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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 콘서트>의 “현대레알사전”의 외화 더빙 유머를 두고 말이 많다.
개그 콘서트 2013-06-02 현대레알사전
http://clip.kbs.co.kr/zzim/index.php?markid=2723460
“입과 말이 따로 노는 것”이라는 대사와 입 모양과 말 소리가 따로 노는 장면을 과장되게 재현한 것을 두고 성우들이 열 받아서 글을 쓴 것이 논란의 출발점이었던 것 같다.
성우 정재헌과 성우 구자형의 이야기를 살펴 보자. 그들은 <개그 콘서트>에서 외화 더빙을 왜곡했으며, 성우를 비하했다고 비판한다.
성우들은 한 편의 외화, 시리즈, 애니메이션 녹음을 위해 집에서 미리 수없는 반복을 통해 캐릭터의 표정, 연기를 분석하고 입길이까지 정확히 맞출 수 있도록 대본을 새로 어레인지하기도 합니다.
물론... 실수로 미묘한 입길이 차이가 나는 경우가 없지는 않습니다. 녹음 중 길이가 짧거나 넘치는 경우 다시 그 부분을 몇 번이고 다시 연기하곤 하는데, 연기에 몰입하다보면 성우와 연출자 모두가 그 미묘한 차이를 미처 못 보고 지나치는 경우도 있고, 그 씬의 연기가 정말 잘 나온 경우 0.5초 정도의 입길이는 더 큰 것을 위해 접어두고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
하지만 이번 현대레알사전에서 보여준 개그는 "사실 왜곡"에 불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랫동안 더빙과 성우를 사랑해오신 많은 분들이 분노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성우 정재헌입니다.
이건 그 일을 직접 하고 있는 관련자로서 정말 이해가 되지 안는 부분이다.
전문적으로 이런 일을 “외국 영화 더빙-외화더빙”이라고 하는데,
“외화 더빙”을 전문으로 일 하는 사람에 대한 직업적인 모욕일 수 밖에 없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관련 작업을 하는 번역작가-연출자-연기자(성우)-엔지니어들이
우선 가치로 삼는 것 중의 제일 기본적인 것이 바로 “입 길이”이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작가는 입길이에 해당하는 글자의 수를 맞추려고 하고
연출자는 “안 맞아!”를 외치며 NG를 외친다.
......
이건 정말 디테일한 경우고 개그만 박영진이 희화한 것만큼까지의 차이는 있을 수 없다
(TV에서 외국 영화란? 개그 콘서트의 '현대 레알 사전-TV에서 외국 영화란'의 오류! (성우 구자형)
http://blog.naver.com/uomo99/40190314394)
번역과 번역 비판을 어느 정도 해 왔던 사람으로서 나는 성우들의 이런 분노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첫째, 박영진의 재현 장면을 보면 보통 외화 더빙에서 볼 수 있는 것보다 입 모양과 말 소리가 훨씬 더 어긋난다. 이것은 두고 왜곡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캐리커처는 널리 쓰이는 개그의 한 기법이며 캐리커처의 핵심은 과장이다. 얼굴 캐리커처 그림을 실제 얼굴 사진과 비교해 보면 엄청나게 많이 다르다.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캐리커처 그림의 모델이 자기 얼굴을 왜곡함으로써 자신을 비하했다며 화가를 비판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웃기지 않은가?
둘째, 외국어와 한국어는 음소, 단어, 문장 구조 등이 모두 다르다. 따라서 입 모양과 말 소리를 완벽하게 일치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가 그 두 가지가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는 것이 성우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단 말인가? 아무리 뛰어난 번역가가 번역하고, 아무리 뛰어난 성우가 더빙을 해도 그 둘은 일치하지 않으며 때로는 그런 불일치 때문에 웃길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불일치를 과장하면 더 웃긴다.
성우나 번역가가 왜 이런 것을 같이 웃어넘길 수 없는지 모르겠다. 완벽한 번역도 완벽한 더빙도 불가능하다.
셋째, 입길이 일치가 더빙의 최고의 가치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풍토도 우려스럽다. 번역이든 더빙이든 늘 타협을 해야 한다. 번역이나 더빙에는 추구해야 할 수 많은 가치들이 공존하는데 그 가치들이 서로 충돌할 때가 많다. 몇 가지만 이야기해 보겠다.
1. 정보를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 즉 번역이 엄밀해야 한다.
2. 한국말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3. 입길이, 입 모양 등을 맞추어야 한다.
4. 유머가 있다면 그것을 살려야 한다.
5. 화자의 말투(어려운 말인지 쉬운 말인지, 사투리인지 표준어인지, 윗사람에게 하는 말인지 아랫사람에게 하는 말인지 등)를 살려야 한다.
이 중에 어떤 가치가 절대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뛰어난 번역가와 성우가 작업하고 있는데도 입길이를 맞추면서,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하면서, 자연스러운 한국어 문장을 만들기가 불가능하다면 때로는 정확한 정보 전달이나 자연스러운 한국어 문장을 위해 입길이 맞추기를 어느 정도 포기할 수 있다. 이것이 나쁜 더빙인가? 입길이를 맞추기 위해서 항상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나?
번역이든 더빙이든 바로 보이는 결과(입길이 맞추기, 자연스러운 한국어)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원문이나 원 대사를 보지 않는 사람이 보기에는 좋은 번역 또는 좋은 더빙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정보 전달, 말투 전달 등을 많이 포기한다면 좋은 번역 또는 좋은 더빙이라고 단정하기 힘들다. 금방 들통 나지 않는 것들도 신경 써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장인 정신이다.
한국에는 입길이 맞추기 전문가들은 많아 보이지만 원 대사의 정보와 말투 등을 제대로 번역할 줄 아는 번역가는 드물어 보인다. 입길이가 안 맞으면 누구나 알아볼 수 있지만 번역을 엉터리로 해도 원 대사를 찾아보는 사람이 아니면 문제를 알아채기 힘들다. 그래서 방송사에서는 성우에는 신경을 많이 쓰지만 번역가에게는 신경을 별로 쓰지 않는 것 같다.
이덕하
2013-06-05
오바짓 좀 작작하라고 해 주고 싶어요.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달려드는 격이니...
강용석 술자리 발언에 아나운서들이 발끈한 건 그나마 좀 이해가 가는 편이었는데 이건 뭐... ㅎㅎ
그나저나 그때를 생각하면 강용석 좀 불쌍 ㅋㅋ
스튜어디스와의 성관계 장면을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 올린 사람을 상대로 명예 훼손 소송을 제기한 항공 승무원 단체의 사례도 언뜻 연상되네요. 자신들 직업군의 이미지를 훼손했대나 뭐래나... 그런데 1심 법원은 무죄 판결을 내렸죠. ㅎㅎ
이런 거 보면 우리네 특정 감수성이 약간 경직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물론 제가 그 직종 - 더빙 성우들 - 의 애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날 가지고 노는 것 같으면 가만 안 두겠다는 것 같은 느낌인데... 물론 노력하는 거야 알겠지만 그 결과물이 일순 웃기는 것도 사실이고, 그 당사자들이 비극적인 삶을 산다거나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사람들이라서 매사를 조심해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게다가 비웃음이라기보다는 그 현상 자체의 웃김을 이야기하는 것에 가까운데... 이런 식이라면 특정 대상을 연상할 수 있는 대부분의 개그가 폐기되어야 할 겁니다.
번역 쪽에 관해서는, 영화 자막 번역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보통 영화 자막 보면, 가장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의 기준에 맞추려고들 하죠(특히 이미도). 문제는 원본의 대사는 그런 의도가 없을진대 이를 마음대로 바꾸는 것은 왜곡의 문제가 있으며(마치 고전의 축약본 버전을 강요하는 것과 비슷하죠), 또한 번역자의 그런 의도를 십분 이해하더라도 너무 관객의 수준을 낮추어 본다는 것입니다. 제가 영어를 정말 심각하게 못하는 축인데, 제가 이해할 수 있는 영어 개그들조차 자막에서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걸 보고 문제가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대충 관객이 단번에 알아먹을 수 있는 표현이 아니겠다 싶으면 바로 뭉개버립니다.
'등짝을 보자'같은 희대의 의역이 아니라면, 그냥 성실하게 번역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도 그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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