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나라 사법부가 배우자 강간죄를 인정하지 않는 논거는 두가지다. 첫째가 부부간에는 특수성, 즉 부부간에는 정교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폭행죄와 강요죄가 있으므로 부부간의 강간은 강간죄로 다스릴 필요까지는 없다는 것이다. 이 두가지 논거를 바탕으로 하여 강간죄의 객체로서 부녀에는 법률상의 처는 제외시키고 있는 것이 사법부와 학계의 태도이며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배우자 강간죄를 인정하지 않는 첫번째 논거를 보자. 부부간에는 정교의무가 있기 때문에 강간죄를 인정하기 힘들다는 논거다. 사실 부부간에는 정교의무가 있기에 섹스를 거부하면 그로 인해 이혼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그 정교의무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부부간의 정교의무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몸이 아프면 섹스를 거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섹스를 거부할 때 이혼을 당할 수 있다는 것도 무조건적인 것이 아니다. 이유없이 섹스를 거부하고 그것이 장기화되어서 그로 인해 부부간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로 발전할 때에야 이혼사유가 되는 것이다. 칼을 들고서 섹스하지 않으면 그어버린다고 다가서는 남편에게까지 정교에 응할 의무는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배우자 강간죄를 부정하는 이들은 봉건적 정조관념이 투철한 사람들이거나 그렇지 않다면 부부간에서의 강간에 해당하는 트러블을 단순히 성상담에 있어서 주된 상담꺼리인 Desire Discrepancy(욕망불일치)의 문제로 오해하고 있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든다. 

둘째, 폭행죄와 강요죄가 있기 때문에 강제적인 성행위가 강간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강간죄로 다스리지 않고 폭행죄와 강요죄만으로 다스리면 충분하다는 논거다. 이 논거는 법논리적으로 볼 때 일견 타당한 말이다. 

이 논거는 정교의무논거를 반박하는 것처럼 논거를 직접 반박을 해서는 반박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논거의 전제를 반박함으로서 그 논거를 반박할 수 있다. 

강간죄의 보호법익은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것이 현재의 통설이다. 이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것은 1990년대 초반까지는 형법학계에서는 이야기되지 않았다. 90년대 초반에는 성적자기결정권보다 훨씬 좁은 개념인 '성적자유'라는 개념이 도입돼 성적자기결정권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90년대 후반부터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용어가 도입되고 강간죄의 보호법익과 관해서는 성적자유라는 용어는 거의 대부분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용어로 대체됐다. 

그런데 우리 학자들은 이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잠시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해서 설명을 하자면, 

성적자기결정권은 행복추구권에서 근거한다. 보수적 형법학자들은 성적자기결정의 자유와 성적자기결정권을 구별하고 있지 않지만 성적자기결정의 자유는 성적자기결정권의 일 부분이다. 성적자기결정권은 포괄적으로는 성과 관련한 행복추구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성적 자유와, 성생활의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자유와, 성적인 자기(성적정체성)를 스스로 결정할 자유와, 인격적 성숙을 기초로한 성생활의 가능성을 국가와 사회에 요구할 권리등을 포함하는 인간(남녀를 불문한)의 권리이다. 

우리 나라 법 체계에서 이 성적자기결정권개념은 1980년 소위 제 5공화국헌법 개정 시부터 도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80년 헌법 이전에는 헌법상 혼인의 순결개념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1980년 헌법에서 혼인의 순결개념을 폐기함으로서 우리 법 체계에 성적자기결정권이 도입된 된 것이다. 

우리 법 체계 내에 성적자기결정권개념이 도입된 것은 1980년이지만 형법의 체계 내에 성적자기결정권개념이 수용된 것은 1995년부터이다. 헌법학계보다 15년이 뒤졌다. 이것은 그만큼 한국 형법학계가 성적으로 보수적이며, 소위 여성주의 법학 등의 진보법학의 힘이 미약한 기형적인 구조라는 것을 보여준다. 

1995년 개정형법 (현행형법) 第32章의 제목 '强姦과 醜行의 罪'는 원래 '貞操에 관한 죄'였는데 1980년 도입된 성적자기결정권개념이 형법에 반영되어서 강간과 추행의 죄로 제목을 바꾼 것이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강간죄 등에서 성적자유라는 개념을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개념으로 바꾸었던 것이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말만 소개했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강간죄와 강제추행죄의 구조가 성적자기결정권 개념의 도입으로 어떻게 변화되어야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성적 자유라는 단어를 성적자기결정권으로 대체하기만 하는 형편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한국의 형법학계가 헌법과 인간의 기본권에 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 형법학계에서 이 성적자기결정권은 다분히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권리로 인식되고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고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권리다. 성 문제에서의 구체적인 행동지침이 이 성적자기결정권에 의해서 마련될 수가 있다. 

예를 들면, 과거 우리 나라의 청소년성교육상의 주된 이념이었던 순결이념을 2001년부터 성교육에서 제외한 것도 성적자기결정권의 역할이다. 또한 현재 청소년성매매에 관한 법률에서는 오럴섹스와 항문섹스등을 질내 삽입섹스와 같은 취급을 하고 있는데  오럴섹스나 항문섹스로도 성적자기결정권은 침해된다는 것은 질내삽입섹스의 경우와 다름없다. 그러나 보수적인 정조관념이 지배하고 있는 현재의 형법에서는 오럴섹스와 항문섹스는 질내삽입섹스와 구분한다. 정조라는 것은 질내삽입섹스로만 침해될 수 있어서 정조가 침해되지 않는 오럴섹스와 항문섹스의 방법으로는 강간이 성립하지 않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성적자기결정권 개념이 없다면 청소년성매매에 관한 법률이 지금처럼 오럴섹스와 항문섹스등을 질내삽입섹스와 같은 취급을 하도록 제정될 수가 없다.

현재 한국 형법학계는 1995년부터 이 성적자기결정권 개념을 도입하여서 강간과 강제추행죄의 보호법익이라고 하면서도 구체적 사건에서는 즉, 강간죄와 강제추행죄에서는 성적자기결정권을 무시하고 있다. 부부간의 강간을 부부간 강간죄로 인정하지 않고 강요죄와 폭행죄로 취급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폭행죄에서의 폭행이 어떻게 강간죄에서의 폭행과 같다는 소리를 어떻게 할 수가 있는가? 단순한 신체활동의 자유와 성적자기결정권이 같다는 소리를 어떻게 할 수가 있는가?

결론적으로 부부간의 강간을 강간죄로 다루지 않고 강요죄와 폭행죄로 취급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주장은 철회될 수 밖에 없다. 강간죄와 폭행죄로는 성적자기결정권을 보호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현행 우리나라 형법상 강간죄 규정에 ‘혼인 중의 배우자를 제외한다’는 규정은 없지만 ‘설령 남편이 폭력으로서 강제로 처를 간음하였다 하더라도 강간죄는 성립하지 아니한다’라는 판례(1970년)에 따라 법조계가 배우자 강간죄 인정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법 해석을 하지 않고 있는데 1980년의 헌법개정, 1995년 형법개정 등으로 성적자기결정권 개념이 우리 헌법과 형법의 체계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굳이 따로 배우자 강간죄를 인정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필요도 없이 이 판례 경향은 앞으로는 폐기되고 배우자간에도 강간죄가 인정되어져야 할 것이다.  

ps :  10년 전에 제가 모 인터넷신문사의 논설위원으로 있을 때 썼던 칼럼을 옮긴 것인데요, 지금도 제 생각은 똑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