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려주신 글 잘 보았습니다. 대체로 공감합니다. 주말마다 아이 책을 빌려오는게 인생의 낙인 제게 특히 도서관 부분은 관심있는 주제입니다. 한가지 안타까운건 도서관 이용 실태조차 빈부가 나뉜다는 사실입니다. 대출 목록과 이용 수준을 보면 부자 동네가 훨씬 세련(?)된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전 종종 도서관 이용 운동과 교육이 필요하지 않냐는 농담을 종종 합니다. 차차 나아지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님과 저의 포인트는 여전히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전 벽화 운동의 의미를 긍정하지만 제가 지적하고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가령, 벽화운동을 하는 분들도 자신들의 가치관 실현일 뿐, 사회 자체의 변화나 더 나아가 집권(엉?)을 꿈꾸진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게 의미없다는게 아닙니다!) 다만, 전 소수의 운동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와 대중의 삶에 변화를 가져오는 문화를 지적하고자 한 것입니다.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아주 사소한 예를 들면 전 여학생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캠퍼스에서 담배를 피우는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래서 전 그게 당연한 줄 알고 있었지요. 나중에 경상도에선 상상도 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둘 중에 어느게 옳은 문화일까요?

전 옳고 그름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자는 남녀 평등 차원에서 좋고 후자는 여성 건강에 좋을 겁니다. 그러면 전 어떤 것에 동의하냐. 당연히 전자입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전자가 더 진보적이고-까놓고 말하면- 더 세련된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또 사소하게는 '섹시하다'는 표현을 들 수 있습니다. 저 어렸을 때 저 표현은 여성에 대한 모독이었습니다. 특히나 운동 진영에서 반감이 컸습니다.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한다는 거지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칭찬의 의미로 많이 쓰이더군요. (사실은 전 지금도 저 표현이 약간 불편합니다) 성적 자기 표현이 이제 지배적인 문화가 되었다는 징표지요. 저 개인적으로는 불편해도 결론적으로 섹시하다는 표현을 쓰는 문화가 더 세련된 문화였음이 증명된 것이지요.

정치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예전에 김대중 대통령이 이희호 여사와 이름이 나란히 적힌 문패를 선거 광고에 활용했지요? 전 그거 득표에 얼마나 도움이 됐을지는 의문입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당시 그건 세련되고 진보적인 문화에 대한 김대중 진영의 취향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취향을 좋아하는 계층을 흡수할 수록 집권은 가까와 집니다.

이후 호주제 개정이나 여성부 신설(솔직히 이건 옳은건지 잘 모르겠지만)등이 제도적으로 이뤄졌지요.

대개의 문화는 이렇게 흐릅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촌스러운 문화를 대체할 세련된 문화가 고소득층에서 저소득층으로, 고학력층에서 저학력층으로 흐릅니다. 그래서 이제 서울에선 길거리에서도 여자들이 담배피우는 모습이 흔해졌습니다. 시비 거는 사람들은 꼰대로 지칭되지요.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여자들을 경범죄로 처벌하는 법 조항은 없어졌거나 사문화되었을 겁니다.

이렇게 문화와 제도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문화의 뒷받침 없이 제도를 도입하면 왜곡되거나 격심한 혼란이 유발되기 십상이고(그래서 회교 국가들은 남녀 평등을 제도적으로 확립하기가 어렵습니다) 제도적 뒷받침없이 문화만 앞서면 결국은 자기 한계에 부닥치거나 반동을 맞게 되지요. 전자와 후자 둘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하라면 당연히 전 후자를 선택하겠습니다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렇게 사람들의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문화적 문제제기가 어느 순간 진보 개혁 진영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충분히 어떻게 포인트가 다른지는 잘 아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스노우 잼과 관련해서 한 말씀 더 드리자면 사실 벽화운동과 오세훈의 디자인 서울 계획은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벽화 운동이 가난한 동네 사람들이 늘 접하는 일상에 색다른 무언가를 불어 넣음으로서 정체성을 부여하고 자부심을 일깨우는 것처럼 오세훈 또한 서울의 전반적 이미지를 개선함으로서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목표를 내세웁니다. 가령 서울 택시 색을 황토색으로 통일하겠다는 계획이 그렇습니다. 런던의 블랙 캡이나 뉴욕의 옐로 캡처럼 서울을 특징짓는 택시 색을 통해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서울 시민의 정체성을 일깨우겠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서울을 떠나 타지에 있느 사람이 서울을 떠올릴 무언가를 하나 더 부여하겠다는 거지요. 그게 뭐 중요하냐고 물으신다면... 저로선 능력이 짧아 설명하기 어렵지만 문화쪽에선 중요하게 다룬다는 점만 말씀드리죠.(계곡님, 부탁해용.^^)

둘의 차이는 잘 아시겠지만 벽화운동은 자발적이고 반(혹은 비)자본적인 반면 후자는 자본에 의해, 자본을 위해, 자본의 문화 정책이라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전자가 좌파고 후자가 우파적이라 생각하시는 듯한데 전 생각이 좀 다릅니다. 전 차라리 전자는 래디컬하고 후자는 현실적이라고 표현합니다. 왜냐면 우리는 어떤 의미로든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끼리 괜히 용 쓴 진중권 문제도 그렇습니다. 진중권이 전문적이지 않은 주제의 토론회에 초청되는건 그가 인기인이기에 시청율에 도움이 된다는 자본의 논리죠. 전 이거 사실 좀 천박한 자본의 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집권을 목표로 하는 좌파라면 - 제가 진작에 제기했듯 -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내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벽화 운동의 마인드로는 서울 전체의 도시 계획을 할 수 없습니다.(이건 그 분들의 능력을 무시하는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방향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전 단언하건대 저소득층의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벽화 운동이 아니라 서울의 도시 계획이라고 봅니다. 바람계곡님의 풀리지 않는 질문처럼 자본을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자본을 활용하여 좀 더 인간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면서도 세련된 계획안을 내놓을 수 있을까란 아주 어렵고 골치 아픈 주제에 대해 정면 대결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이에 반해 오세훈 까기는 너무나 쉽지 말입니다!) 더 나아가 그렇게 힘들 길을 가지 않고 쉬운 길을 고집하면 결국 앞으로 진보는 소수 운동으로 머물거나 개혁 진영은 견제용 야당의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아마 벽화운동하는 분들 중에는 '그런건 모르겠고 그렇다면 난 그냥 소수할래'라고 대답할 사람 많을 겁니다. 전 그래서 사실 그런 예술가들을 아주 좋아해요. 멋있고 세련됐잖아요?^^)

저의 까탈스러운 성격에 상처 받으셨다면 사과드립니다. 천천히 서로를 이해하는 노력이 제게 부족했나 봅니다. 그래도 저의 까탈 덕에 님이 조금 더 공부하지 않았을까란 괜한 상상를 살짝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