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평소 발언 기조(라고 받아들여진)와도 간극이 있고 또 지금 게시판 분위기에도 찬물을 끼얹는 듯한 느낌이긴 합니다만..

사천의 그 고등학교 교사에 대해서는 좀 다른 가능성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우선 이 교사의 해명이 상당히 적극적입니다. 악의적으로 호남혐오 발언을 하는 친구들이 자신의 발언이 문제가 됐을 때 보이는 반응은 대개 두 가지 정도입니다.

첫째, 연락이 되지 않거나 연락이 되더라도 그냥 답변을 회피하는 거죠. 거기에 대해선 할 말 없다고 버티는 것, 청문회 등에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버티는 것과 비슷한 태도입니다.

둘째, 그래서 어떻다는 거냐, 내가 틀린 말 했냐 이렇게 버티는 친구들도 있죠. 디제이 시절 익명으로 디제이를 극렬 비난하던 놈을 찾아보니 멀쩡한 대학교수였는데 그 놈이 바로 이런 식으로 뻐팅겼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무튼 사천의 저 교사는 위 두 가지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케이스 같습니다. 나름 해명하는 얘기가 논리적인 구조와 스토리라인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해명을 하는 친구라면 교실에서 학생들 앞에 두고 막무가내로 호남 혐오 발언을 내뱉을 가능성은 적지 않을까요?

이 교사의 발언에 등장하는 요소들을 보면 우선 80년대 문학적 성과와 고정희 시인의 작품 세계 등이 나옵니다. 내가 보기에 이 얘기를 하면서 호남이 가진 역사적 특수성을 나름대로 소개하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그러면서 약간 오버 또는 흥분된 표현이 나왔을 수 있다고 봅니다. 배역의 땅, 반역의 땅... 문제가 된 표현 말입니다. 제가 지나치게 넘겨짚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교사는 이 표현을 악의적인 의도라기보다는 일종의 상찬으로 썼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고 봅니다. 80년대 운동권 물을 먹거나 그 분위기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저런 식의 표현은 그다지 낯설지 않습니다. 반역의 땅, 좌절의  땅, 절망과 학살의 땅 등등. 사실 김지하의 <황토>도 호남의 비극적 역사성을 저런 식으로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거든요.

특히 경상도 출신 진보성향의 인물들이 저런 경향이 약간씩 있어요. 호남의 피, 한, 역사... 이런 것에 대해서 미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거죠. 원래 자신의 세계와 완전히 동떨어진 영역에 대해서는 공포나 증오 또는 정반대로 전설적인 얘기 등으로 미화하는 등 양극단의 반응이 나오기 쉽습니다. 이번 경우는 차라리 후자에 가까운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저런 식으로 얘기를 풀다 보니 이성계(물론 고려 왕건과 헷갈린 것이겠죠)와 훈요십조 얘기까지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이건 인문계 출신들의 특징이기도 해요. 지나치게 맥락 위주로 나아가는 거죠. 그러다 보니 호남지역 가서 사투리 쓰기가 두려웠다 어쩌구저쩌구 하는 얘기도 나왔을 것이고... 이 교사의 어설픈 설명이나 의식의 빈약함을 나무랄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나치게 나쁜놈으로 몰아가는 것은... 자칫하면 헛발질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어설프고 서투른 것도 물론 지적하고 비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죽일 놈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얘기거든요.

일부에서 이미 얘기가 나오지만 제가 보기에 이 교사는 노빠에 가까운 성향 아닐까 싶습니다. 딱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런 느낌입니다.

또 하나, 좀 창피한 얘기입니다만 제 경우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발언에서 맥락을 놓치는 경우가 많아지더군요. 나로서는 충분히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인데 상대방은 그렇지 않거든요. 그럴 때는 상대방에게 발언의 맥락을 충분히 주지시키기가 꽤 어렵습니다. 지금 이 교사와 학생들의 상황이 그런 경우입니다. 나름대로 정리해서 쓰는 문장 형태로 표현할 때는 그래도 그런 문제가 적은데, 그냥 입으로 내뱉는 발언에서는 엉뚱한 비약이 나올 가능성도 커집니다. 저 교사도 그런 식의 문제를 갖고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하게 되는군요.

물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제 짐작이 사실일 가능성이 훨씬 낮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가급적 폭주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문제에 흥분하고 헛발질하면 우스꽝스러워지는 거죠. 조금 더 차분하게 지켜보고, 정말 지금 얘기되는 저 교사의 발언이나 전후 맥락이 다 사실이라면 그때 가서 좀더 잔인하고 냉철하게 대응해도 된다고 봅니다. 지금 사회적 분위기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봐요. 박근혜 집권이 가져다준 약간 역설적인 효과입니다(사실 문재인 반대한 닝구들의 원래 의도가 이런 것이기도 합니다만).

저는 호남문제에 대해서는 이 문제에 대해 인식을 공유하는 분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보다 수위를 높인 발언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발언 수위를 높이는 것과 발언의 품격을 낮추는 것이 같은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 아크로나 스카이넷 분위기를 보면 자칫하면 발언 수위를 높이기보다 발언의 품격을 낮추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