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이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주식시장에 대한 궁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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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을 본격적으로 하는 사람들 중에 장기적으로 돈을 많이 따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도박에 빠지면 거의 모두가 전재산을 탕진한다.

 

도박을 해서 돈을 따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세 가지 길이 있다.

 

1. 지독하게 운이 좋아서 잭팟을 터뜨린 다음에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으면 된다.

 

2. 머리가 아주 좋고 자제력이 아주 강한 사람이 포커를 몇 년 동안 열심히 배워서 라스베이거스에서 포커를 하면 된다. 전문가들이 첨단 장비로 감시하기 때문에 사기 도박을 하기가 아주 힘들다. 포커는 장기적으로 실력에 의해 승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실력이 뛰어난 사람은 돈을 장기적으로 딸 수 있다. 물론 돈을 따려면 자기보다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판에 끼어서 해야 한다.

 

3. 사설 도박장에서 사기 도박을 하면 된다. 경찰에 잡힐 때까지는 돈을 번다.

 

이 세 가지 길은 운이 엄청나게 좋거나, 머리와 자제력이 뛰어나거나, 불법 행위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나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도박에 빠져 산다. 심지어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도박 자체가 불법인 경우가 많음에도 도박 중독자들이 많다. 도박 중독은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며 보편적인 인간 본성의 어떤 측면들과 관련 있어 보인다.

 

 

 

주식 시장은 도박장과 비슷한 면이 많다. 주식 시장에서 장기적으로 큰 돈을 따는 길도 도박장과 어느 정도 비슷해 보인다.

 

1. 지독하게 운이 좋아서 잭팟을 터뜨린 다음에 다시는 주식을 하지 않으면 된다.

 

2. 머리가 아주 좋고 자제력이 아주 강한 사람이 주식을 몇 년 동안 열심히 배워서 주식을 하면 통할지도 모른다. 다만 포커의 경우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자신보다 실력이 어느 정도 이상 떨어지는 사람들과 계속 붙으면 (도박장에서 판돈의 일부를 가져감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돈을 딸 수 있는 반면 주식의 경우 경기 변동이 심할 때에는 모든 합법적 지식이 쓸모가 없을 때도 많다.

 

3. 주가 조작을 하거나 내부 정보를 이용하면 된다. 경찰에 잡힐 때까지는 돈을 벌 수 있다.

 

도박은 영합(zero-sum) 게임이다. 누군가 돈을 딴다면 누군가는 잃게 마련이다. 주식 시장도 어느 정도는 영합 게임이다. 주식 시장에서 누군가 돈을 딴다면 그 돈이 주식 시장에서 돈을 잃은 누군가에서 나올 때가 많다. 전반적으로 주식이 계속 오를 때에는 다른 곳에서 돈이 계속 유입되기 때문에 주식을 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돈을 벌기도 하지만 주식이 전반적으로 폭락하기도 한다.

 

 

 

주식을 하면 세 가지 방식으로 이득을 얻을 수 있다.

 

1. 배당금을 챙길 수 있다.

 

2. 대주주가 되면 회사를 통제할 수 있다.

 

3. 차액을 챙길 수 있다. 물론 가격이 떨어지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잃는다.

 

처음에는 1 2가 주된 동기가 되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3도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이제 많은 주식 투자자한테 3이 거의 유일한 동기인 것 같다. 그러면서 주식 시장은 점점 더 도박장과 비슷해졌다. 사람들이 차액을 챙기기 위해 사고 팔기를 반복하다 보니 주식 시장은 더욱 더 출렁이게 되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이 주식 시장에 몰리는 것일까? 평균 배당금만 고려해 보면 주식은 그리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 아닌 것 같다.

 

도박장에서 도박을 하는 사람들의 평균 수익률은 0보다도 못하다. 평균적으로 도박장에서 사람들은 돈을 잃는다. 그럼에도 도박이 인기가 있는 이유는 아마 단기적으로는 상당히 큰 돈을 딸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주식 시장이 처음 생겼을 때에도 소수는 큰 돈을 딸 수 있었다. 회사에서 대박을 터뜨리면 평균 배당금보다 훨씬 큰 돈을 배당금으로 받을 수 있었다. 당시에는 주로 배당금에 의해 주식 가격이 결정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큰 배당금을 얻을 수 있게 되면 주식 가격이 대폭 상승했을 것이다. 이 때 주식을 팔면 큰 차익을 남길 수 있다. 대주주의 경우에는 이런 것들을 뛰어넘는 이득도 얻을 수 있다. 대박 회사의 주인이 되는 것이니까.

 

복권의 경우 평균 수익률만 따지면 돈을 잃을 것이 뻔히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복권을 산다. 대박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주식이나 부동산도 복권에 버금가는 대박으로 이어질 때가 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복권을 사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면 주식이나 부동산에 돈이 몰리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어떤 이유 때문이든 주식 시장에 돈이 계속 몰리게 되면 주식을 하는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이득을 보게 된다. 그러면 주식이 더 매력적이게 되며 더 많은 돈이 주식에 몰리게 된다. 이것은 번창하는 시기의 피라미드(다단계 판매)와 비슷하다. 양의 되먹임 고리(positive feedback)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결국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면 평형을 찾게 된다. 즉 주식 시장으로 더 이상 돈이 꾸준히 몰리지 않는다. 그러면 영합 게임에 더 근접하게 된다. 결국 개미 투자자들은 돈을 따는 경우보다 잃는 경우가 많아진다. 왜냐하면 불법적으로 돈을 따는 사람들이 있으며, 도박의 특성상 규칙을 잘 따르더라도 돈이 많은 사람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대다수가 돈을 잃는다는 면에서도 이제는 도박장과 비슷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개미 투자자들은 여전히 주식을 한다. 도박장에 여전히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면 이것도 그리 이상한 현상이 아니다.

 

나는 경제 전문가가 아니고 주식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이 글에서 제시한 내용이 주식 시장의 작동을 몽땅 설명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런 요인들이 적어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복권, 도박, 개미 투자자 현상은 고전적 합리성과 충돌한다. 평균적으로 볼 때 복권을 사거나, 도박을 하거나, 개미 투자자로서 합법적으로 주식을 하면 돈을 잃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복권을 사고 도박을 하고 주식을 한다.

 

주류 경제학은 고전적 합리성 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사람들이 이득을 얻기 위해 합리적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가정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가정이 쓸모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많은 경우 고전적 합리성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고전적 합리성은 인간 행동에 대한 거친 근사(wild approximation)에 불과하다.

 

인간이 고전적 합리성에 부합하지 않을 때 진화 심리학적 접근법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진화 심리학에서는 생태적 합리성 개념을 중시한다. 고전적 합리성에서는 진리가 기준인 반면 생태적 합리성에서는 번식이 기준이다. 그것도 현재의 번식이 아니라 과거의 번식이다. 인간의 심리 기제는 그것이 진화했던 과거 환경에서 번식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현재의 상태가 되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과 도박장의 전체적인 상황을 합리적으로 잘 고려하여 도박을 할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무턱대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도박과 관련된 심리 기제들은 과거 환경에서 번식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진화했다. 그리고 사냥-채집 사회에는 대규모 도박장이 없었다. 행운을 만났을 때 크게 기뻐하도록 만드는 심리 기제는 도박과는 상관 없이 진화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제들이 도박장이라는 환경을 만나면 고전적 합리성과는 거리가 먼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인간은 때로는 고전적 합리성에 비추어 볼 때 상당히 비합리적이다. 하지만 그 비합리성에도 패턴이 있다. 진화 심리학에서는 그 패턴을 찾으려고 한다. 이런 패턴을 제대로 규명한다면 고전적 합리성 가정에만 의존하는 주류 경제학보다 더 예측력이 강한 경제학을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고전적 합리성의 예측과는 다르게 행동할 때가 꽤 있다. 인간은 손해를 보더라도 도덕적으로 행동할 때가 있고, 손해를 보더라도 부도덕한 사람을 처벌하려고 할 때가 있고, 손해 볼 것이 거의 뻔해도 도박에 빠지기 쉽고, 투표를 해 봤자 당락에 사실상 영향을 끼치지 못함에도 투표를 한다. 인간을 이렇게 만드는 보편적인 심리 기제를 규명해야 더 나은 경제학과 정치학을 정립할 수 있다. 그리고 생태적 합리성을 염두에 둘 때 그런 심리 기제들의 진화를 더 잘 규명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우아함을 추구한다. 고전적 합리성 개념은 상당히 우아하다. 하지만 인간 본성은 그리 우아하지 않다. 생태적 합리성 개념이 우아하더라도 인간 본성이 결정되는 과정에는 온갖 진화론적 우연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진화 생물학 이론들이 우아하다고 해서 진화의 산물인 인간의 심리 기제가 우아한 것은 아니다. 인간 본성이 우아하지 않다면 인간 본성에 대한 정확한 규명을 바탕으로 한 경제학도 현재의 경제학보다는 더 지저분해질 것이다. 이것이 물리학을 닮고 싶어하는 꿈 큰 경제학도에게는 슬픈 소식이겠지만 생물을 다루는 학문의 숙명으로 보인다.

 

주류 경제학은 고전적 합리성을 전제한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우아하다. 하지만 예측력이 떨어진다.

 

진화 심리학은 생태적 합리성을 전제한다. 그리고 생태적 합리성이 인간의 진화 역사와 만나서 어떻게 인간 본성을 만들어냈는지 규명하려고 한다. 인간 본성은 생태적 합리성과 관련된 진화 생물학 이론만큼 우아하지 않다.

 

진화 심리학자가 경제학도가 된다면 고전적 합리성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기반을 두고 경제학 이론들을 펼칠 것이다. 이런 이론이 주류 경제학만큼 우아할 수는 없다. 아주 지저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예측력은 더 강력해질 것이다. 지저분하면서도 강력한 경제학을 위해서는 더 난해한 수식들과 모형(model)들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경제학은 더더욱 어려운 학문이 될 것이다. 이것은 물리학에 쓰이는 수학이 어려워서 경제학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재앙이 될 것이다.

 

 

 

이덕하

2013-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