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작성한 이 서평은 한 대학생의 '유료 리포트'에 참조되었던 내용으로 내용을 조금 추가하여 다시 씁니다.)



인류에게 가장 많이 읽힌 책은 '성서'라고 한다. 이 명제의 진리값은 참인데 이 명제에 '농담 반 진담반 섞어서 이야기하자면' 이 명제의 진리값은 미래에 거짓이 될 것이다. 인류에게 가장 많이 읽힌 책을 연간으로 치면 '중화민국 검정교과서 초등학교 1학년 국어책'일 것이고 중화민국이라는 제국이 100여년만 더 역사를 연장한다면 '누계로도' 인류에게 가장 많이 읽힌 책이 될 것이다.



이제 농담반 진담반에서 농담반을 제거하여 '실화로 이야기하자면' 성서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힌 책(들)은 추리소설의 여왕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들이다. 그러나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물은 백여권이 되니 각각의 작품이 인류에게 가장 많이 읽힌 책 2위를 차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렇다면 성서 다음으로 인류에게 가장 많이 읽힌 책은 무엇일까? 



그 책은 바로 영국의 소설가 '다니엘 디포'가 1719년에 발표한 '소설 로빈슨 크루소'라고 한다. 뭐, 이 소설을 한두번쯤은 읽어 보셨을테니까 소설 내용의 묘사는 생략하기로 하자.  이렇게 인류가 두번째로 가장 많이 읽은 이 책은 최근에 와서 두 작가에 의하여 이 책에 숨겨진 백인우월주의와 남성우월주의가 드러내져 비판된다.



한 때 매니어들 간에 화제가 되었던 TV 프로그램인 '책을 말한다'(주*1)에서 소개된 이 두 작가는 매년 발표되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후보에 반드시라고할만큼 거명되는 소설가였다. 그리고 이 두 작가 중 한 명만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물론,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한 것을 전혀 아쉬워하지 않는, 말이 필요없을 정도로 유명한, 프랑스의 드라마 작가 '미셀 투르니에'는 '방드르디 혹은 태평양의 끝'이라는 제하의 패러디 소설을 발표하고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으며 프랑스의 '스테디 셀러'가 되었다.



그리고 아주 다행히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또 다른 작가는 2003년 불명예(disgrace)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남아프리카의 소설가 존 맥스웰 쿠체이다. 존 맥스웰 쿠체는 소설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부커상(Booker Price)'를 두번 받아서 유명해졌고 자존심 세기로 유명한 영국 BBS 방송국의 콧대를 한껏 뭉뚱거려 놓았다. 



왜냐하면, 그가 부커상을 받았을 때 영국 BBS 방송국 측에서 인터뷰에 응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지만 알뜰하게 거절 당했고 그가 막상 인터뷰에 응한 곳은 한 '작은 무명 방송국'이었으며 최선을 다해 인터뷰에 응함으로서 이미 자존심이 망가진 영국 BBS 방송국의 자존심을 더욱 더 망가뜨려 버렸기 때문이다.




소설 로빈손 크루소를 처음으로 비판한 미셀 투르니에는 이 책에 스며든 백인 우월주의 관점에서 비판을 한다. 반면에 존 맥스웰 쿠체는 동명소설 '로빈슨 크루소'를 통해 남성 우월주의 관점에서 비판한다. 결국, 소설 로빈손 크루소는 이 두 작가에 의하여 한번은 백인 우월주의 그리고 또 한번은 남성 우월주의를 비판당한다.



사실, 소설 로빈손 크루소에 스며든 '백인 우월주의'는 이미 국내의 한 과학 동아리에서 '로빈손 크루소는 절대 빈손이 아니었다(No빈손)'라고 비야냥 당하면서 이 책에 숨겨진 '백인 문명의 세계화'를 비판했기 때문에 미셀 트루니에의 '백인 우월주의 관점'에서의 비판은 색다른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존 맥스웰 쿠체의 '남성 우월주의 관점'에서의 비판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주었고 소설 '로빈손 크루소'가 왜 인류에게 두번째로 많이 읽힌 소설이 되는지를 알게 되는 단서를 제공한다.




만일.... 소설 로빈손 크루소 내용 중에 스며든 '백인 우월주의'와 '남성 우월주의' 둘 중 하나가 빠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최소한, 인류에게 두번째로 가장 많이 읽힌 책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이런 판단을 한 이유는 진중권이 쉽게 번역 설명한 '맥루언의 미디어학을 차용하여 해석을 했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의 주인공 로빈손 크루소는 백인으로서 흑인인 '프라이데이'를 구출했을 뿐 아니라 남성으로서 여성인 '프라데이'를 구출한 것이다. 이 중의의 행동을 맥루언의 미디어학을 차용하여 해석하자면 흑인인 프라이데이를 통해 '백인 우월주의'를 기호로 그리고 여성인 프라이데이를 통해 '남성 우월주의'를 이미지로 채택한 것이다.



맥루언의 미디어학에 의하면 현대에서 언어 소통의 수단으로 기호보다는 이미지가 점점 더 증가하게 된다. 따라서 이미지의 증가로 기호는 위축이 된다고 설명하는데 무인도에 도착하여 자급자족의 문명을 구축한 로빈손 크루소는 백인 문명의 시작을 의미하며 백인 우월주의라는 기호로 상징된다.



이렇게 백인에 의하여 시작된 문명은 위에서 소개한 국내 과학동아리에서도 로빈손 크루소는 'No빈손'이었으며 따라서 무인도에 도착하여 자급자족의 문명은 백인 문명의 시작이라고 상징하는 것은 '반칙'이라고 비판한다. 어쨌든, 백인 우월주의라는 기호는 흑인인 프라이데이가 로빈손 크루소에게 구출되면서 문명의 전파를 암시하고 그 이후에 흑인 프라이데이는 여성 프라이데이로 바뀌어가면서 백인 우월주의라는 기호의 상징성은 약해지고 남성 우월주의라는 이미지는 점점 증가하게 된다. 



즉, 소설 로빈손 크루소는 기호인 백인 우월주의가 이미지인 남성 우월주의 뒤에 숨는 전개를 하게 되어 동양에서도 소설 로빈손 크루소는 많이 읽히게 되는 소설이 된다.




문득, 요즘 사회적 병폐의 대명사격이 되버린 '일베 현상'을 떠올려 본다. 왜 일베는 그렇게 흥행에 성공했을까? 그 것을 맥루언의 미디어학을 차용해 해석하자면 일베에서의 '호남차별'은 기호이고 '약자에의 가학 행위'는 이미지였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그래서 일베충들은 처음에는 '호남차별'이라는 기호로 모였다가 그런 호남차별의 기호는 점점 약해지고 '약자에의 가학 행위'라는 이미지가 점점 커지면서 '호남 차별'이라는 기호에는 거부감을 느꼈을지언정 '약자에의 가학 행위'라는 이미지에 홀려 흥행에 성공한 것이라는게 내 추측이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호남차별'이라는 기호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방위적으로 '약자에의 가학 행위'라는 이미지 뒤에 숨었을 뿐으로 결국 일베 현상은 '약자에의 가학 행위'라는 이미지를 충족시키면서 '호남차별'이라는 기호 역시 존재케 하는 것.... 거기에 심각성이 있다는 것이다.



소설 로빈손 크루소에서처럼 만일, 일베가 호남차별이라는 기호와 약자에의 가학 행위라는 이미지 둘 중 하나를 만족시키지 못했다면, 이마도 우리는 일베현상을 그렇게 많이 접하고 있자 않거나 어쩌면 아예 모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1 : 위에 언급한 '책을 말한다' 프로그램의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은 여기를 클릭하시길

*2 : 인터뷰 관련 언급은 존 맥스웰 쿠체의 책을 주로 번역하면서 남아프리카에서 존 맥스웰 쿠체와 함께 교수로 있었던 영남대학교 이동순 교수의 신문 기고글을 읽은 기억을 토대로 쓴 것이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