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항상 눈팅만 하다가 가끔은 저도 의견을 밝히고 토론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에 가입했습니다. 처음으로 글 남기려니 허접할 것 같습니다. 이런 글은 써본적이 없어서 어떨지 모르겠네요. 

 최근 동성애논쟁과 관련해 많은 분들이 올린 가열찬 논지들을 즐겁게 바라보았습니다. 크게 봐서 동성애에 대한 찬반으로 갈리겠지만, 그 안에서도 파생되는 수많은 이슈들을 두고 조금씩 입장들이 갈리는 걸 보고 그것들에 대해 제시되는 합리적이거나 합리적임을 증명하려는 수많은 근거들을 보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전 동성애에 관해서는 마땅히 차별을 하지 않았야 하며, 동성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입양의 권리에 대해서는 반대는 아니지만 적극 찬성은 아닙니다. 이것에 관해 깊이 있는 통찰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관점의 와중에서 의견을 보임을 알리는 것 공정할 것 같다는 점에서 밝혀둡니다.
 (입양문제는 입양받지 못하는 아이의 조건이 어떤 측면에서 입양되는 아이의 입장보다 열등하리라 생각되기 때문에 긍정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그에 반해 선택권을 가지지 못한 아이가 이성애 중심의 사회에서 입게 될 사회적인 시선이 있으며, 또한 우리가 아직 모르는 성장, 교육, 학습의 메커니즘과 관련해서 효과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행위 자체에도 일종의 윤리적 가치가 스며들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유보적인 입장입니다. 그러나 이 유보는 뭐랄까 비겁한 판단중지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네요. 어쨌든 입양이 되고 그 환경을 통해 성장한 아이들이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고, 무엇을 증언할 지 알려면 입양은 허용되어야 하니까요. 어쨌든 장기적으로 바라보면 일은 피할 수 없이 진행될 것 같습니다. 저는 그저 경계를 가지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정도인 것 같습니다. 방관 속의 찬성이랄까요.)

 앞의 논의들을 보면서 몇가지만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먼저 동성애가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모르며, 그것이 선천적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현재 우리가 가진 사회제도 안으로 편입시키는 것은 여러 방면으로 숙고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는데요.  이 지점에서 흐강님이 이성애가 자연스러운가 동성애가 자연스러운가라는 논지를 강력하게 사용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연스럽다라는 어휘에는 통념을 맹목적으로 용인하거나, 관습을 결과적으로 우리가 습득한 효과로 상정하고 확증편향하는 관점도 들어있고, 한편으로는 우리는 우리가 은연중에 사용하거나 습득했던 여러가지 행위에 대한 이해하려는 방편도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모호한 용어를 잠시 접어두고 그것을 과학이라는 측면에서만 좁게 살펴보자면,  결론적으로 과학적인 관점에서 동성애는 매우 자연스러운 행위입니다.

 동성애에 관한 과학이라고 하면 아마 생물학이겠지요. 진화생물학이라는 분야가 물론 모든 것을 설명하진 못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설명하려 들어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과학자들(진화생물학자)은 동성애를 과학적으로 합치되는 현상으로 본다는 겁니다.
 동성애 유전자가 존재한다고 가정할 때, 그들은 어떻게 이렇게 계속 오랜 시간을 살아남았을까요? 분명히 그들은 자손을 남길 수 없습니다. 단 한 세대만 지나도 절멸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랜 시간을 거쳐 살아남았습니다.
 아마 두 가지 관점으로 이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하나는 그것이 선천적인 원인이 없으며 환경의 영향으로 인한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문명의 여명기에 가까운 고대의 문헌에 이르기까지 동성애의 흔적은 남아있습니다. 그것은 현대문명의 여파가 아닙니다. 향연에 나오는 소크라테스는 동침을 원하는 소년들의 유혹을 즐기면서 사랑의 본질에 논합니다. 이때 동성애는 진정한 사랑을 의미하고, 이성애는 사랑이 아니라 일종의 엔터프라이즈, 생산적 행위를 의미합니다. 
 문명이라는 환경이 동성애의 진정한 원인이라면 그렇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이외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동성애를 없애기 위해 문명을 포기할 순 없으니까요. 차라리 필연적으로 발생할 동성애자를 더불어 잘 살수 있는 제도를 고민하는 게 낫지요.(필연적으로 패배자가 발생하는 구조에서 패배자들이 어느 기준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최소적 가치를 담을 평등주의적 고민이 진보주의의 핵심적 가치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선천적이고 과학적이라면 왜 절멸하지 않을까요? 여기엔 많은 사람들의 직관적인 인식에서 기인한 오해가 작동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지주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명나라 시절의 양명학이었나요? 아는 것이 곧 힘이다같은... 즉, 지식과 아는 것을 동일화하고, 습득이나 사유의 과정을 생략하는 것.  자전거를 타는 방법을 지식으로 아는 것은 곧바로 타는 것을 아는 것이죠. 무협지에 보면 이런 설정이 많이 나옵니다. 절세의 무공비급을 한번 읽으면 절대고수가 되는 거죠. 비약은 이런 식으로도 작동합니다. 우리는 암컷을 수십마리 거느린 물개의 성기에 정력을 증진시키는 성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명한 근육과 폭발적인 탄력을 가진 말다리를 보면서도 같은 것을 봅니다. 
 동성애에 대한 부자연스러움도 이와 같습니다. 인간에게는 종족번식을 위한 생식기관이 있으며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 혹은 다른 식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비정상으로 보는 거죠. 하지만 이때 생식기관의 번식적 사용이 꼭 자연스러움 혹은 과학적임을 보증하지는 않습니다. 
 도킨스의 말대로 유전자의 생존이 관건이라면, 그것이 꼭 나 자신의 유전자일 필요는 없습니다. 동성애 유전자는 아마 어느 가족의 잠재적 유전자로 남아있을 겁니다. 그리고 발현된 동성애자는 그가 속한 부족의 번영과 생존에 유리한 점으로 작동했을 겁니다. (양성의 경계에서 두 관점을 보유함으로서) 조화, 협동, 이해 같은 심리적 효과를 발휘함으로써 집단의 생존에 이익을 제공합니다. 자신은 유전자를 남기지 못하겠지만, 자신의 동성애 유전자는 장기적으로 남을 수 있는 거죠. 

 물론 이런 가정은 가설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편은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동성애자가 선천적인 돌연변이에 불과하고 그것이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부자연스런 행위라면 한세대만에 전멸해야 합니다. 반면 그것이 후천적인 행위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것을 옳은 방향으로 다스리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문명을 포기할 순 없으니까요.
 그러나 그것이 과학적이고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행위라는 설득력 있는 설명이 있습니다. 그들이 오랜 기간 그가 속한 사회를 위해 유익을 제공했다는 지점을 받아들이고, 설령 유익이 없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어쩔 수 없이 그런 존재라면 그들을 돌보는 것도 진보의 의무여야 할 것입니다.

덧. 국가적 재생산이라는 피노키오님의 근거는 착각에서 비롯된 오용인 것 같습니다. 분명히 국가는 국민이 지속적으로 보충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국가의 목적은 아니죠. 여기에서 국가는 국민이 필요하다는 구성요건을 적시하는 것입니다. 즉, 국가엔 국민이 당연히 선제적으로 필요하다는 논리학적인 명제에 불과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국가는 안보 위에 성립합니다. 그리고 국가는 국민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강도짓을 한 사람은 강도 및 상해죄를 적용받는 게 아니라, 국가반역죄로 처벌하면 어떨까요? 논리를 비약한 것이 아닐까요? 
 즉, 국가의 구성요건을 적시한 논리적 명제(실제적으로는 전혀 사용될 수도 사용해서도 안 되는, 가치중립적인 판단입니다)를 목적으로 오인하고, 동성혼의 반대를 위한 근거로 사용한 것이지요.

덧덧, 아이기스님의 글, 그대는 너무 건방지다.라는 글을 읽었는데, 글의 요지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감성에의 호소가 약간 느껴지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더 건방져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폭력적으로 타인을 공격하는 것이 좋아보이진 않지만,담론의 가장 주요한 요건 중 하나는 적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자신을 반성하고 건방져지지 않으려고 하면서 타인을 존중하는 것은,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