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간 자유 게시판과 메인 게시판을 달구는 지역 주의 논쟁을 지켜보면서 저도 나름대로 공부도 해보고, 자료도 찾아보고, 생각도 해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제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정리된 생각은 아니고, 아직 진행 중인 생각들이지만, 일단 공론장에 글로 표현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듣고 그러면서 수정할 것은 수정하고, 보완할 것은 보완하고, 비판받을 것은 비판받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이렇게 적어 봅니다.  그럼 제 생각을 몇 개의 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지역주의에 대한 규정: 지역주의는 단순히 감정적, 비합리적인 정서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적인 수준의 합리적인 선택의 결과다.

  지역주의를 연구해 온 많은 정치학자들이 (예컨대, 최장집, 손호철, 황태연, 조기숙 등) 지역 문제가 단순히 감정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계급 문제가 섞여 있다는 것에 견해를 같이 하는 것 같습니다. 계급 문제가 섞여 있다고 함은, 제가 이해하기엔 박정희 정권 하에서 선거 전략적인 선택에 따라 호남 지역을 개발 블록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해 왔고, 따라서 한국식 근대화, 즉 자본주의 발전의 과정에서 호남이 소외되었다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 문제가 계급 문제화 되었다고 함은, 예컨대 도식적으로 호남권이 프롤레타리아화 되고 영남권이 부르주아화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개발에서 소외된 호남과  개발의 이익을 향유한 영남권의 생활 수준이 양극화되었다는 것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만약 한나라당 정권이 여전히 조직적으로 정권 차원의 호남 박해를 감행하고 있다면, 예컨대, 바람계곡님의 포스팅에서 보여지듯이 영호남간 예산 배정의 심각한 불균형이 객관적인 수치로서 나타난다면 , 여전히 지역주의가 정서적인 문제가 아니라 자원 배분의 불평등이라는 실체적인 문제라는 것을 증명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박해 받는 지역의 주민들이 조직화되고, 저항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실체적인 이익들이 위협을 받게 될 테니까요. 

 2. 지역주의로부터 지역 대결 구도의 형성: 지역 대결 구도는 내쉬 균형의 성격을 가진다.

 정권차원에서 지역 발전을 위한 자원 배분이 실질적으로 불평등하게 이루어지게 되면, 해당 지역 주민들은 당연히 자신에게 적대적인 정권이 정권 재창출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강력한 유인을 가지게 됩니다. 따라서 호남 사람들은 형식적으로는 '국민 정당'으로서의 성격을 표방하는 한나라당(박정희 정권부터 비롯하는 영남권에 근거를 둔 지배정치세력들을 총칭) 을 비토하는 세력이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호남 사람들의 전략적인 선택입니다. 하지만 기존의 지배 정치세력은 영남 지역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쉽게 동원할 수 있었으며(예를 들어 호남 정권이 들어서면 우리는 다들 망할 것이라는 자극적인 수사로), 이러한 (지배 세력의) 전략적 조종의 결과로, 영호남 두 지역 사람들은 선거에서 서로 적대적인 포지션을 취하게 됩니다. 

 그것이 자원 배분의 실질적인 불평등에 기반한 전략적인 선택이든, 혹은 지배 세력에 의해 정서적으로 동원된, 반 이데올로기적인 선택이든, 두 지역 사람들이 선거에서 이렇게 집단적으로 조직화된 투표를 하게 됨으로서, 선거에 있어서의 '지역 대결 구도'라는, 유권자 집단의 평형상태가 만들어 지게 됩니다. (이 글은 보다 포괄적인 용어인 '지역 주의'라는 용어와, 그를 통해서 선거를 통해 표출되는 '지역 구도'라는 용어를 분석적인 차원에서 서로 구분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립된 균형은 전형적인 내쉬 균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죄수의 딜레마라고 익히 알려진 게임 이론에서 내쉬 균형이란 서로 상반되는 이해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두 사람 (혹은 집단들)이, 서로 자신의 전략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의사 소통은 서로 막혀 있고, 그 결과 상대방의 변화에 회의를 느낄 때 그 선택의 결과로서 직면하게 되는 균형 상황입니다. 

  예를 들어서 호남권 500만명, 영남권 800만명의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지역에서 국회의원 선거를 한다고 가정할 경우, 

 90퍼센트의 호남 사람들이 전략적 지역 투표를 할 경우 호남지역 50석 중 45석, 80퍼센트의 영남 사람들이 전략적 지역 투표를 할 경우 영남 지역 80석 중 64석을 가져간다고 가정할 경우,

 지역투표의 충성도가 호남 사람들이 영남 사람들보다 높다고 하더라도, 호남은 항상 숫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이것은 국회의원 선거 보다는 all or nothing 의 승자 독식 게임인 대선에서 괴멸적인 결과로 나타납니다. 

 어떻게 보면 진부한 사실이지요. 주목해야 할 것은 문제를 이렇게 규정했을 때 드러나는 선거에서의 영호남 지역 대결 구도(지역주의가 아닌) 가 지닌 장기적, 전체적인 차원에서의 비합리성입니다. 영남은 지역투표 게임에서 항구적으로 승리할 가능성이 큰 반면, 호남은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 호남은 앞으로도 계속 실질적인 자원 배분의 불평등 상태 속에서 살아가야 할까요? 
 
 이 문제를 푸는 데 두 가지 해결 방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 내쉬 균형 하에서 자신의 편을 확대해서 게임에서 승리혹은 보다 유리한 결과를 얻거나, 

 둘째, 내쉬 균형이 성립하는 조건을 중,장기적으로 없애버리는 것. 

3. 이른바 '친노 세력'의 딜레마-- 왜 친노 세력은 영남 지역에서 한나라당의 균열만을 목표로 할 수 없는가?

문제는 내쉬 균형이 성립된 상태에서 게임 참가자들이 별다른 특수한 사정이 없는 한, 상대방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으리라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만약 친노 세력이 호남 지역을 배제하고 영남 지역에서만 활동하면서 제도 정치권의 진출을 도모할 경우, 친노 세력이 영남 지역의 유권자들로부터 자신의 '진정성'을 인정 받지 못하게 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입니다. 영남 지역 유권자들은 친노 세력을, 영남 지역에 침투시킨 호남의 '트로이 목마' 쯤으로 간주할 것이고, 그 결과 영남 지역 유권자들의 전략적 지역 투표를 바꿀 유인을 거의 갖지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반대로 전략적 지역 투표 성향을 강화시킬 여지가 더 크다고 봅니다. 이 경우 친노 세력은 영호남 모두에서 자신의 세력 기반을 얻게 되지 못함은 물론이고, 자신이 내건 '지역 구도 타파'의 명분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이제 친노 세력의 창당을 주어진 사실로서 받아들인다면, 친노 세력의 지지자들을 무조건 비토할 것이냐, 아니면 다른 관점에서, 다른 전략을 취해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유의미한 여론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01_sir0413.gif 02_sir0413.gif

   국민 참여당을 선택지에 포함시킨 설문 조사와, 그렇지 않은 조사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참여당+ 민주당: 한나라당= 약 34: 30, 지지정당 없음 15 퍼센트

 오로지 민주당 : 한나라당= 29 :32, 지지정당 없음 20 퍼센트

 참여당이 정치판에 뛰어들 경우,  민주당의 지지율을 대폭 갉아 먹는 효과가 있지만, 반면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았던 유권자들을 그에 못지 않게 동원하는 효과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민주당과 참여당이 각자 제 갈길을 가게 된다면 이는 민주당에겐 타격이 크겠지만, 민주당과 참여당이 반이명박 정부 선거 연합을 이루어 낸다면, 당장 내일 치뤄지는 가상적인 총선, 대선에서 모두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민주당이나, 민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나, 참여당의 정치 참여를 적어도 전략적인 차원에서는 비토할 이유가 별로 없게 되는 것이지요. 

 4. 선거 연합은 최소한의 경우는 선거구제 개편, 최대한의 경우는 연방제, 양원제 도입 개헌을 매개로 해서 이루어 내야

 그렇다면 어떻게 선거 연합을 이룰 수 있을 것이냐. 반 한나라당 전선의 네거티브로는 명분도 약하고, 일반 유권자들의 공감도 얻기 쉽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4대강이나 세종시 수정 같은 한나라당이 시행하고 있는 브랜드 정책들의 네거티브를 매개로 해서는, 정국의 변화에 따라 연합의 명분과 이유도 약해질 위험성이 커지지요. 그러므로 건설적인 정책을 매개로 삼고, 이것을 정국적으로 정치 프레임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정치사의 큰 흐름을 그을 수 있는 실천적인 정책 틀에 합의해 놓고,  바로 이 틀 안에서 일반 유권자들과 여론 주도층을 설득해 가는 것이지요. 지역 구도 타파를 최대 실천적 과제로 삼는 참여당의 입장에서는, 노무현 정부가 이루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했던 선거구제 개편, 더 나아가 개헌 논의를 통해 민주당과의 전략적 연대를 모색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지역 갈등 구도를 제도적으로 규정해 왔던 헌정 체제를 바꾸는 일, 다시 말해 87년 체제를 벗어나게 하는 이니셔티브를 끊임없이 정치권에 주문하는 것이 결국 호남의 저항적, 전략적 지역 주의가 가야 할 길이라고 봅니다. 지역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지역 구도는 87년식의 헌정 체제가 유지, 강화해 온 측면이 분명히 있으며, 이것은 지역 구도의 제도적인 하부구조로서 작동해 왔습니다. 호남 지역 주의자들은 바로 자신들을 옮아매고 있는 이 제도적인 하부구조를 무너뜨려야 합니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