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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518 발언에 대하여 '일파만파' 파장이 커지고 있네요. 아, 알흠다운 공조예요. 노빠들이 안철수를 까기 위하여 일베 소스까지 활용하니 말입니다.
(한겨레 21 : 출처는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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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발언 일베 링크 : http://www.ilbe.com/1347093594
물론, 이 링크의 원 소스는 저도 가끔 가는 박봉팔 닷컴입니다. (링크는 여기)
자, 관련 부분을 박봉팔 닷컴에서 캡쳐하여 올립니다.

우선 글 중에 '안철수가 안랩 의장 때'라는 시기가 눈에 띄는군요. 안랩 의장....
안철수는 안랩 이사회 의장직을 2012년 9월 19일 사임함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같은 날 대통령 출마를 선언합니다.
1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지금 이 시간부로 서울대 대학원장직과 안랩 이사회 의장직을 사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하는 게 너무나 당연할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렇게 말하고 “만약에 대통령이 된다면 제가 가진 나머지 안랩 지분 절반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말했다.
즉, 안철수의 대학시절의 고민은 발언 시점이 언제인가가 쟁점이 되겠죠. 그런데 그 발언 일자는 밝히지 않았는데 위의 글 중 서해성의 발언이 나오지요?
"그 때 안철수는 정치인도 아니었지만"
서해성의 주장이 타당성을 얻으려면 '언제'가 명시되어야 했는데 하여간 구질구질.......
물론, 나 역시 저 위의 안철수 발언이 진정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518을 몰랐다? 그건 당시 상황을 모르는 헛소리입니다. 이미 전두환에 대하여는 1979년 2학기부터 '정권찬탈 획책하는 전두환을 찢어죽이자'라는 대자보가 대학가에 나붙었습니다. 따라서, 당시 서울대 1년생이면 이미 신문보다 빠르게 현장 상황을 알았을겁니다. 그리고 518이면 아직 학살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최소한 5월 17일날 공수부대 요원들이 송정역에 대거 집결 광주를 포위하려 한다...는 것이 서울에서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진 사실이죠.
그러면 안철수의 고민은 학살이 발생해서가 아니라 데모에 참석해야 마냐... 하는겁니다.
1979년 2학기부터 '정권찬탈 획책하는 전두환을 찢어죽이자'라는 대자보가 대학가에 나붙었다는 증거?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귀찮지만 가져다 드리죠. 참, 침소봉대성 팩트주의가 항상 아수라장으로 만드는군요. 하여간 수준들하고는.... ㅉㅉㅉ 결론? 안심은 신만 안다.
그나저나 서해성, 그럼 당신도 친일파라고 해도 되지요?
역사신탁 사업 실무를 총괄할 서해성 소설가(한신대 외래교수)는 “일단 내년이 한일합방 100년인 만큼, 100년의 역사를 기억하고 교육의 현장으로 삼기 위해 경술국치 현장인 통감관저를 옛 모습으로 복원해 생생한 역사 교육의 장으로 만드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며 “경술국치의 현장을 되살릴 다른 방안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한일합방? 그거 뉴라이트 계열 친일파 애들 아니면 안쓰는 용어인데 앞으로 서해성씨, 당신을 '골수 친일파 변태 뉴라이트 멤버'라고 비난해도 할 말 없겠지요?
하여간, 꼬진 짓들 하는 꼬락서니라니... ㅉㅉㅉ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寂易騷"를 남기고 간다.
2013.06.12 09:4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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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로의 대표적 안티안철수 길벗입니다. ^^
저는 안철수가 새정치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로 판단해 안철수가 "새정치"를 들고 나오면 역겹습니다.
제가 안철수는 새정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의 거짓말 때문입니다. 이 거짓말도 기존 정치인의 거짓말과 성격이 다른 악성으로 보지요. 안철수는 이념과 철학(안철수가 이런 것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는지도 의문이지만)을 떠나 기본적인 태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보지요.
제가 위의 안철수 발언이 거짓말일 확률이 99%라고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안철수는 80학번으로 대학 입학후 2개월여만에 5.18(1980년)이 발생했습니다. 안철수는 유신시대의 반공교육 및 체제 교육을 받았음으로 그 때까지 의식화되기는 이른 시기였고 당시에 운동권에 몸담고 있지도 않아 "민주화"에 대한 개념 정립도 되어 있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 1항은 단순히 저의 추정입니다.
2. 5.18이 일어날 당시 광주에서 심각한 유혈사태가 벌어졌다는 사실을 적어도 5월21일 전까지 안 사람은 국내에서 극소수였습니다. 5.21 이후에도 5.18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신군부의 검열이 계속되었습니다. 운동권의 핵심들도 광주에서 벌어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광주항쟁의 기록을 보면 서울에서 운동단체나 운동권 대학생들이 조직적으로 지원했다는 내용이 거의 전무한 사실도 이를 반증합니다. 희생자 중에 서울에 적을 둔 대학생들은 한 명도 없습니다. 대학생이라야 전남대, 조선대생들이었죠. 그 정도로 5.18이 발생한 시점에는 정보가 통제된 싱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운동권도 아닌 안철수가 5.18 유혈사태를 당시에 알았다는 것은 신빙성이 없다고 보아야지요.
3. 안철수가 5.18를 당시에 인지해 광주로 갈까를 고민할 정도라면 고향집(부산)으로 갈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으로 봅니다. 당시 서울은 서울역 회군이 있었지만 신군부에 대한 저항이 계속되고 있는 시점이라 광주를 내려갈까를 고민할 정도라면 고향집(부산)으로 내려가지 않고 서울에서 대기하고 진행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정상이지요. 광주로 갈까 아니면 서울에 남아 사태를 관망할까를 고민했다면 이해가 되지만, 광주로 갈까 고향집(부산)으로 갈까를 고민했다는 것은 어쩐지 이상합니다.
4. 5.18 당시 광주로 갈까를 고민한 사람이 계엄이 해제되고 대학 휴교령이 해제 되어 학교로 복귀해서는 전혀 그 연장선상의 행동이 없습니다. 5.18 때 광주로 내려갈까를 고민할 정도라면 그 이후에 운동권에 투신하든지, 아니면 80년대에 적어도 외곽에서 운동권을 지원하며 민주화에 기여한 흔적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안철수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더구나 1987년 6.10항쟁 때에 그가 무엇을 했는지 알려진 것도 없습니다. 6.10에 시위에도 참가하지 않았다면 5.18의 부채감을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는 것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저도 대학 때 운동권에 몸 담은 사람이고 안철수와 비슷한 또래(안철수 80학번, 길벗 81학번)이지만 5.18의 부채감을 단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는 소리는 낯간지러워서 못합니다.
5.18 이후의 안철수 행동에서 5.18 당시에 광주로 내려갈까를 고민했다고 볼 건수가 단 한 건도 없습니다.
5. 안철수는 위의 거짓말 이외에도 숱한 거짓말을 한 전력이 있습니다. 이번 건만 의심할만 것이라면 아직 안철수의 위 발언도 거짓말로 단정하기에는 조금 신중을 기해야 하겠지만, 안철수는 자기 신변에 대한 거짓말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1) 군의관으로 입대할 당시에 백신 개발에 열중하느라 가족(부인)에게 군에 간다고 말도 못하고 나왔다고 무릎팍에서 말함 - 사실은 부인 김미경은 서울역까지 배웅까지 했다는 방송 인터뷰와 조선일보 인터뷰가 있어 거짓말로 드러남.
2) 겨우 주식의 1.5%를 나누어 주고 방송 인터뷰 요청이 오자, 당연한 것을 했는데 방송까지 타는 것은 송구스러워 인터뷰를 거부하고 취재진과 술래잡기하고 얼굴은 찍지 못하게 해 손만 방송에 나왔다고 무릎팍에서 이야기함. - 방송사가 방영한 뉴스를 보니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나오고 잘도 인터뷰에 응하고 포즈도 잘 잡고 있는 인터뷰 화면이 나와 이것도 거짓말로 드러남.
3) 백신 개발을 하게 된 이유도 제대 후 진로 고민을 하다 의사보다 백신 개발이 더 의미있는 것으로 판단해 백신 개발로 방향을 잡았다는 이야기 - 제대 후에 단국대 의대 의예과로 복직하려 했으나 재임용에서 논문점수 미달로 재임용되지 못하고 좌절되고 몇 개월 백수로 부인 김미경의 월급으로 생활하다 백신 개발을 하기로 함(오마이뉴스의 인터뷰 내용). 방송(무릎팍)에서는 마치 의대 학과장이라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백신 개발에 전념한 것처럼 포장해 이야기함. 시청자들이 서울 의대 학과장을 지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듬. 당시 무릎팍을 시청한 저도 안철수가 서울 의대 학과장을 지낸 줄 알고 안철수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음.
4) 주식 1.5%를 직원들에게 나누어 주고 마치 다 나누어 준 것처럼 이야기함. - 나누어 준 주식 1.5%도 형성된 배경(BW 발행-인수-행사)을 보면 기가 참.
5) 맥아피사의 1천만불 인수 제안 거절도 자가발전일 가능성 농후.
6) 군의관 시절 의학협회지에 기고한 "의료인의 컴퓨터 활용범위"라는 글을 논문실적이라고 자기 프로필에 버젓이 소개해 놓음. 제가 이 글을 문제 삼자 슬그머니 프로필에서 내림. "의료인..."의 글을 보면 논문을 절대 아님. 저 글이 논문이면 아크로의 웬만한 글도 모두 논문이라 해도 무방할 것임.
저는 안철수가 새정치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로 판단해 안철수가 "새정치"를 들고 나오면 역겹습니다.
제가 안철수는 새정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의 거짓말 때문입니다. 이 거짓말도 기존 정치인의 거짓말과 성격이 다른 악성으로 보지요. 안철수는 이념과 철학(안철수가 이런 것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는지도 의문이지만)을 떠나 기본적인 태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보지요.
제가 위의 안철수 발언이 거짓말일 확률이 99%라고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안철수는 80학번으로 대학 입학후 2개월여만에 5.18(1980년)이 발생했습니다. 안철수는 유신시대의 반공교육 및 체제 교육을 받았음으로 그 때까지 의식화되기는 이른 시기였고 당시에 운동권에 몸담고 있지도 않아 "민주화"에 대한 개념 정립도 되어 있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 1항은 단순히 저의 추정입니다.
2. 5.18이 일어날 당시 광주에서 심각한 유혈사태가 벌어졌다는 사실을 적어도 5월21일 전까지 안 사람은 국내에서 극소수였습니다. 5.21 이후에도 5.18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신군부의 검열이 계속되었습니다. 운동권의 핵심들도 광주에서 벌어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광주항쟁의 기록을 보면 서울에서 운동단체나 운동권 대학생들이 조직적으로 지원했다는 내용이 거의 전무한 사실도 이를 반증합니다. 희생자 중에 서울에 적을 둔 대학생들은 한 명도 없습니다. 대학생이라야 전남대, 조선대생들이었죠. 그 정도로 5.18이 발생한 시점에는 정보가 통제된 싱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운동권도 아닌 안철수가 5.18 유혈사태를 당시에 알았다는 것은 신빙성이 없다고 보아야지요.
3. 안철수가 5.18를 당시에 인지해 광주로 갈까를 고민할 정도라면 고향집(부산)으로 갈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으로 봅니다. 당시 서울은 서울역 회군이 있었지만 신군부에 대한 저항이 계속되고 있는 시점이라 광주를 내려갈까를 고민할 정도라면 고향집(부산)으로 내려가지 않고 서울에서 대기하고 진행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정상이지요. 광주로 갈까 아니면 서울에 남아 사태를 관망할까를 고민했다면 이해가 되지만, 광주로 갈까 고향집(부산)으로 갈까를 고민했다는 것은 어쩐지 이상합니다.
4. 5.18 당시 광주로 갈까를 고민한 사람이 계엄이 해제되고 대학 휴교령이 해제 되어 학교로 복귀해서는 전혀 그 연장선상의 행동이 없습니다. 5.18 때 광주로 내려갈까를 고민할 정도라면 그 이후에 운동권에 투신하든지, 아니면 80년대에 적어도 외곽에서 운동권을 지원하며 민주화에 기여한 흔적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안철수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더구나 1987년 6.10항쟁 때에 그가 무엇을 했는지 알려진 것도 없습니다. 6.10에 시위에도 참가하지 않았다면 5.18의 부채감을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는 것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저도 대학 때 운동권에 몸 담은 사람이고 안철수와 비슷한 또래(안철수 80학번, 길벗 81학번)이지만 5.18의 부채감을 단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는 소리는 낯간지러워서 못합니다.
5.18 이후의 안철수 행동에서 5.18 당시에 광주로 내려갈까를 고민했다고 볼 건수가 단 한 건도 없습니다.
5. 안철수는 위의 거짓말 이외에도 숱한 거짓말을 한 전력이 있습니다. 이번 건만 의심할만 것이라면 아직 안철수의 위 발언도 거짓말로 단정하기에는 조금 신중을 기해야 하겠지만, 안철수는 자기 신변에 대한 거짓말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1) 군의관으로 입대할 당시에 백신 개발에 열중하느라 가족(부인)에게 군에 간다고 말도 못하고 나왔다고 무릎팍에서 말함 - 사실은 부인 김미경은 서울역까지 배웅까지 했다는 방송 인터뷰와 조선일보 인터뷰가 있어 거짓말로 드러남.
2) 겨우 주식의 1.5%를 나누어 주고 방송 인터뷰 요청이 오자, 당연한 것을 했는데 방송까지 타는 것은 송구스러워 인터뷰를 거부하고 취재진과 술래잡기하고 얼굴은 찍지 못하게 해 손만 방송에 나왔다고 무릎팍에서 이야기함. - 방송사가 방영한 뉴스를 보니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나오고 잘도 인터뷰에 응하고 포즈도 잘 잡고 있는 인터뷰 화면이 나와 이것도 거짓말로 드러남.
3) 백신 개발을 하게 된 이유도 제대 후 진로 고민을 하다 의사보다 백신 개발이 더 의미있는 것으로 판단해 백신 개발로 방향을 잡았다는 이야기 - 제대 후에 단국대 의대 의예과로 복직하려 했으나 재임용에서 논문점수 미달로 재임용되지 못하고 좌절되고 몇 개월 백수로 부인 김미경의 월급으로 생활하다 백신 개발을 하기로 함(오마이뉴스의 인터뷰 내용). 방송(무릎팍)에서는 마치 의대 학과장이라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백신 개발에 전념한 것처럼 포장해 이야기함. 시청자들이 서울 의대 학과장을 지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듬. 당시 무릎팍을 시청한 저도 안철수가 서울 의대 학과장을 지낸 줄 알고 안철수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음.
4) 주식 1.5%를 직원들에게 나누어 주고 마치 다 나누어 준 것처럼 이야기함. - 나누어 준 주식 1.5%도 형성된 배경(BW 발행-인수-행사)을 보면 기가 참.
5) 맥아피사의 1천만불 인수 제안 거절도 자가발전일 가능성 농후.
6) 군의관 시절 의학협회지에 기고한 "의료인의 컴퓨터 활용범위"라는 글을 논문실적이라고 자기 프로필에 버젓이 소개해 놓음. 제가 이 글을 문제 삼자 슬그머니 프로필에서 내림. "의료인..."의 글을 보면 논문을 절대 아님. 저 글이 논문이면 아크로의 웬만한 글도 모두 논문이라 해도 무방할 것임.
2013.06.12 11:36:23
길벗님/실수를 인정하시지요
님의 안까 안경을 쓰고 보니까 안철수가 거짓말 한걸로 보인겁니다.
서해성 조차 한마디하고 넘어간걸
제가 설명해 드리지요
1. 18일 휴교령이 내려지고 18일날 하숙집을 나왔다고 보는근가는요?
정보가 없다면 휴교령이 언제 풀릴지 모르는데 바로 집으로 간다?
말이 안되지요 더욱 이제 입학 두달된 새내기가?
부산 촌놈이 어떻게 들어온 서울대 의대인데
상식적으로 휴교령이 내려지면 어떻게 될 것인가? 언제까지인가? 그래서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들으려고 하루 이틀은 머무는게 정상이지요
안철수의 18일과 하숙집 나왔다는 말은 중간과정을 생략한 말입니다
우리도 그런식의 어법을 쓸때가 종종 있습니다.
2. 정보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데모 초기는 외부와 전화가 연결 가능했습니다.
21일에 시외전화가 차단되었고 20일에 엠비시가 방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서울 운동권이나 학생운동 수뇌부는 이미 17일 저녁에 검거되거나 도피해서 알 수도 전파가 안되는 상황입니다
안철수는 의대생이고 의대생중 광주 전남 출신도 상당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전화로 광주 상황을 알 수 있었다고 봐야지요
3. 안철수가 광주로 갈까 부산으로 갈까 고민했을수도 있습니다
참고로 20일에야 광주 고등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졌고 아마 철도도 그때쯤 봉쇄되었을 겁니다
21일 도청앞 발포이후 시민군들도 총을 들기 시작했으니까요
18일부터 기차가 안다닌게 아닙니다
따라서 이걸 거짓말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길벗님도 이건 지나치게 안까의 입장에서 본 실수로 인정하시는 것이 맞을 듯 합니다
물론 안철수의 행적을 볼 때 광주로 갈까 했던 것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합리적으로 보일수는 있지만 당시 안철수는 대학 입학 2달이라고 했지요
당시 대학가 분위기를 생각하고 청춘의 정의감을 생각하면 광주로 가야하나 충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당시 공수부대들이 저지른 만행을 듣고 치를 떨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사람이 아니지요
님의 안까 안경을 쓰고 보니까 안철수가 거짓말 한걸로 보인겁니다.
서해성 조차 한마디하고 넘어간걸
제가 설명해 드리지요
1. 18일 휴교령이 내려지고 18일날 하숙집을 나왔다고 보는근가는요?
정보가 없다면 휴교령이 언제 풀릴지 모르는데 바로 집으로 간다?
말이 안되지요 더욱 이제 입학 두달된 새내기가?
부산 촌놈이 어떻게 들어온 서울대 의대인데
상식적으로 휴교령이 내려지면 어떻게 될 것인가? 언제까지인가? 그래서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들으려고 하루 이틀은 머무는게 정상이지요
안철수의 18일과 하숙집 나왔다는 말은 중간과정을 생략한 말입니다
우리도 그런식의 어법을 쓸때가 종종 있습니다.
2. 정보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데모 초기는 외부와 전화가 연결 가능했습니다.
21일에 시외전화가 차단되었고 20일에 엠비시가 방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서울 운동권이나 학생운동 수뇌부는 이미 17일 저녁에 검거되거나 도피해서 알 수도 전파가 안되는 상황입니다
안철수는 의대생이고 의대생중 광주 전남 출신도 상당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전화로 광주 상황을 알 수 있었다고 봐야지요
3. 안철수가 광주로 갈까 부산으로 갈까 고민했을수도 있습니다
참고로 20일에야 광주 고등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졌고 아마 철도도 그때쯤 봉쇄되었을 겁니다
21일 도청앞 발포이후 시민군들도 총을 들기 시작했으니까요
18일부터 기차가 안다닌게 아닙니다
따라서 이걸 거짓말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길벗님도 이건 지나치게 안까의 입장에서 본 실수로 인정하시는 것이 맞을 듯 합니다
물론 안철수의 행적을 볼 때 광주로 갈까 했던 것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합리적으로 보일수는 있지만 당시 안철수는 대학 입학 2달이라고 했지요
당시 대학가 분위기를 생각하고 청춘의 정의감을 생각하면 광주로 가야하나 충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당시 공수부대들이 저지른 만행을 듣고 치를 떨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사람이 아니지요
저도 리바이벌했습니다
2013.06.12 15: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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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 -1)
흐강님/
80년 5.18의 상황이 당시에 일반인들에게 얼마만큼 알려졌다고 보십니까?
언론과 방송의 통제가 심해 5.18 이후에도 5.18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접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전두환 집권기에는 제대로 정보가 나오지도 않았구요.
5.18 상황이 일정 정도 알려졌다면 서울의 운동권 지도부가 그 당시 했던 행동들은 아마 비판받아도 마땅할 것입니다.
운동권도 아닌 일반 대학생이었던 안철수도 당시에 광주로 내려갈까를 고민했을 정도인데 당시 목숨을 걸겠다는 각오의 운동권 사람들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광주로 갔어야 하는 사람들이 수백은 되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랬다는 기록도 없으며, 그런 행동을 햇다는 무용담도 없습니다. 5.18 조사기록에도 서울 대학생들이 희생된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는 당시에 5.18 광주 사정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는 방증입니다.
제가 81학번입니다만, 80학번이나 70년대 후반 학번의 운동권 선배들로부터 당시에 광주로 갔다는 이야기는 커녕 광주로 갈까 고민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없습니다. 몰론 제 선배들로 한정된 것이라 일반화할 수 없지만.
광주의 희생의 정도도 김영삼 정권, 김대중 정권 시절에 진상조사를 통해 정확히 알려졌지만, 전두환 정권기(1987년)까지는 5.18은 금기어가 되다시피해 정보가 빈약해 저는 대학시절에 광주 5.18에서 수천명의 광주시민이 희생된 것으로 알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솔직히 YS, DJ 정권시절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 민간인 희생자가 160~200명이었다는 것에 당혹감을 느낀 것도 사실입니다. 당시의 검찰조사와 큰 차이가 없었다는 것에 멋쩍어 했던 기억도 납니다. 희생된 숫자에 비례해 분노의 지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대학 운동권 시절에 수천명이 희생되고 임산부가 칼에 찔려 태아가 밖으로 나오고, 여성의 유방이 공수부대의 칼에 도려져 나가고, 어린아이들이 무참히 총으로 난자된 것으로 알고 치를 떨었습니다. 당연히 군인들의 발포가 계획적이고 무차별적인 난사가 있었다고 생각했죠.
제가 안철수의 말이 거짓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5.18 이후의 안철수의 행보입니다. 적어도 5.18 당시에 광주로 내려갈까를 고민할 정도였다면 그 이후의 행동에서 그런 고민의 흔적이 나타났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운동권에 투신하거나 적어도 운동권을 배후 지원하거나, 사회에 나와서 현장활동은 아니더라도 사회운동은 지원했다면 모를까 안철수는 1987년 6.10 항쟁시에도 어떤 행동을 했다는 이야기를 본인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들은 것이 없습니다. 그 이후 안철수가 5.18에 대한 채무감을 느낀 사람으로 행동한 것이 어떤 것이 있나요?
안철수가 기부재단을 만들 때도 그랬지요. 하필 대선 출마를 즈음해서 기부재단을 만드냐고 묻는 질문에 항상 기부할 것을 평소에도 생각해 왔다고 말했지요. 평소에 기부를 항상 생각한 사람이 참여연대(아름다운 가게) 이사 시절에 이사들이 각 1천만원 출연하는 것은 왜 거부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시 참여연대(아름다운 가게?)의 원로로 책임자였던 박상증이 작년에 왜 안철수를 비난했는지 이해가 가더군요.
안철수는 이런 식으로 자기 합리화를 위한 변명이나 거짓말을 합니다.
5.18 소식을 듣고 광주로 갈까를 고민한 사람이 냉큼 고향집(부산)으로 가는 것이 정상일까요? 광주도 긴박했지만, 당시는 서울도 긴박하긴 마찬가지였어 광주를 갈까 고민한 사람이 휴교했다고 고향집(부산)으로 가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죠.
80년 5.18의 상황이 당시에 일반인들에게 얼마만큼 알려졌다고 보십니까?
언론과 방송의 통제가 심해 5.18 이후에도 5.18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접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전두환 집권기에는 제대로 정보가 나오지도 않았구요.
5.18 상황이 일정 정도 알려졌다면 서울의 운동권 지도부가 그 당시 했던 행동들은 아마 비판받아도 마땅할 것입니다.
운동권도 아닌 일반 대학생이었던 안철수도 당시에 광주로 내려갈까를 고민했을 정도인데 당시 목숨을 걸겠다는 각오의 운동권 사람들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광주로 갔어야 하는 사람들이 수백은 되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랬다는 기록도 없으며, 그런 행동을 햇다는 무용담도 없습니다. 5.18 조사기록에도 서울 대학생들이 희생된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는 당시에 5.18 광주 사정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는 방증입니다.
제가 81학번입니다만, 80학번이나 70년대 후반 학번의 운동권 선배들로부터 당시에 광주로 갔다는 이야기는 커녕 광주로 갈까 고민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없습니다. 몰론 제 선배들로 한정된 것이라 일반화할 수 없지만.
광주의 희생의 정도도 김영삼 정권, 김대중 정권 시절에 진상조사를 통해 정확히 알려졌지만, 전두환 정권기(1987년)까지는 5.18은 금기어가 되다시피해 정보가 빈약해 저는 대학시절에 광주 5.18에서 수천명의 광주시민이 희생된 것으로 알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솔직히 YS, DJ 정권시절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 민간인 희생자가 160~200명이었다는 것에 당혹감을 느낀 것도 사실입니다. 당시의 검찰조사와 큰 차이가 없었다는 것에 멋쩍어 했던 기억도 납니다. 희생된 숫자에 비례해 분노의 지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대학 운동권 시절에 수천명이 희생되고 임산부가 칼에 찔려 태아가 밖으로 나오고, 여성의 유방이 공수부대의 칼에 도려져 나가고, 어린아이들이 무참히 총으로 난자된 것으로 알고 치를 떨었습니다. 당연히 군인들의 발포가 계획적이고 무차별적인 난사가 있었다고 생각했죠.
제가 안철수의 말이 거짓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5.18 이후의 안철수의 행보입니다. 적어도 5.18 당시에 광주로 내려갈까를 고민할 정도였다면 그 이후의 행동에서 그런 고민의 흔적이 나타났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운동권에 투신하거나 적어도 운동권을 배후 지원하거나, 사회에 나와서 현장활동은 아니더라도 사회운동은 지원했다면 모를까 안철수는 1987년 6.10 항쟁시에도 어떤 행동을 했다는 이야기를 본인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들은 것이 없습니다. 그 이후 안철수가 5.18에 대한 채무감을 느낀 사람으로 행동한 것이 어떤 것이 있나요?
안철수가 기부재단을 만들 때도 그랬지요. 하필 대선 출마를 즈음해서 기부재단을 만드냐고 묻는 질문에 항상 기부할 것을 평소에도 생각해 왔다고 말했지요. 평소에 기부를 항상 생각한 사람이 참여연대(아름다운 가게) 이사 시절에 이사들이 각 1천만원 출연하는 것은 왜 거부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시 참여연대(아름다운 가게?)의 원로로 책임자였던 박상증이 작년에 왜 안철수를 비난했는지 이해가 가더군요.
안철수는 이런 식으로 자기 합리화를 위한 변명이나 거짓말을 합니다.
5.18 소식을 듣고 광주로 갈까를 고민한 사람이 냉큼 고향집(부산)으로 가는 것이 정상일까요? 광주도 긴박했지만, 당시는 서울도 긴박하긴 마찬가지였어 광주를 갈까 고민한 사람이 휴교했다고 고향집(부산)으로 가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죠.
2013.06.12 22:49:29
길벗님
대학생활 2개월의 새내기의 머리속에서 너무 많은 것을 추리하려고 하네요
안철수가 한 말이 약간의 과장인지 생판 거짓말인지 사실인지 셋중 하나이겠습니다마는
이런정도를 꼬치꼬치 따질정도 무게감을 가진다고 보기는 어렵군요
그리고 광주전화가 20일까지 연결이 되었고 의대 동기중 광주 전남사람들이 상당수 있었을 것이고 소식을 들으려 학교에 갔을 것이라는
생각은 왜 못하나요
광주로 갈까 부산으로 갈까가 핵심인데 이건 검증 확인 불가능한 사안이고요
후일 뭐 운동권 경력이 없다고 하는데 이건 생각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지요
그리고 서울 운동권 주요인물들은 다 잡혀가거나 수배당하는 처지라 광주로 갈 수가 없어요
보도통제되었어도 광주에서 무슨일이 있었다는 것은 보도되었습니다
그리고 전화로 외부에 알려졌고 부산쪽에서는 일본 방송으로 알고 있었고요
왜 님의 틀로만 판단하려고 합니까
대학생활 2개월의 새내기의 머리속에서 너무 많은 것을 추리하려고 하네요
안철수가 한 말이 약간의 과장인지 생판 거짓말인지 사실인지 셋중 하나이겠습니다마는
이런정도를 꼬치꼬치 따질정도 무게감을 가진다고 보기는 어렵군요
그리고 광주전화가 20일까지 연결이 되었고 의대 동기중 광주 전남사람들이 상당수 있었을 것이고 소식을 들으려 학교에 갔을 것이라는
생각은 왜 못하나요
광주로 갈까 부산으로 갈까가 핵심인데 이건 검증 확인 불가능한 사안이고요
후일 뭐 운동권 경력이 없다고 하는데 이건 생각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지요
그리고 서울 운동권 주요인물들은 다 잡혀가거나 수배당하는 처지라 광주로 갈 수가 없어요
보도통제되었어도 광주에서 무슨일이 있었다는 것은 보도되었습니다
그리고 전화로 외부에 알려졌고 부산쪽에서는 일본 방송으로 알고 있었고요
왜 님의 틀로만 판단하려고 합니까
2013.06.12 11:07:58
한그루님//
길이 찰스를 제대로까고 정말 정치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되는 소리를 한다면 전 찰스까는 거 반대안합니다
모든 정치인은 다비판의 잣대가 있어야죠
그렇지만 까는 수준이 이건 뭐 ㅋㅋ 영~~~
그러니 그냥 냅두세요 어차피 아크로에서 통하지도않는 개뻘소리인데
여기서 하다가 안되면 일베가서도 노시고 그러시겠지 머
걍 그냥 혼자 노시게 하는 게 사이트 운영원리에도 부합하고
저분이 스스로 진보라고 했다죠?
제가 진보별로 좋아하지도않고 또 안철수 거짓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그것보다 이게 더 웃기는 말인듯
2013.06.12 11:56:03
(추천:
3 / 0)
이건 이런 겁니다. 제가 노원병 재보선에 출마한 후보라고 쳐봅시다. 그래서 노오란당 신재현(sinner+문재인+노무현) 후보로 출마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제가 출마를 앞두고 인터뷰에서 이럽니다. "2005년 4월 경 삼성X파일 소식을 접하고 아연실색했다.
우리나라가 이런 나라인지 몰랐다. 정말 너무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이 사회의 크나큰 부조리를 고발했다고 이렇게 사람을 죽여대다니 도무지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팩트 만세 일베충들과 惡愚路의 도우(道友)씨 같은 이들이 갑자기
"2005년 7월에 나온 삼성X파일 사건을 어떻게 4월에 먼저 알았는가? 저런 상습성 구라쟁이 사기꾼!!!!!! sin罪현" 이렇게 비판을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두가지 차원에서 얘기할 수 있습니다. 일단은 제가 착각을 했을 수도 있는 겁니다.
당장 여러분들 노무현의 대연정 제안이 2005년 몇월 경에 시작되었는가, FTA첫 언급이 언제 시작되었는가, 주미대사를 삼성가 홍석현으로 정한 시점이 정확히 언제인가 기억하십니까? 기자들이 달달 외우고 있지, 일반인들은 아예 모르고, 저나 아크로 회원들처럼 정치사 줄줄 꿰는 사람들도 잘 기억 못 합니다. X파일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연도와 일어났던 계절 정도는 기억해도 정확하게 달까지 기억못하는게 이상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정상적인 겁니다.
참고로 실제로는 저는 2005년 4월인지는 모르겠으나 사건이 공식화된 7월 한참 이전에 이미 이런 저런 소식통 (대단한 것이 아니라 인터넷, 찌라시 등에 이미 소문이 다 돌았음) 삼성 관련 안기부 녹취가 있다, mbc에서 보도를 막아서 기자가 열받은 상태 뭐 이런 뉴스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노오란당 후보 신재현은 정말 진실을 말한 겁니다.
사실 안철수 건도 별 것 아니지요. 당시 설마 운동권들이 우글거렸던 서울대에서 광주 상황을 단 한 사람도 몰랐을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솔직한 말로 이미 다 알고 있었습니다. 삼성X파일만 해도 관심이 없는 사람은 7월에나 알아도 관심이 있는 저는 한참 전에 찌라시 등으로 알고 있던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마치 그 당시 5월 18일 이전엔 광주의 상황을 단 한 사람도 몰랐을 것으로 예상하는 주장은 존나게 황당하지요.
그런데 갑자기 여기다가 팩트 만세입니더, 우리는 애국보수입니더 하면서 어떻게 2005년 4월에 알았다는 것이냐, 하면서 부산대학교 베충이가 신재현 사진에 똥을 합성해서 올리고, 대구와 구미 홈플러스에서도 같은 짓을 하면서 "보수의 본고장 대구에서 행게이 노릇한다!!! 신재현 구라 쟁이 저격!!!!!!" 이런 격입니다.
그걸 또 정치 사이트 惡愚路의 道友선생은 "나는 노원병에서 윤중천과 관계가 있으면 할복자살 하겠다는 사람을 지지하겠다" "진보 좌파라는 이들의 선동, 억지 때문에 일베와 같은 괴물이 생겨났다. 상습 구라범 신재현은 믿을 수 없다. 이러는 것이지요.
부디 아크로는 악우로나 도우수준의 질 떨어지는 오타쿠 같은 행보를 보이면 안되겠습니다.
제 의견에 동의하시면 추천, 반대하시면 '궁정동화'의 의미로 비추를 때려주십시오.
2013.06.12 12:57:28
한그루 외/ 아래는 <유시민처럼 철들지 맙시다>란 제목으로 쓴 한홍구의 당시 회고글입니다.
http://legacy.h21.hani.co.kr/section-021075000/2005/04/021075000200504040554052.html
이런 상황에서 서울에 거주하는, 더욱이 운동권도 아닌 안철수가 5월 18일날 다른 곳도 아닌 '유독' 광주를 골라 거기서 급변사태가 있을 것이라 믿었다?
개연성이 극히 낮습니다.
http://legacy.h21.hani.co.kr/section-021075000/2005/04/021075000200504040554052.html
이런 상황에서 서울에 거주하는, 더욱이 운동권도 아닌 안철수가 5월 18일날 다른 곳도 아닌 '유독' 광주를 골라 거기서 급변사태가 있을 것이라 믿었다?
개연성이 극히 낮습니다.
2013.06.12 13:05:39
사실 이게 오버라고 봅니다. 5월 18일 이후 휴교령이 내려졌고 그 이후에 그 소식을 듣고 그런 생각을 했다. 정도의 얘기일 수도 있지요. 사실 저 정도를 가지고 검증하기 시작하면 미뉴에님이나 저나 구라 전문가 되는거 하루면 됩니다. 말이 옮겨지면서 다소 모호해지는게 상례이니 말입니다.
사실 님 정도 되는 분도 가끔 제 글에 댓글 달 때 제 글을 다 안 읽고 단 듯한 댓글을 다신 적이 몇번 있지요. 이런게 세상사입니다.
솔직히 이거 가지고 박봉팔, 일베 여기에 노빠들이 아무리 발광을 해도 전혀 깜 안되는 해프닝 수준이라 전혀 안철수에게 해도 안되고 화제조차 안 될 겁니다.
2013.06.12 15:26:45
안철수는 (서울)역에서 광주를 갈까 부산으로 갈까 고민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휴교령이 내려지고 난 직후의 일이라는 것이지요.
안철수의 저 고민이 5.18 상황이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진 이후에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적어도 (서울)역에서 한 것으로 그 이후의 고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연 안철수가 휴교령이 내려 부산(혹은 광주)에 가기 위해 (서울)역에 간 시점에 5.18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을 가능성이 매우 낮았다고 보는 것이 미뉴에님이나 제 생각이지요.
님께서는 저런 거짓말이 뭐 별 대수냐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이런 류의 거짓말이 안철수에게는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이고, 그것이 습관성이라는 것에 심각성이 있으며, 새정치를 내세우는 안철수에게는 치명적인 문제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님께서 대수롭지 않게 보거나, 대중들도 님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을 제가 뭐라 할 수 없지만, 제 가치관으로는 용납되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안철수의 저 고민이 5.18 상황이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진 이후에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적어도 (서울)역에서 한 것으로 그 이후의 고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연 안철수가 휴교령이 내려 부산(혹은 광주)에 가기 위해 (서울)역에 간 시점에 5.18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을 가능성이 매우 낮았다고 보는 것이 미뉴에님이나 제 생각이지요.
님께서는 저런 거짓말이 뭐 별 대수냐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이런 류의 거짓말이 안철수에게는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이고, 그것이 습관성이라는 것에 심각성이 있으며, 새정치를 내세우는 안철수에게는 치명적인 문제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님께서 대수롭지 않게 보거나, 대중들도 님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을 제가 뭐라 할 수 없지만, 제 가치관으로는 용납되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2013.06.12 15:32:18
광주항쟁 당시 5월 18일인가 19일날에 벌써 구로공단의 모 교회가 '광주에서 시민 학살' 유인물을 뿌렸다가 간판이 뜯겨지고 교회가 없어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당시가 전화도 없는 시대도 아니었고, 운동권이나 나름 정치에 민감한 촉을 세우고 있던 사람들은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던 때에요. 당시 서울대생이었다면 본인은 아니래도 친구 중에 한 두놈은 반드시 운동권 혹은 운동권 정보에 밝은 사람이 있었을거고, 경악할만한 소식이 삽시간에 퍼졌을거라고 봐야죠.
솔까말 수업시간에 운동권 한명이 '광주에서 이러이러하고 있답니다' 떠들면 순식간이죠.
나는 오히려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의식적으로 깔려고 당시 상황을 너무 단순하게 재구성해서 이상한 진실게임을 벌이는 것 같습니다.
당시가 전화도 없는 시대도 아니었고, 운동권이나 나름 정치에 민감한 촉을 세우고 있던 사람들은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던 때에요. 당시 서울대생이었다면 본인은 아니래도 친구 중에 한 두놈은 반드시 운동권 혹은 운동권 정보에 밝은 사람이 있었을거고, 경악할만한 소식이 삽시간에 퍼졌을거라고 봐야죠.
솔까말 수업시간에 운동권 한명이 '광주에서 이러이러하고 있답니다' 떠들면 순식간이죠.
나는 오히려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의식적으로 깔려고 당시 상황을 너무 단순하게 재구성해서 이상한 진실게임을 벌이는 것 같습니다.
2013.06.12 16:08:11
실제 5.17에 휴교령이 내려졌는데 물리적으로 수업시간에 "광주에서 이러이러하다"는 이야기를 떠들 수는 없었지요. 5.18의 고아주는 휴교령이 내려진 이후 일이니까요.
당시 운동권에 몸담은 사람 중에 광주를 지원하러 몇 명이나 내려갔습니까? 혹시 당시에 광주로 내려가 지원한 사람들의 무용담을 들은 게 있으면 들려 주시겠습니까? 평범한 비운동권의 안철수도 당시에 광주로 내려갈까 고민했는데 어째 그 많던 운동권 대학생들 중에 광주로 내려가 지원한 사람들의 무용담은 왜 없을까요? 광주항쟁 희생자나 부상자 중에 당시에 서울에서 내려간 사람(대학생 포함)이 있습니까? 이는 무얼 반증할까요?
그 만큼 언론 통제가 심했고 5.18 광주의 정보가 철저히 통제되었다는 뜻이죠.
저는 81학번으로 대학생활 내내 운동권에 몸담았는데 왜 운동권선배들로부터 당시 광주에 내려가 지원한 무용담은 커녕 광주에 내려갈까 고민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까요? 제 주변의 운동권 선배들은 당시에 의식화가 덜 된 얼치기 운동권이기 때문일까요?
안철수가 부산으로 내려간 날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안철수가 부산(광주)로 가기 위해 서울역에 있었던 시점에서 광주의 상황을 얼마나 정확히 알 수 있었을까요? 제가 보기에 안철수는 5.21 이전에 부산으로 내려간 것으로 보입니다. (이걸 관심법이라 해도 할 수없습니다) 5.21 이전에 광주에서 일어난 상황을 안철수가 알았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광주로 내려갈 생각한 사람이 왜 서울에 남아 상황을 지켜보지 않고 낼름 부산으로 가버렸을까요?
안철수는 휴교령이 해제되어 학교로 복귀한 후에 당시 광주로 갈까 고민했던 연장선상의 행동은 전혀 없었을까요? 당시 광주로 갈 것을 고민한 의협심이라면 당시 분위기로 보아 대학 복귀 후에 운동권으로 들어가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았을까요?
5.18 광주의 부채의식을 안철수는 어떤 식으로 표출했나요?
당시 운동권에 몸담은 사람 중에 광주를 지원하러 몇 명이나 내려갔습니까? 혹시 당시에 광주로 내려가 지원한 사람들의 무용담을 들은 게 있으면 들려 주시겠습니까? 평범한 비운동권의 안철수도 당시에 광주로 내려갈까 고민했는데 어째 그 많던 운동권 대학생들 중에 광주로 내려가 지원한 사람들의 무용담은 왜 없을까요? 광주항쟁 희생자나 부상자 중에 당시에 서울에서 내려간 사람(대학생 포함)이 있습니까? 이는 무얼 반증할까요?
그 만큼 언론 통제가 심했고 5.18 광주의 정보가 철저히 통제되었다는 뜻이죠.
저는 81학번으로 대학생활 내내 운동권에 몸담았는데 왜 운동권선배들로부터 당시 광주에 내려가 지원한 무용담은 커녕 광주에 내려갈까 고민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까요? 제 주변의 운동권 선배들은 당시에 의식화가 덜 된 얼치기 운동권이기 때문일까요?
안철수가 부산으로 내려간 날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안철수가 부산(광주)로 가기 위해 서울역에 있었던 시점에서 광주의 상황을 얼마나 정확히 알 수 있었을까요? 제가 보기에 안철수는 5.21 이전에 부산으로 내려간 것으로 보입니다. (이걸 관심법이라 해도 할 수없습니다) 5.21 이전에 광주에서 일어난 상황을 안철수가 알았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광주로 내려갈 생각한 사람이 왜 서울에 남아 상황을 지켜보지 않고 낼름 부산으로 가버렸을까요?
안철수는 휴교령이 해제되어 학교로 복귀한 후에 당시 광주로 갈까 고민했던 연장선상의 행동은 전혀 없었을까요? 당시 광주로 갈 것을 고민한 의협심이라면 당시 분위기로 보아 대학 복귀 후에 운동권으로 들어가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았을까요?
5.18 광주의 부채의식을 안철수는 어떤 식으로 표출했나요?
2013.06.12 16:41:22
길벗/
수업시간은 없었겠군요^^ 아니면 주점에서 떠들었던가. 당시 운동권들이 매우 열심히 "광주의 진실"을 전파하려고 애썼을 거라는건 당연한 상식적 추정이죠. 서울대생이면 아주 간단하게 정보의 유통에 노출될 수 있던 신분이었구요.
여튼 '방송 언론이 통제되었으니 안철수가 그 소식을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는 추정은 과도하다는 말씀이에요. 전화도 없었다면 완벽하게 통제가 되었겠지만.
"저는 81학번으로 대학생활 내내 운동권에 몸담았는데 왜 운동권선배들로부터 당시 광주에 내려가 지원한 무용담은 커녕 광주에 내려갈까 고민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까요? 제 주변의 운동권 선배들은 당시에 의식화가 덜 된 얼치기 운동권이기 때문일까요?"
얼치기 운동권이어서 그랬는지 아닌지 제가 어찌 알겠어요? 나 참. 길벗님의 개인적인 경험담은 이 문제를 논하는데 존중받을 수 있는 펙트로 쓰일 수가 없는거에요. 님 주위에 그런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 어떻게 '안철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의 증거가 되요?
그리고 당시 서울대생이면 운동권이 아니더라도 무슨 대단한 신념을 가진 우파 보수가 아니라면 운동권이나 군부독재 반대 분위기에 온정적인 시각을 보여주던 시절입니다. 대개 '나는 참여까지는 못하더라도 지지는 해주겠다' 이거 아니었어요?
솔까말 당시는 길벗님 같은 분도 운동권이었던 시절 아닙니까? 님의 지금 모습을 보면서 "그럴 확률이 없다"면 님은 억울하지 않겠어요? 당체 님의 요즘의 행동에는 당시의 운동권 경력과 어떤 연장선상의 행동이 있는데요? 당시의 님의 의혐심은 대체 어디로 다 사라졌을까요?
(그런데 솔직히 저는 님께서 대학시절 내내 운동권에 몸 담았다는 말씀 전혀 못 믿겠는데요? ㅎㅎㅎ. 님의 국정원 정치개입에 대한 반응을 보면, 님의 운동권 경력은 전혀 믿을 수가 없어요. 당시 매우 엄혹한 환경에서 운동했던 분들은 아무리 전향을 하고 뉴라이트가 되도 그런 반응을 보이는게 거의 불가능하거든요)
"안철수는 휴교령이 해제되어 학교로 복귀한 후에 당시 광주로 갈까 고민했던 연장선상의 행동은 전혀 없었을까요? 당시 광주로 갈 것을 고민한 의협심이라면 당시 분위기로 보아 대학 복귀 후에 운동권으로 들어가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았을까요? "
이건 그냥 님의 추정일 뿐이잖아요. 안철수가 왜 그랬는지 제가 알겠어요 아니면 님이 알겠어요? 님은 당시의 안철수를 속속들이 다 아시는 분? 안철수는 님과는 인생관이나 사고방식이 달랐나보죠. 펙트주의자께서 도대체 왜 이러실까요?
수업시간은 없었겠군요^^ 아니면 주점에서 떠들었던가. 당시 운동권들이 매우 열심히 "광주의 진실"을 전파하려고 애썼을 거라는건 당연한 상식적 추정이죠. 서울대생이면 아주 간단하게 정보의 유통에 노출될 수 있던 신분이었구요.
여튼 '방송 언론이 통제되었으니 안철수가 그 소식을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는 추정은 과도하다는 말씀이에요. 전화도 없었다면 완벽하게 통제가 되었겠지만.
"저는 81학번으로 대학생활 내내 운동권에 몸담았는데 왜 운동권선배들로부터 당시 광주에 내려가 지원한 무용담은 커녕 광주에 내려갈까 고민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까요? 제 주변의 운동권 선배들은 당시에 의식화가 덜 된 얼치기 운동권이기 때문일까요?"
얼치기 운동권이어서 그랬는지 아닌지 제가 어찌 알겠어요? 나 참. 길벗님의 개인적인 경험담은 이 문제를 논하는데 존중받을 수 있는 펙트로 쓰일 수가 없는거에요. 님 주위에 그런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 어떻게 '안철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의 증거가 되요?
그리고 당시 서울대생이면 운동권이 아니더라도 무슨 대단한 신념을 가진 우파 보수가 아니라면 운동권이나 군부독재 반대 분위기에 온정적인 시각을 보여주던 시절입니다. 대개 '나는 참여까지는 못하더라도 지지는 해주겠다' 이거 아니었어요?
솔까말 당시는 길벗님 같은 분도 운동권이었던 시절 아닙니까? 님의 지금 모습을 보면서 "그럴 확률이 없다"면 님은 억울하지 않겠어요? 당체 님의 요즘의 행동에는 당시의 운동권 경력과 어떤 연장선상의 행동이 있는데요? 당시의 님의 의혐심은 대체 어디로 다 사라졌을까요?
(그런데 솔직히 저는 님께서 대학시절 내내 운동권에 몸 담았다는 말씀 전혀 못 믿겠는데요? ㅎㅎㅎ. 님의 국정원 정치개입에 대한 반응을 보면, 님의 운동권 경력은 전혀 믿을 수가 없어요. 당시 매우 엄혹한 환경에서 운동했던 분들은 아무리 전향을 하고 뉴라이트가 되도 그런 반응을 보이는게 거의 불가능하거든요)
"안철수는 휴교령이 해제되어 학교로 복귀한 후에 당시 광주로 갈까 고민했던 연장선상의 행동은 전혀 없었을까요? 당시 광주로 갈 것을 고민한 의협심이라면 당시 분위기로 보아 대학 복귀 후에 운동권으로 들어가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았을까요? "
이건 그냥 님의 추정일 뿐이잖아요. 안철수가 왜 그랬는지 제가 알겠어요 아니면 님이 알겠어요? 님은 당시의 안철수를 속속들이 다 아시는 분? 안철수는 님과는 인생관이나 사고방식이 달랐나보죠. 펙트주의자께서 도대체 왜 이러실까요?
2013.06.12 16:59:39
피노키오/
1. 저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자칭 진보진영의 뻘짓 비판을 과거 대학시절의 학생운동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님이 믿던 안 믿던 이건 제 소신이지요. 그래서 과거 운동권 선후배들과 충돌을 많이 하지요.
2. 국정원녀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왜 과거 제 운동권 시절의 생각과 배치된다고 생각합니까? 저는 미투라고투라님의 글에 동조했고, 그 사건이 자칭 민주진보진영이 했서는 안되는 인권 유린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인권 유린이라고 비판하는 것이 왜 제 과거의 생각과 배치되지요?
국정원녀 사건은 저는 철저히 밝혀야 한다고 누차 주장했습니다. 야권이 국정조사나 특검을 요구한다면 새누리당도 받아들여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고 초지일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국정원녀 사건은 4가지 층위에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이미 밝혔구요. 이런 주장이 왜 제 과거 운동권 시절의 생각(의협심)과 충돌한다고 보시는지요?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3. 님의 연배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지만 70년 후반 학번이나 80년대 초반 학번의 사람들에게 당시 5.18 상황에 대해서 물어 보세요. 그 당시에 5.18 상황에 대해 얼마만큼의 정보를 갖고 있었는지.
4. 이건 다른 문제입니다만, 님께서는 5.18 때 희생된 사람이 몇 명이라고 알고 있는지요? 창피한 이야기이지만 저는 5.18의 제대로 된 진상을 안 것이 2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제대로 된 진상을 알고 조금 당황했었습니다.
5. 스타강사 강민성이 5.18에 대해 이야기하는 유튜브를 링크합니다. 강민성은 당시 광주 외곽(지금은 광주시에 편입됨)에 살았는데 5.18 광주 상황이 일어난 것을 당시에 잘 몰랐다고 합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qXNjWLHDPm0
1. 저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자칭 진보진영의 뻘짓 비판을 과거 대학시절의 학생운동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님이 믿던 안 믿던 이건 제 소신이지요. 그래서 과거 운동권 선후배들과 충돌을 많이 하지요.
2. 국정원녀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왜 과거 제 운동권 시절의 생각과 배치된다고 생각합니까? 저는 미투라고투라님의 글에 동조했고, 그 사건이 자칭 민주진보진영이 했서는 안되는 인권 유린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인권 유린이라고 비판하는 것이 왜 제 과거의 생각과 배치되지요?
국정원녀 사건은 저는 철저히 밝혀야 한다고 누차 주장했습니다. 야권이 국정조사나 특검을 요구한다면 새누리당도 받아들여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고 초지일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국정원녀 사건은 4가지 층위에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이미 밝혔구요. 이런 주장이 왜 제 과거 운동권 시절의 생각(의협심)과 충돌한다고 보시는지요?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3. 님의 연배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지만 70년 후반 학번이나 80년대 초반 학번의 사람들에게 당시 5.18 상황에 대해서 물어 보세요. 그 당시에 5.18 상황에 대해 얼마만큼의 정보를 갖고 있었는지.
4. 이건 다른 문제입니다만, 님께서는 5.18 때 희생된 사람이 몇 명이라고 알고 있는지요? 창피한 이야기이지만 저는 5.18의 제대로 된 진상을 안 것이 2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제대로 된 진상을 알고 조금 당황했었습니다.
5. 스타강사 강민성이 5.18에 대해 이야기하는 유튜브를 링크합니다. 강민성은 당시 광주 외곽(지금은 광주시에 편입됨)에 살았는데 5.18 광주 상황이 일어난 것을 당시에 잘 몰랐다고 합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qXNjWLHDPm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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