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가 노동가치설을 말한 이유에 대해 오해가 있는 것 같아서 한마디만 거든다면..

노동가치설은 노동자가 상품 생산을 통해 발생한 이익을 다 갖겠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죠. (주류)경제학 자체가 봉건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 사회의 맹아가 싹트기 시작하면서 그 당대의 경제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나온 것 처럼, 노동가치설 또한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 사회가 고도화 되어가는 그 무렵의 경제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마르크스가 정교화시킨 "그 당대의 이론"입니다.(=아시겠지만 노동가치설 자체는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나, 리카르도도 마찬가지로 주장했었죠.)

얘기에 앞서, 맬서스와 리카르도의 논쟁 부터 떠올려 보죠. 인구론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맬서스는 지주의 아들(직업은 목사)입니다. 본인도 평생 지주계급의 정체성을 갖고 살았던 사람이죠. 그런데 자본주의적으로 사회가 변해가면서 새롭게 부상한 자본가들이 사회의 부를 쓸어가는 것을 지켜봅니다. 예전에는 장인들이 가내수공업으로 물건을 만들었는데, 언젠가 부터 메뉴팩토리같은 게 생기더니 그안에서 뚝딱뚝딱 뭘 만들긴 하는데, 그 물건 하나 만드는 데도 무슨 자본가와 임노동자로 역할이 구분되고, 그 만든 물건 팔아서 번 돈도 각자가 갈라먹기를 하는 겁니다. 근데 자본가 계층은 점점 부유해지는데 반해, 임노동자들은 부유해지긴 커녕 하루가 다르게 피골이 상접해 가는 겁니다. 그래서 촉이 예민한 맬서스(=마르크스 보다 한세기 전의 사람이죠)가 공황을 예언합니다. 이 새로운 체제를 한번 봐라! 자본가들은 점점 부유해지는데 얘네들은 번돈을 쓰지 않고 끝없이 쌓아두기만 한다. 반면 노동자 애들을 봐라. 얘들은 소비를 하고 싶어도 할 돈도 없는 찌질한 애들이다. 근데 자꾸 물건만 만들어내고 있으니 이거 소비할 사람이 없어서 자본가들도 줄도산하고, 결국 공황이 올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 맬서스는 그 생산된 많은 물건들을 소비해 줄 여력이 있는 계층이 지주 밖에 없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자본가 너네가 지대를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지불해서 우리들 지주들의 부를 보장해 줘야만 이 체제가 유지가 된다. 그래야 너네도 사는 거다!라고..  

그에 앞서 맬서스는 인구론도 발표했죠. 우리가 익히 아는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얘기. 근데 사회에 대한 이 경고도, 알고보면 노동자 계급의 번식을 우려한 아주 속깊은 뜻이 있는 말이었습니다. 소득재분배? 아니 미쳤나? 안그래도 도덕적으로 열등해서 성욕을 절제도 못하고 먹고 싸대기만 하는 짐승같은 놈들이 노동자 애들인데 얘네들한테 소득을 많이 보장해줘서 어쩌겠다는 건가? 얘네들이 먹고 살만해져서 애들을 막 싸질러 놓기 시작하면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느는데 인구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서 결국은 다 죽는 거다. 그러니 노동자 애들에게 소득을 많이 주면 절대 안된다. 또 가급적 한곳에 빽빽하게 몰아넣고 집터도 가급적 비위생적인 곳에다 짓게 해서 전염병이든 뭐든 창궐해서 얘네들이 알아서 죽어나자빠지게 만들어야 한다..이 아주 혁명적인 얘기를 그럴듯하게 써놓은 게 그의 유명한 "인구론"이었죠. 그리고 이 책은 유럽의 지성계를 휩쓸며 이후의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반면 리르카르도는 자본가 계급입니다. 그 자신이 증권중개상으로 돈을 크게 번 사람이었죠. 근데 리카르도의 눈에는 오히려 지주계급이 사회의 부를 부당하게 빨아가는 것 처럼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차액지대론"이라는 유명한 이론을 발표했죠. 이건 경제학 교과서에도 자주 소개가 되는 건데, 요약하면, 지주야 말로 손안대고 코푸는 자본주의 체제의 궁극적인 승자라는 겁니다. 

그당시에는 농업자본가들이 많았습니다. 지주에게 땅을 빌린 후 땅을 경작할 노동자를 고용하고 그 땅에서 나오는 생산물로 이윤을 남기는 식이었죠. 근데 자본가가 지주에게 빌리는 땅값이 천차만별입니다. 좋은 땅 부터 1급지, 2급지, 3급지..로 등급이 나눠지고, 비옥한 땅일수록 지주에게 더 많은 지대를 지불해야 합니다. 대신 좋은 땅을 빌리면 그만큼 소출도 크죠. 그래서 더 많은 지대를 주더라도 1급지를 빌려서 남기는 이문이 크다면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1급지를 빌릴 겁니다. 가령 1급지는 지대가 500원인데 소출이 1500원입니다.(=이윤이 1000원) 반면 2급지는 지대가 300원인데 소출이 1000원입니다.(=이윤이 700원) 그러면 자본가들은 2급지 대신 1급지를 빌리기 위해 가격경쟁을 하겠죠. 550원! 600원! 지대를 더 내겠다는 사람들은 자꾸 나오고, 그렇게 지대만 잔뜩 올라가서 결국 지대가 800원까지 오르게 되면, 그때는 1급지를 빌리나 2급지를 빌리나 남기는 이문은 700원으로 똑같아 지죠. 그렇게 경작지들 마다 남길 수 있는 이문은 최저가로 수렴해가는 반면, 지대는 그에 비례해서 커져만 갑니다. 결국 지주는 가만 앉아서 자본가들이 가져가야 할 부를 땅값으로만 빨아간다는 거죠. 그래서 결국 부가 자본가에게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고 지주만 득을 본다고 하소연 한 게, 차액지대론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리카르도는 당시 지주와 자본가의 이해관계가 크게 갈렸던 곡물법 논쟁에서도 맬서스와 치열하게 맞짱을 뜹니다. 차액지대론을 상기하라! 지금 지주놈들이 부를 부당하게 빨아가고 있으니 관세 부터 철폐하고 당장 자유무역을 실시해야 한다. 지대로 인해 올라간 곡물값은 자유무역으로 떨어뜨리고 부당하게 착복한 지주의 부도 공평하게 분배해야 한다! 그래서 그 자유무역의 정당성을 강변하기 위해 착상한 것이 바로 "비교우위 이론"이었죠. 너네들 자유무역하면 절대우위에 있는 국가만 무조건 득보게 될 것 같지? 그게 아니야. 절대열위에 있는 국가와 절대우위에 있는 국가가 무역을 해도 각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부문에 올인해서 그 품목을 수출하고, 나머지 품목들은 상대국가로 부터 수입을 하면 서로가 윈윈하는 게임이 된다는 것, 주류경제학을 정초한 이 비교우위의 무역이론도 사실은 자본가 계급과 지주계급의 이해의 갈등속에서 나온 "계급투쟁"의 산물이었던 거죠. 

그럼 리카르도는 당대의 노동자 계급의 미래를 어떻게 점쳤을까요? 리카르도 역시 노동 계급은 종국적으로 시궁창에 빠질 수 밖에 없다고 내다봤습니다.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만큼 일할 사람은 넘쳐날 거고 그러니 임금이 오를 유인은 없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성능좋은 기계들 때문에 거리에는 실업자가 넘쳐날 것이니 노동자의 임금이 오를 수가 없다고 본 것이었죠. 그래서 노동자들의 임금은 언제나 안죽을 만큼만, 언제나 최저생계비 수준으로 고정되어 있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반세기 후, 마르크스가 세상에 출사표를 던지는 그 순간 까지도 그대로 적중하고 있었죠.

근까 이런 겁니다. 지주는 땅만 빌려주고 가만 앉아 놀면서 어마어마한 돈을 벌고 있고, 자본가는 생산수단만 제공했는데 큰 돈을 벌면서 갈수록 더 부자가 되가는 반면, 노동자 계급은 앞집 뒷집 할 것 없이 가난만 대물림 하고 있는 겁니다. 10살도 채 안된 꼬마애들 까지 포함해서 식구들이 일터로 총출동해서 하루종일 죽어라 일만 하는 데도 부유해지기는 커녕 삶이 갈수록 피폐해져 가는 겁니다. 정작 사회가 굴러가도록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노동자 계급인데 그렇게 만들어진 부는 노동자 계급을 제외한 나머지가 다 가져가는 현실, 그런데 왜 현실이 이런 식으로 굴러가는지 아무도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는 겁니다. 세이니 마셜이니 왈라스니 파레토니..일군의 학자들이 마르크스 전후로 태어나서 그럴듯한 좋은 말들을 많이 하고 갔죠. 거진 다 이런 내용입니다. 상품을 만드는 과정에는 반드시 생산요소가 투입되어야 한다. 노동, 자본, 지주..이 모두가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각각의 몫으로 기여를 하고 있다. 그러니 노동자가 임금을, 자본가가 이윤을, 지주가 지대를 가져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경제학의 법칙이다!     

근데 현실은 그 당연한 법칙이 적용이 되어 지주는 지대로, 자본가는 이윤으로 한없이 부유해지는데, 노동자는 임금을 받으면서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겁니다. 사회의 부가 노동자에게만 지극히 불공평하게 분배되고 있음에도, 당대의 그 어떤 경제학자도 이 불공평과 부정의의 문제를 그대로 직시하는 사람이 없는 겁니다. 한결같이 자본가가 자본을 투입해서 가져가는 이윤과, 지주가 지대로 가져가는 불로소득이 경제학적으로 타당하다는 얘기만 반복했고, 그런 생각을 파레토 같은 사람은 예산제약선과 그 선위의 한점을 지나가는 무차별곡선을 그려놓고 사회 전체의 소득이 커지지 않는 한(=예산제약선 자체가 위로 움직이지 않는 한), 부자의 부를 가난한 사람에게 이전해 주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래봐야 개인간에 부가 이동하는 것일 뿐, 사회 전체의 부가 커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사회의 후생이 증가하지도 않는 부의 분배 문제에 신경쓰지 말고, 사회 전체의 부, 곧 파이 자체를 키워야 한다는 소리만 했죠. 그리고 이런 생각은 파레토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 내용이 그대로 우리가 배우는 (주류)경제학 교과서의 한 파트를 채우면서, 지금까지도 파레토 최적은, (경제학에 입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공리 수준의 이론으로 가르쳐 지고 있죠.

마르크스는 바로 이런 현실 속에서 홀로 분배의 불공평 문제에 천착한 겁니다. 그래서 상품의 가치가 어떻게 도출되는가를 열심히 고민했고, 그 질문을 따라가면서 노동가치설의 생각도 심화시켜나갔던 거죠. 이건 무슨 자본가들의 이윤을 빼앗아 그 모두를 노동자가 독식하기 위해 고안해낸 황당한 이론 같은 게 아닙니다. 그와 정반대로, 노동하는 자, 곧 일하는 자가 그 일하는 만큼만 사회의 부를 가져가는 공평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자신의 그런 원칙과 신념을 경제학의 이론 안에다 구체화시켜 논 거죠. 그래서 마르크스의 경제학은 특별히 "정치"경제학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의 정치경제학은 자본가를 자본가라는 특권적 지위에서 끌어내려 생산과정을 지휘하고 통제하는, 곧 경영이라는 "노동"을 하는 똑같은 노동자의 모습으로 돌려논 거죠. 그래서 자본가 역시 노동의 댓가만큼만을 이윤으로 가져가야 하고, 자신이 피땀흘려 (경영)노동에 투입한 시간이 아닌 그 나머지는 그 시간동안 피땀흘려 일을 한 노동자들에게 마땅히 돌려줘야한다는 준엄한 경고를 한 셈이죠. 그래서 모든 노동자들은 마르크스에게 열광을 했고, 반대로 모든 자본가들은 마르크스를 미워했던 것인데, 결국 이 치열한 계급투쟁의 과정에서 승자는 자본주의 체제와 함께 그 체제의 기득권자인 자본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을 그 당대의 맥락에서 분리한 채 평가하고, 그래서 말도 안되는 허무맹랑한 이론 쯤으로 폄하해서 보는 것도, 뭔가 마르크스의 이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평가하는 시각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굳이 이렇게 어설픈 변호의 글을 남겨 봅니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