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 성행위는 남성의 성기를 여성이 순(정식 성행위에서는 음순)으로 감싸 안은 다음에 골반을 축으로 진폭으로 보아 어느 정도 일정하나 변동을 허용하는 진퇴 운동을 일정시간 지속하여 사정 중추의 명령을 거쳐 성기 말초 신경에게 남성의 사정을 유도하도록 하는 성행위 모듈을 뜻한다. 물론 그 과정엔 interrupt-driven과 hormone-driven 기전이 함께 작용한다.

신문 기사로 쓰자면 구강 성교쯤 되겠다. 이것두 입에 올리지 못할 말인가? 그러면 좆빨기는 한국 상놈들의 어법이겠고. 펠라치오는 고급스러운가? 어지간한 요즘 부부들 하질 않나? 결론? 구강성교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구강성교에 이르게 된 과정은 나쁠 수도 있다.

(상놈(불상놈)이라는 표현, 양반의 대척점에 있는 말이겠는데 상놈이라는 말에서 나는 지천에 흐드러지게 핀 민들레, 참꽃을 연상한다. 혹 한자어 常이 그 어원이 아닐까 생각한다. 항상 常. 옛말에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있다고 했다. 먹고 사는 거 부족하지 않아야 인간의 도리를 알고 크게 도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불쌍하다는 말 그것도 不常을 강하게 소리낸 것이 아닐까 싶고. 뭐 아님 말고. 수비학 거론할 입장은 아니니까. 상이 아마 normal, ordianry에 해당할 것이다.
두 단어 어원 조사해봤더니 대충 내 해석하고 비슷하다. 이거 내가 예전에 본 거야 내가 유추해 낸 거야? 요샌 것두 자신 못하겠다.
네이트 한자 사전의 뜻풀이 상---
뜻풀이 : 1. 떳떳하다.
2. 항구하다(恒久--), 영원하다(永遠--).
3. 일정하다(一定--).
4. 범상하다(凡常--), 예사롭다(例事--), 평범하다(平凡--).
5. 숭상하다(崇尙--).
6. (변함없이)행하다(行--).
7. 항상(恒常), 늘, 언제나.
8. 늘.
9. 일찍이(=嘗), 애초에.
10. 도리(道理).
11. 법도(法道), 규율(規律), 통례(通例).
12. 평소(平素), 평상시(平常時).
13. 범상(凡常).
14. 길이의 단위(單位).
15. 천자(天子)의 기(旗).
16. 나무 이름.
17. 땅 이름.)
)))))


interrupt와 hormone은 낮과 밤, 남성과 여성이 세상을 이해하는 관점, 애니마와 애니무스, 인큐버스와 시큐버스를 상징한다.
어찌보면 인큐버스와 시큐버스는 음탕하고 속하며 악한 것으로 그려지지만 다른 한편으로 일부일처제가 자연의 섭리에 합당한가
반론을 제기하는 역할도 한다.

그리고 총기에 탄창을 팍하는 소리가 나게 장착하는 과정, 그게 남성이 사정하기 직전, 분출압에 다다라 잠시 몸이 경직되는 것과 무척이나 흡사하기 때문에 성애 소설과 만화에서는 총기를 발사하는 과정 그리고 단발총과 따발총에 비유하여 남성의 성행위 행태를 묘사하는 일이 적잖다.

남녀의 음부에서 나는 원초적 냄새를 바닷가 동식물의 냄새에 비유한다. 여성기와 서혜부에서 나는 냄새(세균도 큰 역할을 한다)를 오징어(정확히는 오징어가 속한 과) 특유의 냄새에 비유하고 아니면 바닷가 사람들은 알겠지만 항상 갯물에 휩싸여 있는 뻘이나 미역귀 냄새가 남성 사타구니에서 나는 냄새와 비슷하다. 그들이 가리키는 지점은 당연히 생명(력)이다.

요새 유행하는 강남 스타일을 빌자면 나는 주로 닮은 꼴을 써서 세상을 이해하는 스타일이다.

어떤 풍경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간 내가 보아온 무엇인가가 보여주는 풍경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고서 거기에 비추어 대상을

파악하는 편. 그래서 100%라는 신적인 개념을 믿지 않는다. 순 100% 진짜 절대자, 절대성보다는 상대성 속에 흐릿하게 자리잡앗다가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는 절대성이나 절대적 존재-이게 내가 보는 다양성과 보편성의 개념-를 믿는 편이다.

공간이 다양성을 낳지는 않는 것 같다. 다양성을 낳는 것은 시간.

공간은 외려 절대성과 상하 관계 그리고 뻣뻣함을, 시간은 상대성과 수평, 그리고 부드럽고 성긴 무엇을 뜻하는 것 같다.

각설하고

내내 말하지만 그럴만한 상황에 처하면 그럴만한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 비유하자면 이런 거다. 언젠가 개펄에 나가 작은 게랑 조개 등등을 잡아와서 망태에 그냥 사나흘 나두었다. 아예 움직이지도 않으니 죽었으려니 했다. 혹시나 싶어 바닷물 비슷하게 소금물 넣어주면 어떨까 싶어 소금물에 집어 넣었더니 막 건드려도 미동도 않던 녀석이 갑자기 스멀스멀 꼼지락거리더니 막 돌아다닌다. 하지만 몇 시간 지나니 죽었다. 바닷물 구성 성분도 잘 모르고 그냥 소금만 조금 풀어놓은 것이니 뭐. 상황은 저런 소금물 같은 것이다. 거기에 반응하는 본능이 사나흘을 버틴 것이다. 범죄란 것도 좀 그런 편이다. 깨어진 유리창 이론. 그거 도시 성풍속으로 치자면 좀 어리버리하고 주변에 보살필 이 없는 여자들 이 사람 저 사람 돌아가며 아랫도리 재미보는 거랑 진배 없다. 그 여자들 혹은 기층 서민들은 바로 그 깨진 유리창인 것이다.

신분이나 직책, 소속 조직의 문제가 아니란 소리다. 그게 나름 '자연'이고 공직은 거기에 의식적으로 저항하는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이 할 일이고 또 조직에서 그런 훈련을 시켜야 많다. 물론 그 조직에 속하지 않고서도 그 '부자연'을 터득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아는 사람 눈에만 보이는 거지만. 뭐랄까? 스스로 터득한 것과 주입된 것과의 차이일까? 스스로 터득한 게 훨씬
생생하고 순도가 높으며 문제를 적게 일으킨다.

지하철에서 성추행했다는 젋은 판사, 직위를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는(검찰 발표와 배치되나?) 이 사건의 젊은 검사 모두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호르몬과 호기심 그리고 손에 쥔 제어 못할 권력의 힘에 이끌려 그런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의 모습은 우리 모두가 그 양태는 다르더라도 인생의 어느 시기에 보였음직한(이게 개연성이다. 검찰이 자주 쓰는 무기이기도 하지만 아주 위험한 개념) 자연스럽고도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이다. 그 둘을 뭐라 하기보다는 그게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결코 그런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 것이며 그런 마음을 품은 적이 없다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지금에 와서 당신은 그럴 수 있는 것이며 그럴 수 있다고 장담하는 것이며 자제할 수 있다는 것이지 앞으로도 그렇다는 보장은 하지 마시라.

물론 후자의 검사 일은 두고 보아야 한다. 확실한 건 분명 호르몬은 작용을 했다는 것이고 그게 성폭행인지, 여자의 의도적인
유혹이 앞서고 호르몬이 부가 작용을 한 것인지는 두고 보아야 한다. 그 여성의 입장에서 보자면 심리적으로 절박하여 자신도 모르게 호르몬이 시키는 대로 그런 행동을 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호르몬이 시키지 않는 상태에서 절박감이 지나쳤고 거기에 검사와 검사실이라는 위압감이 작용하여 저항을 아예 포기한 것일 수도 있다(이 경우도 역시 음성적인 성폭행이다. 이거 현실에 많다. 아는 사람들은 안다). 경우의 수는 엄청 많다.


(두 사람 모두 30대 초반이고 발달사에서 저지른 실수(?)에 대해서는 안타깝고 연민이 간다. 순전히 나어린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이긴 하지만. 물론 그들에게 상처를 받은 피해자에게 보호와 피해  배상(보상 아님)이 이루어져야 하는 게 우선이지만 그게 이루어졌다고 쳤을 때 말이다. 법적인 피해 배상에 앞서는 게 가해자가 피해자를 직접 대면하여 사과하는 것이다. 하얀 거탑에서 죽은 이의 부인이 그토록 원했던 것. 그런데 성폭력 가해자 자신이 피해자를 직접 만나 사과하는 경우는 드물다. 좀 웃기지 않은가? 나는 직접 무릎 꿇고 사과하는 모습 그것을 실정법에서 금하고 있는 사적 제재가 완화된 형태로 실현된 것이라고 본다)


끝을 맺자면 그렇다. 약자 입장에 있는 상대를 대할 일이 많은 사람들이 대개 더 나쁜 짓을 많이 할 수학적 확률이 높다.
경찰이 피의자를 바깥으로 불러내 성폭행하거나 협박하여 금품을 갈취할 수학적 확률 적지 않고 실제로도 벌어진다. 보통 사람들보다 더 하냐고? 아니 적어도 보통 사람들 수준은 된다.

검경 바깥에 조폭과  동네 양아치들이 있다. 그들은 방향만 다를 뿐 그들의 지배하는 원리는 검경과 마찬가지다. 바로 나는 해도 되지만 너는 하면 안 돼. 기독교식 인간의 원죄는 바로 저것이다.

그 다른 방향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조폭을 깎뚜기라고 하는데 검경이 깎두기 모습 보이는 것도 한 순간이다.

병원? 학교 선생? 크게 다르지 않다. 검경과 병원 의료진, 선생들 그들이 실상 가장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다. 통칭하여 힘 있는 어른들. 단지 그래도 절반을 넘는 이들이 큰 틀에서 아직까지는 선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덕에 파국에 이르지는 않고 있는 것이다. 요새 사람들은 인문학을 홍어좆으로 알더라고 클클.

인문학?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 어떤 풍경에 자신을 대입해보는 거, 그리고 먹고 자고 배설하는 거  그게 인문학이다.

인문학 =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인간학. 이 세상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우는 학문이 인문학이다.

그게 그러니까 대다수가 민족주의자 언행을 보일 풍경에서 나는 사해동포주의자 언행을 하고 또 그 역도 성립한다. 청개구리.

부디 자신을 들여다보시라. 그래야 자신이 손가락질 하는 그 모습을 보일 수학적 확률이 낮다.

글쎄 사람들은 신분제 사회에 살면서 왜 신분제 사회는 옛말이라고 그럴까? 왜 그렇게 거짓말을 할까?

만에 하나 그 여성이 심리적 강압에 의해 저항 능력을 상실하고 성폭행을 당했다고 쳤을 때 그 상황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을 여성은 얼마나 될까? 이 질문에 여성들은 자신을 대입해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외국서 들어온

그놈의 성적 자기 결정권이니 하는 설레발치지들 말고. 자기 몸의 주인은 자신이다. 그 상황이라면 옆에 의자 들어서

찍어버리고 사람들 부르면 된다. 검사래도 자신이 한 행동이 있으니 뇌에서 보내는 명령과 호르몬이 작용해서 그 상황에서

자신을 추슬르지는 못한다. 아니 그나마 그래야 사람이다.


불행히도 저 얼개는 이른바 강자들이 약자들 고립해서 가지고 놀 때 흔히 보이는 패턴이다. 저항하지 못하고 법과 주변의 힘을 빌리지 못할 거라는 생각들을 하니까. 폭력에 맞서 폭력으로 자신을 지키는 것은 위법이 아니다 정당하다. 세상이 잘못은 무엇이냐 하면 맞서 폭력을 휘둘럿을 때 그 자기 방어권이 법원에서 생각보다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인식을 팽배하게 한 데 있다.

그리고 그 인식은 사실 우리들 시민 모두가 만들어낸 현상이다.<--이 인식이 중요하다.

가해자가 외려 피해자로 둔갑하는 일이 아주 드물지는 않으니까. 그래도 그 왜곡된 세상의 전파를 깨야 한다.

그걸 깨는 건 정당한 최소한의 폭력이 법정에서 인정받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고 그건 어차피 법원 판례가 할 일인데

법원 판례는 폭력 피해자의 그런 행동(최소한의 폭력)이 있어야만 나온다.

나는 실제 성폭행 상황이라면 무언가 들고서 가해자 몸통을 내리찍는 거 (머리 내리치는 거는 사망 확률이 높으니) 정당하다고 본다. 그리고 내가 만약 성폭행범의 피붙이라면 자신을 지킨 그 피해자에게 정말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할 것이다. 성폭행 상황에서 흉기로 찔러 가해자를 죽이는 일 간혹 외국 뉴스에 나온다. 성폭행임이 명백함을 입증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그건 정당 방위다. 실제 그 피해자 입장에 서보지 않으면 그 긴박함, 근육을 마음대로 놀리지 못하는 심리적 공포를 이해하기 힘들다. 정조가 그토록 중요한 것이라면 정조를 지키기 위한 폭력 역시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아니면 정조라는 걸 그토록 상위 미덕으로 배치해 놓지를 말든지.

그게 성적 자기 결정권이다. 간통죄 폐지하라고 징징대지 말고. 바람 피웠으면 깨끗하게 헤어지고.

성적 자기 결정권 그거 유개념은 자기 행동은 자기가 해석하고 자기가 책임지는 거다.
제발 어떻게 판사님에게 그럴 수 있어라는 표현을 썼다는 어린 여판사 모습을 보이지는 마시라. 전문가 집단이래 봐야 얼추 마흔 정도 되기 전까지는 직장 상사나 선배들 높이 보고 잘못된 지시에 순응하는 유아의 모습 벗어나기 어렵다. 아니 실제로는 50-60 되어도. 그거 벗어난 상태가 어른이다. 그 동류라는 조직의 압력을 이겨내는 이.

사족.

흐르는 강물 님이 기독교인이래서 생각나는 이야기인데 나는 십계명 중에 간음하지 말라/남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는 말 듣고 있으면 웃긴다. 그거 잘 안 지켜지니까 그렇게 계명에 들어간 것이다. 간음할 확률은 간음을 시도해 볼 대상이 많을수록 높아진다. 교회란 남녀사교장으로 안성맞춤인 곳이 아닌가? 요새 묻지마 관광이나 묻지마 등산 모임 등등이 그러하듯이. 세상에 성인남녀 수십 수백 명이 한 공간에서 정기적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곳 중에 교회만한 곳이 어디 있단 말인가. 기억이 정확한가 모르겠다. 그 있지 않은가, 에클레시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