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광화문을 나오면서
                                             

왜 나는 조그마한 것에만 좌파인가
저 마천루 대신에 마천루의 음탕 대신에
1500원짜리 전철표를 들고 사람들이 좌측통행 안한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좁은복도 시팔 가로막 하나 없다고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해서
사상의 자유를 요구하고 혁명의 순수성을 노래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광화문 한 가운데 서서
찾아오는 구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쪼물락거리는 딸것에게 너는 부자 아빠가 좋으냐
가난한 아빠가 좋으냐
가난한 아빠는 싫여 딸것이 위로한 일이 있었다
보더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테레비에서 레닌의 동상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사흘 밤을 밥도 굶어 가며
자본론을 읽어대던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하필이면 붉게 채색되어 바랜 자본론을 읽어도
아무도 시비걸지 않는 시절은
채 십 분도 되지 않아 불심검문에 자본론을 두 번씩이나 빼앗긴
그 시절보다 차라리 낭만적이지 않겠느냐
그 계집에 가는 허리만큼 섹시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나는 아무래도 좌파일테고
부자 아빠가 되어야 하는 좌파일테고
그래서 조금쯤 비켜선 좌파일테고
조금쯤 비겁한 좌파일테고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저항한다.
없는 것들에게
가진 것들에게 못하고 없는 것들에게
포주에게는 못하고 실장에게도 못하고
계집들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1원 때문에


얼마짜리냐 너희들은
바람아 구름아 먼지야 티끌아
나는 얼마짜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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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불의 애교사전, 시편에서 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