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차별'에 대하여 아래 '아이기스'님과 '사문난적'님 두 분이 개념글을 올려주셨군요. 꼭 동성애 차별 관련이 아니더라도 이런 개념글들을 아크로에서 많이 보았으면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아이기스님이 쓰신 글에게서 마르틴 루터 킹 목사의 향기가 난다면 사문난적님이 쓰신 글에서는 말콤X의 투쟁 정신을 떠올리게 하는군요. 글 자체야 두 분의 글 모두 흠잡을 때 없지만 '동성애 차별 척결'이라는 행동양식에 있어서는 저는 사문난적님의 방법에 손을 들어드리고 싶습니다. 


이는 마치 '호남 차별 척결' 방식에 있어서 제가 처음에는 진중권 방식인 '시민의 상식'에 의한 국민의 인식을 높이는 방법을 선호했다가 나중에 강준만의 '정치적 집권'을 통한 방식이 더 효과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방법에 있어서의 선회'를 한 것과 같은 맥락이죠.


왜냐하면, 1997년 DJ가 당선되었을 때 한 네티즌의 'DJ는 당선되었지만 앙시앙 레짐은 견고하다'라는 절규에서 앙시앙 레짐은 견고한 정도가 아니라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동성애 차별 척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 차별은 단지 타부(taboo) 수준이 아니라 기독교 특히 개신교에서 동성애에 대한 차별을 조직적으로 선전 세뇌시키며 이데올로기화 하기 때문에 이런 악행은 투쟁을 통해서 밖에는 척결이 안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흥이 나면' 상세히 기술하겠지만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가 19세기 중엽에 '교회의 정화 운동'를 통해 기독교의 대부분이 근본주의가 되었으며 '흔히 접하는 역사책에서는' 1980년대 레이건 정권에서 뉴라이트 운동이 펼쳐졌다고 기술하지만 실제 미국에서의 뉴라이트 운동은 교육 분야에서 1920년대에 공산주의에 온정적인 사회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하여 벌려졌으며 그런 역사가 우리나라의 개화기 때의 미국의 선교사들의 선교 활동 및 작금의 변태적인 뉴라이트들의 준동과 '역사적 닮은 꼴'입니다.



그리고 그런 '역사적 닮은 꼴'에서 세계 10대 메가처치 중 6개의 메가처치가 한국에 있고, 그런 메가처치를 통하여 영남패권 유지 및 옹호를 통한 사회적 물적 정치적 기반의 공고화...... 그리고 차별받는 호남인들은 '헌금 셔틀러'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죠. 물론, 통계에서도 입증되었든 서울의 호남인들은 '하류층'의 비율이 높아서 그나마 '헌금 셔틀러' 역할도 다수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동성애 차별적인 사회적 분위기에 뭐 그리 절망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아마추어 역사학도지만 역사적 사실들을 반추해볼 때 '동성애 용인'은 '역사의 대세'이니 말입니다. 아마 한국에서도 곧 천주교에서는 동성애자 신부를 허용할 것이고 동성애자 목사를 허용하는 개신교 종파가 탄생할 것입니다. 투쟁에 의하여 얼마나 그 기간이 단축되느냐.......... 는 것만 남았을 뿐입니다.



동성애 차별 척결 입장을 견지하시는 분들은 1961년 미국에서 발생했던 사건을 염두에 두실 필요가 있습니다. 1961년.


케네디를 배출한, 물론 현재의 민주당과는 성격이 많이 다른 1961년의 민주당은 그 해 의회에 상정된 '흑인차별금지법'을 부결시키는데 톡톡한 공헌(?)을 합니다. 그리고 양념으로 말씀드린다면 우리가 모범적인 선진국의 한 나라로 치부하는 스위스에서는 1966년에 가서야 겨우 여성 참정권을 허용했습니다.


동성혼에 대하여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는 현 미국 대통령의 민주당, 그리고 대표적인 인권국가의 하나로 손꼽히는 스위스의 50년 전의 모습이라고는 상상이 안가실겁니다. 저 역시 그런 역사적 사실을 접했을 때 '깜놀'했을 정도이니까요.


각설하고,


그러면 호남차별척결과 동성애차별척결은 연대 대상일까?


저는 '낮은 곳으로부터의 연대' 또는 '약자로부터의 연대'라는 구호를 상당히 좋아합니다만 이 두 차별 척결은 연대 대상이 아니라고 봅니다. 호남차별은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고 동성애 차별은 '사회 인식의 변화를 담보하는' 것이니까요.


호남차별에 대하여는 막상 호남차별적 언행을 시전하는 사람들도 '호남차별은 나쁘다'라고 합니다. 솔까말,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을 대상으로'호남차별의 옳고 그름'에 대한 여론조사를 한다면 '그름'이 압도적으로 나올 것입니다. 반면에 '동성애 차별의 옳고 그름'에 대하여 특정 집단, 예를 들어 개신교 신도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다면 '맞다'가 압도적으로 나올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죠.


호남차별은 정치, 사회 그리고 경제적인 아젠다이지만 동성애 차별은 문화, 역사적인 아젠다입니다.


행동방식에 있어서 호남차별척결을 주장하는 진영과 동성애 차별 척결을 주장하는 진영 사이에 호남차별 척결 진영에서 동성애 차별 척결 진영에 '연대하자'라고 제안한다면 아무리 상찬해도 부족하지 않지만 호남차별척결 진영에서 '연대를 거부한다'해도 안타까울지 몰라도 비판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단지, 호남차별척결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서 적지 않게, 영남패권유지의 한 축인 개신교의 동성애 혐오라는 이데올로기에 부응하여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고' 동성애 혐오 기제를 퍼뜨리는 것은, 확실히 안타까울 뿐입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