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 '봄날은간다'님과 '디즈레일리'님이 짧게 '식민지근대화론'을 언급하셨는데요..... 그래서 몇 자 첨언합니다.


1. 우선, 근대화에 대한 연구는 미국 학자 '조지 스코트'에 의하여 처음 시작되었죠. 이 조지 스코트의 근대화 이론은 다분히 이데올로기적 해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냉전 시대에 미국 체제의 우월성을 설파해야 했으니까요. 뭐, 이데올로기적 해석이라도 각 나라의 근대화가 이 이론에 다수 맞아 떨어지면 그런대로 넘어갔겠죠. 그런데 이 이론으로 해석할 수 없는게 너~~~~~~~~무 많은거예요. 그래서 그 대체로 나온 것이 바로 '식민지 근대화'라는 이론이죠.


2. 학자들은 근대화(modernization)을 가치중립적 용어라고 평가합니다. 단지 '근대화'라는 단어가 주는 '좋은 평가'가 있다고는 첨언 설명을 하죠. 그래서 근대화라는 단어는 그 전의 개발(development)이라는 용어를 대체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개발이라는 용어는 가치중립적 용어라고 보기에는 무리이고 따라서 '개발'이라는 단어로 이론을 전개하다가는 스스로 이데올로기에 함몰하는 우를 범할 수 있는 것을 경계하자는 차원이죠.


3. 그런데 제 판단에 근대화라는 단어가 과연 가치중립적인지는 의문이라는 것이죠. 우선, 근대화라는 용어의 정리부터 논쟁의 대상이라는 것이죠. 근대화라는 용어가 과연 가치중립적인지 회의를 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나라에서 진보 진영에서 해마다 욹궈먹는(?) '각 나라의 행복지수'입니다.


방글라데시..... 보르네오 등, 우리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낙후된 나라들이 연도별로 '국가별 행복지수 1위'에 오른 나라이거든요? 그렇다면 이런 나라의 국민들이 '뭘 몰라서 마냥 행복해 하는 것'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행복에 대한 기준'이 각 나라별로, 각 민족별로 그리고 각 개인별로 다르기 때문에 이런 '의외의 조사 결과'가 나오는겁니다.


마찬가지로 근대화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요? 각 나라별로 역사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데 과연 '근대화'라는 잣대를 가지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획일적인 잣대로 평가하는 것도 무리인데다가 그 판단 기준을 적용해도 각 나라별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너무 많아졌죠. 그래서 나온 것이 식민지 근대화론입니다.


4. 한국에서 식민지 근대화론 논쟁을 촉발시킨 사람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 서울대의 이영훈 교수가 아니라 카터 에커트라는 미국 사람입니다. 그가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창하게 된 이유를 '교수신문'에서 발췌합니다.

『제국의 후예-고창 김씨가와 한국 자본주의의 식민지 기원:1876~1945』  카터 J. 에커트 지음 | 주익종 옮김 | 푸른역사 | 2008 | 2만8천원

이책의 저자 카터 에커트는 1990년대 이래 한국 학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식민지 근대화 논쟁을 촉발시킨 장본인이자, 미국의 한국학 연구를 주도하는 중진 연구자이기도 하다. 저자는 하버드 대학원 시절 유럽 고대사와 중세사를 전공했지만, 1969년부터 8년 동안 평화봉사단으로 한국에서 활동하게 되면서 당시 ‘한강의 기적’이라 회자됐던 급격한 경제성장을 목도하게 됐고, 역사학의 타고난 감각으로 한국자본주의의 역사적 기원에 이끌리게 됐다. 저자는 1919년 고창 김씨가에 의해 설립된 경성방직(주)을 구체적인 연구대상으로 설정하고, 중역회의록, 주주총회록,  회계장부, 개인서신, 경영진 인터뷰 등 폭넓고 구체적인 경영사료에 기초한 치밀한 실증과 독창적인 논리로 경방의 성장과정을 재구성해 현대 한국 자본주의 발전의 ‘진실된 기원(true origins)’을 밝힐 수 있었다.


저자는 식민지화 이전 조선사회 내부의 자생적인 자본주의 발전이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의해 그 싹이 잘리고 뿌리가 뽑혔다는 당시 한국 학계 일반이 공유했던 ‘자본주의맹아론’을 단순한 학자들의 희망사항이자 ‘오렌지 밭에서 사과를 찾는’공염불에 불과하다고 했다. 또한, 같은 논지를 식민지기로 확장시켜, 경방을 비롯한 일제하의 조선인 기업이 일제의 온갖 억압에도 불구하고, 조선인 스스로의 자본과 기술만으로 성장했다는‘민족자본론’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반면, 저자는 당시 한국 학계의 통설과는 달리 사회경제적 변화의 동력은 조선사회 내부가 아닌 외부(일본)에서부터 왔으며, 일제의 조선 지배가 오히려 식민지기 조선의 자본주의적 변혁과 함께 사회 전반의 근대화를 촉진시켰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조선인 자본가는 경제발전에 대한 참여가 결코 배제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개발권력=조선총독부의 의도적인‘협력적 자본가 개발정책’에 의해 조선인 자본가의 성장이 촉진됐다는 한국적 근대의 식민지적 특질을 강조했다.

(참조는 여기를 클릭)


제가 몇 번 '한국 역사는 보수진영에 의하여 한번, 진보진영에 의하여 또 한번 왜곡되었기 때문에 토인비같은 학자가 열 명이 와도 한국의 역사를 바로잡기는 힘들 것'이라고 주장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여기서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은 한국의 역사 진영, 민족주의, 식민지 사관 학자 민중사관 학자 등등.... 난마와 같이 얽힌 학계와 관계없이 편의 상 붙인 것입니다.)


'자본주의맹아론'은 (발췌 본문에서는 설명이 생략되었지만) 특히 북한 학자들에 의하여 연구가 되었는데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결탁한 그러면서 민족주의 색채가 더욱 도두라지는 체제'라는 미국 학자의 '북한 체체론' 주장에 의하면 '민족주의 국가'인 북한이 자본주의맹아론을 '신봉하는 저의'는 뻔한 것이죠. 그들의 민족주의는 체제 유지용(물론, 민족주의 자체가 그런 성향을 보이기는 하지만)이니 말입니다.


남한 역시 다분히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민족자본론'을 주창했는데 이거 역시 '역사 개그 대본'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자본주의맹아론'이나 '민족자본론'이라는 '역사 개그 대본'이 써진 이유는 막말로 (참된)민족주의자들에게 '북한은 용서되도 일본은 절대 용서 안되'라는 이데올로기적 시각을 바탕을 역사를 기술했기 때문이죠.


5. 식민지 근대화론은 이후 여러 학자들에 의하여 연구되었는데 그 개요를 서울대 전상인 교수의 기고에서 발췌합니다.

끝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은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 있어서 일제시대와 1960년대 이후간의 역사적연속성을 강조한다. 예컨대 콜리는 일제시대가 세 가지 측면에서 1960년대 이후 한국의 고도경제성장을 위한 역사적 기원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첫째, 부패하고 무능했던 한국의 전통적 국가가 권위주의적이고 침투력 높은 정치적 제도로 탈바꿈함으로써, 한국사회를 통제하고 변형할 수 있는 자율성과 능력을 구가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국가와 지배계급간의 생산 혹은 발전지향적인 동맹관계가 형성되어 공업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끝으로 도시의 노동자와 농촌의 농민이 동시에 국가와 지배계급으로부터 효율적인 통제를 받게 되었다. 물론 해방 이후 15여 년의 공백이 있기는 하지만, 해방과 전쟁 등의 각종 “먼지가 가라앉고 난 이후” 1960년대는 일제가 파놓은 홈(groove)으로 되돌아갔고 그 전통은 지금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안병직 또한 경제발전론의 시각에서 볼 때 조선후기와 해방 이후가 바로 접속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한국의 고도 경제성장이 1960년대 이후의 일이 아니라 사실은 1910년대 이후의 일관된 현상이라고 본다. 20세기가 전세계적으로 이식(移植)자본주의의 시대라면, 한국은 비록 강제적이기는 했지만 일제시대에 개방체제로 전환했고 그에 따른 후발성의 이익을 톡톡히 경험했다는 것이다. 안병직에 따르면 20세기 중엽에 중진자본주의로 발돋움한 몇몇 동아시아 국가들의 공통적인 모태는 소농사회라는 특징이었다. 그리고 일제시대에 조선인들이 농민, 자본가, 그리고 노동자 등 자본주의 경제발전의 담당주체로 활발히 성장할 수 있었던 까닭은, 조선조 후기 소농사회에서 이미 그 기초적 자질이 갖추어졌고, 식민지 시대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자본주의에적합하도록 변용 됨으로써 가능했다는 것이다.

에커트 역시 박정희를 일제 식민지 시대의 “살아있는 유산”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커밍스 또한 탈식민지 이후 산업화를 위한 사회적 조건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은 “저발전”(underdevelopment)이 아니라 “과발전”(overdevelopment)의 경우라고 진단한다.30) 물론 이들이 이런 이유로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식민지 지배의 부정적 유산, 말하자면 정치적 독재라든가 사대주의, 민족모순의 심화 및 분단체제의 형성, 산업화 과정에 있어서 노동·농업부문의 배제 등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다. 그러나 일제시대가 한국의 제1차 산업혁명의 시기로서 1960년대 이후 제2차 산업혁명의 역사적 전신이었다는 사실은 현실적으로 부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전문 참조는 여기를 클릭)


6.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용어는 근대화론이라는 '가치중립적'이라는 단어에 '식민지'라는 단어, 특히 우리나라같이 '식민지 시대'를 체험한 역사를 가진 나라의 국민들에게는 '결코' 가치중립적인 단어가 될 수 없습니다.


아마, 그 이유 때문에 외국학자들에 의하여 제기된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하여는 '일반 국민들'이 거의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다가 이영훈과 안병직의 '식민지 근대화론'을 발표했을 때 마타도어 수준의 비난의 이유가 설명이 됩니다.


"같은 민족으로 이떻게 그럴 수 있느냐?"라는 '꼬진 의식의 발로'죠. 아닌 말로, 일제밥통에 밥을 해먹고 일제 가전기기들로 집을 도배하고 그리고 일제 야동과 만화를 거부감 없이 즐기는 주제들이 말이죠.



이런 꼬진 의식의 발로는 논외로 치더라도 과연 '식민지 근대화론'이 정당한가?에 대하여는 두가지 의문이 따라옵니다.


1) 근대화라는 것은 '국민(민족) 의식의 계몽'이라는 것도 당연히 포함될 터인데 식민지 하에서의 '의식의 계몽'이라는 것이 과연 근대화라는 용어에 부합되는 것이냐?

2) 근대화를 논할 때는 (아래 디즈레일리님이 설명하신) 망딸리떼에 대한 고려를 해야 하는데 '식민지 근대화론'에서는 너무 '물적토대'만을 고려했다.



7. 어쨌든, 논란에 관계없이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한 문제 제기는 그 본원적인 한계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연구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영훈의 식민지 근대화론에서 언급한 통계자료들이 진솔한가?입니다.


1) 한 일본 교수에 의하면  '1924년 이전의 통계는 신빙성이 없다'라고 했습니다.(이 부분은 제가 처음 이영훈의 식민지 근대화론을 비판할 때 인용했다가 두번째 논쟁에서 다시 인용하려고 일본 정부는 물론 관련 사이트를 샅샅이 찾았는데 없더군요.) 그런데 이영훈의 식민지 근대화론에서 인용한 통계는 이런 점을 간과했습니다.


2) 상기 7-1)을 거증할 수 없으니 '거짓'이라고 하더라도 이영훈이 인용한 통계 및 분석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는 이영훈 교수의 제자 및 충남대 교수(이름은 까먹음 ^^;;;) 등에 의하여 거증이 되었습니다.



8. 식민지 근대화론..... 한국의 근대화는 학문적으로 설명이 되어야 합니다만 이영훈 식의 '통계 날조'는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이영훈은 좌파 경제학자로 분류되고 있습니다만 이런 좌파적 관점을 채용한 것이 바로 '올바른 우익을 세우겠다'는 뉴라이트에 의하여 차용되었습니다.


이 눈물겨운 좌우합작. 뭐, 여기까지면 봐주겠는데 거기에 개신교가 대대적으로 참여합니다. 뭐, 예수님의 인류 사랑은 '좌우가 따로 없겠지만' 좌우합작에 신앙까지 가세한 뉴라이트의 변태성은 아무리 좋게 봐줄려고 해도 참을 수가 없네요.



9. 'DJ 빨간색 칠하기'만큼 경계해야할 '박정희 낙인 찍기'


왜, 조중동을 위시한 우익에서는 DJ에게 빨간색을 칠하려고 혈안이 되었을까요? 그건 바로 우리나라의 사상의 세력 판도가 바로 '물적 토대'의 기반이 되기 때문입니다. 호남을 상징하는 DJ에게 빨간색을 칠해야 우리나라의 정치적으로 제 2인자인 호남을 영원히 따돌리고 영남패권을 공고히 하기 때문이죠.


그 반대로, '박정희의 공과 이상'으로 '박정희가 한 것은 무조건 나빠'라는 박정희 낙인 찍기는 이런 영남패권, 그리고 국가적 패권과 물적토대가 영남에 지나치게 쏠린 현상에 대한 극복의 방법으로 나온 것입니다. 박정희는 일단 비난하고 봐야 '올곧은 식자'이고 그렇게 후배들에게 가르쳐야만 '올곧은 선배'라고 자리매김되는 현상은 'DJ에게 빨간색을 칠하는' 파쇼 행위만큼이나 사회를 저질화시키는데 공헌하는 짓이죠.



이미 일부 언급했습니다만, 이런 과도한 정치적 주장들이 단순한 호남 차별을 넘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조롱을 하는... 일베 현상을 탄생 시킨 원인 중 하나입니다. 즉, 박정희에 대한 정당성이 확보되어야만 그동안 확보된 영남 패권을 더욱 공고히할 수 있다는 영남패권 심리에 그냥 대충 생각해도 자신의 논리로 이해되지 않는 과도한 정치적 공세들이 결합되어 하나의 변태 괴물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한국 역사는 보수진영에 의하여 한번, 진보진영에 의하여 또 한번 왜곡되었다'..................................라는 것은 결국 영남패권의 공고화 시도 및 그에 대한 역작용의 발로인데 역사적 정당성을 확보해야만 '물적토대'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렇게 역사에서도 치열한 진영논리가 판을 치게 되는거죠.


뭐, 다른 나라에 비해 특히 우리나라가 심하고 역사 해석에 있어서 이렇게 진영 간의 대립이 더욱 치열하되, 양쪽이 '팩트'와는 동떨어진, 역사 왜곡의 상황까지 이르게 된 것은, 미국의 경우를 비추어 보자면, 현대사에 있어서는 다양한 주장들이 제기되고 존중되지만 그들의 금단의 열매인 '인디안 학살'에 대하여는 한결같이 침묵을 하고 있는 사례와 비슷합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