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이후로 정치 쪽 혹은 사회운동 쪽을 관심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난 원래 운동권 성향이나 체질이 아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 인생 전체를 지배해온 것은 나의 욱하는 성격이었던 것 같다. 내가 고등학교 때 반에서 총무였는데 스승의 날 선물 돈 걷을 때 욱해서 스트라이크 주도를 하고 교장실 끌려가서 검찰에 잡혀갈 뻔 했다. 당연히 이후 내신 성적이 엉망이 되었다.

그 뒤 학력고사 1000등 안에는 든 것 같은데 1지망은 서울대 경제학과, 2지망은 생각도 안하고 농경제학과를 냈는데 결국 내신 때문에 농경제학과에 들어가게 됐다. 그래서 학문에 뜻이 멀어지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 사회분위기가 또 그런 부분을 피하기 어려운 면도 있었고. 그런데 그 당시에 보편적인 대학운동 흐름은 소련이나 북한 사회에 대해서 대부분 다 추종하는 운동 분위기였다. 당시 지하서클에서 교육도 많이 받고 화염병을 들고 거리에 나갔지만 사회과학 공부를 하다보니 그런 주도적인 분위기에 순응할 순 없었다. 그래서 내가 나름대로 서울대 농업정책 연구소를 만들어서 내 나름의 계보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책임감으로 34살까지 사회운동을 하게 됐다.


황장수씨 이력을 살펴보면 처음엔 민주당에 들어가서 노무현 대선후보를 반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후단협에 분류될 정도이고 지금은 또 새누리당 공천 이야기도 나왔고, 정치 역정에 변화가 심하다. 단순 철새는 아닌 거 같은데 변명이라도 좋고 그렇게 흘러온 과정이 궁금하다.

내가 97년 대선에서 농민단체 여론조사를 하고 그 결과대로 DJ를 공개지지했다. 그래서 누가 추천했는지 당시 젊은 피 5인방이라고 우상호 이인영 등과 민주당에 영입됐다. 하지만 그들은 전대협 소속이었고 난 독자적인 운동세력이었고 그들과 색깔은 달랐다. 그래서 2000년 총선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요청에 자청을 해서 경상도에 출마를 했다. 그 일로 고향과 동창 모임 등에서 욕 무지 먹었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직접 자청했다는 말인가?

그렇다. 민주당에서 2000년 총선에 김대중 대통령이 영남에 출마할 사람이 없다고 해서 직접 자청해서 사천에 출마한 것이다.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했다. 가만 버티고 앉아있었으면 서울이나 전국구에 영입되었을 가능성도 많았는데 난 세상 살면서 그런 순간에 별로 재거나 계산하지 않았다. 당시 노무현대통령은 부산에서 떨어졌고 난 사천에서 떨어졌는데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는 민주당으로서 영남에서 가지고 있는 고민도 공유하고 원만하게 잘 지냈다. 같이 떨어지고 술도 같이 마시고 원만하게 잘 지냈다. 당시 나는 민주당에선 적지에 의도적으로 출마했다고 해서 대접도 좀 받았다. DJ 특보도하고 조그만 공기업 사장, 당 정책위 부의장이나 당무위원도 하고.

노대통령과의 개인적 관계에 대해 더 말해달라.

한 번은 노대통령과 술을 마신 적이 있다. 대구의 이강철씨 횟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노통이 장관을 갔다와서 대선에 출마해야겠다고 하길래 내가 하지 말라고 했다. 장관보다 국회의원으로서 좀 더 경력을 쌓는 것이 맞지 않겠냐라고 했다.

그게 언제 일이었나?

그게 2000년 노통이 낙선한 직후였다. 해수부장관 가기 전이었으니까. 노통이 술이 되면 하시는 말씀이, 툭툭 던지는 스타일이 좀 있다. 그때 농담으로 받았어야 하는데 그 때도 아니라고 했다. 경력을 더 쌓아야 한다.. 하지만 당시까지도 전혀 나쁜 관계가 아니었고 그런 식으로 2002년까지 왔다. 솔직히 말을 하자면, 당시 내가 그렇게 말을 했던 이유는(노통의 대선출마를 반대했던 이유는) 노통 주변사람들의 인적인 틀과 내용이 빈약한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시 내 주변의 사람들이 대부분 동교동의 실세들과 가까웠기 때문에 이인제를 많이 지원했다. 하지만 난 이인제에게도 비판적이었다. 이인제를 지지하기 위해서 의원 70명 정도 모인 중도개혁포럼 자리에서도 난 이인제 측근들의 문제, 그의 인식의 한계 등 때문에 안 된다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난 누구의 편도 아니었다. 결국 대선경선에서 나도 노통 찍었다. 내 지구당도 다들 노통 찍었고. 썩 좋아서 찍은 건 아니지만. 그런데 그 뒤 사실 내 인생역정에서 엄청난 일(노무현 대통령과 사이가 틀어지게 된 일)이었는데 이 일의 시작은 몇 가지 기분 나쁜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된 것이었다.

첫 번째 기억나는 일은 당시 내가 지구당에 가니까 내가 생각하기에 지구당 위원장 중 조금 떨어지는 친구가 내가 어느 쪽을 찍는지 감시를 하러 나왔더라. 그때 대부분은 위원장이 누구 찍으라고 하는 분위기였지만 난 그러진 않았다. 노통이 시키지는 않았겠지만 굉장히 기분이 나빴다. 그때 노통이 우리 사무실에 방문을 했고 내가 일부러 사천에 내려가서 같은 동향 후보 찍어 달라고 하고 그랬는데 노통이 그때 묘한 말을 하더라. 우리 지구당의 간부 하나가 황장수씨 잘 부탁합니다... 했더니 저사람 내가 아니라도 잘 나가는 사람이다...

그 전에 2001년 11월쯤에 마포 가든호텔에서 내 후원회를 했는데 주요 대선후보들이 다 왔는데 노통이 와서 저 사람이 원외인지 원내인지 모르겠다...고 한 적도 있다. 그간 서로 어딘지 모르게 불편함이 조금씩 있었다.

결국 노통이 후보가 됐고 썩 내키진 않았지만 따라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당시 노통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주변사람들이 노통과 나 둘의 사이를 이간질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 중에는 유명한, 지난 보궐선거에 나갔던 사람도 있다. 그렇게 되면서 하지도 않은 말들이 서로 전달이 되면서 관계가 악화되었던 것 같고..

노통이 설화 때문에 지지도 떨어졌을 때 당 공개회의에서 내가 노통을 공개적으로 공격한 적이 있다. 노통이 당의 후보가 된 거지 특정 정파의 후보가 된 것이 아닌데 홍위병들을 끌고 다니면서 말이 가볍다,., 사실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데 내가 정치인으로서 자격미달이다. 아무튼 당의 정체성에 맞게 신중히 처신해야한다... 그런 말을 하면서 내가 그쪽 진영에 결정적으로 찍혔던 것 같다.

그 다음 결정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2002년 6월말쯤이었다. 그때 김민석이 서울시장 나가는 바람에, 이명박과 붙었지, 영등포 을에 보궐선거가 생겼다. 내가 장기표와 각별한 사이였는데, 사실 내가 전에 사천 나갈 때 장기표를 전국구 주라고 부탁했을 정도였다. 당시 정균환에게 내가 대통령에게 사천 나간다고 할 테니까 대신 장기표를 전국구 달라고 했었다.

그 전에 내가 정기표씨와 개혁정당을 만들려고 했었다. 홍사덕과 함께. 그게 잘 안 됐고 대통령이 장기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안 좋아했는데 그래도 장기표가 전국구로 결정됐다고 해서 내가 사천나갔다. 근데 장기표가 안한다고 거부했다.

그러던 장기표 그 양반이 2년 후에 자기가 보궐 나가야되겠는데, 이재오, 김문수 같은 사람은 자기에게 한나라당 오라고 한다고 하길래 내가 경상도 사람이 결국 한나라당 가서 정치했다는 소리 듣기 싫으니까 민주당으로 가라고 했다. 그랬던 내가 당시엔 장기표에게 한나라당 가라고 그랬다. 민주당에 당신 좋아하는 사람 아무도 없다. 특히 노무현 대선후보도 당신을 별로 좋지 않게 생각한다. 그런데 이 양반이 기어코 보궐선거 나가겠다고 하길래 내가 장기표씨를 데리고 한화갑 당시 대표도 만났고 또 당시 공천심사위원장이 김근태 선배였는데 같이 손잡고 가서 만났다. 내가 김근태 선배에게 당신 두 사람이 민주화 운동 오른팔 왼팔 했는데 이번에 공천 안 나오면 김근태 당신이 각오해라, 협박 비슷하게 말했다. 그런데 그때 노통이 옛날에 운동권으로 이름 좀 있었다고 정치판 들어오면 무조건 공천 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노통이 그런 거 참 싫어했지.

그 다음에 장기표가 노통에게 인사 드리러 갔는데 그냥 불쾌한 듯한 인상을 받고. 또 당무회의 때 몇 몇이 누가 장기표 데리고 왔나? 공격하길래 내가 ‘내가 데리고 왔다’고 했다. 그게 결정적인 문제였다. 그 뒤에 결국 장기표는 공천을 받았다. 김근태가 날 불러서 ‘니가 선거 책임져라, 일이 많았는데 더 이상 자세히 말 안하겠다.’ 그러길래 굉장히 미안했다.

신길동 사거리에서 장기표 지구당 유세를 하는데 노무현 후보가 왔다. 노통이 사람들 인사 받고 그러는데 내가 인사하니까 인사를 안 받고 그냥 가더라. 그래서 내가 뒤통수에 대고 ‘대통령 후보가 인사를 가려 받습니까?’ 그랬다. 노통이 돌아보더니 ‘황장수 위원장 우리 얘기 좀 합시다.’ 그래서 여택수 수행비서에게 ‘택수야 어디 다방 좀 찾아봐라’ 하고 같이 다방에 올라갔다.

노통 첫 마디가 ‘요즘 지구당 관리 잘 하냐’ 였는데 내가 ‘당이 이모양 이꼴인데 지구당 관리해서 뭘 하냐 당신이 후보가 됐으면 사람들을 단합시켜야 하는데 왜 그렇게 밖에서 데려온 사람 두고 그런 말을 했냐’ 고 했다. 그러니 더 이상 말없이 딴전을 피우더라.

30분 동안 별말 안하고 있다가 노통이 어색한지 다른 사람들 데려오라고 하길래 나는 나갔는데 그 만남이 당을 나가야겠다고 마지막으로 결심하게 된 계기였다. 그래도 관계를 계속 유지시켰어야 하고 그렇게 하는데 나는.. 나도 어색하게 앉아있었는데 노통은 나보다 더 어색해했다. 눈도 안 마주치고. 보통 노통이 다혈질이고 직설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노통의 내면에는 굉장히 수줍어하고 그런 면이 있다.

아무튼 보통 정치하려면 그런 관계에서도 맞춰서 한다. 맞춰서 해야 하는 것이 정친데 난 그러질 못했다. 당시 노통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거기서 나는 ‘탈당을 하겠다. 너네들 잘해봐라.’ 그랬는데 말이 씨가 되니까 이후론 나가기 위한 행동들을 했다.

정리하자면 노통 쪽에서도 황장수가 나 안 좋아한다고 생각했고 황장수도 노통이 나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는 건데..

그렇지. 솔직히 실질적으로 반대한 적도 없는데 왜 그리 되었는지 이해가 안 간다.

다들 고분고분한 성격들도 아니고.

성격적인 문제가 컸다고 본다.

황장수씨가 동교동쪽과 가까워서 더 그랬던 것 아닌가?

그래도 당시 내가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 조경태라든지 노재철이라든지, 노통과 가까웠던 친구들과도 나는 가까웠다. 당시 나는 노통이 대통령을 좀 늦게 나왔으면 한 거지 대통령을 하지 않았으면 한 적은 없다. 그런데 스타일상으로 성격이라든지 사람이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잘 안 맞는 게 있지 않나. 노통도 그런 걸 느꼈는지 나와는 술자리 등에서 뼈있는 이야기가 왔다갔다 했다. 예를 들어 노통이 조경태 보고는 ‘저 친구는 반드시 뱃지를 달 거야.’ 그러고 ‘황장수는 성격이 고약해서...’ 그래서 내가 ‘성격 안 좋으면 정치 못합니까?’ 그러고.. 그러면서 꼬이고, 거기에 몇 사람이 이간질도 하고 재도 뿌리고, 성격이 부딪히면서.. 결론적으로 성격 때문이라고 봐야지.


그 이후의 정치역정은 어땠나?

그 이후 당을 나와서 한나라당 가긴 싫고 정치를 접기도 싫어서 정몽준에게 갔는데 김민석도 같이 오면서 같이 철새라고 욕 먹었고... 단일화 끝나고 모든 사람들이 단일화 결과를 찬양했지만 나는 단일화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 것도 찍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후, 난 노통이 그렇게 용렬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농림수산부 및 감사기관에서 내 회사 몇 달 동안 뒤졌다. 그후 내주변에 굉장히 어려운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운영하던 벤처까지... 그래서 내가 다 나왔다. 사표 수리도 안하고 임기 채우면서 조사를 하더라.

내가 노무현 찍었고. 단일화 하라고 해서 단일화 했고 됐으면 그만이지, 내가 뭔 문제가 있으면 있다고 공개적으로 얘기했지 뒤에서 깐 적은 없는데 내 나름 굉장히 충격이었다. 노통 퇴임하는 날 난 쓰러져 신부전으로 치유불가 판정을 받았다. 몇 년 안에 이식수술 안하면 어렵다고 했는데 그 뒤부터 모든 일들이 엉망이 되었다.

노통이 당선되면서 우리 사회가 업사이드 다운됐다고들 말했다. 기득권이 몰락하고 바닥에 있던 층이 올라갔다. 난 집에서 맨날 쉬고 있는데 우리 어머니가 너는 서울대까지 나와서 학생사회까지 운동해 놓고 남들 출세하는 세상에 거꾸로 가서 백수가 되어선... 하고 한탄했다.

친구들도 연락 끊기고 한 달 내내 집에만 있는 상황이었다. 아무도 만나자고 안했다. 사회적으로 가진 걸 모두 잃고 건강도 잃고 또 비난의 대상이 되니까, 내가 한 것보다 더 큰 비난을 받는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 다음에 드는 감정은 분노였다.

이후에 한국에서 할 일이 없어서 전쟁터 이라크에 나갔다. 그때 나이가 39살이었는데 그 나이에 한국에서 할 일이 하나도 없었다. 모아놓은 돈도 없고. 이라크로 들락날락할 때 노통이 이라크 아르빌 자이툰 부대에 방문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전날 이라크 사병이 하나가 한국 군인에게 총에 맞아 죽는 사건이 있었다. 장난 치다가 오발사고로. 그런데 죽고 난 다음에 턱없이 적은 돈을 주고 끝이더라고. 내가 이 문제를 항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라크 사람들의 몸값은 오백만원이냐? 개 값도 안되겠다.’ 그런데 같이 갔던 친구들이 공항에서 다 잡혔다. 나도 그 다음날 들어가다 잡혔다. 나에게 ‘정부에 통보도 안하고 왜 마음대로 다니냐?‘고 하더라. 난 당시 10억불 짜리 공사를 땄다.

10억불 짜리를? 이라크에 가게 된 계기는 뭐였나?

오무전기 사건 때 대책위원장으로서 피격당한 한국 노동자들을 대표해서 내가 미국 국방부, 노동청 찾아가서 보상을 받아냈다. 미국 FBI까지 찾아갔고고 미국 노동청을 상대로 행정재판을 걸어서 이겼다. 그런데 이런 게 나중에 스파이 사건과도 연결되고...

전혀 관계없었나? 오직 순수한 마음으로 했던 일인가?

순수하게 내 성격 때문에 한 일이었다. 내가 오무전기에 간 부분은, 난 개인적으론 무신론자지만 종교계와 관계가 많았다. 백번을 교회 나가도 신앙이 안 생겼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고립되니까 나가게 됐다.

당시 교회 장로 한 사람이 오무전기 사장이었는데 이라크 피격사고 나고 암으로 죽어가는 상황이었는데 그 사람이 사건 좀 수습해 달라고 간청했다. 그래서 내가 다 법조항 다 찾아보고 <디펜스 베이스 액트> 즉, 미국 정부시설 하청 재하청 막론하고 어떤 직원이라도 보험 가입해야 하고 가입 안 되어있으면 원청사가 100% 책임져야 한다는 조항을 찾아냈다.

교포 변호사를 임명하고 미국으로 찾아갔다. 아이다호 원청사, 워싱턴 FBI사무실까지 찾아갔다. FBI 사무실은 출입구가 없더라. 총 찬 사람이 나와서 내가 사정을 말하니 나중에 FBI가 호텔로 찾아왔더라. 보험에 가입한 것처럼 사후 위장한 것을 두고 이럴 수가 있냐고 따지고 행정소송 내고 노동청에 제소해서 이겼다.

그 부분이 언론에 났었나?

경실련과 기자회견도 하고 일부 언론에도 나고 했다. 내가 이겼다고 자랑 안하면 잘 안 알려진다. 암튼, 기자회견 토론회 이후 귀국하다 체포되어서 조사를 받고 그 뒤 상당기간 걸쳐서 출국정지가 되었다. 계약을 하러가야 하는데 계약을 못했다.

2005~2007년까지?

한동안 출국정지가 되어있었다. 유명한 브로커 최모씨는 당시 자기 마음대로 이라크 다니면서 병원공사 등을 땄다. 한국에서 건설회사도 세우고, 이것이 유전사기 출발이었는데 그 친구는 돈도 굉장히 많이 벌었다. 내가 이라크에 출입하는 부분은 출국금지 사유고 나중에 그 친구는 노정 권때 유력 인사들에게 출국편의로 뇌물까지 줬다. 검찰 수사결과 최씨는 돈도 줬다는 기사도 났다.

이후 나는 노정권에 반대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지고 있던 분노가 더 굳어졌다. 그러다 스파이 사건이 터졌다. 2002년의 뒤끝이 여기까지 왔다고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스파이 사건은 한 마디로 뭔가?

한마디로 검찰이 압수한 증거가 내부에서 증거 조작된 사건이며 권력기관이 의도적으로 벌인 사건이다.

노정권 실세들의 의도가 있었다고 확신하는가?

내 생각으론 당시 OBS란 신생방송국이 출범했고 그 방송국의 오너 백성학이 미국에 줄이 있었는데 동업자인 모 방송사 인물에게 흘러간 문건이 나중에 한국의 어려가지 정보들을 미국 정부에 전달하는 문건으로 둔갑된 것이다. 요약하자면, OBS가 방송국 설립 자본을 주로 댔는데 동업자가 실세와 결탁해 허가를 딴 뒤 방송국을 차지하기 위해서 한 것이다.

당시 전시작전권 관련해서 NSC 이종석과 미국 네오콘 강성인 리차드 롤리스와 충돌이 잦았다. 이런 것도 사건의 한 배경이다.

사건 후 석간을 보니까 내가 분석했던 것들과 비슷한 것이 D-47이라는 코드네임까지 생겨서 국감에서 터졌다. 당시 내가 백회장에게 준 문건이 흘러갔다가 변조되어 나타났다. 총체적으로 권력이 움직인 사건이다.

그런데 그 사건은 내가 등장하면서 꼬인 것이다. 내가 등장하니까 그쪽이 굉장히 당황했다. 검찰이 미국전달 영문판이라고 압수수색에서 나왔다고 했는데 번역이 틀린 점, 일련번호가 다르게 되어있는 점 등 의문이 한둘이 아니었다.

검찰이 아직 명예훼손으로 나를 체포하지 못한 건 검찰 스스로 조작됐다고 인정한 것 아닌가? 거기에 관련된 검사가 옷도 벗었다. 2009년까지 3년에 걸쳐 조사를 받았는데 기소도 안 됐고 조사도 안했다. 어떤 검사가 나에게 제발 이 사건에서 빠져달라고 하더라. 난 그렇게 못 하겠다.. 진실을 밝히겠다고 했다. 내가 매국 문건 작성자라고 했으니 나는 끝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리차드는 네오콘이니까.. 이종석씨나 참여정부는 북한과의 평화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대해서 미국 극우파 편을 들게 되었다는 이미지가 만들어진 거 아닌가. 황장수의 기본적인 대북관이나 국가관이 햇볕정책과 반대가 아닌가?

난 학교 다닐 때부터 운동권 주류였던 NL 주사파 노선이 싫었다. 나도 물론 화해, 장기적 공존, 그리고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기본입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억지 평화가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명박처럼 뒤에서 밀실협상 하고 앞에선 이념공세 그런 것도 싫다. 이번에 이념문제 터졌을 때 난 종북을 싫어하지만 사상 커밍아웃을 반대한다고 당사자들을 옹호했다. 내가 그런 문제의 피해자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서 난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북한의 종북 주사에 대한 심리적인 옹호와 또 그런 문화가 너무 자리를 잡았다. 야권에서 정치를 한다면 그 문제를 언급 안해야 한다는 것이 암묵적인 합의같은 분위기다. 그게 김재연 이석기 임수경 문제까지 이어진 것이다. 난 그런 분위기가 주류였을 때도 반대했던 사람이다.

나는 북한에 쌀 주자는 것 찬성하고 평화적 관계 찬성한다. 지원을 해서라도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일방적인 찬양을 옹호할 만큼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지금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 표현이 어느 정도는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재적인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말은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 야권은 상당히 지지부진한데 그 본질적인 이유는 뭘까?

1월에 친노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말했던 것이 복수, 검찰개혁... 그런 거였다. 어제 이해찬이 당대표 되면서 또 하는 말이 이념, 종북주사 정면 돌파하겠다... 그래서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이명박이 저지른 문제들에 대해서 시간이 문제지 언제라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트윗 보면 진보라는 사람들, 그냥 네티즌도 아니고 자고 일어나면 정치만 생각하는 일반 평범한 시민들이 한국에 너무 많다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봉팔, 크게 웃음) 그 사람들이 이명박 하나 죽인다고 쥐새끼니 뭐니 하는데, 내가 사회개혁 글 쓰면 별 반응이 없다. 근데 이명박 비리 폭로하는 글 쓰면 열화같은 반응이 온다. 이명박이 하나 없어지면, 그래서 그 다음에 야권이 집권하면 한국사회가 파라다이스가 되는가?

시대적 대세와 관련이 있다. 나는 지금까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자격이 나았던 사람은, 여러 가지 한계가 많았지만 김대중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김대중 때도 벤처 사기, 아들문제, 외환위기 해결하는 과정에서 재벌중심, 비정규직 문제, 빈부격차 가시화, 부동산 등등 문제가 많았다. 가장 진보적이라는 노무현 때 재벌이 권력위에 올라서고 비정규직 본격화되고 부동산투기에 의해서 빈부격차가 극대화되면서 건널 수 없는 한국사회의 신분 구조가 완결되었는데 이명박은 다 죽어가는 한국사회에 말뚝을 박고 마지막 흡혈빨대를 대고 있는 것 밖에 안 된다. 그러면 이명박이 없어지고 예를 들어 야권 연대로 진보당이 정권 잡으면 오늘날 진보당의 저 구조로서 여당이 되었을 때 과연 한국사회가 발전할 거냐. 사회가 진보할 것인가?

나는 조지오웰이 그 시대에 내내 글을 쓰면서도 비관주의에 사로잡혀있었듯이 나도 비관적으로 본다. 왜 비관적이냐. 진보나 개혁은 오럴로 하는 게 아니라 실천으로 하는 것이다. 정치가나 공직자가 밥벌이와 자리 유지가 목적이 되면 개혁이나 진보가 불가능해진다.

세상은 항상 자기의 신분과 계급을 스스로 배반하고 개혁을 추진한 사람에 의해서 발전하는 것이지 다양한 사람이 모여서 보편적으로 되는 게 아니다. 나폴레옹도 그럴려고 한 건 아니지만 혁명의 붐을 퍼뜨리고 왕조를 해체해버리니까 유럽에서 브루조아 사회가 발전하고 영국도 그것 때문에 개혁 바람이 불고 한편에서 사회주의가 나오고 그랬던 거 아닌가.

영화 <어메이징 그레이스>에 나오는 윌리엄 윌버포스라는 영국의 귀족이 양심에 의해서 노예제도에 문제제기를 했다. 윌리엄은 동물들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노예와 동물들의 처지를 비교하면서 각성했다. 좌우간 정치 영화 중에 이 영화가 제일 감명 깊었다. 즉 개혁이란 계급, 지위에 대한 배반에서 나와야 하는데 한국에서 여당은 말할 것도 없고 야당에서도 각성이 나올 수 있겠나. 과거 학생운동과 사회운동, NGO 운동가 수십 명이 있는 정당에서 하는 행태가 저렇게 똑같은 말만 하고, 민주당엔 친노, 비노, 동교동 밖에 없나. 왜 민주당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과감하게 전환을 못하는지.. 어떤 내용있는 주장을 가지고 대선에 나선 사람도 없다. 이명박 척결, 노무현 정신 부활밖에 없다.

내가 늘 하이브리드 하이브리드 하는데 교배를 시킬 때 잡종과 해야 종이 개선된다. 순혈로 가게 되면 망한다. 언젠간 도태된다. 지금 여야 정당이 이런 식으로 가면, 장담하는데 대공황이 오고 경제가 붕괴되서 한국 사회에 빈곤계층이 광범위해지면 거기에 대응하는 정당이 생길 거다. 기존 진보 지식인과 무관한 굉장히 포퓰리즘적이고 완전히 계층 계급에 기반을 둔 그런 정당을 말한다. 사회가 변할 수 있다.

대안도 실천도 없고 계급 배반할만한 사람도 없다.

내가 국회에 가면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다 까발리고 싶었다. 두 번할 생각 없으면 다 까발릴 수 있다

오히려 그렇게 죽기 살기로 하면 두 번 할 수 있다.

나는 국회에 내부고발자가 나와야 진보하는 속도가 빨라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럴 소지를 가진 사람은 원천적으로 국회에 못 들어간다.

새로운 정당이 필요한 것 같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는 계층분화의 문제다. 지금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지고 있다. 미국보다 한국이 훨씬 더 심하다고 본다. 이런 마당에 정당이 전라도/경상도로 나눠서는 안 된다. 20% 국민이 빈곤층이고 가난한 사람의 자식은 계속 가난하고 노인 2/3가 자산이 없고 앞으로 은퇴 후 30년을 살아야 하는데 그런 사람들을 대변하는 사람이 들어갈 정당이 있어야 한다. 지금 계층 문제/노년빈곤문제를 얘기하는 정당이 있어야 한다. 내가 만약에 민주당 공천 심사하면 난 안된다. 진보당도 물론 안 된다. 배제가 분명히 작용한다. 정당이 자기들끼리 지역구도, 사상같은 걸로 나뉘어서...

의원 재산이 한나라당은 평균 30억대, 민주당은 20억대다. 솔직히 재산이 기본적으로 그 정도라면 우리사회에서 상속이나 투기를 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금액이라고 할 수 있다. 1% 안에 다 들어가는 사람들이다. 민노당도 전에 재산공개 하라니까 안 하는 거 봐라. 구청장 하면서 빌딩 가지고 투기하는 사람이 진보정당 소속이다. 이정희는 과연 재산이 얼마일까. 보통 사람들은 정상적으로 평생 5억도 모으기 힘들다. 평소에 자기들 삶은 진보나 개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면서 정치판에 들어오면 진보나 개혁을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나는 양심에 걸린다. 나는 주식 한번 안 샀다. 땅 한 평 안 샀다. 있는 거 다 팔아먹었지.

투기사회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계층 사람들, 여당 야당의 차이라는 것은 국회에서 정치공세를 펼 때의 차이밖에 없더라.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정치인이 당에 들어갈 때도 새누리당, 민주당을 딱히 구별하지 않더라.

결국 이번 총선에서도 공천에 있어서 여야가 비슷했다. 여야 골수 지지자들이 생각하는 만큼 두 정당이 별로 차이가 없다. 국민들이 정치를 잘 모르지만 감각적으로 또 본능적으로 돈이라도 안 떼어먹을 것 같은 사람으로 박근혜를 지지하는 거다.

박근혜가 여자 혼자 살면서 뭘 더 해 먹겠나 그런 마음?

바로 그거다. 다수 서민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이런 일에 과학적 논리적 분석은 무의미하다.

다가올 경제 위기에 대해서 말하는 정치인이 없다. 왜 그럴까? 신기하다. 너무 이상한 현상이다.

솔직히 내가 계속 정치를 했어도 경제에 대해 말할 만한 지식이 없었을 것이다.

겸손하신데?

정치를 하면 쓰잘떼기 없이 너무 바쁘다. 지속적으로 이해관계자들과의 모임을 만들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너무 바쁘다. 모임 등이 너무 많다. 박지원이 초선들에게 신문 읽으라고 한 게 그런 거다. 신문 볼 시간이 없다. 나도 지금 신문 3개 보는데 그게 3시간 걸린다. 나도 그런데 국회의원들은 오죽하겠나.

다가오는 경제 대공황에 대해서 알려면 경제학, 경제발전사, 행동경제학, 각 나라의 역사, 경제변동사, 여러 가지 진보 사회이론 등 복합적으로 다양한 독서를 해야 알 수 있다. 신문 요약한 거 좀 본 걸로는 좀만 이야기하면 앞뒤가 막힌다.

마이클 무어 감독이 만든 <자본주의: 러브스토리>에서 파생상품 CDO를 설계한 사람에게 ‘그게 뭐냐? 간단히 설명해봐라’라고 물었더니 모르더라. 지가 만든 것도 지가 모른다. 정치인들이 기본적으로 독서를 하고 모임 줄여야 한다. 솔직히 말하면 정치인들 자격시험을 쳐야한다고 생각한다. 불가능한 얘기지만. 하다못해 일반상식이라도.. 세계 여러 가지 현상에 대해 요약이라도 해보라고.

이명박 욕하기는 쉽다. 6하원칙만 알면 되니까. 왜 세계에 대공황이 왔는가? 지식을 체계적으로 습득해서 이걸 논리적으로 얘기할 수준들이 안 된다.

그런 걸 보완하기 위해서 정책팀도 있고 보좌관이 있는데... 국민들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경제 문제에 대해 국민의 대표들이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무래도 너무 이상하다.

무료급식에 대해서 논의한 것만큼만 지금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경제위기에 대해서 얘기한다면 한국이 새로운 위기에 대응하는 대공황 컨센서스가 이미 만들어졌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복지, 성장, 재정, 조세를 어떻게 조정할 건지 대안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당장 정치인들은 이명박 욕하기 바쁘다. 종북주사 논쟁 나오면 욕만 해도 인기가 올라간다. 사실 욕만 해도 스타가 되지 않나. 정치인은 부고난 빼고는 무조건 언론에 많이 나는 게 좋다고 하지만, 경제 위기 얘기하면?

저성장 시대를 인정하고 복지와 성장에 근본적으로 새로운 대공황시대 패러다임을 서로 조화시키게 만들어야 한다. 이걸 놓치면 숱한 저소득층이 어려워진다. 우리가 사실 예전 외환위기 때 지금의 그리스만큼만 버텼으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려워지지 않았을 거다. 우린 별로 잘못한 것도 없이 당시 종금 등에 금융투기 자본을 많이 끌어 썼다가 일시적 유동성 위기가 왔던 건데 당시 정권교체와 맞 물린게 불행이었다.

당시 한국의 덜미를 잡는 거였다. 한국에 괜찮은 기업도 있고 위기를 이용해서 한국을 엎드리게 만들어야겠다는 의도에 걸린 거다. 어떤 정치인도 거기에 대항하지 못했다. 미국이 쓰라는대로 썼다. IMF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그리스는 잘 하고 있다고 본다. 원래 그렇게 하는 거다. 한쪽에서 데모하고 정권은 배 째라고 하고. 스페인은 그리스 팔아가지고 국가가 안 빌리고 은행이 빌리겠다고 하고 긴축 규제도 안 받겠다고 한다. 천억불 받아라, 오백억불 부족하다는데 천억불 받으라고 한다.

나는 그리스가 잘하고 있다고 본다. 버티는 거다. 사실 그리스를 유로존에 끌여들여 말아먹은 것도 독일과 프랑스 아니냐. 독일은 통일하려고 했던 거고 프랑스는 2차대전 이후 유럽 주도권 쥐려고 한 거고. 형편 안 되도 들어와라, 신용 2배로 올라간다. 그래서 올라간 신용으로 돈 쓰다가 망한 거 아니냐. 사기는 독일하고 프랑스가 처음에 쳤기 때문에 작은 나라가 같이 죽자고 하는 건 맞는 거다.

우리도 껍데기 벗겨보면, 지금 3천 억불 외환 유보금 있다고 튼튼하다고 하는 게 문제다. MB는 국가부채 440조라고 그러는데 어떤 데서는 공기업부채까지 770조라고 하고 이한구는 작년에 1천 400조라고 그랬고 객관적으로 1000조라고 그런다. 지자체, 공기업, 중앙정부 통화안정채권까지 포함시켜서.

한국 가계부채가 기본 1100조인데 대부분 부동산 담보대출에서 생긴 것이다. 이명박 당선되자마자 부동산 담보대출 상환 미루고 재대출 해줬다. 손수건 돌려서 미루다가 자기한테 유리한 놈 손 들어주고 가겠다는 것이다. 이명박이 지금 국민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한국 재정구조가 얼마나 심각한지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다.

저축은행에 17조 들어갔는데 아직 진행상황이다. 앞으로 몇 개 남기고 다 망할 거다. 내가 듣기로 예수금이 70조 정도 되는데 절반 이상이 돈이 없다는 거다. 그걸 메우는 예보기금이니 각종 기금이 국민들 혈세다. 그런데 이명박은 최대한 미루고 갈 것이다. 여기서 집권을 하겠다고 하면 거덜 난 집구석을 받아서 어떡할 건지에 대해 대책이 있나. 불을 보듯이 뻔한데.

이명박은 나 혼자 한 거냐? 하고 말할 거다. 저축은행, 부동산, 주식, 카드 띄운 거 예 들면서 전 정권에서 내려온 것을 탓할 것이다. 그 사람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한국의 경제상태는 총체적 위기다. 지금 급격히 수출이 둔화되고, 내수 둔화되고, 대기업 비상대책 들어갔고, 중소기업 거의 괴멸되었고, 소자영업자 750만에 비정규직 830만, 청년 실업자 300만이다. 거풀 벗겨보면 경제활동인구 2800만중에 멀쩡한 사람은 내가 볼 때 5~600만 명 밖에 안될 것이다.

2/3 이상이 문제가 있다?

그렇다. 대학 졸업하고 106만 명이 창업을 하는데 87만 명이 망하는 거 아니냐. 1년에 1/5만 살아남는다. 창업하다 망하면 절반 이상이 바로 빈곤층으로 추락한다. 내가 얼마 전 깜짝 놀랐는데 우리나라에 다단계로 먹고 사는 사람이 300만 명이라고 한다. 신문에 난 거다. 청춘들이 얼마나 할 게 없으면.. 다단계는 막장인데.

대공황 상황을 극복 하려면 엄격하게 원칙을 지키면서 해야 하는데 정치적 리더쉽이 문제다. 지금 상황으론 대공황의 골이 점점 깊어지고 15년 가도 해결 안 된다고 본다.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가 한계에 왔다고 본다. 자본주의의 혁신은 생산성 향상의 혁신에서 왔는데 지금 자본주의 기초는 50년대와 별 다를 게 없다. 50년대 미국 중산층들 차 타고 다녔다. 인터넷 시대에 일자리가 늘어났나. 예전에 10만 명이 하던 일을 1000명이 하게 되었다.  대기업이라는 페이스북 보면 종업원 숫자 얼마 안된다. 세상이 좀 더 편리해지는 기술은 엄청나게 발전했지만 근본적으로 생활을 바꾸는, 일자리를 만드는 기술혁명은 없었다. 제조업 일자리는 없어져 간다. 남은 일자리는 저생산성, 질 낮은 서비스업밖에 없다. 나머지는 금융 부동산 투기 산업.

대공황의 문제는 금융 부동산 투기다. 복잡할 거 없다. 중국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다. 전세계가 혁신이 둔화되니까 투기로 가면서 이 모양이 된 것이다.

한국은 심각한 게 무역의존도가 높다. 60% 이상이 해외수출로 먹고 사는데 대공황이 오면 수요가 위축되고 생산 줄이면서 해고가 시작된다. 한국은 사람밖에 없는데 지금부터 정치권이 대공황 대책을 마련해야한다. 그런데 지금 전부 하는 짓거리가 종북주사, 이명박..


너무 논의가 없다.

다시 정리하면,,, 정치인들 시간과 능력이 안 된다. 그리고 일반 국민들이 사회적 의제 형성 능력이 없다. 중간에 있는 사회단체들이 경제문제는 제기하지 않고 정치문제에만 관심을 두고 일반 국민들도 패거리 싸움에만 관심 있다. 아무리 대공황 위기가 온다고 작년부터 글 써도 관심 없고 모른다. 경제가 늘 그렇지 않냐고 한다. 이번 대공황 위기는 한국 자본주의가 처음 겪어보는 것이다. 겪어보지 않아서 뭔 소린지 관심이 없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현재 한국의 경제관료들 전부 미국에서 공부했다. 예전에 소련이 몰락하면서 진보 경제학도 몰락했다고 보면 된다. 지금은 전부 삼성에 적합한 경제관료만 남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이야기하게 되면 결국 디스토피아를 이야기하게 되는 것인데 우울한 미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고 말하면 정치적 지지를 얻기 어렵다. 한국정치의 속성상 그렇다.

강용석, 유시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그리고 그 외의 의미 있는 정치인은 누가 있다고 생각하나? 변화를 일으킨다는 면에서 중요한 정치인이 아닌가 하는데..

나도 그 두 사람 정도가 의미 있다고 보는데 강용석은 자기가 한일에 대해서 과도한 처벌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분노가 있을 거다. 그런데 강용석이 자기한테 그런 불행(아나운서 비하발언으로 인한 출당 조치)이 닥치기 전에 그런 말을 했다면 나이는 어리지만 존경했을 거다. 문제는 불행이 닥친 뒤에 사건 배경을 다 아는 뻔한 것들이 여론 매질하는데 대해, 내가 볼 때는 강용석은 여론을 희롱하고 싶었을 거다. 한국사회의 가짜 권위와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형성되어있는 집단 이지매를 희롱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희롱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박원순, 안철수, 그리고 닥치는 대로.

그런데 거기에 한 두 명만 더 걸었다면 딱 좋았을 거 같다. 특히 재벌. 강용석 특유의 해학과 페이소스로 걸어봤으면. 그리고 엠비도.

문제는 강용석의 반대쪽에 있던 야권이나 진보개혁인사들로 보이는 부분들만 지적했던 것이 강용석의 정당성을 깍아 먹었던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강용석이 본질적으로 겨냥한 것은 우리사회에서 진보라는 이름하에 서로 너무 많은 것을 덮어주는 그런 부패한 진보지식인사회에 안티를 놓은 것이다. 그런 부분에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강용석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는 어떤가? 강용석은 중요한 정치인인가?

사회적 권위에 저항을 하고 일종의 똥침을 놓고 싶어 하는 것에 나는 일종의 동질감을 느꼈다. 어쨌든 희극적이든 뭐든 자기 지위에 대한 배반을 했다는 것은 굉장히 의의가 있다.

계급배반이라는 용어를 쓰는 특별한 이유? 다소 생경한 용어라고 할 수 있는데?

서민이 왜 서민을 대표하는 사람이 아닌 부자를 뽑을까 하는데서 비롯된 의문에서 나온 말이다.

강용석은 한국 정치사에 남을만한 정치인이 될까?

강용석이 앞으로 하기에 달렸다. 그냥 지금 사라지면 지금까지의 행동이 일종의 해프닝이 되고 말거다. 그런데 지금 이후에도 자기가 스스로 했던 대로 시종일관 하면 인정한다.

유시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난 유시민을 별로 안 좋아했다. 박봉팔닷컴 보면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던데...

내가 생각하는 유시민의 가장 큰 장점은, 정치에 기여한 것은 캐쥬얼한 빽바지 입고 국회에 간 거라고 말하고 싶다. 강기갑의 한복은 드레스코드로 인정해주면서 빽바지를 인정 안 했던 것도 웃기는 거다.

밖에서 개혁당을 만들어서 한국사회의 비권위, 나는 노무현의 비권위보다 유시민의 비권위가 더 의미가 있다고 본다. 유시민은 주변에 패거리 짓지 못하는 성향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독불장군처럼 무리한 시도를 하는 것. 나는 어떤 패거리에서 온존하는 사람보다 무모한 시도를 하는 사람이 더 낫다고 본다.

그런데 유시민 책을 몇 권 봤는데, 끊임없는 동어반복이더라. 자기가 주장하는 부분에 있어서, 다양성 면에서 사색의 시간이 많이 부족하지 않았나싶다. 사회적 투자를 이야기하는 것이나 한미 FTA 부분이 그렇다.

지금 와서 보면 세계화를 안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재벌이 잘 사는 게 국민이 잘 사는 게 아니지 않나. 상황에 따라서 나도 개인적으로 FTA에 대한 시각이 계속 바뀌고 있는데 유시민을 보면 궁색하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다? 그냥 능력 안됐고 잘못 판단했다고 하면 되는데 궁색하게 노무현의 유산을 과대하게 포장해서 짊어지고 있다. 친노나 유시민의 공통점은, 노통이 그 전 대통령보다 좀 더 나았다고 하면 되는 건데... 그게 절대적으로 다 옳다고 하는 식으로 가면 안 된다. 상대적 우위를 논하면 된다. 인정을 하고 새출발 하면 되는데... 큰 부분에 대한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유시민은 인정을 할 줄 모른다.

유시민도 진보 통합 과정에서 인정을 한 것이 아닌가?

진실하게 인정을 해야 되는데 진보당에 가기 위해서 인정을 한 것 아닌가. 그럼 나중에 반성할 일이 또 생긴다. FTA 찬반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통합진보당의 반미적 FTA 반대를 그대로 공감했다는 게...

지금의 진보당 사태는 결론적으로 유익하다. 유시민의 장점은, 뭔가 발전하려면 해체해야 하는데 지금 진보의 문패를 통진당이 차지했다. 문패를 차지하고 나니까 그 안에서 밥그릇싸움. 헤게모니 장악으로 난리인 것이다. 통진당 사태는 과거 유산으로 사는 진보 OB들이 촉발시킨 것인데 그것도 유시민이라는 독특한 사람이 끼어서 싸움이 났으니 유시민의 진가가 보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유시민 개인에게는 마이너스일 것이다. 대선출마도 쉽지 않게 되었고 너무 사단을 내놔서. 역사의 발전으로 봤을 때는 진보진영의 부패를 까발린 효과가 크다. 노회찬, 심상정은 유약해서 그렇게 치고 나가지 못했을 텐데 유시민 캐릭터는 그걸 한 거다.

내가 보기엔 유시민은 그럴 의도 자체가 없었다.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

역사는 원래 우연하게 그런 식으로 되기도 하는 거 아닌가. 그래도 유시민 캐릭터니까 가능했던 거고 거기에 애국가 드립까지 섞어가지고 폭발력을 늘렸다. 본인은 손해 많이 봤을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이슈가 제기되고 확산되는 풍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보기엔 온라인 여론의 활성화가 2002년부터인 것 같은데.

한국정치가 반독재 민주화투쟁 할 때는 국민의 여론이 시간차는 있었지만 정치 여론에 비교적 잘 반영되었다. YH 사건 때 김영삼도 제명됐다. 지금은 상상이 안가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예전이 더 진보적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87년 이후 문민정부 들어서면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외관상 갖추어졌다. 그 뒤에 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그리고 지금 시작되고 있는 대공황. 그 사이에 있었던 부동산과 금융투기를 통해서 우리 사회의 한 개인의 삶, 가족의 안정, 신분의 상승구조... 한국사회에서 이런 것들이 다 깨어져버리고 황폐해져가고 있다.

이 황폐해짐이 학생들에겐 폭력, 이지매 그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공부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다. 사회적으로 봐도 동물학대, 인육을 판다는 말까지.. 온갖 것들이 다 나온다. 이런 문제들이 ‘사회적 배제’와 관계가 있다고 본다. 젊은 남성이 노동기회를 상실한 채 배제되는 분위기.. 심각하다. 이런 추세들이 대중화되어가고 있는데 한마디로 무능하고 부패한 지식인이 설치고 일반 대중들은 새디즘에 물들어가고 있다.

트윗 들어가 보면 내편이 아니면 무조건 욕을 하고, 비판의 사각지대에서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어디 있나? 난 51대 49라도 괜찮다고 본다. 심지어 이명박이라고 절대적으로 100이 잘못되었겠나? 이명박이 후다닥 하는 것도 어떤 면에선 도움 되는 면이 있지 않겠나. 정치에 무관심한 다수 층과 트위터에 모인 100만 명의 사람들이 현재 온라인 여론의 규모다. SNS 여론의 특징, 0. 1%가 생산하고 0.5%가 확산시키고 나머지가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안철수, 이명박의 정치과정에 대한 판단이 제대로 된 토론 과정을 통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각 진영에서 논리를 개발한다. 무조건 강성으로 간다. 그러다 나온 게 나꼼수 아닌가. 여권을 90% 까고 야권을 10% 까도 배제된다. 나꼼수처럼 100% 까야 스타가 된다. 야권의 입장에서 이명박을 무조건 씹어줘야 먹힌다. 이런 과정이 새디즘적인 대중, SNS, 나꼼수의 모습이다.

공원에 가서 봤는데 30, 40대 젊은 사람들이 읽는 책 대부분이 진영논리와 관련된 책이더라. 심도 있는 독서는 안한다. 대부분 선동적인 책이다. 지식인이라고 낸 책들이 내용이 없다. 그들이 낸 사회전망서들 봐라. 전부 말장난이다. 정치인들도 기본적으로 인문교양이 있어야 하는데 지식인들이라는 사람들도 턱없이 인문적 소양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그래서 지식인은 무능하고 부패했고, 대중들은 새디스트가 되어가고, 진영논리에 의탁해서 가고 있는데 한국의 발달한 디지털 문화의 폐해가 정치권으로 반영이 되었다. 지금 정치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한국사회에 엄청난 후유증을 낳고 있다. 이것이 악순환을 일으켜 젊은 사람들의 균형 잡힌 감각과 심도 있는 공부를 방해하고 있다. 향후 10년 후 그 후유증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거다.

 



대선전망으로 넘어가보자. 이명박, 박근혜 두 세력은 대립적 공존관계인 것으로 보인다. 지금 상황에서 박근혜가 대권을 잡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데 이후 두 세력의 관계는 어떠할 것 같은가?

이명박이 지속적으로 박근혜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서 온갖 수를 다 썼다. 세종시도 박근혜 고립 시키려고 한 것이고. 정운찬, 김태호 꺼낸 것도 박근혜 고립이 목적이었다. 정운찬은 세종시 제안하고 김태호는 세대교체용이었고.

작년 연말에 돈봉투, 디도스 사건 터졌을 때 다들 그 배경을 석연치 않게 생각했다. 청와대에서 분명 미리 알고 있었을 텐데, 그때 서로 갈라서자는 말이 나왔다. 한때 한나라당 중진이 판을 새로 짜겠다고 나에게 찾아온 적도 있었다. 난 정신 차리라고 했다.

이명박이 박근혜를 압박한 부분 중에서 보다 결정적인 것은, 기사회생으로 당선된 오세훈을 말도 안 되는 무상급식 정도의 이슈로 팽하고 박원순을 당선시키게 한 것도 있다. 그것도 이명박의 의도다. 박근혜를 보궐 선거에 끌여 들여서 지게 만들 목적이었다. 박근혜가 지방 8개라도 당선시켜서 무사했지 만약 지방에서 몇 군데라도 더 졌으면 두 세력은 갈라섰을 것이다.

총선 전 안철수 창당설도 그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오세훈이 시장자리까지 팽개치면서 공작을 했다. 물론 일시적인 것이겠지만 총선과정에서 이명박과 박근혜가 손잡았다. 언제 깨질 것인가는 명박의 선택이다. 이명박은 정권재창출에 확신을 가지고 있지만 그게 꼭 박근혜는 아닐 것이다. 이해관계에 따른 일시적 공존이고 언제 깨질지의 문제다. 이명박은 정권 재창출을 확신한다. 지금 와서 이명박이 도와줘서 박근혜가 당선이 되었을 때, 박이 그간 이명박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그냥 넘어가겠는가. 이명박은 박근혜를 못 믿는다. 둘이 여러 번 독대를 했음에도 서로 불신하고 있다. 그건 성향의 문제이기도 하다. 만약 박근혜가 남자였다면 이명박은 어떻게든 확신을 받으려고 했을 거다. 하지만 박근혜는 여자고 여자 중에서도 굉장히 접근하기 어려운 스타일이다. 숱한 시행착오를 겪고도 안됐다.

박근혜 입장에서는 2007년 대선에서 대권을 강탈당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다. 경선 사기를 당해서 강탈당했다고. 최시중도 여론조사 운운하며 자뻑하지 않았나. 지금도 집권 이후 죽이려고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안철수를 내세워서. 그러기 때문에 이명박이 지금 와서 박근혜 손 들어준다고 해도 마냥 고마워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견디지 못한 어떤 사람이 먼저 칼을 뽑는가에 달려있다.

범새누리당의 대권 전망은 어떠하며 만약 정권을 잡는다면 어떤 식일까?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별로 변화한 것도 없고 그냥 자기들 수준만큼 한 거다. 외형상 복지라는 옷을 어설프게 입었다. 맞춤식 복지나 경제정의도 어설프게 보인다. 그런데 원조복지 운운했던 야권이 몰락을 자초했고 서민보수층은 이래도 저래도 믿을 수 없는 정치세력 중 ‘그나마 박근혜가 낫다’라고 선택한 것이다.

결국 새누리당은 세대교체가 안 됐다는 게 핵심이다. 거기서 전망이 나온다. 있는 사람 내보냈지만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별거 아니다. 개혁은 결국 사람이 하는 건데 정권을 잡는다 하더라도 전망은 뻔하지 않겠나. 이번 당선인들보면 개혁은 힘들 것이다.

기존 스타일의 연장이란 말인가?

오히려 앞으로 당은 더 무력화 될 거다. 개혁이 있다 하더라도 박근혜의 개인플레이에 의존하는 것일 것이다. 박정희도 시대에 맞지 않게 의료보험도 했다. 상명하달식으로. 그런 식으로 사회가 점프하기도 하지만 여권 체질로 보면 정당에서 조직적으로 개혁하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다.

이번 대선의 최대 변수인 안철수가 있는데 안철수는 대선출마 선언을 언제 할 것 같고 또 어떤 식으로 진행될 것 같나?

안철수는 가급적이면 출마선언을 최대한 늦출 거다. 민주당이 대선 경선을 9월말이나 10월초에 할 것 같다. 안철수가 민주당에 입당 안한다는 건 확정된 건데... 절대 안 들어간다. 안철수 뒤에 엠비가 있는 건 내가볼 때 확실한데 우리의 테크니션인 엠비가 민주당을 선택 하실 리가 없다.

안철수는 지금 언어의 유희를 하고 있다고 보는데, 출마선언이 아닌 자신의 정치참여 결심을 굳혀가고 있다... 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정치참여가 대선을 말하는 것이냐 하면 또 그것도 말장난으로 시간을 최대한 끌고 나갈 거다. 안철수가 대선후보 출마선언을 늦추는 것은 한 마디로 검증 때문에 겁이 나서 그런 거다. 안철수는 이미 벌써 9개월째 시간을 끌고 있다.

그렇게 계속하면 일각에서는 간철수니 하며 짜증난다고 역풍이 일 수도 있지 않나?

그렇다고 하더라고 어차피 안철수의 정체성은 야권후보로 세팅되어있다. 그런 역풍이라고 해봐야 야당이 안철수를 정면으로 비판하지 않는 한 이런저런 잡음 수준밖에 안된다. 안철수에 대해 새누리당은 제정신이 아니고..

민주당이냐 제3당이냐가 아직 논란이 되고 있는데?

안철수가 공식 출마선언을 하기 전에도 유사 정치 조직이 먼저 생길 수 있다. 물론 그 조직도 안철수와 먼저 교감이 있고 나서야 가능할 것이다. 안철수가 저러다가 지지도 관리도 안 되고 어느 순간 추락하면 마지막에 국민들이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출마를 사실상 포기하면서 여권후보를 지지한다거나...

민주당과 끊임없이 단일화 협상을 하다가 막판에 포기해버리는 경우도 생각해볼 수 이 있다. 그럼 그것도 결국 야권 표 분산 현상이 되는 것이다.

순수한 야당의 후보가 되는 경우는 안철수 뒤에 누가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마지막에 이명박이 힘 빠지면 안철수는 자신의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있지 않겠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이명박이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이명박이 안철수보다 훨씬 더 우월한 위치에 있다.

그리고 단지 민주당 쪽만 생각해서는 안 되고 여야당에 여러 가지 폭풍이 몰아치면서 변화가 발생하는 상황이 올 것인가도 좀 봐야 되는 문제다. 친노 수사가 본격화되는 거라든지 정치권 비자금 수사라든지, 공안사건, 비리사건이 통진당 쪽에서 터질 거라고 본다. 김재연, 이석기가 어리석은 결정을 했다. 저쪽에서는 두 사람이 의원직을 안 던질 거라고 보고 판을 짠 거다. 굉장히 큰 문제가 터질 수도 있다.

이번 대선의 소위 관전 포인트는?

이명박의 의도다. 지금 이명박은 자신의 파워를 전혀 잃지 않고 있고 초기에 광우병 파동에 시달릴 때보다 더 강해졌다. 그간 크고 작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노하우가 쌓였다.

거기에 대해 박근혜 세력의 독자성은 없는 건가?

박근혜 혼자 다하는 보컬만 있는 밴드라고 할 수 있다. 세력이랄 것이 없다.

박근혜의 미스테리한 내공에 대한 의견은?

한마디로 부작위에 의한 내공이다. 가급적이면 덜 움직이고 여론에 따라가는... 그런데 부작위의 내공도 저 정도 레벨이면 어떤 경지다. 박근혜가 사라지면 친박세력도 없어질 거다. 그래서 사실 친박세력은 세력이라고 할 수도 없다.

우리사회의 기득권 세력이 박근혜를 두려워하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박정희 때를 생각해보면 기득권층이 권력의 덕도 많이 봤지만 권력의 말 한마디에 해체될 수도 있었다. 박이 되면 재벌들이 딜레마가 생긴다. 권력이 다시 재벌위에 올라가는 게 아닌가라는 두려움이 없지 않을 것이다.

조중동이 박근혜에 대해서는 정신분열증적 행태를 보인다. 그들은 자기들이 만만하게 주무를 수 있는 보수로 가장한 이해결사체를 원한다. 이명박 세력은 보수세력이 아니라 이해결사체다. 그들은 이념이 없다. 그에 비해 박근혜는 과거의 리더쉽으로 복귀... 라는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딜레마를 느끼게 만든다.

오히려 조중동은 안철수를 원할 수도 있다.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가 안철수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히려 우리나라 전통적인 이해결사체는 안철수를 원할 수 있다고 본다. 그들 입장에선 쉬워 보이는 엠비가 되었어도 고생은 했다. 중간에 왔다갔다하는 건들이 더 복잡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안철수는 약점 몇 개만 잡고 있으면 훨씬 더 만만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수언론은 박근혜에 대해 분열증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재벌과 조중동이 안을 본격적으로 안 까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그럼 이명박 지지세력과 박근혜 지지세력이 본질적으로 다른 부분은 뭔가? 박근혜 세력이 전통적인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진짜 기득권 세력이라고 할 수 있나?

한국의 전통적 정치결사체는 과거에 상도동, 동교동이라고 할 수 있다. 나머지는 이해결사체인데 친노도 전통적인 정치결사체는 아니다. 노통이 대통령 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지.

그 이후에 기성정치인들 중에서 친박이라는 부분을 보는 건데 한마디로 친이 쪽에서는 박근혜만 없어지면 친박은 없다고 보고 있다. 과거에 노통이 되고나서 동교동이나 호남세력이 당이 분열되고 야당으로 떨어지면서 그때 정치 중심에 있었던 동교동 사람들이 대부분 정치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때 그 사람들이 느낀 것이 많을 것이다. 여야 상관없이 내가 속한 계파가 당내 주도권을 잡는 것이 정권 창출만큼 더 중요하다는 것. 정권을 잡아도 그 속에서 내가 잘나가야지 내가 비주류에 속해있으면 자신이 속한 당이 정권을 잡아도 나를 죽이려고 할 것이다.

지금 친이가 생각할 때 지금 보면 임태희 정도가 '박근혜는 킹 메이커를 하라' 말을 하는.. 남들이 보면 상상이 안 가는 이야기를 했고 엊그제 친이 삼인방이 모여서 ‘오픈 프라이머리 안하면 보이콧 하겠다’라고 했다. 박근혜는 소통이 안 된다.. 독단적이다.. 독재적이다.. 온갖 이야기를 다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다고 가정했을 때 그 사람들이 정치하기 힘들 수도 있지 않겠나. 원래 정치보복은 야당에도 하지만 여당에도 한다. 만약 야당이 됐을 때 새누리당 권력은 누가 잡겠나. 친이가 잡겠나, 친박이 잡겠나. 과연 친박이라는 게 박근혜 낙선 이후에도 정치세력으로 유지될수 있겠느냐는 측면에서 보면 된다. 물론 최근 친박이 총선 승리 후 보이고 있는 모습은 기득권 세력이라고 할 만은 하다.

전통적 친박이었던 유승민이 최근 박근혜를 비판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봐야 하나?

둘은 성격적 트러블 때문에 그런 걸로 보고 있다. 아무튼 내가 보기에는 친이가 절대 박근혜를 순순히 대선 당선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박근혜에서 딜이 들어올 정도까지 압박을 한다는 건가?

대통령이 되고나면 그래봐야 괘심죄만 늘어나지 그런 계산은 무의미하다. 아예 도와주려면 총선 때부터 도와줬어야 했다. 이런 판단을 잘못해서 신세 조진 사람 몇 있다. 박세일같은 경우 당이 만들어질 거라고 보고, 물론 안철수도 올 거라고 보고, 선발대로 나가서 아지트를 만들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엠비가 거둬버리니 사석작전으로 내 몰려 정치적 미아가 되어버렸다. 정치가 그런 거다. 그런데 박세일 정도야 바둑판 사석 취급 당할 수 있지만 예를 들어 정몽준은 그렇겠느냐. 대기업 재벌 회장이고 그런 사람이 자기 걸 모두 걸고 그러겠느냐. 최고의 생명력을 자랑하는 이재오, 김문수도 사석 취급은 안 받을 거다. 일차적으로 자기들 나름대로 카드가 있다. MB와 교감없이 저렇게 할 사람들이 아니다. 임태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임태희는 항간에 손금이 없는 사람, 물밑 비서실장이라고들 하는데. 엠비가 물 위로는 나오지 않지만 가끔씩 친이가 친박 공격할 때마다 나오는 반응봐라. ‘해도 해도 너무하네’라는 말이 익명으로 나온다. 그게 이명박에게 하는 말이다.



이명박은 구체적으로 이번 대선에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이명박 트랩의 성격을 보자. 이명박 트랩은 인물 위주가 아니다. 그리고 새로운 인물을 찾기엔 이미 늦었다고 본다. 한때는 사람들이 안철수를 끌고 가다가 새로운 인물이 나올 거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한국 정치의 역사는 배신의 역사다. 노통과 엠비도 노통 퇴임취임 무렵 화기애애했는데 광우병, 강연회로 깨졌다. 현직이 전직을 척결하지 않는 정치는 한국에 없었다. 아무리 엠비가 밀어주더라도 제도적으로 시스템화해놓고 넘기지 않고는 ‘나중에 내목에 칼이 들어올거다’라는 것을 엠비가 모를 리 없다. 시스템화 시켜놓고 정계개편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대선이 있는 해에 친이주자 세 명이 분권적 개헌 발언을 왜 했겠나. 민주당 원내대표 하던 양반도 DJ는 대통령제가 소신이었지만 자기 소신은 분권적 개헌이라고 했다.

그리고 정치권 필드에 동원 가능한 대중을 거느리고 있는 유이한 집단이 친노와 진보다. 나중에 이명박을 체포하자고 할 사람들은 친노와 진보 두 세력이다. 그래서 지금 살금살금 친노세력에 대한 조사가 많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친노가 여기에 대해 대응을 안 하고 있다. 종북주사 문제로 대응한다고 하는데 오히려 이것이 지금 정치 중심이슈다. 통진당 두 사람이 사퇴를 두고 사상 커밍아웃하라는 말이 잘 안먹히기 때문에 우회를 해서 공안사건이나 비리사건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예상도 할 수 있다. 한국사회의 패턴이 기본적으로 그래왔다.

대선 틀을 파괴하려는 시도도 있을 것이다. 쉽진 않겠지만 안철수가 단일화로 야당후보 되고 집권했을 때 그냥은 곤란하다... 대선 일 년차에 개헌을 하겠다... 국회의원도 갈라먹고 뽑겠다.. 고 합의하는 세력끼리 모여라..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관성의 법칙상 아무리 계획을 짜도 이런 일이 잘 되지는 않을 것이다.

들어보면 야권은 거의 대선을 포기했다는 느낌까지 든다.

그렇게는 안 본다. 10년 집권을 해봐서 얼마나 여권이 좋은지 다 알고 있다. 온갖 노력을 끝없이 할 것이다. 상상력이 부족해서 탈이지.

야권이 아무런 전략도 없고 대중적 감도 떨어지는 것은 확실히 문제다.

구시대적 야권 정치지도자 행태가 무너지고 있는데 야권 정치주자들이 비전제시를 못하고 있다. 문제는 모로 가든 어디로 가든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야당이 정치공학적 테크닉을 동원해서 꼭 이기겠다고 하면 대선에서 진다.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경제가 바탕에 깔려 있을 때 국민들 대다수의 선택은 무조건 바꿔보자는 것이 일반적이다. 유럽도 바꿔보자는 것이 지금 대세고 미국도 롬니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결국 경제 아닌가.

여권이 영남과 호남에서 투표 합산해보면 불과 20~30만표 이긴다. 수도권이 결정하는 건데 대선 결과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누가 나와도 막판 가면 서로 결집되는데 2007년처럼 무기력하지는 않을 것 같다.

지난번 대선은 노무현 정권에 대한 반작용도 크지 않았나?

지금은 그 당시와는 다르다. 이명박 실정에 대한 반작용으로 야권에 표가 가는 건 너무 기대해서는 안된다. 야당도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그렇다. 이명박도 그 부분을 계속 물고 늘어질 것이다.

그리고 박근혜가 이명박과 분리효과를 국민들에게 잘 심어놓았다. 시골 할머니들도 이명박과 박근혜가 사이가 안 좋은 걸 안다. 그래서 이명박 실정이 계속되어도 야권으로 반드시 가지 않는다. 문제는 경제다.

현재 정도로 경제가 유지되면 모르겠지만 수출등 하반기에 문제가 생기면, 그리고 유럽 중국 쪽 문제가 겹치면, 중국이 경착륙하고 자본시장이 흔들려서 외화 유출되고 환율이 올라가는 사태가 벌어지면 패닉현상이 가시화될 것이고 대선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여권은 신뢰를 택할 것이라고 보고 있는데 상황이 통제불능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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仲尼再生 " 夜 의  走筆  " 취임사

 

저를 아크로 주필로 추천하시는 회원여러분의 글을 읽고, 오늘 본인은 본인의 향후 거취를 놓고 깊이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끝없이 되뇌며, 다수 회원의 요청대로 아크로 "밤의 주필" 직을 기꺼이 수락하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내 일신의 안녕 만을 위한다면 봉급 한 푼 못 받는 이 명예직을 수락할 수 없었겠지만, 이미 공인 아닌 공인이 된 몸으로서 이 위기의 시대에 역사가 제 어깨에 지운 이 짐을 떠맡기로, 본인은 이 아름다운 밤 위대한 결단을 내렸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