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법전공자는 아니지만 형법총론을 보면, 민법과는 다른 의미에서 참 조잡할 정도로 학설이 많습니다. 민법은 학설은 많아도 도대체 이게 뭔 소리야? 싶은 학설은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개념마다 일일히 다 학설이 나뉘지 않습니다. 예컨대 형법에서는 고의 하나만 가지고도 학설이 엄청나지만 적어도 민법에선 법률행위라는 개념을 두고 그 정도로 학설이 분분하진 않습니다. 

사실 형법총론이야 말로 논리의 논리에 논리를 무는 수식처럼 만들어졌지만 딱히 수식처럼 딱 맞아떨어지지도 않는 복잡미묘함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유추적용도 가능하고 법이 없으면 조리까지 동원한 민법과 달리 형법은 오로지 법률에 의지해야 한다는 이유가 클 겁니다. 민법에서야 임의조항도 태반이라 자기들끼리 합의해서 따로 약정해도 되고, 그걸 까먹고 안 했으면 관습으로 갈음해도 됩니다. 형법은 그런게 안되지요.

일례로 형법에서 인과관계에 대한 학설을 보면 엄청나게 많습니다.

조건설, 유의설, 원인설, 상당인과관계설(그것도 다시 객곽적 상당인과관계설, 주관적 상당인과관계설), 중요설, 합법칙적 조건설 등이 있고. 조건설만 놓고 보면 다시 기본적, 추월적, 이중적, 택일적 인과관계가 있습니다. 

대개 별의 별 사례를 설명해야 하니 이런 개념들이 등장합니다. 인과관계가 민법으로 치면 법률행위 법률사실 정도의 기초적 개념인데도 저렇게 학설이 많습니다. 황당하지요.

이유는 있습니다. 농부를 죽이고 싶은 농장주가 농부를 뇌우가 치는 날에 농장으로 보내 뇌우를 맞아 죽는 경우, 치사량이 10ml인 독약을 똑같이 3명이서 10ml씩 넣어서 한 사람이 죽었을 경우 인과관계, 독약을 먹여 죽은 상태로 잠들었는데 그만 비행기가 테러 폭발로 탑승객 전원이 사망한 경우의 인과관계를 설명하려고 저렇게 많아졌습니다.

이들 학설 중에서 가장 자연과학적 방법에 충실한 것이 조건설인데 A가 아니었으면 B도 없었다고 가정합니다. 즉 결과에 관계된 모든 인자는 전부 인과관계에 포함시킵니다. 이 학설을 다시 생각해보니 자칭 팩트전문가가 생각나더군요.


웬 디씨냐? 한양대 오영근 형법학 교수의 중간고사 문제 실례입니다.

얼핏 보기엔 현실적으로는 별 가능성 없어 보이는 사례들만 열거해서 문제를 냈습니다. 그래서 다소 억지 같지만 사실 살다보면 저렇게 "저게 도대체 왜 저렇게 됐지?" 싶은 일들이 거의 매일 일어나기 때문에 형법학 교과서도 교수의 문제도 저렇게 출제되는 겁니다. 


자칭 진실만을 추구하는 팩트주의자 분들을 보면 딱 하나의 팩트(?)가 나오면 그것을 지금까지의 모든 주장을 무너뜨리는 증거정도로 여기는게 상례인데 유감이지만 그건 팩트추구가 아니라 그냥 오타쿠적 취미라고 봅니다. 자기만의 세계를 미리 형성해놓고 거기에 맞는 재료만 수집하는게 딱 오타쿠적 행태지요. 남은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다고 외치려는 좀 희한한 취미라고나 할까요?

그러고보면 니얼 퍼거슨부터 이영훈까지(이 양반들은 제가 지금 언급하는 경우와 장르야 좀 다르지만), 그리고 조갑제부터 일베의 애국보수 청년까지 죄다 남자라는 점이 상당히 인상 깊네요. 남성의 두뇌엔 저런 기능이 일부 탑재되나 봅니다.

하긴 어릴 떄부터 보면 어떤 사물을 집요하게 수집하는 애들은 거의가 다 남자입니다. 여자 수집광은 남자 수집광보다는 찾기가 좀 어려운 편이지요. 각종 분야의 소위 매니아, 오타쿠들도 남성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고 말입니다.



사실 세상은 별로 필연적인 법칙으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얼마전에 보니 제 닉네임인 sinner가 sinner=죄인=재인=문재인으로 된 것인지 아는 분도 있더군요.

그러나 그것은 아니고 지난 총선 채팅방에서 유인구님이 갈굼을 당할 때 아따 갈구지 마시오 하면서 제가 아크로에 재 가입을 했는데 그때 하필이면 보고 있던 드라마에서 sinner라는 단어가 대사에 나와서 sinner입니다. (제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데 그냥 웹문서에서 그 단어를 봤을 수도 있습니다. 1년전의 사소한 사정은 까먹는게 정상적인 인간입니다.) 하여간 문재인에서 따온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팩트전문가 분들께서는 미래에 제가 정치인으로 데뷔라도 하면 (그럴 가능성은 물론 전혀 없습니다)

"자, 봐라 문재인을 문죄인으로 부르던 sinner의 아이디는 분명 문재인을 조롱한 것이다" 이러실 분들이에요.

살다보면 5.18일 광주에서도 "아이고 빨갱이 놈들 시위질을 왜 하는지 몰러"하는 사람이 딱 한 명쯤이라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일베에 나타나서 광주 시민의 증언, 이러면 설마 팩트주의의 승리가 됩니까.



아크로에도 자꾸 자칭 팩트주의자 분들이 있는데 이 분들 호남과도 상관없고, 비노와도 상관없는 분들인데 그 분들 덕에 호남-닝구-비노만 욕먹을까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