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간 광화문 광장 스노우 잼 행사와 관련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너무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


시닉스님이 진중권을 비판하던 골자는 전문가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는 거였는데요. 저는 진중권의 침범행위(?)가 부정적인 측면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번 광화문비판은 진중권의 영역이 확실했다고 봐요. 
meta님의 의견에 동의하는 편인데, 간단히 말하자면 진중권이 건드리는 갖가지 문제는 '개괄적'인 문제다 라는건데요. 그것이 전문가의 영역이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전문가는 이러한 문제를 개괄적으로 끌어내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데, 진중권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 자신이 전문가들을 끌어들이는 바이어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고 봅니다. 물론 진중권은 이리쑤시고 저리쑤시면서 가끔씩 개드립(개 같은 애드립)을 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잘 쑤시고 있다고봐요. 
(책 읽는 프로에서 장하준 교수와의 논쟁은 보기 민망할 수준이었죠 ;-)  
그리고 진중권이 진보진영의 해가 된다는 주장 역시 쉽게 동의하긴 힘듭니다. 진중권의 김구라스러움은 해학적인 것을 사랑하는 우리네 정서와 잘 부합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삽을 들고 있는 그 분을  이미지화한 1등공신이 진중권 아니었나요?

 

물론 바람계곡님이 포스팅한 '공간안에서 또다른 공간이 생김으로서 변화하는 랜드스케이프' 측면에서 스노우잼 경기장을 평가하는 것도 중요하죠. 저도 무척이나 잘 본 글임을 밝히면서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한가지 장담할 수 있는것은 아크로에서나 호응을 받을 수 있는 글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 아크로와 같이 일정수준 이상의 지적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에게만 흥미로운 글이라는 거죠. 대부분의 사람들이요?
"오 좋은글이네요. 하지만 읽지는 않았습니다." 라는 장난스러운 댓글에 키득거릴게 분명해요.
그러나 우리 진포로리는 다릅니다. 물론 시사문제에 일체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진중권이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는 우리나라에서 손 꼽을 정도로 넓은 스펙트럼의 계층을 커버할 수 있는 사람이죠.  그리고 이러한 그의 명망은 거품기가 아니라, 그가 웃으면서 침뱉는 듯한 갖가지 논평들로 쌓아온 나름 건실(?)한 커리어라고 생각합니다. 잠깐 떠오른 변희재가 약빨이 서서히 떨어져가는 것과 달리 진중권은 보기와 달리 완급조절도 꽤 할줄 아는 노련미를 갖춘 진보진영의 우수한 이슈파이터라고 생각해요.


생산적인 이슈로 넘어가지 못하는 고질적인 진보진영의 문제는 진중권의 문제가 아니라, 씽크탱크가 없고 공론화 시킬 능력이 없는 진보진영의 맹점이라고 생각해요. 광화문 광장에 진중권이 시동을 걸었다면, (지원사격의 의도가 있다면) 한 때의 변희재와 보수진영처럼 냄비가 식기전에 공론화해서 점수 따는 그런 시스템이 있어야 하는데, 제가 보기에 진보진영은 그런게 부족한것 같아요.
진중권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진중권을 개조해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진지한 피드백을 자꾸 날려줌으로서 보수진영의 문제로 탈바꿈시켜 그들에게 문제를 줘야할 문제라고 봅니다.


횡설수설 그만하고, 간단한 글 하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서양철학사라는 책의 저자 서문중 일부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거대한 과제의 어느 부분에 대해서든지 그 부문의 전문가들에게 한 마디 변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철학 분야든, 그 부문의 전공 철학자가 그 부분에서는 가장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따라서 나로서는 라이프니츠의 경우만을 제외하고, 내가 취급한 철학자들 관하여 나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이 때문에 우리가 조심스럽게 침묵만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면, 아무도 어떤 국한된 역사 이상을 취급할 수 없을 것이다. 루소에 대한 스파르타의 영향, 13세기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에 대한 플라톤의 영향, 아라비아 사람과 그 후에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한 네스토리우스 교도의 영향, 롬바르드 여러도시의 건설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자유주의 정치철학에 미친 성 암브로시우스의 영향 등, 이런 것들은 모두 개괄적인 역사만이 취급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이 책의 이곳 저곳에서 나의 지식이 불충분하다는 것을 발견한 독자들의 관용을 바라는 바이다.
(후략) 버트란트 러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