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안철수가 최장집을 자신의 최고 정책 브레인으로 모셔 왔고, 심상정도 만나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인가 최근 심상정은 국회대표연설에서 소위 '반성문'을 쓰면서 화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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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간 진보정당은 노동중심성 패러다임에 경도됐다는 비판, 대기업 정규직 정당 아니냐는 지적도 받았다"며 "근거있는 비판"이라고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심 원내대표는 '종북논란'을 의식한 듯 "진보정당은 안보불안세력이라는 불신이 널리 퍼져 있다"면서 "분단과 전쟁을 겪은 국민들이 가질 수 있는 이념적 트라우마와 안보불안을 깊이 주목하지 못했고, 이에 성실히 응답하지 못했다"고 자성하기도 했다.

아마도 심상정이 어떤 사람인지를 정확하게 잘 모른다면, 위 발언의 맥락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모를거다. 심상정같은 이념형 인간은 말 한마디를 바꿀 때에도 그냥 바꾸지 못한다. 자기 이념을 밑바닥부터 새롭게 구성해야만 비로소 가능하다. 무겁게 표현하면 지금까지의 자기 인생과 가치관을 송두리채 바꿨다는 전향선언서에 가깝고, 가볍게 표현하면 '철수야 나 좀 데려가 줘' 라는 구애서에 가깝다. 

그럼에도 나는 심상정의 반성문이 아직도 한참 모자란다는 생각이다. 그는 현실의 계급투쟁이 어떤 것인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고, 특히 여전히 호남에 주목하지 못하는 것을 볼 때, 아직 심상정은 '흔한 진보돌이'에 불과하다. 심상정은 아직도 더 많이 무너져야 한다.

안철수가 최장집과 심상정을 왜 만나는지 구체적인 이유는 알지 못한다. 본인이 확고하게 확립해놓은 정치노선에 따라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몸집불리기 차원에서 아무나 닥치는대로 만나고 있는건지 여전히 불확실하다. 그래도 최근 '진보적 자유주의'니 뭐니 하는 것을 볼 때, 내부에서는  나름의 정치노선 확립을 위한 치열한 논쟁과 고민이 전개되고 있는 듯 하다.

어쨌든 안철수는 현재로선 '관악을의 호남 토호' 김희철도 만날 수 있고, 최장집과 심상정같은 진보측 인사들도 만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선후보급 정치인이다. 따라서 최근의 그의 행보는 상당히 흥미롭고 귀추가 주목된다. 만약 나에게 모든 정치인들 중에 한 명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현재로선 안철수가 가장 가까이에 있다. 한 때 안철수를 향해 맹렬하게 독설을 퍼붓던 내 입장에서 상당히 무안하긴 한데, 정치인 안철수는 모자라는 면이 여전히 많은 사람인 것은 맞다. 단지 그에게 요구되고 있는 시대적 요청을 그가 부디 잘 감당해줬으면 좋겠다라는 응원에 가깝다. 정치인은 제 아무리 날고 뛰어도 주권자인 국민에게는 씹다 버릴 껌에 불과하다. 달면 씹어주고 쓰면 뱉으면 된다. 

그러면 안철수에게 요구되는 시대적 요청이란 뭘까? 언젠가 안철수 현상이 한창일 때, 나는 안철수에게 투사되고 있는 국민들의 요구를 '사민주의적 기대감' 이라고 정의한 적이 있다. 당시 꽤 많은 회원들로부터 비웃음(?)을 당했었는데, 이제는 그리 쉽게 비웃지 못하실 것 같다. 일단 안철수는 외견상 조금씩 그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 자신에 대한 국민들의 요청이 무엇인지는 정치인 본인이 가장 잘 아는 법이다.

물론 안철수가 "사민주의를 책에서 배웠어요" 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당의 이름을 '사회민주당'이라고 이름 짓고 그에 걸맞는 강령을 갖춘다 해서 저절로 사민당이 되는 것도 아니요, 외국의 성공 사례를 무작정 대입시킨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이론은 어디까지나 현실의 반영물일 뿐, 이론에 현실을 반영시키고 재구성해서는 안된다. 또한 당의 이름이 민주당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설사 '개차반당'이라고 이름을 지어도 정당의 활동이 '사민주의적 내용' 의 핵심을 놓치지 않는다면 그 당이 바로 사민당이다.

나는 안철수가 딱 이거 한가지만 붙잡고 갔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이 번듯한 선진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전쟁의 위험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30살 갓 넘은 우리동네 편의점 청년이 번듯한 직장에서 기술과 지식을 연마하며 이쁜 아가씨와 연애도 좀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호남 사는 내 죽마고우가 최저임금 비정규직에서 벗어나 애들 학비걱정 없이 번듯한 아빠가 되었으면 좋겠다. 70은 넘어보이는 어떤  허리굽은 할머니가 더 이상 우리 동네에서 박스를 줏지 않아도 남은 여생 편하게 몸을 누이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은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지 않은가. 그걸 하려면 지금 사민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