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강님이 재밌는 글을 올려주셨네요. 저도 한 번 슬쩍 끼여들어 봅니다.

 흐강님 왈,
 
디지털 카메라나 디지털 기기들은 시간이 지날 수록 성능은 좋은데 가격은 싸게 나옵니다
  투입된 노동량은 같은데 왜 효용성이 더 좋은 카메라를 더 싼 가격에 내놓을 수 있나요 "


1.


 근데 <디지털 카메라가 시간이 지날 수록 성능이 좋은데..가격은 싸게 나오는게> 맞나요? 제가 가지고 있는 소니 a55 dslr 카메라가..제가 삼년 전에 샀을 때에는 거진 90만원 대를 줬던 것 같은데..지금 구글링을 해보니 신품 기준 평균가 76만원, 최저가 47만원 ㅠㅠ 에 거래되고 있네요. 제 dslr 카메라 가격이 폭락한 것은 맞지만, 그를 대체하는 신종 보급기가 이미 두 대 더 나와버린 뒤라서..지금 그 라인의 최신 보급기가 a57 인데, 이 놈은 평균가가 100만원 대네요. 이걸 보면 성능은 좋은데 가격이 싸게 나오는게 아니라..제품 성능의 향상 속도가 일정하다면 가격대는 일정 수준에서 유지된다는게 더 진실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이것을 좀 더 일반화 해보면, 기술 발전의 속도가 일정하다면 해당 제품군의 가격대 역시 일정하게 유지가 된다는 거지요.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를 끄는 사실이 한 가지가 있는데, 제 애기인 알파 55가 비록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dslr 바디계에서 똥차 취급을 받게 되겠지만 ㅠㅠ...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제품의 생산이 계속된다는 전제하에서는 신품의 가격이 어느 한도 이상으로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컨대, 지금 제 dslr 의 가격이 최저가 47만원이라는 헐값에 팔리고 있지만...이 가격이 지금보다 더..예컨대 20만원 이하로 곤두박칠 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중고거래가 아니라 생산자가 계속 이 제품을 시장에 새로 내놓을 용의가 있을 때를 전제로 한 이야기 입니다.) 

 제 알파 55가 생산될 수 있는 최소의 가격... 이 가격을 가정할 수 있다면...이 가정된 가격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것을 저는 기술력이라는 변수가 미니멈으로 줄어든, 한마디로 말해 기술력이 제외된 노동 투입량으로만 결정되는 제품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가치즉 한 제품의 생산의 마지노선을 이루는 이 가치가 우리가 경험적으로 추측할 수 있는.. 순수하게 그 제품 생산에 투하된 표준적 노동량(즉, 다시 말해 노동시간) 에 대응하는 그 제품의 경제적 가치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3. 

우리가 보통 노동 가치설을 이야기할 때에 상품의 가치 = 그 제품의 생산에 들어간 노동 시간 = 그 상품의 가격이라고 보게 되면 노동 가치설이 틀린 이론이라고 쉽사리 단정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노동 가치론에 들어가 있는 아이디어를 좀 더 유연하게 적용해 보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아직 화폐가 없던 시대에, 서로가 가진 물건을 교환하는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어떤 야만인이 자기가 하루 종일 걸려 잡은 노루 2 마리를, 한 시간 정도 돌아다니면 모을 수 있는, 한 포대의 도토리묵 부대와 교환하려고 할까요? 이 야만인이 아무리 도토리묵이 먹고 싶다고 해도, 섣불리 훨씬 더 많은 노동이 투입된 자신의 노루 고기 두 마리와 바꾸려고 할까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의 원초적인 경제생활을 이루는 교환 행위 안에는 이처럼 원초적인 정의 (교환적 정의라고 부르는) 의 관념이 들어가 있는 것이고, 바로 이 원초적인 정의의 관념에서 우리의 경제 생활을 생각해 보는 것이 노동가치론의 출발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가치론을 처음 설파한 사람은 맑스도 아니고 아담스미스도 아니고 아리스토텔레스..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교환 경제를 영위했던 원시 인류 전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관련된 이야기는 자본론 1권에서 제일 재밌는 부분이니 흐강님도 나중에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4. 

물물 교환 방식으로는 여러 모로 복잡 다양해 지는 교환의 욕구를 제대에 충족시킬 수 없었겠죠. 이에 즈음하여 인류는 자연스럽게 물품 교환을 더 원활하게 할 수 있는 단일한 척도를 고안해 내게 됩니다. 그래서 생겨난게 바로 화폐입니다. 물품 대 물품의 거래 관계가 물품 대 화폐의 거래 관계로 대체되게 되면서, 처음으로 '상품'의 관념이 생겨나게 됩니다. 즉, 화폐로 표시되는 가치를 갖고 있는 물건이 상품입니다. 그럼 여기서 화폐로 표시되는 가치가 뭘까요? 우리 원시인들의 교환 욕구..'평등한 교환' 욕구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우리의 원시인은 아무리 자기가 도토리묵이 먹고 싶다고 해도 자기가 피땀흘려 가며 하루 종일 걸려 잡은 노루 두 마리와 맞바꿀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아무래도 억울한 것이지요. 노루 두 마리와 바꾸느니 차라리 피곤해 죽을 지경이라도 한 시간 더 들판에 나가고 말겠다고 다짐합니다. 여기서 원시인이 비교하고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의 노동양(=노동시간)과 타인의 노동양인 것이지요. 즉 교환적 가치의 원초적인 척도 (여기서 이것이 유일한 척도라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는 그 물건의 생산에 투입된 노동량, 노동시간인 것이고, 이 물품 대 물품 거래 관계에서 적용되었던 노동량=노동 시간이라는 척도는 물물 교환 관계가 상품 화폐 관계로 바뀐 상태에서도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습니다. 


5. 

이것이 제가 이해하는 노동 가치설의 기본 아이디어 입니다. 노동 가치설은 이렇게 어떤 천재들, 예컨대, 맑스나 아리스토텔레스, 아담 스미스 같은사람들 에게서 갑자기 고안된 아이디어가 아니라 교환적 정의에 관한 인간 스스로의 불가해한(unscrutable) 정의관(더 이상 그 이유를 캐물어 들어갈 수 없다는 의미에서 불가해한) 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점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현상의 가치중립적 기술을 목적으로 하는 강단 경제학의 사유 방식과 어떤 실천적인 요구로부터 출발하는 정치 경제학적 사유 방식의 차이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품의 가치과 가격을 분리해서 말하는 이유는..이렇게 기본적으로 (단기적인) 경기 변동의 상황과는 독립적으로 (절대적으로 독립적인 변수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하이퍼 인플레이션 처럼 표준 노동량의 척도로서의 화폐의 기능 자체가 마비되는 경우에는 화폐를 통해 필요 노동량을 계산하기가 곤란해 지겠죠) 존재하는 상수가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이코노미스트들이 실물 경제와 금융 경제 부문을 분리해서 보는 것과 비슷하게, 또 금융 경제 부문에 낀 거품을 이야기할 때 어떤 실체와 가상을 나누는 것과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즉, 상품 자체에도 그 상품이 속한 가상의 세계(즉 시장에서 거래되는 실물의 가격)와 실질의 세계(그 상품이 생산되기 위해 필요한 절대적인 노동의 양과 기술 집적의 정도) 를 구분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특수한 상품으로서의 노동력(노동이 아닌! 맑스가 그렇게 강조하는 부분이죠!) 에 대해서, 그 노동력이라는 특수한 '상품' 이 어느 조건에서 화폐와 교환되는 것이 정당한 교환인지 물어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제 어느 조건에서 화폐와 교환되는 노동력이 '착취되는 노동' 인지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좀 더 나아가 볼까요? 노동 가치설은 왜 근로자의 시간당 최저 임금이 설정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훌륭한 이론적 근거를 마련해 주고, 피노키오님도 지적해 주셨던 것처럼, 왜 한 사회에서 더 많은 부를 획득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양의 세금을 물려야 하는지에 대해 더 적절한 근거를 마련해 줍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때때로 직/간접적으로 피부로 느끼는 '착취'라는 현상이 과연 무엇이고, 이 현상을 정의하고 기술하는 하나의 (유일한 도구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기술적인 틀을 마련해 줍니다. 제가 과문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강단 경제학에서 여태까지 착취라는 사회 현상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시도가 있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반면 맑스 버젼의 정치 경제학은 이미 한 세기도 훨씬 전에 착취현상을 정량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학문적 틀을 만들었지요. 물론 이 틀이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이 계측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죠. 그러나 설사 계측 방법이 틀렸다고 해도 그 착취 현상 자체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떤 도덕적 요구, 우리의 원초적 정의관으로부터 출발하는 경제학을 외면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우리의 집단적 경제 생활이 우리의 (적어도 현재까지는 다수의) 삶의 족쇄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6. 

보통인들의 사고 속에 '순수' 경제학이 아닌, '정치' 경제학적인 사고, 즉 모종의 원초적인 정의관에서 비롯되는 경제적인 사고 방식이 일상 생활 속에 얼마나 뿌리깊게 스며들어 있는지..쉽게 설명해 주는 책이 이정전 교수의 '두 경제학 이야기' 입니다. 여기엔 저보다 맑스 경제학을 더 오래 공부하신 분들이 계시지만, 제가 맑스 경제학을 포괄하는 일반적인 정치 경제학 입문서로 단 한 권을 추천하라면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덧붙여, 맑스주의 경제학에 대해 조금 더 궁금하시다면 다른 입문서들보다는..맑스 자본론을 천천히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무척 재미있고, 웅혼하며, 위트에 가득차 있고 거대한 사유의 느낌을 자기 안으로 가져올 수 있는, 세상에서 몇 안되는 극히 희귀한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