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아래 쪽글을 여기에 덧붙이고 원 내용은 이 추가 아래에 유지시킵니다. 쪽글 내용을 안읽으신 분이 있을까봐 제목 바꾸었습니다)

제가 신계륜이 서울을 떠난 시간을 확인하기 위하여 님이 인용하신 신계륜의 발언 내용을 찾아보니 발언의 풀버젼이 이거네요.

22년 전 오늘, 1980년 5월 18일 나는 서울을 빠져나와 광주에 도착했다. 마치 누군가에 이끌린 것처럼,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죄로 현상금 100만원과 일계급 특진의 수배받는 도망자가 항쟁이 일어난 피의 광주로 피신을 한 것이다. 항쟁이 일어난 줄도 모르고... 
(출처는 여기를 클릭)


신계륜이 서울을 떠날 때는 '광주의 현실'을 몰랐네요. ㅠ.ㅠ;;;


따라서, 저의 논지는 '원인 무효'가 되고 설사 '송정역' 관련 발언이 참으로 밝혀져도 원래 제가 님의 논지를 반박한 근거는 아니니 제가 패배(?)했음을 시인합니다.


저의 님에 주장에 대한 반론의 근거가 없으니 패배를 인정합니다. 살살 때려주세요..... ㅠ.ㅠ;;;



투덜투덜... 아놔~ 신계륜의 뒷부분 말은 쏙 뺴놓고 인용하여 사람에게 착시를 일으키게 만든 minue622님이 무지 밉다는.... ㅠ.ㅠ;;; 그래도 다행이지 뭐야...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았다면 '검색왕' 명성(?)에도 똥칠을 할 뻔 했다는....




이미 언급했듯 저는 안철수의 발언의 진위 여부보다는 신해성의 문제 제기 방법을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그런 관점은 minue622님의 주장에서도 비슷한 언급을 하셨네요.


 (1980년 5월 18일, 바로 그 당일에, 서울대에 갓 입학한 어느 새내기가 광주에서 큰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개연성은 극히 낮다)


즉, '개연성이 낮다'는 '안철수가 거짓말을 했다'는 확증은 아니며 결국 이 건으로 안철수를 추궁해봐야 결국 파쇼적인 '양심고백 강요식 질타'라는 것이죠.


그런데 개연성이 낮다.................? 


1) 이 부분은 한국 학생 운동권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면 뭐라 판단할 수 없습니다. 1980년의 학생 운동은 1970년대의 '낭만주의적 학생 운동'에서 1979년 12.12쿠테타를 계기로 그동안의 학생운동을 반성, 학생운동이 좀더 조직화되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반성으로 조직화되어 학생운동조직으로 나타난 것이 (아마-자료를 뒤져보아야겠지만) 삼민투라는 것 조직이죠.


2) 따라서, 1980년에는 학생운동권에서 '고급정보'를 '운동권 간부'가 독점하는 일은 없었을겁니다. 즉, 안철수도 '고급정보'를 얻을 수 있는 확률은 그 이후의 조직화된 학생운동 체제 하보다 높았겠죠. 

방증으로 몇 년 전, 미군 스트라이크 부대의 한총련 소속 학생 잠입 사건 시 1학년 그리고 2학년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들은 '스트라이크 부대에 왜 침입하는지 모르고' 선배들이 시키니까 잠입했다...라고 했고 한총련 간부들이 어린 학생을 총알받이로 썼다...라고 사회적인 비판 여론이 비등했었죠.

(추가)

그래서 minue622님이 거증하신 당시 고대총학생회장인 신계남이 서울을 빠져나가 광주로 가게 된 이유를 대학 1학년생인 안철수도 알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죠.

22 년 전 오늘, 1980년 5월 18일 나는 서울을 빠져나와 광주에 도착




3) 당시 신문 자료 캡쳐입니다. 
1980년 5월 17일-경향.gif  
(1980년 5월 17일 경향신문 보도)

5월 16일에 광주에서는 야간 횃불행진이 있었다고 합니다. 보도 중 서울농대에서도 데모가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서울대 의대는 관악산 현재 캠퍼스로 가지 않고 혜화동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정보를 얻는데는 문제가 없었을겁니다.


같은 일자 동아일보 보도입니다.

1980년 5월 17일-동아.gif
55개 대학의 학생대표가 철야 토론 후 '시위중단'으로 의견이 좁혀졌다고 합니다. 결론은 아직 나지 않았다고 보도되었습니다. 같은 날짜 동아일보의 또 다른 기사입니다.

1980년 5월 17일-동아2.gif  

5월 17일, 지방대도 정상수업에 들어갔다고 보도했습니다. 아마도 학생시위가 '진정국면'에 들어갔겠죠.


그런데 5월 18일 경향신문에서 회외가 뜹니다. 자료에는 5월 18일 동아일보는 일요일이라 신문발행은 없었고 호외도 없었습니다.

1980년 5월 18일-경향.gif


일단, 5월 17일자로 서울에서 '광주 송정역에 공수부대 집결' 소문은 널리 퍼졌으며 5월 16일 광주에서는 심야 횃불시위까지 있었는데 5월 18일 김대중씨 연행 소식......


안철수는 학창시절 학생운동에 한번도 참여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ㅋ 그래도 저는 돌팔매질 딱 세번'이나' 했는데 ^^) 오히려 학업문제 때문에 본과 1학년 때 아버지로부터 부산에 내려오라...라는 조언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결론 1

'학생운동 의식화' 정도로 보았을 때 과연 안철수가 과연 광주에 갈 생각이 들었을까? ---> 이 부분은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안철수가 광주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을 알고 갈 생각이 들었을까? ---> 정보로는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결론 2

관련 문제 제기는 결국, 우리가 지양해야할 '사상검증(양심고백)'의 성격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서해성을 비판하고 나선 것도 바로 이 대목이고요. 정황증거는 충분합니다. 그런데 '안철수 당신이 정말?'이라고 아무리 추궁해봐야 그건 괴벨스의 마타도어식 방법이라는 것이죠.


"나는 애국자라고 선언하지 않은 사람을 매국노로 만들 수 있다"

"나는 광주에 가서 직접 시위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이 518학살을 언급하면 양심을 속인다고 추궁할 수 있다"



도대체 두 문장이 뭐가 다르지요?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