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앞서 교과서포럼의 한국근현대사에 나온 민비의 호칭 문제에 대해 발제 글을 올렸습니다만, 토론 과정에 제가 올린 댓글을 첨가하여 발제 글을 보완하여 다시 올립니다.
* 이 글도 6/7 일부를 보완, 첨가해 다시 올립니다. 주 내용은 그대로인데 지금 논란이 되는 교학사의 교과서와 교과서포럼이 2008년 출판한 <한국 근현대사>이 혼선이 있어 바로 잡고, 일부 내용을 첨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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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학회 회원 2명이 포함된 6명의 학자가 저술하고 교학사에서 출판한 <한국 근현대사>가 교과부의 검정을 거쳐 교과서로 나올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자칭 좌파(진보) 진영에서 이 교과서가 역사를 왜곡한다고 반발이 많은 것 같습니다.

좀 의아한 것은 교학사의 <한국 근현대사>가 공개도 되지 않았는데도 자칭 진보진영에서 비판한다는 것입니다. 공개되지 않은 교과서를 미리 선입견과 편견으로 예단하여 교학사의 <한국근현대사>를 공격한 것은 자기들만이 선이고 정의라는 독선이 얼마나 자칭 진보진영에 만연해 있는지 보여주는 방증이죠. 상대는 적이고 악일 것이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부정하고, 그리고 상대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그야말로 반민주적, 파쇼적 형태를 보이고 있죠. 사실관계를 왜곡했다면 당연히 비판받아야 하겠지만, 역사적 사실의 해석은 논쟁의 대상일 뿐,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좌파적 관점의 민중사적 시각도, 보수적 관점의 역사 해석도 모두 인정되어야 한다고 보며,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각자의 몫으로 돌려야 하겠지요.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696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6/06/2013060600231.html?related_all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6/06/2013060600225.html

아직 교학사의 <한국 근현대사>의 내용이 공개가 되지 않아 역사 왜곡이 어느 정도 심한지, 아니면 사실대로 기술했는지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만, 일부의 내용을 자칭 진보진영에서 문제를 삼는 것이 있어 여기 소개합니다. 이들이 지적하는 내용은 새로 나올 교학사의 <한국사의 근현대사 부분>이 아니라 교과서포럼이 집필하고 기파랑이 출판한 대안교과서인 <한국 근현대사>에 나오는 내용 같습니다. 이들은 새로 나올 교학사의 <한국사>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기파랑(교과서포럼)의 <한국근현대사>에 나오는 아래의 이 내용이 문제가 되는지 한번 살펴보지요.


1. 민비를 “명성황후”라 표기하지 않고 “민왕후”로 표기한 것

2. 김구의 활동을 “한인애국단의 항일테러활동”이라 표기한 것

3. “김구는 그 이후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표현


* 교학사의 <한국사>( 실제 내용은 교과서포럼의 <한국 근현대사>)를 비판한 글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2&articleId=378692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2385030&RIGHT_DEBATE=R9


* 윗 글을 반박한 글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2&articleId=378804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2&articleId=378716


위 3가지 건에 대해 저는 솔직히 교과서포럼의 <한국 근현대사>가 문제가 있다고 별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조금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면 “김구는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표현보다는 “김구는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했다“로 표현하는 것이 더 사실관계에 적합하지 않나 생각하는 정도입니다. 사실 김구도 객관적 사실에 비추어 많이 미화된 측면이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시간이 나면 별도의 글을 올려 보도록 하죠. 우리가 배운 ”국사”가 일본의 후소샤 교과서만큼이나 왜곡이 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실증주의 사관에 입각해 제가 배운 “국사”에 대해 검증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독도“에 관한 우리나라의 역사 왜곡을 지적했습니다만, 역사를 자국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나 일본은 그 도를 지나쳐 국수적 관점의 해석(왜곡)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민비는 “민왕후”로 기술된 것으로도 황송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봅니다. “조선의 국모”니 하는 소리를 들으면 저는 두드러기가 납니다. 일본 낭인들이 암살하려 들어갔을 때 자기 삶을 도모코자 나인으로 변장하여 도망치려 했죠. 붙잡혀도 자신이 민비임을 부정하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다 살해당했는데, 드라마는 민비가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며 당당히 맞서다 죽은 것으로 극화되었지요. 당시 민비의 역할을 이미연이 했는데 국민들은 이 장면이 머리에 각인되어 민비를 우호적으로, 나아가 일본에 의해 비참하게 죽은 우리의 국모라고 인식해 버립니다.

민비가 죽은 것은 1895년이고, 대한제국이 선포된 해는 1897년이니 민비는 황후 시절이 없었습니다. 민비를 객관적으로 칭한다면 “민왕후”가 타당한 것 같고, 그(녀)의 실정으로 본다면 “민비”도 과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옥정(장희빈)과 같이 그냥 이름인 민자영으로 부른다고 문제 삼을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 국민들이 가장 잘못 알고 있는 역사적 인물 중 하나가 저는 “민비”라고 생각합니다. 드라마나 뮤지컬로 너무 미화되어 알려져 있지요. 일본 낭인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말이죠. 이번 기회에 반드시 재조명되어야 할 인물입니다.

박영효, 유길준 등의 개화파와 대원군이 민비를 암살하려 했고, 대원군은 일본에게 암살 도움을 요청했으며, 일본 낭인들을 안내한 사람들도 모두 조선인이었죠. 민비가 살해당했을 당시에 민중들은 아무도 슬퍼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일본낭인들에게 살해되었다는 것이 민비에게는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만약 유길준이나 박영효, 대원군, 조선인에게 암살당했다면 그녀의 칭호는 민비도 과분했을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아마 학정의 대명사인 “조병갑” 수준으로 역사가 기록했을 것입니다. 단지 일본인에게 살해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녀의 모든 과오가 덮여지고 오히려 <조선의 국모>로 미화되는 이런 역사의 왜곡은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황현의 <매천야록>을 보면 민비의 악정이나 악행이 적나라하게 나오죠.

민비와 그 외척에 의한 매관매직으로 학정이 도를 넘어섰고, 이에 분노해 일어난 동학농민항쟁을 민비가 청군을 끌어들여 제압하였지요. 동학농민군의 전봉준은 대원군의 식객으로 서로 소통하던 사이였고, 아시다시피 민비와 대원군은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 극한 대립관계였습니다.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민비가 아녀자로 변신하여 여주(?)로 피신할 때 어느 마을의 부녀자들이 민비를 불쌍히 여겨 "민비라는 년 때문에 색시가 고생이 많다"고 하자 그 때는 분노했지만 자기 신분을 밝히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다시 권력을 잡자 그 말을 한 아녀자를 잡아 들이라고 명령하죠. 그 때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 아녀자를 알려주지 않자 민비는 그 마을 사람들 전체를 다 죽이게 합니다. 조선의 국모다운 참 아름다운 이야기이지요?  이런 인물을 명성황후라고 굳이 불러주어 격상시켜 줄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자는 민비는 추존된 칭호인 명성황후로 교과서에는 꼭 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러분들은 민비의 칭호로 무엇이 적당하다고 보십니까? 민자영, 왕후 민씨, 민비, 민왕후, 명성왕후, 명성황후, 이 중에 그녀의 실체에 가장 적합한 칭호가 무엇이라 보시는지요?

저는 민비가 적당하다고 보지만, 민왕후까지는 이해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명성황후는 그녀의 실체에 적합한 칭호는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명성황후라고 부른다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 배경이 민비를 옹호하거나 격상하는 것이라면 단호히 반대합니다.

민씨를 민비나 민왕후라고 부르는 것이 왜 문제라고 보시는지요? 인현왕후(숙종의 비, 장희빈에 의해 사가로 쫓겨간 인물)도 민왕후라고도 불렀습니다.

장희빈(장옥정)을 왜 우리가 희빈 장씨나 장희빈으로 부를까요? 장희빈도 왕후의 시절이 있었으니 장왕후라 불러도 되겠지만, 우리는 강등된 칭호인 장희빈으로 부르지요. 우리는 장희빈으로 부르는 것에 익숙해 있고 또 장옥정은 장희빈으로 불려지는 것이 그녀의 일생을 잘 설명하는 것으로 보여지지 않나요?

민씨(민자영)는 민비, 민왕후로 불리다가 1897년 대한제국이 선포되고 명성황후로 추존되지요.

명성황후로 추존한 세력이 누구일까요? 고종과 민비의 외척을 중심으로 한 당시의 정권을 잡은 세력이겠죠. 대원군을 비롯한 민비 반대파나 박영효, 유길준, 서재필, 김홍집 등의 개화파야 당연히 아닐테고, 그리고 당시의 민중들이 이런 추존에 동의했을까요?

당시 수구, 왕조 유지,  반민중적 부패 세력이 정권을 되찾자 민비를 명성황후로 추존한 것이죠. 이런 추존 배경을 애써 무시하고 추존된 칭호이니 무조건 교과서에 공식적인 칭호만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칭 진보진영의 말을 저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듭니다. 조선조 인물 중에는 사후 추존된 칭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렇게 잘 부르지 않고, 또 교과서에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 인물들이 더러 있습니다. (사례 : 사도세자는 사후에 장조로 추존되었지만 우리는 사도세자라 부르고 있고, 또 이 호칭이 사도세자를 잘 나타내고 있다고 보지요) 이런 사람들에게 추존된 호칭으로 쓰지 않은 교과서는 잘못된 것인가요? 왜 이들은 추존된 호칭을 쓰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지만, 민비만 명성황후로 써야 하는 이유를 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명성황후로 꼭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칭 진보진영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고종은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공식적으로 “광무황제”로 등극(?)을 하죠. 그런데 우리는 왜 “광무황제”라 하지 않고 “고종”이라 부르며 교과서에도 “고종”이라고 나오죠? 민비를 “명성황후”라고 꼭 교과서에 써야 한다면 고종도 당연히 “광무황제”라고 교과서에 기술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합니다. 더구나 고종은 생존시에 부른 칭호가 ‘광무황제“이고 ”명성황후“는 사후에 대한제국이 선포되자 추존된 칭호인 것을 보면 고종을 ’광무황제”라고 써야 할 이유는 “명성황후”보다 훨씬 높은데 말이죠.

대원왕(고종의 아버지)은 대원군이나 이하응으로 부르면서 민비는 왜 꼭 명성황후라 칭해야 합니까? 대원왕을 대원군이라 하든, 이하응이라 하든 무엇이 문제인가요? 왜 대원군은 대원왕이라고 교과서에 꼭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지요? 대원군은 왕이 아니라서요? 성종의 어머니를 인수대비라고 하면 안되고 소혜왕후라고 꼭 불러야 합니까? 익종의 아내를 조대비라 하든, 신정왕후라 하든 문제가 되나요? 민비가 명성황후로 추존될 때  조대비도 신정익황후라 추존되었으니 조대비라 부르면 안되고 신정익황후라 불러야 합니까?

인수대비, 조대비, 민비가 그(녀)들에게 어울리는 이름 아닌가요?

꼭 민비를 명성황후라고 불러야 하는 이유를 저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호칭은 그 사람을 잘 나타내는 것으로 하는 것이 좋은 것이죠. 그리고 역사적 인물은 그 사람이 생존시의 역할이나 행적을 기술함으로 생존시의 호칭을 쓰는 것이 역사 이해에 더 도움이 됩니다.

저는 민비에 대해 우호적인 진보진영을 보면 그들의 역사인식과 진보관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과서포럼이 민비나 민자영이라 칭하지 않고 민왕후라 칭했다고 시비를 건다면 진보진영의 정체성과 일관성을 인정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수구의 표상이며 반민중적 부패의 인물인 민비를 명성황후라 칭하지 않았다고 시비 거는 진보진영을 보면 거저 황당할 뿐입니다.

또 민왕후는 어색하니 민비나 명성왕후라 부르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낸다면 얼마든지 이해하고 수용하겠습니다만, 민왕후는 민비를 격하하는 것이니 명성황후로 민비를 격상시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을 보면 도대체 이들의 정체성(진보, 민중적 시각)이 무엇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http://orumi.egloos.com/3672282


이왕 교학사의 <한국 근현대사>가 나온다 하니 이번 기회에 한국 근현대사의 다른 건들에 대해서도 양 진영이 치열하게 논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참고사항>

* 민비의 악행

http://blog.naver.com/iece12345?Redirect=Log&logNo=70117506985


<사족>

* <뮤지컬 명성왕후>가 우리나라의 대표 뮤지컬이 되고,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와 런던 웨스트엔드에 진출하고 우리나라 뮤지컬로는 관객 100만명을 동원한 대형 뮤지컬이라는 것에 착찹함을 느낍니다. 역사는 역사이고 예술(뮤지컬)은 예술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민비가 미화된 뮤지컬 명성왕후를 100만 이상이 보고, 외국에서는 한국의 대표적 뮤지컬로 인식하고 있으니 예술일 뿐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역사 왜곡의 피해가 너무 크지 않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