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는 두 사람의 영웅이 있다.(나의 생각)  한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독립과 통일의 영웅 호치민. 90년대 초에 하노이의

호치민 기념관 앞에서 이른 아침 어슬렁거리는데 참배객들이 아침부터 줄 서있는 걸 보고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젊은 참배객들 표정이 엄숙한 가운데도 긍지에 가득 차 보였다. 우리에게는 유감이지만 호치민에 버금가는 인물이 없다.

또 한사람 영웅이 바로 여기 등장하는 피아니스트 당 타이손(Dang Thai Son)이다. 80년 아시아인 최초로 쇼팽 콩클 우승 이후

그가 쌓아온 연주이력은 일일이 열거할 지면이 없다. 정직하게 고백하면  필자는 그간 "베트남 사람이 뭐 잘 하면 얼마나..."

이런 인종차별적 사고에 젖어 몇해전까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쇼팽 협주곡 2번을 그의 연주로 우연히 들은

뒤 "이제부터 베트남 사람들 만나면 모자를 벗어야겠다."로 생각이 바뀌어버렸다.

'마주르카'는 폴란드 농민생활에서 탄생한 무곡으로 폴란드 농촌을 알지 못하면 연주가 쉽지 않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 나오는 마주르카를 들어보면 "참 미묘하고 섬세한 감정이 수놓은 것처럼 잘 그려져 있다"는 걸 느낀다. 연주가의

솜씨는 거의 마술사 수준이다. 그의 핑거링은 그 자체가 일급 무용수의 손놀림처럼 섬세하고 매끄럽다. 바람에 나부끼는

아오자이 자락을 연상시킨다고 할까.

 그는 언제나 무대에서 인민복 같은 검정색 복장을 하고 엄숙한 자세로 연주에 임한다. 건반 앞에 앉으면 그는 거인(巨人)이

된다. 그는 수도승 같기도 하다. 수도승 같은 자세로 연주에 임하는 그의 자세는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전쟁의 포화 속에서

널판지에 건반을 그려놓고 어렵게 어렵게 피아노연주를 습득하던 그 고난의 시기를, 그것을 거쳐서 비로소 음악이라는

신의 선물을 획득할 수 있었던 그의 이력이 음악 앞에서 그를 그토록 엄숙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르 몽드>지는 그를

"범접하기 어려운 피아니스"라고 평했는데 피아노 앞에서 거인이 되는 그에 대한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