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 큰 아들에게 배반당한 역사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오늘은 2009년 12월 30일. 2010년이 코앞이다. 대체로 연말연시는 사람들의 시야가 넓어지고, 깊어진다. 지난 1년을 돌아보고, 앞에 펼쳐진 1년을 구상해 보며, 삶의 의미를 물어보고, 남은 인생과 짊어진 짐을 헤아려 보기 때문이다. 1980년, 1990년, 2000년 즈음에 그랬듯이, 2010년을 전후한 시기는 사람들의 시야가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진다. 아무래도 좀 더 길게 보고 좀 더 멀리 내다보고, 근본을 보기 때문이다.

지난 30년을 돌아볼 때 우리 한국민의 주체적 결단과 의지로서 이룬 양대 역사는 산업화와 민주화일 것이다. 고등교육의 보편화, 도시화, 정보화, 개방화와 자유화, 저출산고령화, 재벌공화국화 등은 양대 역사의 원인이자 결과 일 것이다. 물론 지난 30년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해외로부터 거대한 변화/도전의 파도가 밀려왔다. 사회주의권 붕괴(탈냉전), 세계화와 자유화, 중국의 정치경제적 비상, 자주.자립을 기치로 내건 제3세계 발전노선의 좌절, 북한위기 등이 그것이다. 외환위기와 양극화, 지금의 MB/조중동발 거친 역풍은 외부로부터 밀려오는 거대한 도전에 대한 응전 실패의 소산이자, 민주화 세력이 주도적으로 만든 빛나는 역사의 그늘에 대한 둔감의 소산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한국의 가난한 집안이 일어나는 방식은, 대체로 집안의 똑똑한 (큰)아들 놈 대학 공부와 출세를 위해, 소 팔고, 밭 팔고, 딸 자식들은 중학교만 졸업시켜 공장으로 보내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출세시킨 아들 놈이 나머지 동생들과 집안을 돌볼 것을 기대하면서…… 산업화 전략도 비슷했다. 똑똑한 큰 아들 격인 수출기업과 대기업에 자원/특혜를 몰아주어, 즉 출세시켜 나머지(하청 중소기업 등)를 돌보게 하는 방식이었다. 민주화 전략도 비슷했다. 민주, 진보, 개혁 동네의 똑똑한 큰 아들 격인 민주당, 총학생회장 출신 386, 대기업 노조 등을 평등사회, 정의사회, 민주사회의 견인차로 간주하고 많은 자원을 몰아주었다.

물론 이렇게 출세시킨 큰 아들 놈들은 대체로 집안의 기대에 무심하였다. 기회를 박탈당한 누나, 동생들의 기대를 배반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지난 10년은 한국 사회의 출세한 큰 아들 놈들; 재벌.대기업, 민주당, 대기업.공기업 노조, 사법엘리트, 조중동 등의 배반이 확연하게 드러난 시기다. 그들은 자신 만의 이익을 쫓아서 약진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1960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 민주화 운동의 주력부대는 학생운동이었다. 오랫동안 학생운동은 미국, 군부와 더불어 한국 사회의 3대 세력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이 중심은 이른바 명문대 대학생 중심의 학생 운동이었다. 과거 학생운동이 정치사회적 위상이 엄청나게 높았던 것은 기본적으로 짙은 어둠을 밝히는 횃불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의 다른 부문이나 조직이 진실과 정의를 몰라서 외면하거나, 알고도 외면하는 상황에서 학생들이 먼저 떨쳐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들은 부모 세대의 평균 학력이 중학교 졸업에서 고등학교 중퇴 어디 쯤 있을 때 대학생이었다. 대학생들은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 쉬웠고, 이를 빠른 속도로 공유했다. 그래서 나라가 가야 할 방향에 관한 한 ‘부모세대 보다 우리가 더 잘 안다’는 지적 자부심 내지 지적 헤게모니가 있었다. 단적으로 1980년대만 하더라도 국제 정치.경제적 동향이나 한국 경제 구조와 관련된 문제 제기는 학생운동이 먼저 했다. 지금은 오히려 조중동이나 재벌.대기업이 공세적으로 제기하지만…… 뿐만 아니라 혹독한 역사가 각인시킨 피해의식으로 인해 대체로 일신의 안위와 영달을 당부하던 부모세대에 대해 대학생들은 ‘행동하는 양심’으로서의 도덕적 자부심도 있었다.

그래서 1980년대는 부모와 똑똑한 대학생 자식간의 충돌이 그 어떤 시기보다 격렬했을 것이다. 당연히 대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들의 정치사회적 위상도 높았다. 그래서 교수들의 시국선언의 파장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또한 또래 집단에서 운동권 학생들의 헤게모니도 해방 직후의 독립지사들만큼이나 확고했다. 이제 학생운동과 교수들의 시국선언을 대단한 무엇으로 만들었던 대부분의 조건이 사라졌다. 물론 이는 한국 사회의 성숙(고학력화) 내지 정상화의 징표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정치사회세력이 정치사회적 헤게모니를 행사하기 위한 핵심 조건이 지적 헤게모니와 도덕적 헤게모니라는 것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 민주, 진보, 개혁 동네의 큰 아들 행세를 하는 존재들인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이 과연 어떤 지적, 도덕적 헤게모니를 갖고 있을까? 기회만 있으면 민주, 진보, 개혁 동네의 진정한 대표가 자신이라고 자임은 하는 것 같던데 과연 수백만 실업자/반실업자, 수백만의 영세자영업자, 천만이 넘는 임시일용직과 중소하청 기업 노동자, 미조직 노동자 등 못난 동생들의 처지와 요구, 불만을 알기는 알까? 중국, 인도, 동남아, 북한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 도전에 어떻게 응전해야 할지, 그리고 인간의 자유와 행복의 토대인 일자리 전략 및 산업 경쟁력 강화 전략과 관련해서 과연 지적 헤게모니를 쥘 수 있을지 회의스럽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사회는 정보 선택의 자유가 흘러 넘치는 사회다. 이는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 취하면서, 즉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 보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에 대한 불편한 진실은 숱하게 알아도, 자신에 대한 불편한 진실은 전혀 모를 수 있다는 것이다. 집안의 장자로서 의무는 하나도 이행하지 않으면서, 장자가 행사하는 권리만 배타적으로 행사하는 아주 싸가지 없는 놈이 되기 십상이라는 얘기다. 단적으로 민중의 대표성을 전혀 행사할 수 없는 존재(민주노총 등)들이 민중을 사칭하면서 민중경선제 운운하고, 미조직 노동자의 권리(재산)인 복수노조 문제를 조직노동이 자신의 권리처럼 경총과 바터(주고받기) 대상으로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행태가 어디 한국노총,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만의 일 일까? 김대중과 민주화 운동의 정신은 온데 간데 없음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세력의 장자임을 자임하는 호남(네트워크) 기반 정치 세력이나 노무현의 정신은 온데 간데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광을 등에 업고 이를 팔아먹고 있는 정치 세력도 이와 얼마나 다를까?

나는 민주, 진보, 개혁 세력이 역사의 주도권을 쥐는 전제는 자신을 알고, 적을 아는 것(知彼知己)이 아닐까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학생운동 만큼이나)변화된 위상을 알고, 역사적 국면을 알고, 한국 사회의 모세혈관(후미진 뒷골목)과 세계의 큰 흐름을 아는 것이 아닐까 한다. 자신의 변화된 위상을 안다는 것은 곧 국민의 눈, 자영업자의 눈, 미조직 노동자의 눈, 영세하청 기업 등 취약한 자본 위에 서 있는 노동자의 눈, 영남 민주세력의 눈, 수백만 ‘깨어있는 시민들의 눈’으로 자신을 보고, 세계를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적 국면을 안다는 것은 한국 사회가 총체적으로 어디쯤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아는 것을 의미한다.

선진국의 경우 사회주의 혁명 운동과 파시즘 운동이 잦아든 20세기 중반 이후부터는 정치, 입법, 행정, 사법, 언론 등 ‘공공’이 바로 선 바탕 위에서 진보와 보수 정치사회 세력이 비교적 생산적으로 경쟁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노조운동 등 사회운동도 사회의 기본 질서(정치. 경제. 사회 정의)를 바로 잡는 운동에 대체로 열성적이지 않았고, 열성적일 필요도 없었다. 정치, 언론, 사법 등이 제대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본 질서가 혁명집단이나 소수 이익집단에 의해 크게 흔들리던 20세기 초 중반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의 본질을 드러내는 말로 토건 국가, 삼성(재벌) 공화국, 검찰 공화국, 헌재공화국, 밤의 대통령, 모피아(재경부 마피아), 세피아(국세청 마피아) 등이 널리 회자된다. 변칙 상속, 불공정거래, 각종 특권. 특혜 시비도 잦아들지 않는다. 노동의 양과 질에 따라 처우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소속(자리)에 의해 결정되는 측면이 크다. 당연히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고시, 공시 열풍과 사교육 열풍이 극심하다. 양극화는 자본과 시장만이 만든 것이 아니라, 사익집단 편향적인 국가와 더 많은 몫, 더 적은 경쟁(시장)을 추구하는 사회운동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2010년대 한국 사회는 기본 질서에 관한 한 선진국의 20세기 초 중반-그것도 혁명운동이 잦아든 미국의 20세기 초 중반-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이는 국가와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기본 질서(공공)를 바로 잡는 정치와 사회운동이 절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지금 한국은 국가와 시장을 진보적으로 혹은 보수적으로 바꾸기 전에 이를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것이 핵심적인 역사적 과제라는 얘기다. 이는 최소한 국가만은 힘센 이익집단 혹은 엘리트 집단이 아니라 미조직 노동과 3비층(비경제활동인구, 비임금근로자, 비정규직)과 벤처중소기업 편향적으로 움직이도록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조운동에 관해 말한다면 핵심적인 역사적 과제는 진정한 연대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대자본, 대정부 투쟁할 때 채택하는 그런 연대 투쟁 전략이 아니라, 훌륭한 복지국가를 만든 스웨덴 사민당 및 노총(LO)이 수 십 년간 구사했던 그런 연대 전략-이는 노동계급 차원의 自助전략이 기본이었다- 말이다.

자신의 변화된 위상을 알고, 역사적 국면을 안다면 한국 민주, 진보, 개혁 동네의 큰 아들들의 역사적 책무가 보이지 않을까 한다. 100년을 부쳐 먹을 울창한 숲을 불살라 3~4년간 높은 소출을 뽑아먹고 떠나는 화전민 같은 작풍이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는 연말연시 만이라도 더 길게 보고, 더 멀리 보고, 근본을 보고, 입장 바꿔 생각하는 작풍은 너무나 소중한 것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