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생학에 대한 역사는 이덕하님이 운영하시는 다음 카페에 어느 유저 분이 올려준 파일에 기술되어 있다. *1)


그런데 그 파일은 '과학적인 측면'에서의 우생학에 대한 역사는 잘 기술되어 있을지 몰라도 왜 우생학이 발달(?)하게 되었는지 '사회적인 배경'에 대한 설명은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히틀러가 왜 처칠에게 우생학을 같이 연구하자고 제안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해결해 줄 단초는 없다는 것이다.



히틀러가 처칠에게 우생학을 같이 연구하자고 제안한 사회적 배경은 다른 곳을 참조하면 이해할 수 있는데 *2) 그 중 일부를 발췌하면...

우생학의 역사와 비판 영국의 우생학 - 영국은 산업혁명 이후1870년대로 접어들면서 상대적으로 쇠퇴와 위기감을 경험하게 되었다. -새롭게 등장한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의 도전은 영국의 위상을 흔들었고, 특히 1871년 독일의 통일은 세계 경제에서의 세력 균형을 무너뜨리고 그 동안 세계시장에서 영국이 누리던 독점적인 지위를 위협. -이에 따라 영국은 새로운 시대의 출발에 발맞춰 뭔가 새로운 것을 모색해야 할 입장에 처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이 인류 역사 상 최초로 처칠이 영국 내각 내무부 장관이었을 때 장애인 십만명에게 불임시술을 하는 만행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 이렇게 경험, 그리고 연구 관련해서 영국이 앞서갔기 때문에 히틀러는 처칠에게 우생학을 같이 연구하자고 제안을 한 것이다.

20세기 초 우생학 사상이 가장 광범위하게 맹위를 펼쳤던 나라는 영국이었다. 당시 일련의 사건들(1890년 대중 교육 수준에 대한 통계적 연구인 학교 감사 보고서에서 ‘부적격자’ 학생수가 매우 높았음, 1899년 맨체스터 보어전쟁 난민 수용소에서 60% 사람들이 부적자로 판정, 1901년 남아프리카에서 영국군의 패배 등)은 인종의 퇴화에 대한 두려움을 증폭시켰다. 이는 19세기 말 사회보장 대책들이 문명의 발전에 기여하지 못한 채, 오히려 적응이 어려운 자들이 생존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견해에 힘을 실어주게 되었다.



처칠은 이런 히틀러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측면이었다고 생각한다. 음모설 중에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것은 히틀러가 아니라 영국과 미국의 증권가였다'라는 것이 있는데 아마도 처칠은 이후 발발할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산업혁명으로부터 시작된 전 지구적인 재고,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고도 충분히 재고떨이를 하지 못하여 여전히 인류의 시한폭탄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히틀러가 전쟁을 발발시키면 재고떨이를 확실히 하겠다는 정치적 판단에 기인한 것이라 생각한다.



역사에서 '만일'이라는 것을 가정하는 것만큼 허무한 것이 없다지만 만일, 처칠이 히틀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그 이후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유럽에서 자행된, 홀로코스트만큼이나 잔인했던 집시족 청소, 홀로코스트가 독일에서'만' 발생했다면 집시족 청소는 범유럽에서 자행되었는 것이 다른데 만일 히틀러와 처칠이 손을 잡았다면 홀로코스트와 집시족 인종 청소는 어쩌면 없었거나 또는 더 극심하게 자행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생학에 의거해 십만명 장애인에게 알뜰하게 불임수술을 자행한 처칠의 잔인함과 히틀러의 광기가 합쳐져 영국 국민들 그리고 특히 독일 국민들은 대폭적으로 감소되었을 것이며 그런 결과는 독일을 안정시켜 제2차 세계 대전은 일어나지 않았고 먼 훗날 대처리즘이라는 폭력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조선말 개화파들에 의하여 우생학이 주장되었다는 것이다. 만일, 인종주의 국가인 일본이 조선을 점령하지 않았다면? 아마 우리 역사는 '일제강점'이라는 쓰라린 기억의 역사 대신에 우생학이 맹위를 떨쳐진 수치스러운 역사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한 때.... 호남차별의 발생 원인이 이렇게 구한말 개화파들에 의하여 주창된 우생학에서 발단된 것은 아닐까?라고 역사추적을 해보았는데 결과는 별무 신통이었지만 현대에 이르러 한국 진보진영에서 호남을 향하여 '계급투표를 하라'라는, 영남에 대놓고는 찍소리도 못하면서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구한말 개화파들의 주장이 유전자에 각인되어 내려온 탓은 아닐까?



한 인종주의하는 일본이 조선에 대대적인 우생학 정책을 하지 않은 이유는 당시 산업이라는 것이 인구수와 소출수는 비례한다는, 특히 농격산업이라는 낙후된 구조 때문일 것이다. 단지,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이나 일본의 731 부대에서의 생체실험들은 일본에서의 우생학이 얼마나 맹위를 떨쳤는지를 짐작케 하는 증거들이다.




결국, 우생학의 발달은 자본주의의 온전함을 위해 연구된 것인데 이런 '자본주의의 싸가지없음'은 21세기에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 같다. 그 이유는 미국에서 발각된 보고서 중 하나의 제목이 바로 다음과 같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온전케 하려면 인류 역사의 30%는 없어져야"



미국의 빈민층이 미국 공화당 지지의 최후의 보루라고 했던가? 자본주의를 온전케 해야 인류 역사의 30%는 없어져야 한다는 주장의 30%에 해당할 것이 유력한 층에서 자본주의를 열렬히 지지하는 것은 인류의 또 다른 아이러니이다.



하긴, 인류의 기원 자체가 아이러니라고 주장한 호사가도 있었으니 인류는 탄생부터 생존 과정이 아이러니의 점철이고... 어.쩌.면... 인류 멸절 역시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이룩될지'도 모른다.



*1) 이덕하님이 운영하시는 다음 카페의 우생학 역사는 여기를 클릭


*2) 우생학이 발달하게 된 사회적 배경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