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그루님이 어느 댓글에서 올려주신 링크 따라 갔다가 딸린 글들이 좋아서 그 중 하나를 가져와 봅니다. 주인장은 주류 경제학과 맑스 경제학 양자 모두에 대한 심도 있는 비판적 이해를 평이한 언어로 풀어서 설명해 주고 있는 귀한 블로거네요. 즐겨 찾기 해놓고 여유 있을 때마다 가보셔도 좋을 듯. 코멘트 되는 저자의 글은 아랫선으로, 제 코멘트는 % 로 표시합니다. 굵은체 강조는 제가 한 것입니다. 

  출처는 : maengun.egloos.com/177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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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학에서 가치는 무엇을 지칭하는걸까. 다양한 정의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어떤 상품이 시장에서 다른 상품과 교환될 수 있는 힘을 수량화 한 것이라고 볼수 있겠다. 따라서 적어도 경제학에서 '가치를 갖는다'는 것은 쓸모가 있다, 혹은 귀중하다는 식의 도덕적인 평가와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쓸모가 없어도 비싸게 팔리면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것이고, 아무리 인간에게 귀중한 것도 안팔리면 가치가 없다. 적어도 '시장'이 보편적인 세계에서는 경제적 가치란 그런 의미다. 

태초에 시장이 보편화 되었고, 그 후에 경제학자들은 그 원리를 해석하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서 '태초' 는 근대 사회다.) 각 상품들에 가치가 매겨지고, 그에 따라 상품들은 교환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가치'란 것이 우연에 의해 지배되지 않고, 뭔가 일정한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발견한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 된 그 질문을 던졌다 : "대체 가치란 뭐고 어떻게 결정되는가?"

% 문제가 있는 언급. 원초적 형태의 시장은 근대사회보다 훨씬 이전, 역사 이전 시대로 거슬로 올라간다. 매매에 관한 법은 인간이 자신의 역사를 활자로 기록하기 이전부터 관습법의 형태로 존재했다.%

1) 시대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오늘날 지배적인 경제학의 설명에 따르면, 가치는 다음과 같은 이해된다 : 

갑에게 빵 2개, 을에게 물 4병이 있다고 하자. 사회 전체적으로 볼때 두 물건은 서로 다른 물건이기 때문에 2+4=6로 단순합산 할수도 없고, 2<4 이라고 단순비교도 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두 물건을 교환하고 합산할 것인가? 둘 사이에 '시장'이 형성되어 각자가 흥정을 해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갑과 을은 각자가 가진 물건을 내놓았을때 상대의 물건을 얼마나 가져와야 '만족'이 되는지 따져서 그 값을 올리고 내리고 하면서 흥정을 한다. 이런 만족감이란 주관적 기준을 "효용"이라 한다. 흥정 끝에 최종적으로 갑이 빵 1개를 주고 을이 물2병을 내놓아 교환하는 것으로 교환량과 교환비율을 협의했다고 하자. 그러면 빵과 물 각각의 '가치'는 다음과 같다. "빵1개는 물2병만큼의 가치를 갖고, 반대로 물1병은 빵1/2개 만큼의 가치를 갖는다" 무엇을 기준으로? 그들의 효용을 기준으로. 그렇다면 갑이 가진 빵2개는 "물4병으로 교환가능한 가치"를 가지므로 을이 가진 물4병과 똑같은 양으로 평가된다. (반대로 빵을 기준으로 평가된 가치도 갑과 을 모두 2개로 같다) 사회 전체적으로 총 가치를 평가하면, 빵가치로는 4개, 물가치로는 8개의 총생산량을 만들었다고 평가된다. 

정리하자면, 시장에서 각자의 효용을 비교해 교환비율을 정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각 물건의 '가치'를 평가하는데, 이때 여러상품들의 가치를 동일한 기준에서 비교/합산하려면 어느 한 물건의 수량단위를 기준단위로 놓고 상대적 교환비율에 따라 환산하면 된다. 
이러한 가치체계 하에서는 딱히 어느 특정상품이 가치평가의 척도역할로 선정되어야할 이유가 없다. 빵 단위로 가치를 매기든 물 단위로 매기든 동일한 교환가치기준하에서 계산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제3의 물건이 '화폐'란 이름을 달고 계산단위를 역할을 자임해도, 평가되는 각 상품(빵과 물)사이의 교환가치비율에는 영향을 안미치므로 실질적 변화는 없고, 굳이 별도의 계산단위가 없어도 무방하다 

% 이 글의 논리대로만 보자면, 효용은 어디까지나 거래 양당사자간의 주관적인 선호에 따라 결정되므로, 거래 상대방이 바뀌면 제품의 상대적인 가치도 물론 달라질 수 있다. 갑이 빵 1개를 가지고 을이 가진 물병 2개와 교환한다고 해도, 동일한 빵 1개를 가지고 병과도 같은 물병 2개와 바꿀 수 있으라라는 보장이 없다. 예컨대, 병에게는 빵 하나가 아닌 2개를 주어야 비로소 거래가 성립할 수도 있는 것이다.그러므로 저자의 논리를 액면 그대로 적용해 보면 사회 전체적인 효용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무한개로 존재할 수 있다. 
 이 모순적 불확실성의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효용이라는 주관적 가치를 인위적으로 획일화, 객관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즉 개개인의 효용함수(즉 일정한 재화나 서비스에 대해 만족도를 느끼는 정도) 가 개인차가 없이 일정하게 주어졌다고 획일적으로 의제할 수 밖에 없다. %


2) 

노동가치론의 입장에서 어떨까. 똑같이 갑은 빵 2개, 을은 물2병을 갖고 있다. 일상적인 교환에서는 위와 같은 주관적 흥정(다른 말로는 수요 공급의 법칙)에 의해 교환 비율이 결정하는것이 맞지만, 그 와중에도 일정하게 장기적으로 관철되는 '객관적' 교환비율이 하나의 중심처럼 작용한다. 시장에서 갑과 을이 주관적으로 결정해 확인할 수 있는건 "빵1개<->물2병"이라는 상대적 교환비율이지만, 사실 그러한 비율을 절대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각 상품을 생산하는데 들어간 노동량의 비율이라는 것이다. 즉 상품간 '교환기준'으로서의 가치가 상대적 비율로 존재하는게 아니라 제 3의 요인(노동)에 의해 절대적 크기로 존재하는 것이다. 예컨데 빵과 물이 1:2로 교환되는 것은 각각의 생산에 노동이 개당 2시간과 1시간으로 배분되어 있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상품의 교환의 '기준'이 되는 가치는 교환이전에 생산에서 노동량에 따라 미리 결정되어있고, 그래야만 '기준'으로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절대가치론으로서의 노동가치론이다. 

그렇다면 가치를 통한 상품들의 합산이나 비교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효용가치론에서는 시장에서 결정된 교환비율을 기준으로 어느 한 상품단위로 동일하게 환산해야 하지만, 노동가치론에서는 상품 각각이 절대적 크기로서 "노동량"을 갖고 있으므로, 교환비율을 결정하기 전에 이미 공통분모(노동)를 통한 '통분'이 가능해서 합산/비교가 가능하다. 그런데 노동량 그 자체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노동량을 기준으로 상품을 비교/합산 하는가? 노동량의 직접적인 표현양식인, 마찬가지로 노동의 생산물인 제3의 독특한 상품이 화폐로 기능해서 다른 모든 상품의 노동량을 필연적으로 표현해 줘야한다. 예컨데 100원의 화폐는 1시간의 노동을 가치로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개당 가치 2시간의 빵2개는 400원, 개당 가치 1시간의 물 4병도 400원, 총 800원(=총8시간)의 가치가 생산된 것이다. 

% <재화에 투여된 표준적인 노동량 (즉, 그 분야의 표준적인 노동자가 그 재화를 생산하는데 걸리는 시간) 이 교환에 필요한 제 3의 가치척도로서의 절대적이라는 것>의 의미가, 그렇다고 일종의 도그마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관건이 된다. 효용가치론에서 소비자로서의 거래 당사자들이 교환을 통해 얻는 자신의 만족도가 자신이 생산한 물건을 교환하는 결정적 동기가 되었듯이, 노동가치론에서는 생산자로서의 거래 당사자들 각자가 자신이 스스로 행한 노동에 근원적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 된다. 거래 당사자들이 각각 자신의 산출한 노동에 대해 균일한 수준의 근원적 애착을 가지고 있다면, 상호 간의 필요에 의한 거래 욕구가 작동하는 곳엔 어디에서든지 원초적인 교환적 정의의 관념도 함께 작동하게 된다. 즉 거래 당사자들은 동일한 노동량이 투입된 재화만큼 거래하려는 자연적인 성향을 가지게 된다. 예컨대, 갑이 아무리 도토리묵이 먹고 싶어서 을이 주어온 한 소쿠리의 도토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도토리를 따는데 한 시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다면, 힘들게 하루 종일 포획한 노루 2마리 중 잉여의 한 마리와 그 한 소쿠리의 도토리를 바꾸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


3) 효용가치론 입장에서는 총생산량 가치를 빵 4개와 같다고 표시하든, 물 8병과 같다고 표시하든, 800원이라고 표시하든 하등 상관이 없다. 빵과 물의 각각의 가치도 원 단위로 나타낼 필요없이 직접적으로 교환되는 다른상품의 양으로 나타내면 그만이다. 하지만 (맑스주의적)노동가치론에서는 가치는 곧 "노동"이고, 그것의 필연적인 표현형태는 화폐다. 따라서 빵과 물, 총생산물 모두 반드시 '화폐'로만 표현되고 교환될 수 있다. 

% 더 정확히 말하면, 화폐에 표준적으로 체화된 노동투입량이 된다.% 

% 마무리: 효용 가치론 입장에서는 표준적인 만족도의 함수를 가지고 있는 표준적인 소비자가 의제되어야 하며, 노동 가치론 입장에서는 각 영역마다 표준적인 경험과 생산시간에 따라 작업을 완수해 내는 표준적인 생산자가 의제되어야 한다. 효용 가치론에서는 교환이 이루어지게 되는 공통 분모는 상호간의 만족도의 일치인 반면, 노동 가치론에서는 각자의 노동량이 필요에 의해 평등하게 교환된다고 하는, 거래 당사자들 사이에 성립하는 원초적 교환적 정의 관념이다. 이 점을 확실하게 아는 것이  맑스주의 정치 경제학과 주류 경제학의 근원적인 분기점인 노동 가치론과 소외론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

% 덧: 그 외에 주류 경제학에서의 value 와 price maengun.egloos.com/177500  라고 하는 짧은 글도 참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