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이 글의 목적은 내가 아는 어떤 것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것들을 질문하려는 것이다.

 

나는 진화 심리학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튜링 기계(Turing machine)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따라서 “튜링 기계와 진화 심리학”이라는 테마에 대해 잘 알 수가 없다.

 

누군가 이 글을 보고 나의 궁금증을 풀어준다면 나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내가 읽으려고 하는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자신이 배운 내용을 글로 써 준다면 그 다음으로 좋을 것이다. 어쨌든 나의 질문들이 가치가 있었으면 한다. 질문을 잘 던지는 것은 해답을 찾는 작업만큼이나 가치가 있다.

 

나중에 뭔가 배우는 대로 이 글을 업데이트 할 생각이다.

 

 

 

 

 

진화 심리학은 계산론과 적응론의 만남인데 왜 계산 이론에 대한 이야기는 없나?
 

Evolutionary psychology can therefore be seen as the inevitable intersection of the computationalism of the cognitive revolution with the adaptationism of Williams’s evolutionary biology: Because mental phenomena are the expression! of complex functional organization in biological systems, and complex organic functionality is the downstream consequence of natural selection, then it must be the case that the sciences of the mind and brain are adaptationist sciences, and psychological mechanisms are computational adaptations. In this way, the marriage of computationalism with adaptationism marks a major turning point in the history of ideas, dissolving the intellectual tethers that had limited fundamental progress and opening the way forward. Like Dalton’s wedding of atomic theory to chemistry, computationalism and adaptationism solve each other’s deepest problems, and open up new continents of scientific possibility (Cosmides & Tooby, 1987; Tooby & Cosmides, 1992; Tooby, Cosmides, & Barrett, 2003, 2005). (John Tooby & Leda Cosmides, 「Conceptual foundations of evolutionary psychology(2005)」, 『The Handbook of Evolutionary Psychology(David Buss 편집)』, 10쪽, http://www.psych.ucsb.edu/research/cep/papers/bussconceptual05.pdf)

 

Leda Cosmisdes & John Tooby를 중심으로 한 진화 심리학자들은 인지(cognition)의 수준을 중시한다. 따라서 인지 심리학 또는 인지 과학의 전통을 중시한다. 위에서 인용한 글에서도 진화 심리학이 계산론(computationalism)과 적응론(adaptationism)의 만남이라고 규정했다. 여기서 계산론은 마음의 계산 이론(computational theory of mind, CTM)를 뜻하는 것 같다.

 

진화 심리학자들이 적응론 즉 자연 선택 이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다. 그들은 Charles Darwin, Ronald Fisher, Sewall Wright, J. B. S. Haldane, George C. Williams, John Maynard Smith, William D. Hamilton, Robert Trivers를 비롯한 여러 진화 생물학자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Alan Turing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진화 심리학자가 계산 이론(theory of computation)과 튜링 기계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하는 것을 본 기억은 아예 없다. 이것은 뭔가 이상하다. 계산론이 매우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면서 왜 깊이 파고 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일까? 계산론이 중요하다면 “튜링 기계와 진화 심리학”이라는 테마를 깊이 파고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미 그런 주제를 다룬 글이 있는데 나만 모르는 것일까?

 

However, standard accounts of New Synthesis cognitive psychology (including, notably, both Pinker’s and Plotkin’s) often hardly mention what seems to me be overwhelmingly its determining feature, namely, its commitment to Turing’s syntactic account of mental processes. (Jerry Fodor, 『The Mind Doesn't Work That Way: The Scope and Limits of Computational Psychology』, 6쪽)

 

Fodor 역시 진화 심리학자들이 말로만 계산(“Turing’s syntactic account of mental processes”)을 중시하면서 실제로는 별로 파고 들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계산과 컴퓨터란 무엇인가?
 

계산 이론과 컴퓨터 과학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계산(computation) 하면 사칙연산을 떠올리고 계산기 하면 사칙연산 등을 할 수 있는 조그만 전자계산기를 떠올린다. 여기서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그런 계산기는 보통 calculator라고 부른다. 반면 컴퓨터(computer)는 게임, 수학 증명, 은행 업무, 문서 작성 등을 비롯하여 온갖 것들을 할 수 있는 범용 컴퓨터(general purpose computer)를 말한다. 계산은 그런 컴퓨터가 하는 일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계산과 컴퓨터에 대한 좀 더 엄밀한 정의는 계산 이론을 소개한 교과서에서 볼 수 있다.

 

계산 이론에 대해 궁금한 사람에게는 Michael Sipser의 입문서 『Introduction to the Theory of Computation』를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엄밀성과 깊이를 어느 정도 희생하여 상당히 친절하게 계산 이론을 소개하기 때문이다. 더 친절한 입문서가 있는지 여부는 잘 모르겠다.

 

Jack Copeland가 편집한 『The Essential Turing』에는 Turing의 주요 논문들이 Copeland의 친절한 해설과 함께 실려 있다. 계산 이론을 다룬 Turing의 핵심 논문이 상당히 어렵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쉬운 논문들도 실려 있다.

 

Douglas Hofstadter가 쓴 『괴델, 에셔, 바흐(Gödel, Escher, Bach: an Eternal Golden Braid)』에서도 계산 이론과 인공 지능을 어느 정도 다룬다. 이 책의 주된 테마는 괴델의 불완전성의 정리다. 이 책은 불완전성의 정리의 증명 과정을 엄밀하지는 않지만 상세히 추적한다. 불완전성의 정리와 튜링 기계 사이에는 뭔가 통하는 면이 있다. 번역이 부실하기 때문에 한국어판으로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http://cafe.daum.net/Psychoanalyse/82Xi/22 에서 번역 비판을 볼 수 있다.

 

 

 

 

 

뇌는 기계다
 

옛날 사람들은 인간의 마음이 기계와는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이라고 믿었다. 물리 법칙에 종속된 기계와는 달리 영혼은 자유롭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과학자들은 인간의 마음이 뇌의 산물이며 뇌가 물리 법칙을 초월할 수 없다고 믿는다. 뇌를 구성하는 신경원(neuron)이 작동하는 방식은 상세히 규명되었다.

 

뇌가 신경원들로 이루어진 기계라는 점을 부인하는 과학자는 없어 보인다. 인간의 뇌가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물리 법칙을 초월하는 어떤 영혼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엄청나게 많은 신경원들이 엄청나게 교묘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뇌 역시 전자 컴퓨터(electronic computer)와 마찬가지로 커다란 회로 덩어리일 뿐이다.

 

 

 

 

 

뇌는 정보 처리 기계다
 

Sigmund Freud는 에너지 모델로 뇌를 해명하려고 했다. 그가 신경학적 규명을 포기하고 본격적으로 정신분석을 했을 때에도 에너지 모델에 대한 집착은 계속되었다. 프로이트는 유입되는 물(리비도)에 비해 수문을 통해 유출되는 물(승화, 성교)이 많으면 결국 넘치게(신경증) 되는 댐에 인간의 마음을 비유했다. 난로 위에 있는 증기로 찬 주전자에 대한 비유도 따지고 보면 비슷하다. 둘 모두 결국 에너지 모델이다.

 

현대 뇌 과학자들은 뇌의 작동에서 중요한 것은 정보 처리라고 본다. 물론 뇌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것은 피를 통해 공급된다. 또한 정보 처리 과정에 에너지가 개입된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이 정말 흥미로워하는 것은 “뇌에 어떻게 에너지가 공급되는가”와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뇌에서 어떻게 정보가 처리되는가”와 관련된 문제다.

 

 

 

 

 

뇌는 튜링 기계인가?
 

http://en.wikipedia.org/wiki/Turing_machine 에 튜링 기계의 정의가 나와 있다. 하지만 그것만 보고는 거의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위에서 소개한 계산 이론 입문서 정도는 보아야 튜링 기계의 의의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전자 컴퓨터는 튜링 기계인가? 물론 아니다. 왜냐하면 튜링 기계의 기억 장치는 무한한 반면 실제로 존재하는 전자 컴퓨터의 메모리는 유한하기 때문이다. 또한 튜링 기계 모델과 달리 실제로 존재하는 전자 컴퓨터는 고장도 난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불일치점에도 불구하고 “전자 컴퓨터는 튜링 기계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냐하면 매우 핵심적인 측면이 닮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뇌는 튜링 기계인가? 인간의 뇌 세포가 유한하며 오작동하기도 한다는 뻔한 사실을 무시한다면 말이다. 마음의 계산 이론(computational theory of mind, CTM) 또는 계산론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뇌가 일종의 튜링 기계라고 본다.

 

 

 

 

 

계산과 정보 처리는 동의어인가?
 

Cosmides & Tooby가 계산론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뇌가 정보 처리(information processing) 기계다”라는 말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 같다. 이것은 너무 뻔한 진리로 보인다. 현대 심리학자들 중에 누가 뇌에서 정보를 처리한다는 것을 부정하겠는가?

 

계산론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논쟁을 벌이려면 “뇌는 튜링 기계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만약 뇌가 튜링 기계일 뿐이라면 계산 이론은 심리학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진화 심리학자들은 튜링 기계에 대해 상세히 다루어야 할 것이다.

 

만약 계산과 정보 처리가 동의어라면 뇌는 튜링 기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만약 계산이 정보 처리의 여러 방식 중 하나일 뿐이라면 뇌가 정보 처리 기계라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뇌가 튜링 기계라는 점을 부정할 수 있다. 즉 뇌에는 튜링 기계를 뛰어넘는 어떤 것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계산 이론에 대해서는 조금이라도 접해 보았지만 정보 이론(information theory)은 이름만 들어봤다. Raymond Yeung가 쓴 『A First Course in Information Theory』를 구해서 읽어 본다면 “계산과 정보 처리는 동의어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Jerry Fodor
 

내가 알기로는 진화 심리학자들 중에 어느 누구도 “튜링 기계와 진화 심리학”이라는 테마에 대해 깊이 다루지 않았다. 이 테마를 다룬 책으로 내가 아는 유일한 것은 Fodor가 쓴 『The Mind Doesn't Work That Way: The Scope and Limits of Computational Psychology』이다. Fodor는 진화 심리학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이기 때문에 진화 심리학자로 분류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은 Steven Pinker의 『How the Mind Works』를 패러디한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 진화 심리학자들이 생각하는 방식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Fodor에 따르면 CTM(computational theory of mind, 마음의 계산 이론)은 지금까지 나온 것 중에는 최선이지만 기껏해야 마음의 일부만 설명할 뿐이다. 특히 CTM이 진짜 어렵고 흥미로운 부분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이론을 찾아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Fodor는 『The Modularity of Mind: An Essay on Faculty Psychology』와 『The Language of Thought』에서도 관련된 테마에 대해 썼다. 『The Modularity of Mind』는 진화 심리학자들이 상당히 좋아하는 책이다.

 

 

 

 

 

튜링 기계와 인지 심리학
 

진화 심리학자들이 튜링 기계에 대해 침묵하는 반면 인지 심리학계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가 상당히 이루어진 듯하다. 내가 이 논의를 접하기 위해 고른 책은 William G. Lycan와 Jesse J. Prinz가 편집한 『Mind and Cognition: An Anthology(3rd Edition)』이다. 이 책에는 Hilary Putnam, Jerry Fodor, Daniel Dennett를 비롯하여 CTM를 지지하는 여러 학자들의 글과 그에 대한 반론이 실려 있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닌 것 같다. “튜링 기계와 인지 심리학”이라는 주제를 상대적으로 쉽게 다룬 책이 있을 것 같은데 나는 모른다.

 

 

 

2009-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