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사회 게시판
하킴님과 비행소년님의 댓글을 읽으면서 받은 인상인데, 제 느낌에 두 분은 대략 다음과 같은 주장에 공히 합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재벌 등이 저지르는) 독점이나 과점과 같은 상황과 거리가 점점 더 멀수록, 즉 시장에서 경쟁이 (이론상의 완전경쟁시장과 점점 더 가까운 방향으로) 보다 더 많이 일어나는 상황에 점점 더 가까워지면 질수록 사회 전체의 (경제적) 후생도 보다 더 늘어날 것이다.
위의 명제가 두 분의 생각을 올바로 전하는 명제인지 자신은 없지만 편의상 일단은 그렇다고 가정하고 이야기를 계속 진행시키겠습니다.
사실 저 역시 저런 입장에 '직관'적으로 끌립니다. 재벌로 대표되는 경제적 갑이 저지르는 갖가지 횡포와 그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시장경제의 경쟁구조 왜곡이 수많은 사회적 폐단을 낳는 주범이라는 명제에 '직관'적인 공감이 간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귀동냥으로 얼핏 들은 바로는 경제학에 차선(次v善)의 정리라는 것이 있다지요. 하킴님과 비행소년님의 생각에 동의가 되면서도 동시에 전 이 정리가 마음에 조금 걸려요. 두 분에게 흔쾌한 동의로 가는 길을 방해하면서 제 발목을 붙잡는 느낌이랄까...
이 정리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쉽게 소개한 이준구 교수의 글 일부를 여기 옮깁니다. (아래 박스 참고)
후생경제학이란 분야에 "차선의 정리"라는 유명한 이론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회 혹은 경제가 최선의 상태에 이르기 위해 n개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합시다. 어떤 이유로 그 중 하나가 충족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이 상황을 A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조건이 추가적으로 충족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 상황을 B라고 부르겠습니다.) 우리의 직관에 따르면 최선의 상태를 위해 충족되어야 하는 조건이 단 하나만 충족되지 못하는 경우가 추가적으로 하나가 더 충족되지 못하는 경우보다는 더 나은 상태일 것입니다. 즉 A가 차선(second-best)의 상태라고 판단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차선의 이론은 이런 직관이 틀릴 수도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A가 아닌 B가 차선의 상태일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일단 하나 이상의 최적 조건이 위배되면 위배되는 조건의 숫자와 후생상태는 관련이 없다는 뜻입니다. 즉 최적 조건 하나가 위배되는 상황보다는 거기에 추가적으로 다섯 개가 더 위배되는 상황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차선의 이론은 사회후생을 평가할 때 직관이 잘못된 판단에 이르게 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일단 하나 이상의 최적 조건이 위배되면 위배된 조건의 숫자를 셀 것이 아니라 case by case로 후생수준을 비교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http://jkl123.com/sub5_1.htm?table=board1&st=view&id=13145&fpage=&spage= |
사실 이 정리를 처음 접한 것은 수년 전 조지프 히스라는 캐나다 출신 철학자가 쓴 경제학 교양서,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 3장을 통해서였죠 (책 제목이 조금 그렇긴 합니다. 제 취향이 좀 이래요...). 며칠 전 그랬던 것처럼 저 책의 3장 일부를 여기에 타사打寫하면 좋긴 하겠지만 지금은 귀찮아서 도저히 못하겠고, 거기서 저자가 하는 말의 일부를 제 나름대로 요약해 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차선의 정리는 보다 더 시장경제다운 시장경제, 즉 자유방임주의적 혹은 신자유주의적 경제 이데올로기의 이론적 근거를 타격하는데 실로 강력한 정리이다. 일반균형 또는 완전경쟁 등을 실현하는데 임의의 수인 n개의 조건을 모두, 동시에 충족시켜야 한다고 한번 가정해보자. 우리의 상식과 직관에 따른다면, 이 n개의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지는 못하더라도 그나마 그 상태에 조금이나마 더 가까운 상태, 즉 n-1 개의 조건이 충족된 상태가 n-3 개의 조건이 충족된 상태보다 더 바람직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후생 경제학적 관점에서). 그러나 차선의 정리에 따르면 사태가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다. 경우에 따라 완전경쟁이 실현되기 위한 n개의 조건 중, n-3개의 조건만이 충족된 상태가 n-1 개의 조건이 충족된 상태보다 더 바람직한 사태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에서 실제로 일반균형 또는 완전경쟁을 실현시키는데 필요한 조건들을 모조히 충족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때 자본주의 이데올로그들은 흔히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 완전경쟁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그에 보다 더 가까이 가게끔 노력은 할 수 있다. n개의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기란 불가능하겠지만 n-1개의 조건이나마 충족시키도록, 보다 많은 민영화를, 보다 과감한 탈규제를, 보다 폭넓은 노동유연화를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차선의 정리가 일러주는대로, 완전경쟁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n개의 조건들을 현실에서 모두 충족시키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 n개가 아니라 n-1개의 조건들이나마 충족시켜보려는 노력들이 보다 더 나은 경제적 후생을 이끌어낸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n-1개의 조건들이나마 충족시키려는 저 노력들 (더 많은 민영화, 보다 과감한 탈규제, 보다 폭넓은 노동유연화)이 오히려 n-3개의 조건만(이를테면, 민영화와 탈규제는 이뤄졌지만 경직적인 노동시장)이 충족된 상황에 비해 더 나쁜 결과를 낳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 정리가 처음 발표되었던 50년대 이후 주류 경제학자들 가운데 자본주의 이데올로그 성향이 강한 학자들은 이 정리를 논박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러나 모조리 실패로 끝났다. 그 이후 '주류' 경제학계의 반응은 다음과 같이 정리되었다. 철저한 무시와 침묵. |
본업이 철학인 조지프 히스가 경제학의 저 정리를 얼마나 제대로 설명했는지, 또 제대로 설명했다 하더라도 제가 그걸 얼마나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제가 위에서 요약을 제대로 한 것이라면 이런 '의심' 정도는 한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1. 보다 더 시장경제다운 시장경제를 주장하는 입장이 아마도 혹은 대개는 옳겠지만, 보다 바람직한 시장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과 자본주의 체제의 합리화를 위한 이데올로기, 이 두 영역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고 있는 다소 위태로운 입장은 혹시 아닌가?
2. "주류" 경제학계의 이론적 관심과 흐름이 이데올로기에 좌우되는 정도는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클지도 모른다.
문득 생각나서 한번 끄적여 봤습니다.
참고
Theory of the second best 위키백과 : http://en.wikipedia.org/wiki/Theory_of_the_second_best
What economists don't want you to know : http://business.highbeam.com/416338/article-1G1-30145064/economists-dont-want-you-know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 :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053274
Economics Without Illusions: Debunking the Myths of Modern Capitalism http://www.amazon.com/Economics-Without-Illusions-Debunking-Capitalism/dp/0307590577
""" 절반은 동의하는데 나머지 절반이 마저 채워져야 한다.
일베는 철저히 경상도 + 새누리 (박정희-박근혜)야.
(경상도-새누리)를 철저하고 가열차게 까야하는데, <경상도>라는 절반만 때리니 역공당하지.
결국 무슨 말이냐면, 박근혜 좀 까라고."""
http://board-3.blueweb.co.kr/board.cgi?id=kroh89&bname=SkynesPangPang&action=view&unum=4446&page=1&SID=9f362565e37a5ebe28d66efcbfb0a4c8
차선의 정리는 생산가능곡선이라는 파레토 최적상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한 사회의 여건이 그러한 사회적 효용함수의 최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경우 계속 파레토 최적상태를 고집한다면 사회적 효용상태가 매우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걸로 아는데.
그리고 떡밥님이 말씀하셨던 우선 사회적 효용함수가 정의되어야 하는데 이건 기 사회의 가치관마다 다른다는 것을 전제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예를 들어 평등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평등주의 사회후생함수라고 할때
완전경쟁시장을 위해 자유화를 해 가면 이 평등주의 사회후생함수를 매우 후퇴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파레토최적을 조금 포기하는 차선이 평등주의 사회후생함수를 달성하는데 더 낫다는 것이죠.
쉬운 예로 설명하면 우리나라 극단적으로 평등이 깨진 상태에서만 파레토최적을 충족할 수 있는 조건이라면 파레토최적이 아닌 점이 오히려 사회전체적인 후생은 더 높을 수 있다는 거죠.
어떤 상품을 완전경쟁시장에 맞겨두면 가장 효율적인 생산 소비과 소비가 가능하지만 이게 극단적 불평등을 야기해 사회전체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경우(즉 국민들의 바라보는 함수가 그런 상태를 오히려 싫어하는 경우) 완전경쟁을 좀 더 완화하는게 사회 전체적인 후생은 더 좋을 수 있다 머 이거죠.
생산의 효율성(파레토최적)과 사회후생의 경우 다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주류경제학에서 완전경쟁이 효율성이 제일 높다고 말하긴 하는데 그게 형평성도 보장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 않나요? 결국 형평성 문제는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고 그 안에서 정의될 수 밖에 없다고 보거든요.
재벌로 대표되는 경제적 갑이 저지르는 갖가지 횡포와 그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시장경제의 경쟁구조 왜곡이 수많은 사회적 폐단을 낳는 주범이라는 명제에 '직관'적인 공감이 간다는 말이지요.
출처(ref.) : 정치/사회 게시판 - 보다 더 시장경제다운 시장경제는 정말 더 나은가? - 차선(次善)의 정리 (Theorem of the Second Best) - http://theacro.com/zbxe/?mid=free&document_srl=814504&comment_srl=814739
by minue622
---> 만약 사회적 후생함수가 어떤 평등을 바라는 평등적 후생함수라면 재벌체제는 평등적 후생함수에서는 떨어지는 체제죠. 나아가 효율성의 관점에서도 떨어지는 체제라고 주류경제학에서 봅니다.
만약 차선의 정리를 적용하려면 재벌체제가 평등주의 함수에서도 매우 좋다고 평가받는 것을 전제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저기다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완전경쟁시장의 경우 불평등이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평등한 상태에서 완전경쟁의 효율성을 추구하면 생산에서의 효율성은 달성하지만 전체적인 사회후생함수는 감소할 수 있게 됩니다.
이건 복지체제가 잘 구축된 상태에서 좀 효율성을 높혀 볼라고 완전경쟁으로 가면 사회 전체적으로는 더 불행해진다는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재벌들이 시장을 장악한 그런 불평등한 상태에서 완전경쟁으로 효율성을 보다 더 달성할 수 있고 나아가 평등도 높힐 수 있다면 사회전체 후생함수에서도 오히려 더 좋은 케이스 이죠.
미뉴에님은 경제학 내공이 보통이 아니신 것 같아요. 저는 넘 몰라서 이 이론에 대해서 뭐라 대답을 못하겠네요.. 저는 경제학자라서가 아니라, 그냥 살아본 경험으로, 미국과 한국을 비교하면, 자본주의가 더 발달한 미국이 더 살기 좋은 거 같아서요. 약자면 약자대로, 강자면 강자대로.. 제가 말하는 강자는 돈많은 사람이라기 보다, 똑똑한 사람, 재주가 많은 사람, 뭐 그런 뜻입니다. 약자는 장애인, 외국인, 유색인종, 뭐 특별한 재주없는 그런 사람들.. 돈많은 사람은 한국이 살기 좋은 것 같아요. 언젠가 나왔던 얘기인데, 명품 소비가 많은 것이, 잘산다는 시그널을 보내면 얻게 되는 이익이 뭔가 많아서가 아닌가 그런 얘기, 언젠가 피노님이 한 거 같은데, 잘살아서 편한거 말고도, 잘사는 걸 보일 때 가지게 되는 이익도 있어서, 잘 사는 사람들에게는 한국이 더 좋은 거 같아요. 그래서, 미국과 한국, 딱 두개 샘플링을 한 얄팍한 경험으로는 자본주의가 더 발전하는게 좋지 않나..그런 생각.. 물론 미국에서 중산층이 더 두터웠던 2000년대 이전이 지금보다 더 살기 좋았다고 말들 많이 하지요. 이건 또 엄청나게 토론하는 주제이니 여기서 패스하고.. 어쨌거나 2013 년의 미국과 한국을 비교하면, 약자, 가진것이 자기 인적자본밖에 없는 사람에게는 미국이 더 살기 좋더라... 미국이 한국보다 나쁜 것, 의료보험제도. 전혀 경제학자 대답은 아니구요.. 유럽이 그렇게 살기 좋다는데, 유럽은 외국인을 안받아주지 않나요? 외국인에게는 살기 좋은 나라는 아닐듯..
의료 민영화를 해서 의료시장에서 완전경쟁 효율성을 달성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사회적 평등 후생함수에서는 매우 안좋게 되는 케이스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현재 한국의 의료부분에서 현재의 상태가 그런데로 사회적 평등 후생 함수에서 좋은 경우 무리하게 의료부분에서 민영화를 하게 되면 비록 효율성은 달성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회전체적인 만족을 나타내는 후생함수에서는 떨어질 수 있다.
그니까 의료복지로 인해 국민들의 어느정도 싸게 의료시스템을 이용하고 있어서 만족하는데도 굳이 그걸 민영화해서 완전경쟁을 시도하면 의료부분에서 GDP성장은 높아질 수 있지만(생산효율이 좋아짐) 복지체제가 무너져서 사회 후생적인 관점에서는 더 나빠질 수 도 있다.
반면에 휴대폰의 시장을 완전경쟁시장으로 도입하면 현재 독과점 형태보다 더 효율성이 좋아질 것이다. 반면 평등적인 문제는 별반 차이가 없다면 완전경쟁으로 가는게 좋겠죠.
머 그런게 차선의 정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네요.
대단히 훌륭한 지적이시네요. 미뉴에님의 박학하심에 대해서 놀랄 따름입니다.
Theory of the second best
저도 들어본 적만 있는데, 제가 후생(공공) 경제학 (Public Economics) 전공이 아니라서 현재 그쪽 분야에서 이것에 대해서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말씀 드릴 수 있는 사실은 이 theory of the second best에 대해서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제가 아는 한에서는) 금융경제학 쪽은 전혀 관심이 없고, 최근의 거시경제학쪽도 별로 하는 말이 없는 것으로 압니다. 좀 참담한 이야기로 들리시나요? 저도 뭐 별로 할 말이 없어서 죄송할 지경이네요. 다만 Public Economics 전공자들이나 정치경제학 전공자들은 뭔가 더 할 말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가지 합리적인 수준에서 현대 경제학자들을 방어해보자면, 아마 이 이론에 대해서 이미 오래전에 이론이 정립이 다 끝나버려서 학계에서는 더 이상 붙잡고 있지 않을 뿐이고, 현실 참여하는 경제학자들이 이것을 간과하고 있거나 또는 이데올로기에 물든 정책 입안자들은 애써 외면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 정도... ]
그리고, 위에 떡밥님이나 레드문님이 써놓은 말이 거의 맞다고 봅니다. Welfare를 무엇으로 정의하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게 되는 점이 있습니다.
제 생각을 약간만 추가해보자면, Theory of the second best은 어떻게 보면 좌파, 우파 가릴 것 없이 오용되기 딱 좋은 이론인 것 같습니다. 잘못하면 아무것도 하지 말자라는 쪽으로도 말하지 않겠어요.
예를 들면 어떤 특정한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불합리(?)한 것을 경제에서 발견했다고 합시다. 이것을 바꿀려고 새로운 시도를 할 때는 차선의 정리의 입장에서 보면, 그럼 현재 시장의 조건에 대해서 전부 다 기술해봤냐, 완전경쟁시장이 아닌데 어느 부분에서 완전 경쟁이 아니라는 것이냐, 자 그렇다면 여기다가 지금 새로 바꿀려고 하는 조건을 추가해보고 정량화를 다 시켜보아라. 그래놓고서 몇가지 보여줬다고 칩시다. 흠...이게 다야? 이 복잡한 세상에 이것말고 다른 부분도 있는 것 같애. 여전히 못 믿겠는데.... 이렇게 나가기 시작하면 골 때리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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