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논쟁의 발단이 '복지와 소득재분배를 정당화할 수 있는 논리가 필요하다' 는 저의 발제문으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거기서 맑스주의와 함께 기반논리로 삼을 수 있는 몇가지 견해들에 대해 소개를 했었구요. 그러자 에노텐님이 '맑스의 노동가치설만큼 확실한 논리가 어디있느냐?' 라는 주제의 글을 올리시면서 폭발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 논쟁은 겉보기에 하릴없는 식자들의 말장난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양극화 해소 대책이 강력히 요구되고 있는 현실이 반영되어 었는 논쟁이었고, 그런 양극화해소 정책으로써 점증하는 복지와 소득재분배의 요구가 깔려있는 논쟁이었습니다. 그런 복지정책의 가장 큰 저항 논리가 바로 "부자들이 노력해서 얻은 정당한 소득을 국가가 뺏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마구 줘도 되느냐. 그러면 경제활동이 왜곡되어 결국은 가난한 사람들이 더 큰 피해를 본다' 라는 것이니까요. 사실 이 저항논리는 굉장히 강력합니다. 그게 바로 보수주의의 핵심이니까요. 우리 사회를 광범위하게 장악한 그 논리를 깨지 못하면, 복지와 소득재분배는 얼마안가 좌초될 수 밖에 없는거죠.

경제학은 학문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정치이데올로기입니다. 정치라는게 각자의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자원을 합리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목적이고, 경제학은 '어떻게 해야 자원은 합리적으로 배분되는가' 를 밝히는 학문이니까요. 따라서 어떤 사람의 경제학적인 입장이 곧바로 그 사람의 정치적입장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가령 "나는 경제는 보수 정치는 진보" 이런 주장은 본인만의 착각인거고, 경제적 관점이 보수이면 정치적으로도 보수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맑스가 '경제학은 없다, 정치경제학만 존재한다' 이러는 것이지요.

만약 '모든 사람들이 아무런 규제없이 자유롭게 사업을 할 수 있어야 최선의 결과가 도출된다' 는 경제학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를 하면, 필연적으로 규제철폐 민영화 정리해고 노조탄압 부자감세 복지축소 FTA 등등을 실시하는 정책들을 펼 수 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노동자 농민 서민들이 구조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다' 라는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를 하면 복지확대 소득재분배 부자증세 등의 정책을 펴는 것이구요.

그런 시대적 요구가 결국은 아크로에서 노동가치설 논쟁이 벌어지게 만들었다고 봅니다. 왜냐면 노동가치설을 반대하면서 복지와 소득재분배를 실시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파탄에 이를 수 밖에 없거든요. 가령 "독점재벌등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이익을 편취하는 불평등관계이므로 복지와 소득재분재 정책에 찬성한다" 하시는 분들은, 곧바로 만약 한국이 선진국들처럼 기업투명성이 확보되고 공정거래가 확립된다면 복지와 소득재분배에 반대하겠다는 입장이 되거든요.

따라서 그런 입장은 유럽사민주의 국가에서는 가장 오른쪽의 극우적인 입장이 됩니다. 즉 복지와 소득재분배를 찬성하는 동기가 매우 약한것이고, 그런 인식하에서 정책이 추진되면 금새 사드라들 수 밖에 없습니다. 재벌대기업들의 조그만 액션에 복지나 소득재분에 대한 국민들의 입장이 휙휙 바뀔 수 밖에 없거든요. 이것이 바로 유럽의 사민주의 선진국들이 맑스의 노동가치설에 기반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민주의자로써 맑스의 노동가치설을 옹호하는 입장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그 이론의 이윤율 저하 경향과 독점적 자본 출현까지는 아무런 논리적 모순도 현실과의 불일치도 발견할 수 없었거든요. 

논쟁을 시작하면서 저는 노동가치설에 대한 다수 회원들의 지식이 거의 전무하다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차라리 지식이 없다면 관심이 없어서 그랬나보다 하겠는데 아예 거꾸로 알고있거나 전혀 엉뚱한 것을 노동가치설의 내용으로 알고 있어서 더 깜짝 놀랐었죠. 그래도 아크로가 일반 네티즌들 수준에서는 꽤 지식이 많은 분들이 모인 곳이고, 2000년도 넘은 예수 공자 맹자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줄줄 외우시는 분들이 불과 얼마전까지 세계를 주름잡고 있던 이론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한 것에 놀랐고, 낡았으니 갖다 버려야한다는 주장에 더 놀랐다는 이야기죠. 

가장 첫번째 난관이 "노동가치설은 모든 상품의 가격을 투입된 노동량이 결정하고, 결정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라는 인식이었습니다. 그런 인식은 굉장히 강고했고 결코 틀릴리가 없는 상식처럼 여겨지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골동품가격이나 토지가격등에 대해 노동가치설로 설명해 보라면서 공세(?)를 벌이는 레드문님과 어리별이님 같은 분들도 계셨구요. 아래 링크는 그런 주장의 대표격이었던 어리별이님의 질문과 저의 답변입니다. 노동가치설에 대한 그런 지식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해명하는데 거의 꼬박 5일이 걸렸습니다.

http://theacro.com/zbxe/814038

링크한 제 답변에서도 보시듯이 노동가치설이라는게 별거 아닙니다. 가격에 대해 설명하는 입장은 주류경제학과 거의 아니 완전히 똑같습니다. 오히려 가격결정이론 파트는 주류경제학의 모든 주장을 다 받아들여도 노동가치설과 전혀 충돌할 이유가 없는거죠. 노동가치설이 결코 시장의 가격결정기능을 부정하는게 아닌데, 그 걸 설명하니까 그럴 리가 있나 하는 반응을 하시는 분들 때문에 제가 더 당황스러웠죠. 아마도 "노동가치설을 주장하는자는 시장을 부정한다" 라는 고정관념이 빚어낸 헤프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노동가치설은 그저 "가격은 시장이 결정하는데, 시장이 결정한 가격에는 가치라는 것이 일부 혹은 전부로써 포함되어 있고, 가치는 해당 상품의 생산에 투입된 노동량이다"  이렇게 주장할 뿐인거고, "가격 내부에 가치라는 놈이 들어 있다" 빼고는 가격에 대해서 주류경제학과 다를 이유가 하나도 없는거죠. 효용을 이용해 가격결정이론을 상세히 밝힌 주류경제학의 공로는 인정하지만, 그거 특허받은 이론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한계효용체감의 법칙" 이런거를 맑스경제학은 부정한다 이런 것도 사실이 아니에요. 부정한 것이 아니라 언급을 안한 것이죠. 솔까말  간단한 추론만으로도 그 법칙이 틀리다면 수요는 거의 무한대가 되버립니다. 같은 물건을 한번 쓰든 백번을 쓰든 얻게 되는 효용이 똑같다는 거니까요. 그런데 맑스가 언제 '수요는 거의 무한대다'  이랬던 적이 있나요? 너무 당연한 거라서 신경껐던 것이죠. 효용은 가격과 상관있는 개념이고, 맑스는 가격의 정체를 밝히는건 내가 할 일이 아니다 그런 입장이었으니까요.
 
두번째 난관이 "가치는 노동이 생산하는게 아니라 소비자의 주관적 효용이 결정하는 것이다" 라는 인식이었습니다. 그 말은 정확히 "내가 방망이에 맞아서 아픈 것은, 방망이가 나를 때렸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아프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라는 말과 똑같습니다. 물론 방망이가 주는 고통과 피해자가 느끼는 고통의 값은 똑같겠지만, 그런 인식은 주객이 뒤바뀌고 전도된 인식인거죠.

그럼 만약 마취가 되어 고통을 못 느끼면, 방망이질은 폭행한게 아닐까요? 혹은 지나가다 살짝 스쳤는데도 환각에 빠져 커다란 고통을 느끼면 방망이로 폭행한게 되는걸까요? 그런 인식이 어떻게 과학적인 입장인 것인지, 심지어 유물론자임을 아주 강력하게 자처하는 분이 그런 태도를 보여주시는 것에 개인적으로 많이 놀랐던게 사실입니다. 노동이 가치를 생산하는게 아니라면, 노동자들은 근무시간에 당췌 뭐를 하고 있었다는 걸까요?

그리고 맑스경제학과 주류경제학은 사실 일란성 쌍둥이와 같은 학문입니다. 자본론 첫 장에서 맑스경제학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문장과 마추치게 되는데, 다음의 두 문장입니다.

A. 상품은 인간의 온갖 욕망을 충족(효용) 시켜주는 물건이다
B. 인간의 온갖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상품의 속성을 효용성, 즉 사용가치라고 한다 (김수행판 자본론에서는 유용성이라 번역)
 
즉 효용과 효용성의 크기는 똑같은 값입니다. 두 문장에서 A을 가지고 가격결정이론으로 달려간게 주류경제학이고, B를 가지고 가치이론으로 달려간게 맑스경제학이라는 거죠. 이론의 가장 밑바닥을 구성하는 핵심 개념의 값이 똑같기 때문에, 이후 전개되는 이론체계에서 논리적 오류가 없다면 최종 결과값도 서로 똑같을 거라는건 너무나 당연한거죠.

그럼 노동가치설과 주류경제학이 그렇게 똑같은데 피노키오는 왜 그리 난리를 쳤느냐. 바로 이윤의 성격을 밝히는건 맑스경제학만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주류경제학에서는 가격만을 통째로 다루기때문에 가격 내부에 존재하는 각각의 경제학적 요소들이 모두 제거될 수 밖에 없죠. 그러나 맑스경제학은 가치를 다루기 때문에 가격 내부에 존재하는 모든 요소들을 낱낱이 분해해서 각각의 성격을 규명하는게 가능합니다. 즉 이윤은 어디로부터 발생했는가를 밝힐 수 있는것이고, 노동과 생산 영역에서 벌어지는 구체적인 경제적 현상들을 규명하는 것이 매우 수월한거죠. 

(이하 사족)

저는 자본론을 20대 초반때 열성신자가 성경책 읽듯이 꽤 많이 읽었었고, 사회주의국가들 붕괴하면서 토씨 하나 남김없이 기억에서 다 지웠었습니다. 그러나 몇년 전에 맑스이론이 아니면 도저히 설명이 안되는 현실의 모습에 '마냥 틀린건 아니구나' 하면서 "자유주의자의 시각으로" 슬쩍 다시 흝어본게 전부입니다. 따라서 자본론에 대한 제 지식은 그리 깊이있고 선명한 것은 아닙니다. 그냥 아주 예전에 익혔던 핵심 개념들을 떠올리면서 이번 논쟁에 임했던게 전부입니다. 따라서 제가 설명한 자본론의 내용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꽤 있으니 그저 참고만 하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어디가서 '피노키오가 그러던데? '하시면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 말씀. 그래도 자본론을 깊이있게 공부하신 에노텐님이나 칼도님이 별다른 태클을 걸지 않았던 걸 보면 큰 틀에서 대충은 맞았던 듯;;

이상의 소감을 마치며 장기간의 토론에 각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혹시 2라운드가 벌어지면 그때 뵙지요. 우리나라가 빨리 복지선진국이 되고 서민들도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