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 10. 27

여느 때처럼 아침에 화장실을 갔다. 옆집에서 틀어놓은 라디오를 통해 박정희한테 무슨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았다.  휴교령이

내려져 학교에 가지 않았다. 정확히 며칠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서대문쪽에 노가다 하러 가서 일당 5000원을 받았다. 11월초엔

용산역 앞 중앙대 부속 병원 공사장에서 열흘간 노가다 알바하고 50000원을 벌었다. TV를 통해 본 합수부장 전두환의 인상은

무지 나빴다. 개헌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TV토론을 보았다. 이철수, 권영성  서울대 법대 교수들이 패널로 나온게 기억난다.

이 양반들은 왜 유신때는 아무소리도 안 했던 거야 ? 우리 집은 당시에 조선일보를 보았다. 10.26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토마스

제퍼슨의 "신문없는 정부보단  정부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는  타이틀을 대문짝 만하게 실어 언론의 자유를 역설한 컬러 지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정확한 시점은 기억나지 않는데 조선일보 만평은  안개정국이란 제목으로 그냥 시커멓게 먹칠한

만평이 자주 등장했다.

1980. 3

 새학기가 시작되었다. 학교가 시끄러웠다. 연일 "총장 퇴진" 시위가 있었다.

5.15

오전에 종로로 갔다. 며칠전부터 학교에서 15일 종로로 모인다는 말이 있었다. 종로엔 생각과는 달리 학생들이 많이 보이지 않아

어쩐 일인가 싶었는데 어떤 학생이 서울역으로 집결지가 바뀌었다는 말을 나한테 해 주었다. 서울역으로 걸어갔다. 서울역엔

학생들이 속속 집결하고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서울역쪽으로 통하는 길엔 교수를 앞세운 학생들이 길을 가득 메우고 서울역

앞으로 몰려 들었다. 곧 서울역 앞 광장은 시위 학생들로 꽊 찼다. 新現惡, 切頭漢 이란 피켓이 눈에 띄었다. 신현확도 나쁜놈이야?

난 이런 생각을 했다. 공중엔 헬기들이 떠다녔다. 광화문쪽으로 진입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저녁이 안 되어 시위대는 해산했다.

5.18

인수봉 귀바위 밑에서 다른팀 암벽등반하는 걸 보고 있는데 선배가 올라오더니 "야 푹 쉬어라. 휴교령 내려졌다." 했다.

인수봉 등반하지 않고 내려왔다. 8번 버스 타고 집에 가는데 미아리 고개를 넘을 때였다. 정오 무렵이었는데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뉴스가 흘러 나왔다.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등을 가택연금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며칠후 광주에서 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1981.5.19

군 입대

6.29
 

대전 통신학교 후반기 교육 시작

7월 어느날 기간병 교육 시간이었다. 독사란 별명을 가진 경상도 사투리 쓰는 말년 병장 기간병이 교육생 신상 명세서를 훑어

보더니 한 동기생을 불러 "야, 너 나와서 광주사태 얘기해봐." 했다. 우리 동기들은 서울, 마산 병력이었는데 광주에 주소지를

둔 동기가 한명 있었다. 아마 본적은 서울이나 마산이었을 거다. 그 동기생은 1시간 동안 자기가 겪은 광주사태 얘기를 차분하게

얘기했다. 참혹한 얘기였다.

1983. 7

제대후 며칠 안되 친구집에 갔다가 광주사태에 대한 유인물을 읽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덧.

정확한 시점은 기억나지 않지만 5.18 이후 얼마 안되었을 때이다. 당시 나는 교회에 다녔는데 목사님이 우리 동기 아무개가

광주사태 얘기를 생생하게 해 줬다고 얘길했다. 우리 동기 아무개는 5.18 당시 군 복무중이었는데 광주 시위 진압부대 장성

차량 운전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