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학설이 과학이 되려면 첫째도 둘째도 입증이 가능해야 합니다.
노동가치만으로 모든 상품의 가치를 설명하고 잉여가치라는 괴상한 논리를 주장한 자본론은 입증에 실패했습니다.
첫째, 노동가치 외의 요인으로 가격을 형성한 부분을 잉여가치로 정의하였으나, 유일한 토지의 가격형성 과정이나 예술품이나 희소가치를 지닌 재화가 특별한 가격을 형성하는 과정 등은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둘째, 이 이론을 바탕으로 운영된 국가는 거의 모두 사망선고를 받았거나 사망직전 상태입니다. 북한 정도가 아직은 살아 있으나 북한에서조차 내부용 화폐와 외부용 화폐가 따로 존재할 정도로 화폐가치의 간격이 큰 것이 현실입니다. 그만큼 노동가치를 기반으로 한 경제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의미기도 하죠.

이처럼 하나의 논리가 입증에 실패하면 그 논리는 폐기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더구나 경제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 즉 '수요와 공급'은 원리(principle)이라고 부르지만, 수요를 가변 상수로 못박고 공급만을 변수로 다룬 노동가치설은 이름그대로 이론(theory)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입증조차 못했으며 모든 시도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입증이 불가능한 이론도 이론이라고 주장한다면 창조과학도 이론일 것이므로, 도무지 창조과학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이러한 점에서 자본론과 성경은 매우 닮았습니다. 기독교와 자본론의 유사성은 저의 다른 글을 참고해주세요. (아래 링크된 내용과 연결을 하고 보셔야 제대로된 한 문장이 될 거 같습니다만, 중복의 의미가 있으므로 그 내용을 굳이 옮겨오진 않았습니다.)

수정자본주의에 의거한 현대 사회에서 복지의 개념이 본격 대두되자 그동안 변방으로 밀려났던 맑스주의자들이 부활을 꾀하고 있습니다만, '이웃사랑'을 실천함에 있어 반드시 기독교의 논리를 빌려와야 실천 가능한 것이 아니듯, 복지의 개념 또한 노동가치를 소중하게 여긴 자본론에 의해서만 이뤄질 수 있는 개념이 아니기에, 이 논리의 부활은 기독교만이 이웃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고 헛소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할 것입니다.

이미 공산주의를 이행해왔던 거의 모든 국가가 실패를 고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실패한 논리를 가지고 관속의 시체를 꺼내듯 부활을 획책하는 부류들의 목적은 또다른 정치적 음모에 불과한 것이므로, 최소한 자신을 극좌파가 아닌 자유주의자나 사민주의자라고 생각한다면 극히 이 논리를 경계해야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들의 신앙적 믿음을 깨부술 방법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종교적 광신교도라고 해서 병원에 집어넣을 순 없듯 이들이 광신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하여 달리 만류할 방법은 없습니다.
창조과학을 들고 나온 일부 기독교 신도들과 학문적 논쟁을 해보신 분들이라면 느끼셨을 겁니다.
이들에게 있어 이론은 말장난을 위한 꼬투리에 불과하고 실제론 모든 토론의 끝을 정신승리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아직 현대 물리학에서조차 밝혀내지 못한 미시세계의 미스테리를 창조과학은 간단히 결론을 내줍니다. 
아직 현대 경제학에서 밝혀내지 못한 완벽한 가격 결정의 원리와 가치의 문제를 이들 맑스주의자들은 간단히 결론을 내줍니다.
이처럼 신앙을 가진 자들에겐 불가능이란 없는 법이죠.

제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맑스주의 교도들을 회유시키겠다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자본론 등에 관심을 가진 일반인들이 과학을 빙자한 신앙이라는 마약에 빠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에서 써 본 것입니다.
그리고 맑스근본주의자들은 이 글을 그냥 패스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