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오파시... 희대의 사기과학인가?

얼마전 필자가 활동하는 한 게시판사이트에서 인상깊은 글(링크)이 올라왔다. 내용은 '물'에 관한 것이다. 즉 전세계의 물은 정보를 서로 공유한다는 것과 그외 몇가지 물의 신비한 능력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요즘처럼 공해가 문제가 되는 물질만능 사회에 신선한 주장이라고 여길수도 있기는 한데.... 그 글을 보는 필자의 마음이 영 불편했다. 왜냐하면 그 주장의 근본이 되는 호메오파시(homeopathy)와 워터 메모리(water memory)는 단순히 감성적인 순수주의나 자연친화적 녹색의학으로 치부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별도의 포스팅으로 독자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킬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선 간단히 '호메오파시(homeopathy)'라는 것에 대해 알아보자. NIH 연구소중의 하나인 NCCAM(국립대체의학연구소)의 정의(링크)를 빌려보면...

다량 투여시 환자에게 해로운 물질을 거의 분자 하나 정도가 포함될 정도로 희석을 해서 투여할 경우 신체의 자가치료능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치료법


이런 주장은 기존의 과학적 상식으로보면 말이 안되는 것이다. 사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호메오파시 요법을 사용하나 환자에게 가짜 알약을 먹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물론 현재 미국 정부의 재정지원을 통해 NCCAM은 몇가지 연구, 가령 카드늄 중독이나 뇌졸증으로 인한 뇌 손상 치료등에 이 호메오파시 요법이 효과가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링크). 조만간 결론이 나올테니 그건 그때가서 얘기를 하기로하고...

오늘은 이 호메오파시 요법의 강력한 근거가 되었던 한 프랑스 면역학자의 연구결과와 그의 인생을 되짚어 보도록하겠다. (참고문헌 링크)

주인공은 쟈크 벤베니스트(Jacques Benveniste)이다. 이 양반 젊어서는 잘 나가는 면역학자였다. 이 양반이 1988년 우리나라에도 그 이름이 알려진 네이쳐(Nature)라는 과학논문집에 다음과 같은 논문을 발표했다.



E. Dayenas; F. Beauvais, J. Amara , M. Oberbaum, B. Robinzon, A. Miadonna, A. Tedeschit, B. Pomeranz, P. Fortner, P. Belon, J. Sainte-Laudy, B. Poitevin and J. Benveniste (30 June 1988). "Human basophil degranulization triggered by very dilute antiserum against IgE" (PDF). Nature 333: 816–818.

내용은 비교적 간단한데... 항체를 엄청나게 낮은 농도로 희석을 하면... 여기서 키포인트는 희석할때마다 특별한 방법으로 흔들어줘야 한다는 거다... 그러면 시험관에 담긴 물이 이 항체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가 다음번 희석때 새로이 들어오는 물에 항체에 대한 기억을 넘겨주고... 결국 시험관에는 항체 분자 하나나 있을까 말까한 정도인데도 불구하고 이 시험관에 담긴 물은 항체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basophil이라고 원래 이 항체에 반응하는 놈이 정작 항체없이도 시험관에 담긴... 기억을 담고 있는 물분자에 반응을 일으킨다는 거다.

이 논문이 센세이션날했던 이유는... 물이 자신이 예전에 담고 있는 분자을 기억할 수 있다는 이론이 증명되었다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즉 예전부터 내려오던 호메오파시 요법의 이론적 근거를 확립(?)해 준 격이 되기 때문이다.

당장 난리가 났다. 왜냐하면 화학이나 생물학을 한과목만 들어본 일반인이라도 말이 안된다는 걸 알 내용이 네이쳐라는 세계적 권위의 과학지에 실렸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당장 벤베니스트 실험실에 당시 난다 긴다하는 과학자들이 실험이 제대로 되었는지를 검증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과학자뿐만 아니라 사이비 과학자나 마술가, 심령치료사들의 속임수를 전문적으로 잡아내는 걸로 유명한 제임스 랜디(James Randi)같은 사람들이 와서 직접 연구원들의 실험을 지켜보게 되었다.

본인 스스로 마술가이자 가짜 심령술사들을 잡아내는 전문가인 제임스 랜디

벤베니스트 실험실의 연구원들은 첫번째 시험을 무사히 통과했다. 즉 똑같이 실험을 했는데 네이쳐에 투고한 연구결과와 동일한 결과를 얻었다. 그런데 존 매독스(John Maddox)라고 당시 네이쳐의 편집장이 한가지 사실을 알아챘다. 즉 벤베니스트 실험실의 연구원들은 이미 어떤 시험관에 항체가 담겨있는지를 알고 실험을 했던거다.

그래서 이번에는 시험관에 붙은 레이블을 모두 가려버리고 시험관 자체도 알미늄 포일로 싸버리고... 아무튼 연구원들로 하여금 어디에 항체가 담겨있는지 전혀 알 수 없게 만들어 놓은 다음에 다시 실험을 하게 했다.

결과는?

안봐도 비디오다. 벤베니스트 실험실의 주장과는 달리 희석한 항체가 담긴 시험관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결국 바로 네이처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논문이 실렸다.

J. Maddox; J. Randi, W. W. Stewart (28 July 1988). ""High-dilution" experiments a delusion" (PDF). Nature 334: 287–290.

쉽게 얘기해서 벤베니스트의 주장, 즉 물분자의 기억력이라는 것이 말짱 거짓말이라는 논문이다.


그럼 이즈음에서 한가지 궁금증이 생길거다. 그럼 이런 쌩쑈를 벌인 벤베니스트 교수는 어떻게 되었을까? 바로 학계에서 추방되고 연구비 다 짤리고 교수직도 박탈당하고 ... ?

놀랍게도 그는 2004년까지 천수를 누리다 죽었다. 어떻게?

매번 그의 연구결과가 거짓말이라는 연구결과, 즉 벤베니스트가 주장한 방법을 그대로 따라해도 네거티브 결과만 나온다는 논문이 나올 때 마다, 계속해서 이게 잘못되었다던가 저게 잘못되었다고 딴지를 걸면서 그때마다 고비를 넘기는 수법을 사용했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워터 메모리가 전화를 통해서나 심지어 인터넷을 통해서 전달될 수 있다는 괴기한 주장을 펴기까지했다. (링크)

웃긴건 2000년에는 인터넷을 통해 워터 메모리가 전달될 수 있다는 걸 공개 실험을 통해서 알아봤는데 미국 국방성이 후원한 팀이 실제 이 실험을 담당했다. 뭐... 설마하는 마음이었겠지만... 결과는... 물어보나 마나다.. 당연히 네거티브 결과가 나왔다. 이후에도 수도 없이 많은 연구실에서 벤베니스트의 주장이 뻥~~이라는 논문들이 나왔다. 간혹가다 벤베니스트의 주장이 맞다고 하는 논문들이 나오기도 했지만, 바로 공개 실험을 하면 전부 뒤집어졌다.

아무튼.....

사실 과학계에서는 이미 끝난 얘기다. 물의 기억력(?), 즉 어떤 물질이 자신에게 녹아 있었는지를 기억하는 순간은 5 × 10−14 초 (1백 조분의 5초)정도의 짧은 순간이다. (링크) 뭐라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순간이다. 이런 기억력이 시험관을 특별하게 흔든다고 오래오래 지속될 일이 있겠는가..

그런데... 이렇게 수도 없이 여러번 공개 실험에서 깨지고 셀 수도 없이 많은 과학자들이 뻥~~ 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어도 벤베니스트의 주장은 죽지 않는다.. 비록 그는 죽었지만 여전히 벤베니스트의 논문들과 주장들을 인용한 호메오파시 제품들과 워터메모리 이론들은 엄청나게 많은 시민들의 마음과 돈주머니를 사로 잡고 있다.

시민들에게 중요한 것은 논리나 실험 결과같은 디테일이 아니라 TV 토론장이나 강연장에서 그럴싸한 용어와 비록 엉터리 논리일지라도 얼굴에 자신감을 띄우고 말대꾸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이들 사기꾼 과학자들은 매번 깨지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거다. 어차피 자신의 돈줄인 시민들은 과학자들의 팩트(fact)보다는 만면에 자신감을 가지고 말하는 자신들의 주장에 더 귀를 기울여줄지를 알고 있으니 말이다.


요즘 한나라당이 미디어악법 통과를 위해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한나라당 안의 야당이라는 박근혜계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미디어악법에 있어서 이명박과 박근혜는 하나다. 미디어악법의 이론적 근거가 된 KISDI 보고서가 엉터리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당연히 꼬리를 내리는 것이 맞을 것 같아도 한나라당에게는 택도 없는 소리다.

왜냐고?

TV 토론회에 나와 자신의 주장이 근거가 있고 없고를 떠나... 야당의 주장에 당당한 태도로 맞서기만 해도 '한나라당 주장도 일리가 있기는 하구나...'라며 고개를 끄덕여줄 시민들이 줄을 서 있다.

물론 시간이 아주 아주 많이 흐르고 나면 시민들도 진실을 알아차릴 날이 오기는 할거다. 조중동이 방송사 하나씩 꿰어차고 새로운 방송재벌로 자리를 잘 잡고 나면 말이다.

미디어악법 문제에 대한 보다 정리된 논리가 궁금하신 분들은 capcold님의 '미디어법 정국: 민주당 개정안 지지할만 하다'를 읽어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