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법>을 읽어 보았다.

제9조(정치 관여 금지)
① 원장·차장과 그 밖의 직원은 정당이나 정치단체에 가입하거나 정치활동에 관여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 제1항에서 정치활동에 관여하는 행위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말한다.

1. 정당이나 정치단체의 결성 또는 가입을 지원하거나 방해하는 행위
2. 그 직위를 이용하여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하여 지지 또는 반대 의견을 유포하거나, 그러한 여론을 조성할 목적으로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하여 찬양하거나 비방하는 내용의 의견 또는 사실을 유포하는 행위
3.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을 위하여 기부금 모집을 지원하거나 방해하는 행위 또는 국가·지방자치단체 및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공공기관의 자금을 이용하거나 이용하게 하는 행위
4. 특정 정당이나 특정인의 선거운동을 하거나 선거 관련 대책회의에 관여하는 행위
5. 소속 직원이나 다른 공무원에 대하여 제1호부터 제4호까지의 행위를 하도록 요구하거나 그 행위와 관련한 보상 또는 보복으로서 이익 또는 불이익을 주거나 이를 약속 또는 고지(告知)하는 행위


요즘 문제되는 국정원 직원 댓글 사건이라는 게 제9조 제2항 2호와 5호 위반이라고 기소된 듯 싶다. 실행범에 해당하는 직원이 2호 위반, 교사범에 해당하는 원세훈이 5호 위반. 공소장을 안 읽어 보았으므로 이 부분은 내 추측이다.

대관절 "정치 활동에 관여하는 행위"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제9조 제2항이 열거하고 있다. 읽어보니, 1호, 3호, 4호, 5호는 필요 조건이 없이 그냥 규정되어 있는데, 2호에 대하여만은 "그 직위를 이용하여"라고 조건이 걸려 있다.

"그 직위를 이용하여"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법률 전문가가 아니어서 잘 모르겠다. 아마 여러 판례가 있을 것이나, 일일이 찾아볼 여력도 관심도 없다.

여하튼 <공무원법>이나 <공직자 선거법>에도 동일 문구가 삽입되어 있느니만큼 확립된 해석이 있을 터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쓰는 내용은 순전히 내 개인 의견이다. 즉 사실 논거가 없다. 그러니 "질문이란 자가 사실 논거없이 의견 논거를 제시할 만큼 대단한 사람 맞냐?"고 반문한다면 할 말 없다. 대단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이런 저런 의견이 넘치므로 그냥 비전문가의, 일반 국민의 상식선에서 쓰는 말이라고 이해하기 바란다. 나는 박빠도 아니요, 박까도 아니다. 박근혜에게 투표하지도 않았다, 어떤 이들에게는 믿거나 말거나이겠지만.

노무현이 대통령 재직시 "열린 우리당이 총선에서 승리하기 바란다."고 공개적으로 말한다면 이건 "그 직위를 이용하여 정치 활동에 관여한 것"이다. 이 때문에 국회에서 탄핵 소추를 당했고, 헌재에서 탄핵 심판받아 인용되었고, 현재의 "일종의 制憲"에 의하여 탄핵을 모면하였다. 헌법에도, 헌법재판소법에도 "양형 규정"이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양형을 제맘대로 시행해서 노무현을 살려줬다. 제2의 "관습 헌법론"이라고나 할 터이다.

<사고의 실험>으로 만일 노무현이 정치 토론 사이트인 아크로(가 만일 그때 있었다면)에 "파랑집"이라는 필명으로 "열린 우리당이 총선에서 승리하기 바란다."고 썼다면 이것 역시 "그 직위를 이용하여 정치 활동에 관여"한 것일까? 아마 거의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파랑집"이 노무현이라는  사실 관계가 밝혀지지 않았으며, 가령 노랑집 회원이 "파랑집 개새끼"라고 욕을 해도 모욕죄나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파랑집"이 현실 세계에서 누구인지 특정이 되지 않기때문이다.

내 생각으로는 공무원이 그 직위를 이용한다는 것은 공무원이 가지고 있는 권력과 정보를 이용한다는 말이다. 권력이란 인사권, 예산권, 인허가권등일 테고, 정보란 남들이 알지 못하는 존안자료, 개발정보, 정책정보, 안보정보등일 테다.

국가정보원 공무원이 아크로라는 정치 토론 사이트에 "나 국가정보원 아무개"라고 자기 소개를 시작하면서 글을 쓴다면 그 글의 무게가 남다를 터인즉 그 직위을 이용한 것 맞을 테고, 그런 소개를 안 하더라도 국가정보원 정도 되지 않으면 보통 사람들은 알지도 못할 고급 정보, 고급 자료를 풀어서 무엇인가를 주장한다면 (예를 들자면 "문재인은 동성연애자이다"라든가, "문재인은 김정일의 공작금을 받은 사람이다, 여기 그 증거가 있다"라든가) 이 역시 그 영향력과 파급력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국정원 직원 아홉 명이 싸질렀다는 수천 개의 댓글과 그중에서 정치성이 있다고 하는 천 수백개의 댓글들과 그중에서 문재인 후보자를 비방하였다는 세 개의 댓글들이 과연 그런 고급 정보, 즉 "국정원 직원의 직위를 이용하여" 얻은 정보인가? 아니면 개나 소나 다 읊는 그렇고 그런 소리들인가? 그런지 안 그런지 판사가 판단할 테지만, 언론 보도만 놓고 보자면 그 내용과 양이 심히 보잘 것 없어서 하품이 나올 지경이 아닌가 싶다. 국정원 직원 아홉 명이 "그 직위을 이용하여" 정치 관여 행위(2호 위반)를 한 게 아니라면, 직원 아홉 명에게 사이버 심리전을 지시한 원세훈의 행위 또한 정치 관여 행위(5호 위반)를 한 게 아니라고 봐야 옳다.


더하여 <근로 기준법>을 한 번 읽어 본다.

제54조(휴게)
① 사용자는 근로시간이 4시간인 경우에는 30분 이상, 8시간인 경우에는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근로시간 도중에 주어야 한다.
② 휴게시간은 근로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대통령도, 국가정보원 직원도, 동사무소 9급 직원도, 공립초등학교 교사도 공무원이지만, 공무원 위의 상위 범주는 "근로자"이다. 근로 기준법의 규정은 근로의 최소한의 기준을 정한 것이므로 당연히 공무원에게도 적용된다. 그렇다면 국가정보원 직원이 내곡동에서든 강남의 자기 오피스텔에서든 근무하다가 쉬면 안 되는 건가? 쉬는 동안에 뭘 할지는 근로자 맘 아닌가? 지마켓 가서 실명으로 옷을 사건, 오유에 가서 익명으로 댓글 놀음을 하건, 아크로에 와서 필명으로 정치 토론을 하건 그걸 가지고 왜 따따부따 따지는가? 뭘 그리 대단한 짓을 저질렀다고?

뿐 아니라 근무시간 이외의 시간은, 노동자가 월급의 댓가로 판 시간이 아니므로, 얼마든지 자기 맘대로 사용할 수 있다. 국정원 직원들의 댓글이 어떤 것은 사이버 심리전 부분이고, 어떤 것은 정치성 있는 댓글이라는 다양성을 가짐은 이러한 측면의 반영일 수도 있다고 본다.


국가정보원이 종북 세력의 반역 행위를 적발해 내고 종북당의 위헌 불법 행위를 포착해 내어, 종북분자를 체포하고 종북당의 해산을 요구할 정보를 획득해 내지는 못하고, 고작 졸렬하게 인터넷 댓글 놀음이나 하고  휴게 시간중 문재인 비방 댓글 씀을 통제하지 못한 점은, 직무 유기이자 李下不整冠 瓜田不納履의 관점에서 조직 망신이지만, 이것을 가지고 "국정원법 위반", "공선법 위반" 운운은 침소봉대에 지록위마도 이만 저만이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내 생각이다.

그렇기때문에 현재의 "시국 선언" 운운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것이며, 우파의 조소거리가 되고 말 것이라고 본다. 우파 일각에서는 "떼촛불 시위에는 돈이 깨지기 마련이므로, 이번 기회에 좌파 돈줄이 좀 말랐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과연 그 기대대로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다. 되면 어떻고, 안 되면 또 어떻겠는가?

"개가 짖는다. 개는 짖지만 달은 간다."
"개가 짖는다. 개는 짖지만 카라반은 간다."
박근혜의 심정이야 내 알 길 없지만, 아마도 위와 비슷하지 않을지...

"그 직위를 이용하여"의 해석이 만일 원세훈과 국정원 아홉 명에게 불리하게 적용된다면, 국가 전체가 한 바탕 아수라장이 될 거라고 본다. 박근혜에게야 뭐 불리할 일이 아니리라. 전교조, 전공조, 기타 등등 그가 입 틀어막고 싶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나? "프리즘"이 지난 5월 한 달동안 획득한 개인 통신 정보 건수가 930억 건이라고 한다. 하루에 30억 건이라는 후덜덜한 숫자인데, "남한판 프리즘"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