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남북정상회담에서의 노무현 대통령의 NLL 관련 발언이나 공동수역 같은 제안이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같은 민족이라고 반드시 하나의 국가공동체를 이루어 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며 통일비용과 분단비용의 관점에서도, 지정학적으로 초강대국에 둘러 쌓인 한반도 입장에서 분단된 상태에서 긴장하며 다이나믹하게 경쟁하며 살아가는 편이 오히려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야당 계열의 어떤 정치인이 이와 반대되는 가치관을 지녔고 책임 있는 지위에서 자신의 철학을 현실화한다고 해서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정치인이나 정당을 지지한다 해서 그들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100% 일치할 필요는 없죠.


제가 노무현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관에 대해 크게 실망한 것은 많은 분들과는 다르게 이라크전 파병이나 대북송금특검 때가 아니라 2006년으로 기억되는데, 그 때 북한의 첫 핵실험 때였습니다. 

북한이 핵을 개발한다고 선언하였을 때,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북한이 실제 핵을 개발해서 핵실험을 할 것을 예상했을 겁니다(하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소위 말하는 대북포용정책의 기조를 취하는 경우라면 당연히 북한이 핵실험을 할 것을 예상한 상테에서 그 기조를 유지하고 수정/보완하여야 합니다. 수권 가능한 정치세력의 핵심정책이자 분단 국가의 통일정책의 근본 철학 중 하나(나머지는 새누리당의 철학(?))인 대북포용정책은 북한의 핵실험을 해제조건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거창하게 말하면 동북아시아 국제질서 속에서 한반도의 중장기적 생존과 번영을 위한 근본 철학에 기반한 정책입니다. 이런 정책은 한국은행이 금리를 조정하거나, 담뱃값을 올리는 등의 정책과는 차원을 달리합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이 핵실험을 하자 곧바로 보인 반응에서 더이상 햇볕정책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발언을 합니다. 

일개 필부가 한탄하는 것이라면 너무도 당연한 반응이지만, 언론에 대서특필될 정도로 위와 같은 발언을 한 노무현 대통령의 처신은 굉장히 경솔했고, 그와 같은 반응을 대통령이 보였고 그것이 뻔히 언론에 알려질 것이며 국내를 넘어 전 세계에 매우 비중있게 보도될 것임을 알았음에도(몰랐다면 더 문제) 그런 반응을 했다는 것은 분단 국가의 최고 통치자이자 야당 계열의 핵심 통일외교안보정책의 결정/집행자로서 완벽한 자격미달임을 스스로 증명한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반응에 대해, (대북송금특검시 반응보다 더욱) 격하게 비판하며, 햇볕정책을 유지강화하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주장만 한 것이 아니라 여러 논거를 들며 '논증'을 하며 주장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전 세계에 보낸 '햇볕정책 개망'의 메시지를 전직 대통령이 나서서 치워준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비판 이후 얼마 되지 않아 노무현 대통령도 '정신을 차리고' 본래의 위치로 돌아왔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이와 같은 어처구니 없는 오락가락 행보를 통해, 대북송금특검이 노무현 표 대북정책을 위한 선 긋기 차원의 통치행위가 아니었구나, 노무현과 노무현을 내세운 세력은 기본 개념이 안 잡힌 수준 미달의 정치낭인이구나 라는 생각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통일외교안보뿐만 아니라 거의 전 분야에서 기본개념이 안 잡힌 모습을 참여정부는 5년 내내 보여줬는데 이는 참여정부가 소신 있는 정치철학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지난 총선 때 '착한 FTA 나쁜 FTA', '착한 군사기지 나쁜 군사기지(강정마을)' 등의 어이 없는 구호에서 또 반복됐으며, 심지어 착한 FTA를 주장했으면서도 한미FTA를 말도 안되는 이유를 들어 재재협상 하든가 폐기하든가 하는 실현 가능성 제로의 정책 아닌 정책을 내놓는 등 그야말로 스스로 신뢰도 0을 만드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일개 의원 차원에서 행한 것이 아니라 민주당 대표, 민주당 대권주자가 나서서 행한 것들이죠.


문재인은 그 중심에 있습니다. 이번 NLL문건 공개에 있어서도, 문재인이 취할 태도는 '문건 공개의 적법성 여부'를 따지는 게 아닙니다. 당당하게 자신이 대표하는 정치세력의 통일외교안보정책의 기본철학을 견지하고 철저한 논증 하에 간명한 주장을 펼쳤어야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포기냐 아니냐' 같은 해석 싸움을 추잡하게 하지 말고, 1200백만 표를 얻은 야권의 대표 정치인으로서 떳떳하게 자신과 민주당의 철학으로 맞짱을 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친노 중에 그나마 낫다는 문재인도 이렇게 무소신, 무개념입니다. 소신 없고 개념 없고 베짱도 없으니 리더십이 결여된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소위 말하는 친노 지지자들이 찬양하는 문재인의 인격이나 품성이라는 것이 냉엄한 국제관계에 대한 기본 가치관, 사회에 대한 기본 가치관과는 전혀 별개의 것인가 봅니다. 하긴 인격과 철학은 별개일 수 있으니까요. 


김대중 이후 야권의 리더십 공백 상태는 단순하게 생각하면 철학 있는 정치 리더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장집 교수가 리더십과 정치 철학을 강조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신 있는 정치인이 야권 재편에 반드시 성공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