 원리를 발표했을 때에는 생물학자들 사이에서 조롱거리였다. 20년이나 지나서 자하비 부부가 출간한 『The handicap principle: a missing piece of Darwin's puzzle(1997)』를 보면 핸디캡 원리가 조롱 받았던 이유 중 일부를 짐작할 수 있다. 자하비 부부의 연구 열정은 대단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이론적 능력은 안쓰러울 정도다. 그들은 그 책에서 해밀턴(William Hamilton)의 친족 선택 이론을 통째로 부정하며 친족애조차도 핸디캡 원리로 설명하려고 한다. 그들이 친족 선택 이론에 대한 비판이라고 내 놓은 논리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 조금 과장하자면 그들은 모든 것을 핸디캡 원리로 설명하려고 한다. 위에서 예로 든 가젤의 뜀뛰기의 경우에도 무리하게 핸디캡 원리를 적용한 사례로 보인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핸디캡 원리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헷갈린다. 이 때 필요한 것이 수학적 모델이다. 수학적 모델은 어렵지만 충분히 이해하면 훨씬 덜 헷갈린다. 그레이픈(Alan Grafen)이 1990년에 핸디캡 이론의 수학적 모델을 발표했다. 그 후 핸디캡 이론이 서서히 주류 진화 생물학에 편입했다. 그레이픈은 핸디캡 원리와 관련된 여러 논문을 남겼다. http://users.ox.ac.uk/~grafen/cv/index.html 에서 그의 논문들을 볼 수 있다.

 

「Biological signals as handicaps(1990)」, http://users.ox.ac.uk/~grafen/cv/hcapsig.pdf

「Sexual selection unhandicapped by the Fisher process(1990)」, http://users.ox.ac.uk/~grafen/cv/hcapss.pdf

「Dishonesty and the handicap principle(1993)」http://users.ox.ac.uk/~grafen/cv/dishonest.pdf

 

『The handicap principle』에서는 핸디캡 원리와 관련된 것 같아 보이는 온갖 사례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그레이픈을 비롯한 여러 진화 생물학자들이 도입한 수학적 모델은 다루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생각할 거리는 많이 제시하지만 쓸만해 보이는 해석과 혼란스러운 이야기가 뒤섞여 있다. 따라서 핸디캡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책으로는 턱 없이 부족하다.

 

 

 

 

 

한계 효용의 법칙과 핸디캡 원리
 

한계 효용의 법칙에 따르면 두 배의 비용을 들인다고 항상 두 배의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이 빵 하나만 먹으면 배가 부르다고 하자. 이 사람이 한 끼 식사를 위해 두 배의 비용을 들여서 빵을 두 개 사서 먹는다고 해서 빵을 하나 사서 먹을 때보다 두 배 더 큰 만족을 얻는 것은 아니다. 다음 식사를 위해 빵을 보관하거나 지인에게 나누어 주는 가능성 등을 무시한다면 이 사람의 입장에서는 빵을 하나만 사서 먹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빵을 반 개만 사서 먹으면 양이 안 차고 두 개를 사면 다 먹지도 못하는 것이다. 비용(cost)과 편익(benefit)을 고려했을 때 빵 한 개가 이 사람에게는 최적 값이다.

 

나는 아직 그레이픈의 논문을 읽어 보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글을 통해서 이해한 바에 따르면 한계 효용의 법칙과 비슷한 원리가 그레이픈의 수학적 모델의 핵심인 듯하다. 나중에 위에서 언급한 논문들을 읽은 다음에 이 글을 업그레이드할 생각이다.

 

논의의 편의상 꼬리의 크기만 고려해 보자. 위에서 빵을 사는 사람에게 빵 크기의 최적 값이 있듯이 수컷 공작의 입장에서 볼 때에도 꼬리 크기의 최적 값이 있을 것이다. 빵의 경우에는 빵을 사는 데 드는 돈이 비용이며 식욕을 채우는 것이 편익이다. 수컷 공작의 꼬리의 경우에는 긴 꼬리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 드는 에너지, 긴 꼬리 때문에 포식자에게 잡혀 먹힐 가능성이 커지는 것, 긴 꼬리 때문에 일상 생활에서 더 많이 소모하게 되는 에너지 등이 비용이다. 그리고 긴 꼬리 때문에 짝짓기에서 얻는 이득이 편익이다.

 

핸디캡 원리의 수학적 모델에 따르면 부실한 수컷의 최적 꼬리 크기는 건강한 수컷의 최적 꼬리 크기에 비해 짧다. 예컨대, 매우 건강의 수컷의 최적 값이 36cm라면, 중간 정도로 건강한 수컷의 최적 값은 33cm이며, 상당히 부실한 수컷의 최적 값은 32cm이며, 매우 부실한 수컷의 최적 값은 30cm인 것이다. 최적 값의 분포가 이런 식이라면 암컷의 입장에서 볼 때 더 꼬리가 긴 수컷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때 수컷의 최적 값에는 암컷의 선호까지 고려되었기 때문에 일종의 평형이 유지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건강한 수컷의 최적 값에 비해 부실한 수컷의 최적 값이 더 작은가? 여기에 핸디캡 원리의 핵심 논리가 작동한다. 부실할수록 더 긴 꼬리로 인한 부담이 너무 커서 짝짓기에서 얻는 이득을 능가하는 것이다. 즉 부실한 수컷은 더 긴 꼬리를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때 너무나 많은 요인들이 작용하기 때문에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어쨌든 어떤 종의 경우에는 위에서 제시한 그래프에 부합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가정할 수는 있다.

 

1970년대에는 많은 진화 생물학자들이 핸디캡 원리에 이론적인 수준에서 큰 문제가 있다고 본 것 같다. 자하비가 제시한 직관적인 설명은 적어도 너무 헷갈린다. 하지만 여기서 살펴보았듯이 그레이픈이 제시한 모델은 적어도 이론적인 수준에서는 탄탄해 보인다. 문제는 실증이다. 예컨대 공작 수컷의 건강에 따른 꼬리의 최적 값들로 이루어진 그래프가 핸디캡 원리의 모델에 부합하는지를 검증해야 한다.

 

 

 

201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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