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쎅시 신공을 아마도 처음으로 쓰지 싶습니다.

제가 최근에 썼던 <인터넷 글쓰기, "풍자가 아니면 해탈이다">라는 글은 "진빠누리," 혹은 "진뽕누리"에 썼던 글이었습니다. 이젠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없어져 버린 <<진보누리>>가 되어버려서, 그 당시에 썼던 글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물론, 제가 따로 보관하고 있던 글도 없어서 그 글을 쓰기 위해선, 처음부터 새로 글을 써야 했네요. 

"진빠누리"에 "인터넷 글쓰기"에 대해서, 그리고 냉소와 풍자에 대해서, 냉소와 풍자가 현실과 맺는 관계에 대해서, 그 관계 속에서 글쓰는 주체가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서 글을 썼던 이유는 이곳 <<아크로>>에 <인터넷 글쓰기, "풍자가 아니면 해탈이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던 이유와 동일합니다.

"진빠누리"에서는 "진빠(진중권 빠돌이, 혹은 진보 빠돌이?)"들의 패악적 글쓰기 행태를 비판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즉, 조롱과 비꼼과 비아냥과 풍자로 물든 "진빠"들을 비판하기 위해서였죠. 들뢰즈가 풍자와 반대되는 스피노자의 글쓰기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는 것으로 진중권류의 글쓰기를 비판했지 싶습니다.

 "풍자, 그것은 인간의 무능력과 고통에서 즐거움을 얻는 모든 것이고, 경멸과 조롱을 표현하는 모든 것이며, 또한 비난, 악의, 과소 평가, 저속한 해석들로 영양을 취하는 모든 것이고, 영혼들을 파괴하는 모든 것(파괴된 영혼들이 폭군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폭군은 파괴된 영혼들을 필요로 한다)이다"라고 쓰네요.

저러한 풍자적 글쓰기로 가장 많은 자양분을 얻은 이가 바로 진중권이겠죠. 그리고 "진빠"들이 되겠죠. 그의 글을 보고 있으면 구역질이 납니다. 구역질이 나는 글과 함께 실린 그이의 사진을 보는 건 그것보다 더 힘이 드네요. 모니터를 부숴버리고 싶어집니다. 진중권의 글은 설득을 위한 글은 절대 아니니까요. "우리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뇌를 살살 간지르기는 하겠지만, 문제는 그 비아냥의 화살이 누구를 향해 날아들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죠. 아마 진중권 자신도 모르지 싶습니다.

이곳에 위의 글을 올렸던 것은 직접적으로는 노정태의 "경멸과 조롱"의 글쓰기, 풍자적 글쓰기를 비판하기 위해서 였지만, 노정태 이전에 인터넷 공론장에서 글쓰는 주체가 차지할 수 있는 다양한 위치 혹은 입장과 이러한 입장을 통해 갖춰야하는 "주체의 윤리"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아주 간단하게 설명을 하면, 풍자와 냉소는 제 3자의 입장을 취하려고 하지만, 어느 순간, 어떤 지점에서 풍자가, 냉소가의 위치가 풍자, 냉소의 대상과 자리바꿈을 하게 된다는 것이죠. 즉, 풍자가, 냉소가가 자신의 풍자, 냉소의 대상이 되버린다는 겁니다. 자신이 날린 풍자와 냉소가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는 것이죠. 그 어느 순간, 어떤 지점이란 바로 풍자와 냉소의 주체가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망각하는 순간, 망각하는 지점이죠.

따라서, 이 글은 냉소와 풍자와 같은 주체가 취할 수 있는 수사법들을 폐기하고 시종일관 진지하게 토론에 임하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글쓰기 주체가 현실과 맺을 수 있는 다양한 관계들을 보이고자 하는 것이고, 그 관계들 속에서 "전략적으로" 어떻게 현실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를 제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단적인 예로, 풍자와는 다른 "유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유머란 자신이 날린 비꼼과 비아냥이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러한 풍자가 자신에게로 날아올 때, 허허허하고 웃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비웃음의 대상이 된 자기 자신을 보며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웃으면 된다는 겁니다. 화를 내는 경우, 이렇게 되면, 토론이고 뭐고 아무 것도 안되는 거죠.

냉소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말할 수 있겠지만, 냉소가가 자신이 날린 냉소의 대상이 될 때, 취할 수 있는 입장이 무엇일지를 "유머"와 같이 한 마디로 정리를 하지는 못하겠네요. 물론, 끝까지 쿨한 척 하는 것은 기본이겠지만요... 냉소가의 가면을 써본 적이 별로 없어서, 어떠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상상력의 빈곤이네요. 그래도, 그래도 상상을 해보면... 냉소가의 냉소에 대해, 냉소의 대상이 "너도 똑같아, 너도 별 다를 건 없잖아!?"라고 냉소를 되돌려 줄 때, 냉소가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냉소가는 자신의 당황스러움을 쿨함이라는 가면 아래에 애써 감추고, 약간은 진지한 표정을 보이면서, "그건 그렇기는 하지"라고 되받아치는 겁니다. 냉소가의 성공은 바로 여기에 있겠네요. 그것은 바로, 냉소만을 보낼 수는 없는 현실에 대해, 냉소가 자신은 그 현실에 매여있지 않다는 듯, 제 3자의 시선으로 현실에 냉소를 보내지만, 그 냉소를  접하는 관객들을 통해서, 냉소를 날리는 냉소가 조차도 벗어날 수 없는 어떤 현실이 있다는 것을 드러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냉소가의 성공이지 않을까 싶네요. 그래도 한 마디로 그것이 무엇이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네요. 관객들로 하여금, 촌철살인이라는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유쾌한 냉소" 정도로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사실, 위에서 풍자와 유머로 설명하는 주체의 위치는 라캉의 사위인 자크-알랭 밀러가 "아이러니와 유머"를 설명하는 방식을 차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풍자와 유머와 같이 잘 정의된 개념을 들어 현실과 관계 맺는 주체의 위치를 설명할 수 있었던 건데, 냉소에 대해서는 냉소와 "무엇"과 같이 그 무엇을 콕찝어 설명하는 것이 쉽지는 않네요.

이 글도 <<진보누리>>를 "진빠누리"라고 비꼬는 것으로 시작을 하기는 했습니다. 그리하여, 혹자는 "진중권을 그와 같이 평가하고, "진빠"들에게 조롱을 보내고, "진빠누리"라고 경멸을 보내는 너는 뭔데? 너는 누군데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데?"라고 시비를 걸 수도 있겠네요. 그렇다면 저는 "카르마라는 가면을 쓴 유령일 뿐이고, 카르마라는 유령은 이 글에서 어떤 정치적 견해도 밝히지 않은 체로, 인터넷 글쓰기와 글쓰기 주체의 윤리에 대해서 썼을 뿐이고, 진중권이든, 진빠든, 그 누구든 자신들의 위치를 알고서 글을 썼으면 좋겠다는 것일 뿐이고..."

덧글: 이제서야 메인게시판과 자유게시판의 차이를 알게되었네요. 시닉스님이 회원가입을 하지 않고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는... 이전에는 메인게시판은 심각한 글, 자유게시판은 안 심각한 글, 이렇게 분류되는지 알았다는... 자유게시판에 말 그대로 회원가입 없이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회원가입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네요. 회원가입해도 별다르게 신분 증명을 해야할 필요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기는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