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TV 드라마 '형사 콜롬보 시리즈' 중에 '이중노출'이라는 단편이 있었다. 사진을 찍거나 포토샵을 쓰시는 분들에게 이중노출은 익숙한 용어이겠지만 이 단편에서의 '이중노출'은 조금 다른 의미로서의 소재로 활용된다.


형사콜롬보에서 이중노출은 '가해자(살인자)'가 '피해자(피살자)'가 보는 영화에 정교한 조작을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영화는 1초에 30컷의 정지화상으로 구성되는데 그 것이 '동영상'으로 인식되는 것은 바로 사람 눈의 잔상 효과 때문이다. 어쨌든, 가해자가 영화에 가한 조작은 1초당 30프레임씩 구성된 영화의 30프레임 중 한 프레임씩 전혀 다른 영상(정지화상)을 삽입한 것이다.


1초당 30프레임씩 '빠르게' 돌아가기 때문에 원래 영화는 동영상으로 그리고 전혀 다른 영상은 정지화상으로 인식되는데 동영상을 보는 '피해자'는 그 전혀 다른 영상을 눈으로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잠재의식 속에서 인식을 한다. 그래서 그 전혀 다른 영상을 잠재의식 속에서 인식한 피해자는 가해자가 의도한 행동을 하게 되고 결국 가해자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형사 콜롬보의 이중노출에 대한 광고학적 효과는 논쟁의 도마 위에 올랐었는데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실제 효과는 없다'는 것으로 결론이 난 것으로 알고 있다.  광고 효과가 실제로 있던 없던 형사 콜롬보의 '이중노출'은 TV에서 방영이 된 후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중노출을 피노키오님의 동성혼 관련 논지와 그에 관련된 논지들을 읽으면서 떠올렸다.



2. 당연히, 피노키오님은 그 이중노출의 가해자나 피해자 어느 쪽도 아니다. 제 3자이다. 단지, 그 영화를 같이 본 제 3자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잼재의식 속에서 불러일으킨 행동을 똑같이 했다는 것이 다르다. 즉, 동성애 차별이라는 잠재의식 말이다.


가해자, 그러니까 동성애에 대하여 어이없는 혐오감을 확대 재생산하는 한국 기독교(개신교+천주교)의 이데올로기에 한국인들의 못말리는 편견이 더해진,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라는 가해자가 겨냥한 맥거핀에 피노키오님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피노키오님의 논지가 아주 정당함에도 논란을 불러 일으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피노키오님에게 실제 동화 피노키오의 주인공 피노키오를 빗대 '코는 늘어나지 않았지만 빨깧게는 되었을 것'이라고 한 맥락이다.


확실히, 피노키오님은 동성혼 관련하여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코가 늘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왜 자신의 주장이 왜 그런 반발을 일으켰는지 역설하느라 숨이 차서 코가 빨갛게는 변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왜 그런 반발을 일으켰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실 것이다. 왜? 동성혼 관련하여 피노키오님은 '객관적인 제 3자' 입장에서 동성혼 관련 주장을 했을지언정 피노키오님도 이중노출을 당한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3. 피노키오님이 이중노출 당한 사실상의 피해자라는 것을........ 이제 설명하겠다.


'호남차별과 사회적 약자에의 차별이 결코 다른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아젠다의 선후로 보아 사회적 약자에의 차별이 호남차별보다는 위에 있지만 그 것을 극복하는 것은 같은 성격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두가지의 차별 극복은 서로 보완적인 관계로 어느 한쪽의 극복이 다른 한쪽의 극복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호남차별극복은 보다 손쉽게 '정치적 집권'을 이루어냄으로서 사회적 차별보다는 훨씬 더 쉽게 극복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차별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백번 동감하는 바입니다.



위에 인용한 글은 '호남의 현실적 자존심과 역사적 자존심'이라는 내 글에 피노키오님이 동의를 표시한 쪽글이다. 이 쪽글의 내용 중에 호남차별을 동성혼 허용, 사회적 차별을 동성애자 차별 타파라는 표현으로 대체하여 다시 써보자.


'동성혼 허용과 동성애자 차별 타파는 결코 다른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아젠다의 선후로 보아 동성애자 차별 타파가 동성혼 허용보다 위에 있지만 그 것을 극복하는 것은 같은 성격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두가지 아젠다는 서로 보완적인 관계로 어느 한쪽의 극복이 다른 한쪽의 극복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성혼 허용이라는 보다 빠른 '법률적 허용'을 이루어냄으로서 동성애자 차별 타파보다는 훨씬 더 쉽게 이룰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동성애자 차별 타파를 이루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상기 두 텍스트에서 피노키오님은 '닥치고 동성혼 실시'를 주장하는 것이 주장의 일관성이 있다.

그럼 피노키오님은 '내가 언제 동성혼을 반대했느냐?'라고 항의하실지 모른다. 맞다. 피노키오님은 '동성혼을 반대한 적'이 절대 없었다. 그런데 동성혼에 대한 이런저런 제약을 제시함으로서 실제적으로는 동성혼 자체를 인정했을지언정 동성애 차별이라는 인식을 떨쳐버리지 못하였기 때문에 논지의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반발을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맥락 속에 이름없는전사님이 아모르파티님에게 '동성애 차별과 법적 사항을 자꾸 섞는다'라고 추궁 당한 것이다. 


아마 어쩌면.............. 나에게 '정신 나간 주장' 등 험한 비난을 꿋꿋하게 참아낸, 비록 여전히 정신 나간 주장이며 '(개신교 이데올로기에)세뇌를 당해도 참 드럽게 세뇌 당했다'....라는 내 비난을 결코 철회할 의사는 전혀 없지만 솔직하다는 측면에서만 보자면 흐강님이 가장 솔직했던 것이 아닐까?


어쩌면 우리 모두 마음 깊은 곳에서는 동성애 타부라는 의식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이성으로만' 흐강님을 비판했는지도 모른다. 최소한 나는 그런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동성애 혐오'라는 이중노출에 눈이 노출되어 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