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 이건 호남-친노 글은 아니니까 제 결심(호남-친노 관련 글은 쓰지 않겠다)을 위배하는건 아닙니다 ^^


수도권 호남 표가 이명박이라고 해서 특별히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은 새로운 일도 아닙니다. 18대 총선에서 뉴타운 공약을 내건 한나라당 후보자들을, 서울에 자기집 갖고 있는 호남 사람이 안뽑을 이유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근데 이런 호남에 대해서 좀 묘한 생각을 갖고 계신 분들이 있는것 같습니다. 너희들을 무시한 놈들을 왜 뽑느냐 이거죠. 저는 이게 호남의 깊은 고민을 충분히 인식하지 않고 나온 순진한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쉽게 생각해보죠. 일제 시대 당시 조선인이 일본 제국주의와 끝까지 투쟁해서 독립을 쟁취한다고 하면 그건 숭고한 일인거 맞습니다. 하지만 일본 제국주의가 워낙 압도적이고 영구해 보이는 경우 소시민의 입장에서 저항없이 일본에 순응하는 것 역시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투사의 윤리는 누구에게 강요할수 있는게 아니죠. 투사 하고 싶은 사람만 하는 겁니다. 투사의 윤리 대신 생존의 본능을 따르는 것을 비난할수는 없습니다.

그럼 저 소시민은, 일본 제국주의와 일본인들이 조선인 무시하는 것도 모르고 일본에 순응하는 배알도 없는 사람들인가? 이건 전혀 핀트가 안맞는 얘기입니다. 배알 부려봤자 뭐할건데요. 사는게 중요한데. 물론 배알을 부려서 개기면 압제에서 탈출할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경우 배알 부리는 소시민이 늘어나겠죠. 그러므로 희망이 커질수록 배알 부릴수 있는 여유도 늘어납니다. 그리고 희망의 크기는 일본 제국주의의 강력함과 반비례 합니다. 희망의 농도가 옅어질수록 소시민의 비율은 늘어나고 독립운동가의 비율은 줄어들겠지요. 소위 독립 운동가 출신들이, 일본 제국주의가 세계 강대국 대열에 끼어든 1차 대전 이후 조용해지더니, 30년대 이후에는 아예 일제에 붙은거, 그 사람들이 배알이 없어서일까요? 아니죠.

이걸 호남의 경우에 대입해 봅시다. 한나라당과 영남 패권의 압제에 대항해서 존엄성을 쟁취할수 있다는 "희망"이 클수록 호남의 저항은 거세어 집니다. 반대의 경우 호남은 쥐죽은듯이 지내며 생존이나 모색하겠죠. 호남 사람들의 dna가 특별히 투사적으로 디자인된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긴 있습니다만).

5.18 직후 호남은 거세게 저항했습니다. 마치 일제 초기 의병운동이 활발한것에 비유할수 있습니다. 이후 호남은 정치 세력화를 통해 의회민주적 방식의 압제 탈출을 모색했지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에 비견할수 있습니다. 다만 활동 무대가 "대한민국"이라는 국민 국가 내이니 임시정부가 사용했던 군사적 수단은 사용할수 없었습니다. 만약에 5.18에 대응한답시고 호남이 폭탄 테러라도 했다면 호남은 완전한 고립과 파괴를 경험했을 겁니다.

정치 세력화를 통한 해결 방법은 95년 이후 상승곡선을 그립니다. 호남 정당의 의석수가 늘어나고 집권에 성공하더니 정권 재창출까지 이루어졌지요. 처음 집권은 호남 충청 연대를 통해서였고 다음은 영남 후보를 내세워서 였습니다. 영남 대통령이 "탈호남론"을 내세워 호남의 심기를 불편하게는 했지만 그것 역시 대국적 관점에서 호남의 고립을 완화시키는 하나의 방법론이라는 측면에서 수용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때가 호남의 투표가 아주 적극적으로 "97%"를 달성하던 시절입니다. 아주 적극적으로 그러나 평화적으로 한나라당에 대항하던 때죠.

이곳 게시판에서 호남에게 투사로서의 윤리를 강요하는 분들은 저때를 아주 그리워 하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인류 정치사상 가장 평화적인 동시에 효과적인 투쟁입니다. 이거 프랑스 혁명보다 평화적이면서 영국 명예혁명보다 효과적인 일입니다. 한국이 수출해야 하는건 삼성의 휴대폰 반도체 뿐만 아니라 호남 민중의 투쟁의 노하우도 있다고 봅니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지역적 인종적 갈등은 물리적 테러로 나타나죠. 5.18 같은 일이 벌어지면 동일한 방법으로 보복이 가해지거나(아일랜드, 유고), 아니면 약소 집단이 뿌리채 뽑히고 멸절당합니다(쿠르드, 일본의 부라쿠민). 그러나 호남 민중은 평화적 방법으로 저항하고 압제에서 벗어남으로서 이 모든 지뢰밭들을 통과했습니다. 쓰다 보니 너무 자랑스럽네요.

그런데 이 자랑스러운 투쟁의 역사를 지역주의라는 마법의 단어로 난도질하는 영남 보수 기득권 세력의 마타도어에 소위 개혁 집단들이 동조함으로서, 호남은 자기편으로부터 투쟁의 의의를 부정당하는 사태를 경험하게 됩니다. 97% 지역주의 호남 싫다는 거죠. 이런 징조가 90년대 초반부터 보이더니 노무현 정권 들어서 극도에 달하게 되지요.  이 지점에서 호남의 투쟁 동력은 상실됩니다. 투쟁의 동료로부터 투쟁의 의의를 부정당하는데 어떻게 투쟁이 가능합니까.

지난 10년의 경험을 통해 호남은 같이 싸워준답시고 오는 사람들로부터 "싸우지 마라"는 핀잔을 끊임없이 들었습니다. 아주 희한한 경험이죠. 그리고 핀잔 듣기 싫으면 자신들이 기여한것 이상으로 국물을 넘기고 될수 있으면 지휘권도 내놓으라는 협박아닌 협박에 시달렸습니다. 싸워 투쟁해야 했던 호남으로서는 한명의 동료라도 아쉬웠고 그래서 다 불러 들였습니다. 

그리고 지휘권을 가져간 놈들(?)이 잘못 지휘하면 애꿎은 호남도 같이, 그리고 가장 심하게 죽어야 한다는 것을 2007년에 경험했지요. 어차피 무능하고 욕심만 많은 동지에게 지휘권을 넘겨서 죽을거라면 차라리 동지가 안되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이러나 저러나 죽을텐데 말이죠. 그래서 호남은 규합의 노력을 그만두었습니다. 남의 손에 운명을 맡겨 죽느니 제 손으로 생존을 모색하자는 거죠.

그리고 고립된 호남으로서는 혼자서 영남 제국와 맞서 싸워서는 승산이 없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위에서 말한 "희망"의 크기를 늘리기 위해 동료를 규합하고 연대를 조직했는데, 실패했단 말입니다. 이제 홀로남은 호남에게 "희망"은 거의 없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살기 위해 순응 할수 밖에요. 배알 부릴수 있는 여유는 누가 다 뺏어갔습니까? 지금 홀로 남은 호남이 왜 배알을 안부리냐는 분들은 도데체 뭘 얘기하고 싶은지 감이 안잡힙니다. 총폭탄 정신으로 영남에 돌격해 죽으라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