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세군데 라면집이 있다.

한군데는 동네에서 제일 오래되고 잘되는 집이다. 돈이 많아서 건물 하나를 통채로 쓴다. 메뉴도 다양하다. 다만 맛은 그냥 보통을 약간 넘는 수준이다. 문제는 이 가게가 나를 되게 싫어한다는 것이다. 옛날 부터 유독 나에게만 서비스도 엉망이고 라면도 형편없이 끓여 온다. 다른 손님에게는 어떤가 쳐다 보면 다 괜찮은 라면들을 먹고 있다. 게다가 언젠가는 라면에 이상한 재료를 넣었는지 배탈로 혼났다. 그래서 다시는 이 집에 가지 않는다.

한군데는 약간 허름한 보통 라면집이다. 건물 1층을 전세로 쓴다. 맛도 보통이고 서비스도 보통이다. 근데 주인이 나를 좋아한다. 사실 먼 친척뻘 되는 사람이 운영하는 집이다. 나만 가면 반겨주고 친절하다. 그런데 특별히 맛있게 해주는것 같지도 않다. 단골이라서 잘해주는게 아니라 오히려 신경을 덜 쓰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일단 이 집에 가면 나를 친절히 반겨주고, 보통 수준의 라면을 먹을수 있으니 매일 간다.

또 한군데는 막 생겨난 라면집이다. 깔끔하긴 하지만 규모가 작고 빈티가 난다. 하지만 주인이 어디 일본에서 라면 기술을 배워와서인지 자부심이 대단하다. 근데 운영 자금이 없어서인지 재료가 자주 떨어진다. 그래서 공치는 경우가 많다. 이 집을 믿고 라면을 먹으러 갔다가는 한끼를 굶을 위험이 있다. 라면 맛은 일본 라면이라 그런지 신선하고 독특한 맛이다. 나쁘진 않지만 나는 일단 매일 안정적으로 라면을 먹을수 있는게 중요하다. 이 집이 성실하게 라면을 끓여내 신뢰감을 준다면 가줄 의향도 있다.

그런데 최근 라면 노점상이 하나 생겼다. 노점상이지만 주인의 포부가 대단하다. 모든 동네 주민들로부터 사랑받는 "범동네적" 라면 가게가 되겠다고 큰 소리 친다. 그러면서 라면가게에 단골만 찾아가는 현상을 개탄한다. 특히 내 단골 라면집을 겨냥해 나를 독점했다며 비난한다. 나는 동네에서 먹을 라면집이 거기 밖에 없어서 가는건데 왜 그게 라면집 잘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게 엄청난 잘못이랜다. 그래서 그 노점상 라면이 어떤가 하고 찾아가 봤더니 아직 개업도 안했다. 지금 동네 최고의 라면을 만들기 위해 특별 계약을 맺은 라면 공장에서 최첨단 공법으로 면발과 스프를 제조중에 있다고 한다.

나는 당신네 가게에서 맛있는 라면만 성실히 만들어주면 가서 먹을테니 독점 구조를 깨기 위해서라도 다른 가게 비난할 시간에 그저 라면 만드는 일에나 전념하면 안되겠냐고 물었다. 나도 단골이라고 해서 오히려 만만히 보는 그 집이 탐탁지 않던차이니, 당신이 맛난 라면만 끓여주면 나는 먹어주리라고 했다. 그래도 그 사람은 말을 못 알아 들었는지 계속 내 단골 가게를 비난한다. 라면 만드는 시간 보다는 내 단골 가게 앞에 가서 데모하는데 보내는 시간이 많은것 같다.

그래서 내가 다시 물었다. 내가 단골 집만 가는 이유는 이 집이 특별히 예뻐서가 아니라, 동네에서 제일 잘나가는 라면집은 나를 싫어하고, 최근에 생긴 집은 운영이 부실해서이니, 오히려 그 라면집들을 계몽하는게 낫지 않겠냐고. 그러나 계속 말을 못 알아 듣고 얼굴이 벌개져서 라면끓이는데 쓸 LPG 가스통을 들고 라면집 유리창을 깨부수려고 한다. 내가 흥분한 이 사람을 동네에서 제일 잘나가는 집 앞으로 데려가 말했다. 이 라면집에서 나를 받아들여주고, 예전에 나에게 나쁜 라면을 먹인점만 사과하면 앞으로는 이 가게도 이용할것이고, 그럼 당신이 그렇게 싫어하는 독점 구조도 깨질거라고. 그저 라면을 성실하게 끓여다 주는 단골집을 비난해 봤자 독점 구조 깨는데는 아무 소용없다고. 어서 이 크고 잘나가는 집 사장에게 내 사정을 말하라고.

그러자 아까까지 흥분을 이기지 못하던 이 사람이 갑자기 소녀같이 새침해 져서는 미동도 않고 거리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다. 내가 계속 가게로 들어가자고 재촉해도 장승마냥 버티고 서서는 움직이지 않는다. 가만 보니 몸이 미세하게 떨린다. 라면집 주인이 무슨일인가 하고 밖으로 나와 이쪽을 쳐다보자 이 사람의 눈시울이 갑자기 촉촉해진다. 그러면서 반가움인지 애닲픔인지 모를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주인장이 퉁명스럽게 문을 닫고 들어가자 눈가에서 굵은 눈방울이 떨어진다. 내가 황당해서 입을 쩍벌리고 쳐다보자 그는 잠시 머쓱한 미소를 짓더니 다시금 내 단골집으로 달려가 데모를 한다. "손님을 독점하는 라면가게는 물러가라!".

나는 그저 이 노점상이 끓여준다는 맛난 라면을 먹고 싶을 뿐인데, 이 사람은 라면보다는 다른데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단골 가게 사장이랑 개인적으로 원한이 있나 보다.



PS. 특별한 떡밥(?)이 없는 이상 앞으로 호남-친노 관련 글은 그만 쓰려고 합니다. 그제 있었던 논의를 보면서 여기 계신 많은 분들의 생각을 확인했습니다. 더 이상의 포스팅은 별 의미가 없을것 같아 접습니다.

그동안 괴로웠을 친노여러분들께는 심심한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다만 이점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저도 원래 친노였고, 유시민의 개혁당을 지지했으며, 2003년 당시 구민주당을 혐오했고, 열린우리당 창당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또한 열린우리당의 해체에도 반대했습니다. 그랬던 제가 2007년 이후 왜  "난닝구'가 되었는지, 그동안 제 글을 보신 분들이라면 충분히 이해하시리라고 믿습니다. 좀더 이해가 필요하시다면 크레테님의 홈페이지에 있는 ASH님의 글들을 참고하시면 될것 같습니다.

만약 저의 문제제기가 귀찮고 당혹스럽다면, 호남인의 입장에서 2007년 이후 친노 세력의 행보가 얼마나 곤혹스럽고 끔찍하게 느껴졌을지에 대해서도 공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치 물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의 종아리를 밑에서 누가 야금 야금 깨무는 느낌입니다) 지금 인터넷 일각에서 일어나는 소위 "난닝구의 난", 즉 개혁적 성향을 가지고 친노에 호의적이던 호남 리버럴들이 난닝구가 되어서 친노 세력을 비토하는 사태는, 2007년 이후 친노가 호남에게 가한 상처에 대한 반작용인 측면이 있습니다. 

저는 진보는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민주 진영이라도 단일 대오를 이루어 정권을 되찾아오거나, 최소한 기반을 회복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친노와 호남 리버럴 사이에, 앞으로 더 이상의 분쟁은 없었으면 합니다. 서로 아픈 부분은 건드리지 않는 신사협정을 맺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 신사협정을 친노가 먼저 깰것 같아 불안합니다. 그리고 대개 불안은 현실로 나타나더군요. 

이제 저는 마음속에 있는 말을 다 했습니다. 호남의 입장을 충분히 전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치에서 호남은 자신들의 처지를 아무리 호소한다고 한들 이해를 얻기 힘든 처지에 있습니다. 아마 호남은 이라크의 쿠르드족이나 일본의 부라쿠민 처럼 사회의 소외집단으로 몰리거나, 소멸되어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호남에게 밝은 미래가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대개 역사에서 약자들은 이렇게 없어지거나 내몰리곤 했습니다. 그렇게 특이한 일은 아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