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인사드렸던 디즈레일리입니다.
제가 자기소개에서 저를 보수적이라고 말할 때 아마 가장 크게 대립하는 지점이 탈북자 문제가 아닐까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래에 밤의 주필님이 탈북자에 대해서 경악스러운 말씀을 하셨기에 생각보다 그 순간이 일찍 왔구나 싶었습니다.

전 극좌부터 극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접해봤고 이해하려고 노력도 해 봤습니다.
일베충도 좌좀도 제각기 일베충이 된 이유가 있고 좌좀이 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또 그들이 겪은 인생에 대해서 제가 함부로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남을 평가할 때도 이런 겸손함과 유보적인 자세를 갖고있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파시스트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파시즘이 별게 아닙니다.
'나와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 '넌 나랑 달라. 그래서 틀렸어!'라고 말하는 게 파시즘의 첫걸음입니다.
'너'랑 '내'가 다를 때 '왜 다를까?'를 고민해보지 않고 남을 판단하기란 너묻 쉽지만
쉽다는 건 그만큼 사안을 단순화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서론은 이 정도로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여기 계신 닝구나 친노회원들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전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의 최대의 약점이 남상국도 아니고 경제도 아니고 한미관계도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볼 때 김대중-노무현의 최대의 도덕적 약점은 탈북자 문제와 북한인권 문제를 눈감은 데에 있습니다.
물론 김대중도 노무현도 탈북자 정착지원정책 같은 것은 내놨지요
그렇지만 정권차원에서 탈북자는 사실상 부정되었고 북한인권문제는 없는 것처럼 취급되었지요.
전 세계의 상식적인 국가들이 유엔에서 북한인권 관련 결의안에 서명할 때 한국만 기권하는 우스운 모습을 보여줬고요.
북한의 자존심을 존중해야 된다고요? 북한이 그렇게 매달리는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는 북한 자존심 뭉갤 만큼 충분히 뭉갰는데 왜 우리만 끝까지 김일성 그 또라이의 자존심을 지켜줘야 하는 겁니까?
전에는 제가 반공적인 사고에 젖어서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가면 갈수록 북한이 남한만 우습게 본다는 생각도 들고 그럽디다.

요는, 인권과 자유주의를 내세운 정권이 '같은 민족'이라는 집단에서 심각하게 자행되고 있는 인권탄압에 대해서 '남북관계'라는 명분으로 침묵했다는 것만큼 우스운 짓이 없다는 겁니다.
내재적 관점으로 접근하라고요? 박정희, 전두환 시대에 대해서 똑같이 생각하라고 반문하면 게거품을 무는 분들이 어떻게 김일성 김정일에 대해서만 그럴 수 있냐는 거에요. 박정희, 전두환 때 독재정치에 문제 하나도 못 느끼고 즐겁게 살아간 사람 많았습니다.
아니, 이라크전 참전 문제에 있어서도, 미얀마 앞바다 유전 개발에 있어서도 도덕적 당위성 문제를 들고 나오는 분들이
북한문제에 대해서만은 현실적으로 접근하라? 이거 설득력이 없는 얘기입니다.
아무리 북한체제의 특수성이 있다고 해도 인권탄압은 인권탄압인 것이고
같은 민족으로 살아갈려면 그리고 통일할 의지가 있다면 이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북한도 이명박 역적패당 어쩌구 하는 것처럼, 우리도 북한에 대해서 안 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이건 신뢰고 뭐고를 떠나서 가장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남북관계 개선도, 통일도 다 남북 인민이 잘먹고 잘 살게 하는 거라면
실제 사람들이 잘 못 먹고 잘 못 살고 있는데 그걸 외면하는 것이 통일을 바라보는 옳은 자세일까 싶습니다.

영화 '태풍'도 보여주듯이 탈북자들이 분명히 북한지역을 벗어나서 중국에서 끔찍한 삶을 살아도
당시 정부들이 쉬쉬하고 무시했던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심지어 노무현 정권 때는 납북 군인이 탈북했는데 중국 대사관에서 조치를 거부당한 일도 있었죠.
이건 일회성 사건이라기보다는 정권 차원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었다고 봅니다.
분명히 있는 사람을 없다고 하고, 분명히 존재하는 인권탄압을 없다고 하니
탈북자들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었겠지요.
물론 탈북 동기는 다양합니다만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탈북자 말은 무조건 거짓말 내지는 과장으로 치부하는 야권 지지자들 때문에 많은 탈북자가 마음고생을 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아냐고요?
전 탈북청소년 지원단체에서 봉사해 본 적도 있고 이 문제에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졌습니다.
제가 일했던 단체는 우익단체도 기독교단체도 아닌, 상당히 드문 경우였지만
일하다 보니까 이 분야가 우익 기독교 진영에 의해 독점되는 이유를 알겠더군요
일단 행사를 하면 민주당 의원은 코빼기도 비치질 않습니다
반면 한나라당 쪽에서는 몇 명씩 와서 보좌관도 빌려주고 소소하게나마 도와주고 그랬지요
취재 측면에서도 한겨레 경향 오마이는 눈 씻고 봐도 없고
조중동에 가끔 문화일보나 나타났었지요.
이래놓고 탈북자들한테 김대중이나 노무현을 지지해라고 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도리가 아닌 짓' 아닙니까?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의 교육과정을 거치지도 않은 탈북자들은 오히려
우익의 논리를 따라서 극우로 빠질 가능성이 많다고 봅니다.
인간 아래라는 개도 충성심이 있습니다. 자기한테 잘해주는 사람 말을 듣는다는 거죠.
탈북자한테 한 푼 직접 주는 것도 아닌 주제에 그 사람한테 교회에서 하는 개소리 듣지 말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직접적으로 한 건 아무것도 없으면서 필요한 순간에만 숟가락 얹는 사람들은 얄미움을 넘어서 가증스러움이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일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일베를 좋아하지 않지만
정성산과 같은 사람들이 일베에서 보내주는 열화와 같은 성원에 감동했을 가능성은 농후합니다.

제가 오래도록 안철수를 깠지만
그 와중에도 안철수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게 한 가지 있다면
작년에 탈북자 인권 관련 행사에 참가함으로써 야권진영에서 관련된 문제제기를 시작했다는 점이지요.
정말 웃겨 죽을 뻔했던 것이
한 며칠 한 행사였는데
안철수가 방문하기 전까지는 극우세력의 책동이라며 맹비난을 퍼붓던 한겨레가
안철수 방문 이후에 태도를 180도 바꿔서 북한인권 문제를 고려해봐야 한다고 쓴 것이지요. 물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썼다는 게 너무나 티가 났지만. 야권 전체가 북한문제를 외면했지만 안철수 정도 되는 거물급 정치인이 이 문제에 공감한다고 하니 무시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소 두서없고 글도 길었지만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 제 생각을 적어봤습니다.
'남북관계'라는 거대담론 이전에 '인민의 삶'이라는 문제를 먼저 생각하시기를 아크로 모든 회원께 간청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