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시절, 쟝르에 관계없이 글을 써대기는 했지만 영화 평론에 대하여는 두편인가 세편 밖에는 쓰지 않았다. 그 이유는 '직관'(영화에도 직관이라는 표현이 적당한지 모르겠지만)을 하지 않아서 내가 보는 영화는 '철지난 영화'라는 것이 첫번째 이유였고, 그보다 더 큰 이유는 패거리주의 작렬하는 쓰레기 영화평론가들(이 부분에 대하여는 각 영화평론가들이 어떤 패거리를 형성하는지 분석해서 올린 적이 있다)보다 훨씬 뛰어난 영화평을 올리는 '전문가 이상의 전문적 시각'으로 평을 하는 블로거들이 득실득실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영화평에 대하여는 나는 관객이었지 무대 위에 올라가 떠드는 연사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런 내가 영화평을, 그 것도 종영된지 일년이 지난 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케이블 TV에서 보고 뒤늦게 쓴 적이 있다. 그 것은 바로 패거리주의 작렬하는 쓰레기 영화평론가는 물론 '전문가 이상의 전문적 시각'의 영화평을 하던 블로거들이 '공통적으로 놓친 맥거핀'이 있었기 때문이다.


'친절한 금자씨'는 알려진대로 아가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의 줄거리만 참조된 것이 아니다. 그 영화에는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사나이'라는 추리 소설도 참조되었을 뿐 아니라 아가사 크리스티가 창조한 회색뇌세포 '에류클 포와르'가 죽는 '커텐'.... 나아가 아가사 크리스티의 수많은 추리소설 장,단편에 대하처럼 흐르는 '단죄할 수 없는 범죄'까지 참조하였다.


영화를 본 분이라면 생각해 보자. 그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과 같은 '살해 장면'에서 왜? 가장 큰 피해자인 금자씨는 칼을 들지 않았을까? 그 장면은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의 '살해 장면'과 상치한다.



내가 뜬금없이 영화평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 것은 노무현이 졸지에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에서 피살자와 같이 이 사회가 모두 가담해서 그를 죽였다는 주장들이 떠돌기 때문이다.


이런, 노빠들이 그런 상상력이 있었다니. 감탄한다. 맞다. 노무현은 오리엔탈 특급살인의 피살자처럼 살해되었다. 그런데 역시나 '팩트는 나의 적, 진실은 우리의 적'이라고 굳세게 믿는 노빠답게 하나의 팩트를 부인하고 있다. 그 것은 노무현이 저지른 범죄가 오리엔탈 특급살인의 피살자가 저지른 죄처럼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은 애써 무시한다.



이런 노빠들의 얼척없는 주장은 '노무현이 왜 자살했는가?'에 대한 진지한 의문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그렇다. 노무현은 그냥 죽은게 아니다. 추리소설 '모두가 죽이고 싶었던 여자'의 주인공처럼 그는 죽음을 택함으로서 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을 그를 죽인 범죄인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정리하자면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서처럼 모두가 '노무현을 죽이고 싶었지만' '모두가 죽이고 싶었던 여자'에서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자신을 죽이려고 안달난 사람들을 오히려 곤궁에 처하게 만든 것이 노무현이 죽은 실제 이유와는 관계없이 '정치공학적으로 해석이 된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과 '모두가 죽이고 싶었던 남자'라는 도착적 진영주의와...... 이제 '백골이 진토되어 혼백유야무' 상황에서도 실체없는 노무현 정신과 정신병이라고 밖에는 해석이 안되는 시체놀이....... 그 도착적 유희의 끝에 일베가 있다.



노무현, '모두가 죽이고 싶었던 남자'


'정치공학적으로 해석하자면' 노무현은 죽기 직전 자신의 자살 때문에 고통받을 이 사회, 그러니까 '모두가 자기를 죽이고 싶었던 이 사회'에 대한 저주의 미소를 짓고 벼랑으로 떨어졌는다는 것이다.



죽은 자를 너무 희롱한다고? 맞다. 제발 좀 노빠들의 저 '시체애호증'에 가까운 '시체놀이' 좀 그만하게 좀 해달라. 정말, 진중권의 '시간'에서 묘사된 장면보다 더 변태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저 시체애호증 환자 노빠들 말이다. 그들이 시체를 희롱하는데 옆에서 장단을 맞추어 주지는 못할 망정 '숙연한 모습으로 꾸짖는다는 것'은 마치, '막 크리넥스에 손이 가려는 순간' 방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너, 뭐해?'라고 하는 것과 같으니 말이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