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사회 게시판
1. 인간이 상품을 소비하여 효용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상품 내부에 그것을 가능케해주는 뭔가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뭔가는 인간의 의식 바깥 물질 세계에 객관적인 대상으로서 존재하는가? 만약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인간에게 효용을 제공하는가? 만약 존재한다면 주류경제학에서는 그것을 뭐라고 부르는가? 만약 명칭이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2. 화폐는 금고 속에 넣어두면 아무런 변동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특수한 과정들을 거치면 대부분의 경우 증식이 일어난다. 금융소득의 경우에는 '화폐의 임대료' 인 것 같다. 또한 화폐로 회사를 설립하고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뭔가를 해도 증식이 일어난다. 이 경우의 증식은 왜 일어나는가? 화폐가 어떤 특수한 조건하에 위치하거나 돌아다니면 저절로 불어나는 특성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3. 회사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윤의 취득이다. 만약 이윤이 회사가 보유한 화폐 (자본) 자체에 가치창출능력이 있어 스스로 생성해낸 것이고 따라서 노동자들과는 아무관계가 없는 것이라면, 기업들이 굳이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일을 시키려고 애를 쓰는 이유나 동기는?
4. 어떤 회사의 노동자들이 어느날 단체로 미쳐서 (혹은 대기업 정규직의 높은 임금을 질타하는 사회적 압력에 굴복해서) 50%의 임금인하를 스스로 결정하고 감수했다. 이 때 늘어나는 회사의 초과 수익분은 뭐라고 불러야하는가? 이윤이라고 부르면 안되는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5. 어떤 기업이 있다. 그 기업이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았고 미래에도 추가 생산할 계획이 없으며 오직 그 기업만이 생산할 수 있는 어떤 상품을 단 한개만 생산했다. 또한 그 상품은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그리고 (가격과 상관없이) 그 상품을 구매하여 소비할 의사가 있는 사람 역시 단 한명이다. 따라서 공급과 수요의 비율은 정확히 1 대 1 이다. 경쟁하는 공급자나 대기수요조차 없다. 이 때 해당 물건의 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해당 소비자의 효용의 크기는 해당 상품의 가격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주도적이고 결정적인가? 만약 어떤 가격으로 결정되었다면 왜 하필 그 가격이었을까?
6.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어떤 자동차 회사가 있다. 이때 자동차의 가격은 제아무리 수요가 줄어들어도, 설사 구매할 의사가 있는 소비자가 단 명도 없어서 기대 효용(?) 역시 0이 된다 하더라도, 어떤 가격 이하로는 결코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 자동차의 가격이 0원에 수렴하여 떨어지는 일은 없을테니 그 가격은 반드시 존재할 것 같다. 따라서 자동차의 가격이 어떤 가격이하로 내려가지 않고 고정되었을 때, 왜 하필 그 가격에 고정되었을까?
7. 어떤 나라의 국민들은 국민성이 아주 특별해서 화폐를 없애고 산다고 치자. 따라서 모든 상품교환이 물물교환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치자. 이때 컴퓨터1대와 쌀 5가마니가 고정된 비율로 교환된다고 치자. 그리고 그 비율은 특별한 변동없이 장기간 안정된 상태로 지속되고 있고 당사자들은 아무런 이의제기나 불만도 없다고 치자. 그런 안정된 상태의 물물교환을 가능케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컴퓨터와 쌀에 동일한 단위로 측정될 수 있는 어떤 공통적 속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럼 그 기준은 무엇일까?
일단 컴퓨터와 쌀은 재질도 다르고 크기도 다르고 생산과 보관 소비하는 방법도 다르므로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럼 효용인가? 효용은 소비자들의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반응인데,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기준 단위로 측정이 가능한가? 양보해서 효용이라고 치자. 아무래도 사람들은 동일한 강도라면 쌀이 제공하는 효용을 더 선호할 것 같다. 중독에 빠진 게임마니아가 아니라면, 컴퓨터를 하고 싶은 욕망과 배고픔이 동일한 강도일 때 대부분 밥을 먹는 쪽을 우선적으로 선택할 것 같다. 또한 컴퓨터를 필요로 하는 사람보다는 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것 같다. 그런데도 여전히 컴퓨터 5배 우위의 교환비율이 아무런 변동 없이 유지될 때, 여전히 효용을 객관적 공통속성의 기준으로 봐야 하는가? 만약 효용이 아니라면, 무엇이 기준이었길래 교환비율의 계속 유지가 가능했을까?
8. 소유는 그 자체만으로 생산에 기여하거나 가치를 창출하는가? 어떤 기업의 오너가 있다. 주식회사는 아니고 100% 자기자본의 개인기업이다. 오너에게는 아무런 연고도 없고 어릴 때 잃어버려 호적에만 남아있는 아들만 한명 있었다. 어느날 오너가 불치병에 걸려서 죽게 되어 유언을 남겼다. 모든 유산을 잃어버린 아들에게 상속하여 소유권이전등기를 완료하고, 아들이 나타날 때까지 회사의 모든 수익금을 아들 명의의 통장에 적립해 놓았다가 전달하라는 내용이었다. 오너가 죽고 20년이 흘렀다. 그리고 아들이 나타났다. 20년 동안 쌓인 적립금이 아들에게 전달되었다. 아들은 자신도 모르게 행정서류에 회사의 소유자로 기록되어 있던 것 말고는 생산과정에 그 어떤 영향을 미치거나 한 일이 없다. 소유권을 유지하고 관리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없었다. 이 때 아들은 무엇으로 생산에 기여했을까? 소유인가?
일단 여기까지입니다;; 이거 말고도 평소 궁금했던 것들이 꽤 많았는데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답변하기 귀찮거나 분량이 많은 항목이 있으시면 패스하셔도 상관없으니 전혀 부담을 가지거나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진짜입니다.
저도 노동가치설 좋아하는데요..^^
그럼 제가 먹어볼까요
음 역시 맛이 최고입니다.
그래서 백년이 넘는 세월동안 전세계인들에게 가장 많이 애용되었나 봅니다..
다만, 노동가치설를 과다 섭취할경우, 중독성이 강해 다른것을 먹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ㅋ
노동가치설은 굳이 이론적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넘 당연한것이죠..
그냥 길거리돌아다니면서 돌아가는 모습을 조금만 유심히 봐도, 모든 것은 다 노동의 결정체이니깐요..ㅋ
그러나 상품의 효용성은 노동의 가치로 결정되기 보다는 인간의 욕구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듯해요..
같은 노동의 가치가 들어간 상품이 있다고 할때, 그 상품의 효율성은
어느 상품의 대해 인간의 욕구가 더 큰것이야로 의해 결정되잖아요.
반대로 어느 두상품의 노동가치는 달라도 두 상품의 대한 욕구가 같다면, 같은 효용성을 가지고요..
제가 사이비 경제학자인 주제에 피노님께 노동가치설이나 맑시즘을 너무 폄하하면서 얘기를 한 게 아닌가 좀 찔리네요..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이 질문 내용을 보니 정말 제가 노동가치설에 대해 전혀 모르는구나 느꼈습니다. 저는 피노님과 레드문님의 불꽃튀는 설전을 에노텐님의 설명, 뭐 이런 것들을 읽으면서 대충 감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일단 이 질문들이 하는 설정이 너무나 생경해요. 그래서 뭘 질문하는 건지를 잘 모르겠어요.
1. 제가 아는 경제학에서는 상품의 무엇이 인간에게 효용을 주는지는 관심대상이 아닌 것 같은데요? 그냥 개인의 취향에 따라 소비에 효용을 느끼기도 하고 안느끼기도 한다. 심리학의 범주가 아닐까요?
2. 돈이 증식하는 이유는, 그 돈으로 기계나 노동을 사서 뭔가 생산하면서, 부가가치를 만들기 때문?
3. 노동이 필요없이 생산이 되면,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겠지요. Capital 도 있고, labor 도 있어야, 생산이 되니까 노동자를 고용하겠지요. 거꾸로, 노동자만 있어도 생산이 되면, 노동자끼리 조합만들어서 생산하면 되지, 왜 회사에 고용되려고 하겠어요?
4. 이윤이지요.
5. 이 질문이 가장 이해가 안되네요. 소비자가 가격에 상관없이 소비할 의사가 있으면, 그 가격은 이 소비자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재력의 맥시멈이 가격이 되겠지요. 생산자가 이 소비자가 그럴 의사가 있다는 걸 아는 한..
우선 여기까지....
답변 감사합니다^^ 일단 답변하신 것들에 대해 재질문을 할텐데, 그 역시 생뚱맞은 내용일 수 있습니다. 그건 오로지 제가 무식해서니까 탓하지는 마세요;;
1. 이 말씀은 마치, 어떤 강력계 형사가 범인들이 사용하는 무기들에 대해 전혀 몰라도 수사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거든요. 주류경제학에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게 소비자의 효용인데, 그 중요하다는 소비자효용을 제공해주는 놈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몰라도 전혀 지장이 없다니까 저로서는 잘 이해가 안되네요. 강력계 형사가 가장 중요시 여기는게 피해자에게 피해를 준 무기의 정체 (살인수단) 가 뭐냐 인건데.... 여튼 주류경제학에는 그런거 없다라는 말씀인것 같고, 어떤 현상에 대한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으로서 그래도 되는건가 하는 의문이 살포시 들긴 합니다.
2. 다른 어떤 경우에도 그런일이 발생하지 않는데, (금융소득이나 건물임대료등을 빼고) 하필 기계나 노동을 사서 뭔가를 하면 왜 부가가치가 만들어지는가 하는거죠. 일단 노동가치설을 부정해놓고 본다면요.
3. 그 질문의 의도는, 일단 주류경제학쪽에서는 이윤에는 노동자들에게서 뭔가를 가져오는게 전혀 없다라고 설명하잖아요? 그럼 수많은 회사들이 노동자들을 고용하려고 애쓰는 이유가 당체 뭐냐. 가져오는게 없는데. 시너지를 위해서? 그럼 그 시너지는 왜 하필 노동자를 고용해야 발생하는거냐 이런거죠. 노동자들이 생산을 하니까? 그럼 왜 하필 생산이냐. 단체 야구장관람은 왜 그런 시너지를 만들어 낼 수 없는가가 해명이 되어야 하겠죠.
4. 그 질문은 사실 함정을 살짝 깔아놓은 질문이었는데 이윤이라고 답하시면... 흠... 암튼 이윤에는 애초에 노동자들에게 가야할 몫이 포함될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신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럼 최소한 이윤에는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야할 몫과 아닌 것이 섞여 있을 수 있겠네요. 경우에 따라서는 모든 이윤이 노동자들의 몫이었을 경우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이겠구요. 하여튼 하킴님은 "이윤에는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야할 몫이 포함될 일이 결코 없다"라는 주류적 입장과는 경우가 다르신 것 같습니다. 노동가치설 쪽으로 몇발짝 움직이셨네요;;
5. 이 질문의 의도는 이렇습니다. '가격에 상관없이' 라는 말은 '특별히 예상하고 있는 가격이 없이' 라는 의미였는데 정확히 적지를 못했네요. 암튼 공급자와 소비자가 딱 만났습니다. 이때 공급자는 그 어떤 경우에도 생산비 이하로는 팔 수가 없겠죠? 그래서 1억을 불렀어요. 그런데 소비자가 자신이 느끼는 효용 대비 1억원은 너무 터무니없이 비싸요. 암튼 그래서 10만원을 불렀어요. 일단 협상이 결렬되겠죠? 결국 최종적으로는 1억원에 거래되거나 아니면 영원히 협상만 계속할거라는 이야기죠. 그럼 하필 거래성사가 가능한 금액이 왜 하필 생산비인 1억원인가? 라는거죠. 그 가격결정에 주도적이고 결정적이라는 소비자효용은 어디로 사라지고...
1. 심리학이 하는 일까지 경제학이 하면 심리학자는 뭐 먹고 살아요? ^^
2. 부가가치가 왜 생기냐구요? 누구에겐가 필요로 하는 뭔가를 만들어내서? 노동과 capital 이 같이 만들어내는 거 아니에요? 왜 노동만?
3. 단체 야구장 관람하는 걸로 가치가 창출되면 하겠지요. 엑스트라들 고용하는 회사는 그렇게 하겠네요. 야구 영화 찍을 때, 관객으로 엑스트라 동원해주고 돈받겠네요.
4. 그러게요? 주류경제학에서 이렇게 대답안하나요? 간단하게 파는값에서 원가하고 인건비빼고 남는게 이윤인데, 인건비가 반으로 줄었으면, 이윤이 그만큼 늘어나는거 당연한 거 아니에요?
5. 아니 사겠다는 사람이 하나밖에 없는데, 이 사람은 10만원밖에 지불할 의사가 없으면, 10만원에 팔리는거지, 어떻게 1억이 거래성사 가능한 가격이에요? 그리고 이 생산자는 손해보는거지요. 만일 생산자가 미리 10만원밖에 못 받을 상품인데, 만드는데 1억이 든다는 걸 안다면, 생산을 안하겠지요.
1. 일단 그 뭔가는 인간의 심리속이 아니라 소비되는 상품안에 객관적 실체로써 도사리고 있는거 같거든요. 일단 그게 경제학이 마땅히 다뤄야할 대상인지는 뭐 제가 하버드 총장도 아니라서 확정을 못하겠지만 일단 심리학의 대상은 아닌거 같다는 생각이;;
2. capital은 인간도 아니고 어떤 지능이나 의지를 가진 존재도 아니고 그냥 종이이거나 디지털신호에 불과한 화폐인데, 그 화폐가 인간과 손을 잡고 뭘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그럼 capital은 화폐라는 물질이 아니고 어떤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존재인가요? 그렇다면 capital 이야말로 경제학이 아니라 심리학이나 종교학의 대상이 아닐까요?
3. 야구장의 엑스트라는 일단 생산에 종사하는 노동자이니까 저의 재질문에 대한 반박이 아닐 것 같습니다;; 저는 생산 이외의 활동으로는 왜 시너지가 만들어지지 않느냐 이거죠. 왜 하필 생산인거냐 뭐 그런.
4.지금까지의 논쟁 구도가 "이윤의 원천은 노동이다" vs " 결코 아니다. 이윤은 자본이 만들어낸거다 " 이런 거였거든요. 그럼 양자의 절충이시라는거고, 그래서 몇발짝은 제 쪽으로 오신 것도 같다는 말씀인거죠^^
5. 이거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제가 뻘질문을 드린 게 맞는것 같습니다. 에고.
1. 아, 이 노동가치설은 상품안에 어떤 객관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나 보지요? 주류경제학에서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서 그 상품의 가치는 천차만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흔히 수요곡선이라고 말하는 곡선이 그 천차만별의 가치를 보여주는 거지요. 똑같은 물건인데, 어떤 사람은 100원의 가치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천만원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그래서 심리학의 범주인거에요. 왜 누구는 100원으로 생각하고 누구는 천만원가치로 생각하는지. 경제학에서는 왜 그런지는 관심없고, 100원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몇명인지, 천만원가치로 생각하는 사람이 몇명인지 이 수요곡선에만 관심이 있는 거지요.
2. 인간도 기계, 땅, 없으면 못만드는 거잖아요? 이건 무슨 말인지?
3.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되요. 서비스로도 부가가치가 생기고.. 생산이라야 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
4. 이런 논쟁구도가 있어요? 노동이 critical asset 이어서 생산이 되면 이윤의 원천은 노동일테고, capital 이 critical asset 이면 capital 이 이윤의 원천 아니에요? 부동산 임대업, 자동차 렌트 사업, 이것들은 자동차나 집이 critical asset 이라서 이걸 소유한 자본가가 이윤을 가져갈테고, 수퍼스타 연예인같은 싸이가 있는 회사에서는 싸이때문에 생긴 이익을 싸이에게 줘야 되겠지요.
1. 자본론의 시작이 '상품은 인간에게 효용을 제공하는 물건이다' 이고, '인간에게 효용을 제공할 수 있게 하는 상품의 속성이 사용가치(효용성)이다' 라고 정리하고 출발합니다. 그러나 사용가치는 그 크기와 량이 측정가능하지 못하겠죠? 그래서 사용가치는 상품이 다른 상품과 교환될때 비로소 화폐라는 객관적 크기로 표시되며 정체를 드러내는거고, 그것을 바로 교환가치라고 한다. 뭐 그렇게 논지를 이어나가죠. 그리고 교환가치는 어느 만큼의 화폐의 크기로 충분한 시장경쟁에 의해 최종적으로 어느 특정한 수준에 이르도록 결정당하게 되는데, 그 특정한 수준이라는 놈이 바로 투입된 노동량이다 뭐 이렇게 계속 흘러갑니다. 이거 이해하면 자본론은 20% 쯤 이해하신 거에요 ㅋㅋㅋ
4. 자본론에서는 '자본은 과거로부터 축적된 노동이다' 라고 정리합니다. 따라서 자본에 의해 생성된 이윤 역시 그 원천은 노동이다 뭐 이렇게 되는거구요. 사실 자본론에서 자본과 노동은 구분이 되는 별개의 실체가 아니에요. 노동은 현실의 살아있는 노동, 자본은 과거에 존재했던 죽은 노동. 따라서 자본 역시 최종적으로는 노동의 결과이고 노동에 의해 생성된건데, 그걸 왜 자본가가 다 가지고 있느냐? 그건 이윤을 자본가의 몫으로 하는 착취 시스템의 결과이다 뭐 이렇게 되는거죠. 이거까지 이해하시면 자본론 40% 이해하신겁니다.
근데 제가 4번 질문을 드렸던 이유는, 위 설명을 하려는게 아니라 '노동자에게 돌아가야할 몫을 착취하는게 실제로 가능하다' 이걸 말하고 싶었던거죠. 하킴님도 어느 정도 인정하신 셈이구요. 주류경제학에서는 착취는 존재하지 않는다 뭐 그런 입장이니까요.
강의료는 공짜 ;;
6. 자동차를 그냥 쌓아두는데 생기는 비용이 미래에 팔릴 것으로 예상되는 기대값보다는 작으니까 0 으로는 안떨어지겠지요. 자동차 쌓아두는 공간의 이용료가 너무 비싸면, 자동차값이 0으로도 떨어지겠지요. 미래에도 팔릴 확률이 0이다, 그럼 자동차값이 0으로 떨어지겠지요. 왜 배추값이 너무 떨어져서 농부들이 공짜로 준다고 광고했던 적도 있잖아요? 배추뽑고 다른 거 심어야 했나 뭐 그래서...
7. 이 질문도 이해가 안되네요.. 콤퓨터 1대하고 쌀 5가마니가 교환된다는 것이 바로 효용이 그런 비율이라는 거지요.
8. 이 질문도 이해가 안되네요. 설정은 부모가 남겨놓은, 은행에 20년동안 맡겨놓은 돈의 이윤을 받는게 정당한가 라는 질문이 더 맞을 것 같아서요. 20년 동안 개인 기업이 주인없이 어떻게 굴러가서 20년동안 안망했는지 좀 상상이 안되서요. 소유자가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원금이 불어나게 하는게, 예금이잖아요?
7. 이 질문의 의도는 이런겁니다. 어느날 물물교환 시장에 소한마리를 끌고 온 사람과 돗자리 하나를 들고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소한마리를 가지고 나온 사람이 아무리 돗자리가 탐이 나서 안달이 나고, 돗자리 갖고 나온 사람이 굳이 소를 살 필요를 못느끼는 상태라서 튕긴다고 해도, 소한마리 가지고 온 사람이 선뜻 돗자리 하나와 교환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아무리 돗자리가 탐이 나도 내가 이 소를 키우는데 지난 1년동안 얼마나 고생했는데..." 하지 않겠어요?
물론 아주 간혹 그런 경우가 있을지는 몰라도, 해당 교환이 수천번 반복된다면 결국에는 소한마리당 돗자리 100개 쯤의 교환 비율이 형성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각자 만들어내는 수고 자체가 다를테니까요. 이 때 그 교환비율을 결정하는 기준이 대체 뭐냐 인거죠. 맑스의 설명은 소를 키우는데 들어간 노동량과 돗자리를 만드는 노동량이라는 것이죠. 그 것만이 서로 다른 상품사이에 객관적인 량의 기준으로 비교하고 측정이 가능한 유일한 공통 속성이니까요.
8. 이런 류의 질문이라는게 대개 어떤 반증반례를 찾아내기 위해 극단적인 상황을 상정하는거니까요^^ 소유권을 가진 사람이 생산의 수익조차 일단 자기 소유물로 간주하는 이유가 '내가 소유한 것을 통해 부가가치가 창출되었으므로, 나는 생산에 굉장한 기여를 한 것이다' 라는 도덕적 명분을 내세우지 않습니까? 그럼 정말로 소유는 그 자체로 생산에 기여하는가? 를 알아보자는 일종의 사고실험인거죠.
저 개인적으로는 7번 질문이 굉장히 좋습니다. 제가 아직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바를 물어보는 질문이니까요.
이전 글의 댓글에서 누군가가 노동의 가치가 사전적인가 사후적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을때 맑시스트의 입장에서 단호하게 사전적이라고 주장을 했습니다만(제가 맑시스트가 아닌데 왜 그랬는지 ㅜ.ㅜ)... 일단 교환비율이 투입노동량의 비율이라는 막시즘의 주장은 생산요소비용이라는 측면에서 봐도 합리적인 주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소를 키우는데 100이라는 노동을 투입하는 의사결정이 애당초 어떻게 내려진 것인가입니다. 소가 주는 노동력, 식량 등의 유용성 측면에서 생존에 꼭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가능할런지 모르겠지만, 무엇보다도 단백질의 영양적 가치 및 소고기의 맛이 주는 효용때문이라고 해석하는 편이 더 그럴듯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즉, 결과적으로는(사후적으로는) 1:100이라는 교환비율이 투입노동량의 비에 의해 결정되지만, 왜 굳이 소를 키우는데 그런 노동력을 투입했는가를 따져보면 원인적으로(사전적으로) 인간이 소고기와 돗자리에서 얻는 평균효용의 차이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 이런 맥락에서 저 개인적으로는 노동가치론자들과 효용가치론자들이 그토록 격렬한 논쟁을 하고, 효용가치론이 현대 주류경제학의 이론적 바탕이 된다라고까지 주장하는 배경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결국 노동력 투입의 의사결정이 효용의 차이에 의해 정해진다면 말이죠.
그렇죠. 그래서 제가 맑스경제학이랑 주류경제학이 통합되지 못할 이유가 당체 없어보이는데 왜 이러는거냐 그러는거죠 ㅋ 그놈의 이윤의 성격 규정하는 문제 하나 때문에 갈라져서 아예 서로 쳐다보지도 않고 벽을 쌓고 지내는거 같다는...
7번 질문은 사실 자본론의 노동가치설을 논증하는 거의 유일무이한 가장 핵심적인 논거이고, 그거 무너지면 자본론 전체가 우르르 다 무너지고 마르크스주의 자체가 다 무너지는거죠. 과거 소련같은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을 지탱하는 이론적 기초 자체도 다 무너졌을거구요. 그럼 굳이 냉전을 해야할 이유도 없는거고...
그런데 만약 그 논거를 무너뜨리고 싶다면 그걸 위한 데이터 검증은 너무 쉬운건데.... 지난 150년동안 아무도 안했다는거. 아니면 해봤는데 맑스의 논증 결과와 맞으니까 조용히 덮었거나. 아니면 소련같은데서 검증을 하려고 엄청난 데이터 실험을 했는데 이쪽 진영에서 개무시를 했다거나.. 뭐 그런 생각이 드네요.
6. 자동차가 한대도 안팔리는데 어떻게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걸 가정하고 대답해야 하는지 이 설정이 너무나 이상해요. 자동차가 한대도 안팔리면 생산을 중단해야 하는거 아니에요?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7. 이게 노동량이 아니라 효용이라고 해도 되는 거 아니에요? 돗자리 100개가 주는 효용하고 소 한마리가 주는 효용하고 같은 거 아니에요? 노동량으로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면, 개 한마리 값이 모든 개의 품종에 관련없이 다 같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8. 소유자가 아무것도 안하고 자본만 대는 경우를 말하고 싶은 모양인데, 만일 원금은 꼭 보장받는 조건으로 대주면, 은행이자만 받는거고, 원금을 다 까먹어도 되는 리스크로 하면, 이익금을 다 받기도 손해를 보고 원금마저 다 까먹게도 되겠지요.
6. 아무리 효용이 가격결정에 중요해도, 가격이 생산비 이하로는 결코 내려갈 수 없다 뭐 그런말을 하고 싶었던거죠. 사실 당연한겁니다. 생산비 이하로 판매해서는 결코 지속가능한 재생산이 될 수가 없는거니까요.
7. 효용은 측정가능한 대상이 아닌데, 어떻게 같다고 증명할 수 있느냐는거죠. 또한 이미 측정가능한 노동량이 있는데요. 그리고 노동량으로 가치가 결정된다는 의미는, 투입된 노동량의 수준으로 결정당한다의 수동적인 뉘앙스이죠. 여기서는 시장에서의 교환이 충분하다면 이라는 전제 조건이 있으니까요. 따라서 똑같은 노동량이라 해서 품종에 관련없이 가격이 다 같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그것들은 아직 결정당하지 않은 상태일 수 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셔야 자본론에 대한 많은 오해들이 걷히는건데, 어립별이 레드문님에 이어 하킴님까지 똑같은 말씀을 ㅠㅠ
8. 저는 소유는 그 자체로 생산에 기여하는바가 있는가에 대해 주류경제학이 어떻게 해명하는지를 알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솔직이 가격이나 가치라는 것은 한가지 이유만으로 결정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예를 들면 골동품이나 미술품을 봅시다
그쪽에 문외한이거나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종이쪼가리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경매 시장에서 가격이 형성되었을때는 그 문외한도 종이쪼가리 가치로 대하지는 않지요
골동품의 경우 어떤 의미로 가격이 매겨질까요
투입된 노동량
세월
예술적 가치, 학술적 가치
선호도
유일하다는 자랑
효용성
일본의 이도다완은 국보급 다기인데 그게 값을 매길수 없고 1조를 주어도 안판다는 겁니다
이 이도다완의 가격은 어디에서 온걸까요
저는 가치라는 것이 투입된 노동이나 자본 리스크 효용 시대흐름등 여러가지 요인으로 매겨진다고 생각합니다
튜울립이 유럽에 전래되었을때 튜울립 몇개가 집한채 가격이었고
후추가 조선에서는 은만큼 값이 나갔고 유럽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중국의 도자기는 유럽에서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팔렸지요
하킴/
이제 토론이 거의 결론에 도달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가 될거 같습니다. 자본론을 몇번씩 읽어도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는 그런 이야기.
일단 아까 물물교환장터의 소 한마리와 돗자리 하나로 돌아가서 상황을 재구성해보겠습니다. 소와 돗자리가 난생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소는 돗자리가 필요하고 돗자리는 소가 필요하니까요. 그래서 물물교환을 하려고 하는데, 당체 몇 대 몇의 비율로 교환해야 하는지 서로 고민에 빠지지 않겠습니까? 만약 화폐가 있었다면 그럴 필요는 없었겠지요. "소는 100만원 돗자리는 만원, 그러니까 너는 나한테 돗자리 100개 주면 돼" 이러면 되는건데, 화폐가 없는 나라이니 달리 정해진 가격도 없을테고 난감하겠죠. 그럼 둘 사이의 대화를 따라가 봅시다.
소 : 나는 돗자리가 필요한데 혹시 소 필요하셈?
돗자리 : 아유 잘 만났넹. 안그래도 농사지을 소가 필요해서리.
소 : 그런데 어떻게 바꾸면 되남요?
돗자리 : 공평하게 소한마리주시면 내가 돗자리 하나 드릴게
소 : 에이 장난하시나. 이 소가 얼마나 귀한데
돗자리 : 돗자리도 귀해 이 양반아.
소 : 이 소는 뿔이 두개니까 돗자리 200개 주쇼.
돗자리 : 내 돗자리는 설악산에서 천년 묵은 갈대로 맹근 것이여. 인심써서 2개줄테니 어여 소 이리 내쇼.
소 : 아 진짜 난감하네.
돗자리 : 미투
소 : 혹시 댁은 소 한마리로 얻을 수 있는 효용이 얼마 만큼이나 돼쇼? 나는 하늘만큼 땅만큼인데
돗자리 : 장난하시나. 그 소는 쬐그만 쥐꼬리만큼이여. 되려 내 돗자리의 효용은 동해바다만큼 크제.
소 : 아 ㅅㅂ.
돗자리 : 아 ㅅㅂ.
소: 댁은 농사지을 소를 필요로 한다 하지 않았소. 그러면 이 소로 돈도 많이 벌텐데 양보해서 150개 주시오
돗자리 : 아니 코딱지만한 논때기인데 무슨 말씀이오.
소: 아 ㅅㅂ
돗자리: 아 ㅅㅂ
소 : 아. 내가 정말 좋은 생각이 났소.
돗자리 : 뭐요.
소 : 나는 이 소를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정성껏 돌보면서 10달 동안 정말 열심히 키웠소.
돗자리 : 그렇소? 나는 이 돗자리 아침부터 밤까지 정성껏 만들면 3일 걸리오.
소 : 그럼 내가 100배만큼 더 일해서 키운 소니까 돗자리 100개를 주시면 어떻겠소
돗자리 : 오 그거 정말 공평하고 좋은 생각인 것 같소. 서로 손해보는 것도 없는 것 같고. 그러십시다. 혹시 이름이 제갈량이시오?
소 : 아니오. 조조요.
제가 조금 우스갯소리 담아서 적었지만, 실제 물물교환시장에서는 저렇게 노동량으로 비교하며 교환을 할 수 밖에 없고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서로 합의하여 교환이 가능한 공통된 척도는 노동량 밖에 없는 것이죠. 물론 선호가 바뀌고 수요 공급이 바뀌고 특정 물품의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시시각각 교환비율이 변화하겠지만, 다른 척도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굳이 서로 귀찮게 교환할 때마다 일일이 노동일 대조하면서 그럴 필요도 없이 수없이 많은 교환과 경쟁속에서 시장매커니즘에 의해 저절로 "투입된 노동량" 수치에 근사하게 점점 수렴해 갈 겁니다. 이 논거를 정교하게 다듬은게 바로 노동가치설인거구요.
그러면 화폐가 있다 해서 이러한 시장 교환의 본질이 바뀔까요? 화폐가 있고 없고에 따라 가치생산의 원천이나 정량화할 수 있는 수단이 노동이었다가 효용이었다가 왔다 갔다 바뀔 수도 없고 바뀌어야할 이유도 없는거죠. 효용이 가치를 생산한다는 인식은 화폐가 만들어낸 착시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중요한 이야기.
그렇다면 효용가치설은 과연 틀린 이론일까요? 제 판단에는 결코 아닙니다. 적어도 소비자입장에서 정교한 가격결정이론을 다루는 툴로는 효용가치설이 노동가치설보다 훨씬 우월해보입니다. 노동가치설은 생산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경제학적인 현상들을, 효용가치설은 시장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경제학적인 현상들을 다루는데 탁월해보입니다. 그리고 이 인식은 자본론의 논리에 결코 위배되지가 않습니다.
제가 아까 단 댓글에서 자본론의 구절을 인용했죠? 이해를 돕기 위해 원전과 의미는 똑같고 용어만 바꾼겁니다.
"상품은 인간에게 효용을 제공하는 물건이다"
"인간에게 효용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상품의 속성을 사용가치(효용성) 라고 한다"
즉 문장의 의미 그대로 효용의 크기 = 효용성(사용가치)의 크기인거고 곧 노동가치의 크기인 겁니다. 즉 시작부터 동일한 값을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뭐를 기준으로 삼든 전개 과정에 오류가 없다면 같은 결과를 도출할 수 밖에 없고, 결국 맑스경제학이나 주류경제학이나 큰 틀에서는 같은 대상을 다루는거고, 서로 바라보는 측면만 다를 뿐인거죠.
다만 가치의 원천은 노동이다 이거는 양보할 수가 없고, 그거는 사실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인간의 노동이 아니고 그 무엇이 가치를 생산할 수 있겠습니까? 노동이라는 말 자체가 애초부터 그런 의미인건데요. 주류경제학에서 모종의 이데올로기적인 목적의식하에 무리하게 이거까지 욕심을 내면서 뭉갤려고 하니까 서로 타협이 안되는거죠. 맑스경제학과 주류경제학은 서로 이데올로기를 걷어내면 상호 단점들을 보완하면서 충분히 결합 될 수 있다고 여깁니다. 솔까말 주류경제학의 흔한 주장들, 효용함수니 무슨 곡선이니 그런거 노동가치설의 용어와 논리체계로 전부 재구성하는게 불가능할 것 같지 않습니다. 물론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리겠지만.
주류경제학의 장점은 소비자 입장에서 횡적인 시장의 영역을 규명하는데 매우 강하고, 맑스주의경제학은 생산자 입장에서 종적인 역사적 흐름 속의 자본주의 경제를 다루는데 매우 강력하죠. 아직까지 주류경제학에서는 경제 공황이 왜 발생하는지에 대해 아직도 합의된 정설이 없는 것 같습니다. 생산 영역에서 벌어진 일을 시장에서 벌어진 일로 바라보고 분석을 하니까 당연한거죠. 그러나 맑스주의경제학에서는 무려 수십년전에 대공황을 예측했고, 예측이 정확히 맞아 떨어졌죠. 그거 하나만으로도 경제학이론으로써의 자격은 충분한거라고 봅니다.
저는 오히려 양자가 결합하면 복지제도나 분배정책에 강력한 논리적 정당성을 제공해 줄 수 있고, 양극화나 공황같은 자본주의 실패 현상을 미리 예방할 수 있는 실효적인 경제정책들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고 봐요. 그리고 통합된 경제학은 그동안 지적되었던 맑스경제학의 약점들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맑스주의경제학도 알고 보면 깔거 많습니다. 이론적인 한계로 시장쪽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정교하게 캣치를 못하다 보니까 그걸 보완하기 위해 도저히 수치화 정량화할 수 없는 추상적 개념을 도입해야만 하는 그런 약점들이 있고, 그래서 구체적인 정책적 역량의 베이스로 삼기엔 부족한 점이 많이 있어 보이거든요.
글 적기 전에 떠오르는 생각이 꽤 많았는데 한 두개는 놓쳐버렸네요. 그래도 제 댓글이 하킴님에게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토론으로 저도 많이 사색하고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조라면 할인을 해줘야하지 않나요?
흠..농담이고...;;
노동가치설에 대해서 잘 모르는 입장에서 한가지 의문인 것은
노동의 가치가 정량화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 않겠습니까?
위에서 거론 하신 경우를 보자면 돗자리는 자본재+노동이라는 공식이 딱 떨어지는데
소라는 놈은 넓은 풀밭에 풀어 놓으면 저절로 자라기도 하니 말입니다.
물론 우리에 가두어 기른 경우를 상정하신거 같은데
이 경우에도 여물만 갖다주면 내가 직접 먹여주지 않아도 소는 커갈 것이니
내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정량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 좀 드네요.
마침표찍으셨는데 쓸데 없는 질문으로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여튼 저도 논쟁을 보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맞습니다. 정량화되기 어렵습니다. 아니 불가능합니다. '사회적 필요노동시간' '사회적 평균노동강도' '사회적 평균노동숙련도' 뭐 그런 추상적 개념들이 동원되어야 하니까요. 근데 그거 슈퍼컴퓨터 수백대로 돌려도 산출해내기 어려울겁니다. 게다가 하루에 한번씩은 해야할거구요. 돌아버리는거죠. 그래서 제 댓글에도 그 내용을 적었습니다. ㅎㅎㅎ
다만 자본론에서는 굳이 그것들을 정량화 하지 않아도 시장메커니즘에 의해 저절로 그것들에 수렴한다는 그런 전제가 이론 속에 깊이 깔려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이야기인데 사실은 그거 때문에 소련이 망한겁니다. 정량화를 시도해서 시장매커니즘만이 찾아낼 수 있는 값을 계산기로 찾아내고 소위 시장경제시스템을 인위적으로 설계를 하려고 했죠. ㅠㅠ 지못미.
소련에서 수리경제학이 굉장히 발달했었는데, 그게 그래서 그런겁니다. 완전 대형 삽질을 해댄거죠. 그러나 그건 마르크스의 책임은 아닙니다. 자본론 어디에도 그거 계산해서 찾아낼 수 있다거나 찾아내서 시장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이야기 없습니다. 볼세비키들이 지들 스승의 얼굴에 완전 똥칠을 한거죠.
'소는 저절로 자라니까' 하는 이야기는 레드문님과의 논쟁에서 한차례 나왔었던 이야기입니다.
노동은 자연물을 개조하여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인간의 활동입니다. 소는 자연물이고, 소가 자라는건 개조가 되는거니까 그 역시 노동입니다. 그 말씀은 마치 우라늄을 넣어두면 저절로 타는거니 원전 노동자들은 노동한게 아니다라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그리고 야생에서 자라는 소는 가치를 생산하지 않습니다. 상품이 아니니까요. 똑같이 저절로 자라는데 목장의 소는 가치를 생산하고 야생의 소는 그렇지 못할까요? 전자는 노동이고 후자는 노동이 아니기 때문이죠.
대공황의 원인이 아니라, 대공황의 해결이 버냉키 전공일겁니다. 대공황의 원인에 대해서는 수십개의 가설이 있고 결론은 '잘 모르겠다' 인걸로 압니다. 심지어는 무슨 태풍이 원인이라는 설도 있다네요;;
마르크스가 비주류가 된건 아마도 사회주의국가들이 망햇기 때문이고 (거기서는 유일무이한 경제학이었죠), 시장을 다루는데 적당하지 않아서 정책화 하기 힘든 이론이고, 자본주의의 치명적인 약점 (착취) 를 대놓고 떠들어대는 이론이라 불편한 이유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마르크스경제학으로만 설명되는 자본주의 현상들이 꽤 많아요. 주류경제학에서는 그런 것들 인정하지 않고 '시장이 저절로 해결해 주실 것을 믿어' 뭐 그런 모드이구요.
2008년에 경제위기에 대한 원인 설명도 케인지안과 신자유주의가 다르지 않습니까? 전자는 규제가 부족해서 그랬다, 후자는 정부가 함부로 개입한 결과다 이렇게 서로 떠넘기고 있죠. 현재 경제위기 극복 방안도 다르구요. 전자는 양적완화 후자는 규제완화;;
맑스주의는 그거 다 자본가들이 노동자를 착취한 결과 시장질서가 왜곡되어 빚어진 공급과잉 수요감소가 원인이다 이렇게 설명하구요.
그럼 맑시즘만이 대공황을 설명할 수 있다는 건, 맑시스트들 의견인 것이고, 주류 경제학자들은 대공황의 원인을 모르겠다. 이거군요? 주류경제학에서 맑시즘이 그렇게 잘 설명하는 대공황의 원인을 생까고, 잘 모르겠다, 이러는건, 맑시즘이 제대로 설명을 못했겠지..이런 의구심이..^^. 공산주의 사회는 망했지만, 유럽 사회 민주주의는 맑시즘의 노동가치설을 기반으로 복지정책을 만든거라면, 적어도 유럽 경제학에서는 맑시즘이 주류에 끼지 않아요? 제가 미국에서 공부를 하다보니, 미국 경제학풍만 알아서, 그런 건가? 이런 생각도 들긴 합니다.
일단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아직 제대로 발달도 하기전에 이미 공황과 공황의 구체적인 진행과정까지 예측을 했고, 주류경제학쪽에서는 놀고 있네 그랬었죠. 그래서 대공황 당시에 마르크스가 일대 붐을 일으켰던게 사실이구요. 적어도 주류경제학쪽에서는 '그거 니네들 맑시스트 의견인 것이고' 이럴 수 있는 자격이 없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2008년 공황도 당일 아침까지도 한명 빼놓고는 아무도 예상조차 못했다는데요 뭐. 솔직히 그 정도면 학자들이 과학적 이론으로써 심각한 결함이 있는거 아니냐고 문제제기가 되어야할 것 같은데 조용하니까 잘 이해가 안됩니다.
유럽에서 경제학으로서의 영향력은 연구자들은 비록 소수지만 명맥이 끊이지는 않은 정도 인것 같고, 정치사상쪽으로는 아직 강력하죠. 유럽의 사민주의자들은 '나 마르크스 존경함' 이러는게 대세라 하니까요.
피노님 강의를 들어보니 "이윤"이 자본가에게만 귀속되는 것이 착취라는 것이군요. 주류경제학에서는 이윤을 어떻게 나누냐 보다는 어떻게 이윤을 없애나 에 관심이 더 많은 거 같은데요.. 주류경제학에서는 이윤이 생긴다는 건, 완전경쟁이 안되었다는 얘기이니까, 일단 이윤이 생기는 것부터 잘못된 거지요. 그러니까 단기적으로는 이윤이 날 수도 있지만, 어떻게 해서든, 더 경쟁이 많이 되게 해서, 이윤이 제로가 될 때까지 가격을 낮추게 되게 하는 거.. 경제정책이라는 게, 이윤이 0으로 수렴하게 만드는 정책? 뭐 그런 거 같은데요. 경제학에서 말하는 economic rent 라는게 이윤이지요. 완전경쟁이 아닌 상태에서 얻게된 이익이지요. 비행소년님, 제 말이 맞아요?
주류경제학에서 "이상화된" 시장이란, 노동자들이 자본을 빌릴 수 없는 그런 barrier 가 없기 때문에, 노동자를 자본가가 착취할 수가 없는 거지요. 만일 착취를 하면 회사그만두고 자본 빌려서 그런 회사 차리면 되니까.. 주류경제학에서는 그러니까 은행이 될성부른 노동자에게는 돈을 잘 빌려줘서 사업가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거에 관심이 있다고나 할까? 이윤을 어떻게 공평하게 자본가와 노동자사이에서 나누냐보다는... 그러니까 요즘 콤퓨터 쪽으로 노동자 겸 자본가가 된 수많은 성공한 부자들이 나오는게 그 "이상화된" 시장에 가까와지는거지요. 그러니까 한국의 재벌은 이런 완전경쟁시장을 완전히 막고 소수의 사업가들에게만 정부가 돈을 몰아준거니.. 주류경제학의 관점에서도 재벌은 문제인거지요.
하킴님이 말하는 그 이상적인 경제에서, 개별 노동자 입장에서 볼 때 "착취" 당하는 편이 경제적으로 더 나은 경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착취"당한다고 해서 회사 때려치우고 누구나 IT 벤쳐 사업을 할만한 인적자본을 가지고 있으란 법은 없거든요.
할 수 있는게 동네 치킨집 정도 밖에 없으며 노동자로 고용되어 있을 때에 비해 경제적 처지가 열악해지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죠.
이 경우 "착취"당하는 게 동네 치킨집 자영업 하는 선택보다 경제적으로 더 노동자에게 득입니다.
그럼 이 경우, 그렇다면 착취가 뭐가 문제란 말이냐? 라고 반문하실지도 모르겠는데, 맑스가 스미스, 리카도의 이론에 근거해 자기 나름의 가치론을 전개한 것은, 모든 상품 (노동력 상품 포함)이 등가교환되는 이 이상화된 경제에서 "이윤" (회계적 이윤에 가까움)이 발생할 수 있는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를 그 나름대로 답하고자 하는 시도였습니다. 이 이론 자체가 자본주의를 도덕적으로 비난하기 위해 고안된 이론은 아닙니다. 가치판단은 접어둔 채 맑스 나름대로 자본제 경제를 '설명' 하고 '분석'해보려고 고안된 이론.
(덧) 제가 원래 댓글을 단 취지는 맑스가 자본론에서 잉여가치니 이윤이니 할 때 그 개념은 회계학적 이윤 (당기순이익 따위)에 차라리 더 가까우면 가까웠지, 기회비용까지 고려하는 경제학적 이윤 개념과는 다르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부분만 잡아내시면 제가 사실 원래 댓글을 단 의도는 성취된 셈입니다.
사실 맑스 경제학의 적실성에 관해서는 전 그냥 "난 모른다"가 제 현재 입장입니다.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전 다른 댓글에서 좌좀 진영에서 맑스주의가 차지하는 지분이 현재 상태에 비해 대폭 줄어드는 편이 낫다고 본다는 말도 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하킴님이 맑스 경제학에 관해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시는 것 자체야 아무 문제가 없는데, 제 생각엔 그렇습니다. 저 같으면 맑스 경제학에 관해 그 입장에서 최선의 방어를 할만한 사람이 있다면 누구를 들 수 있으며 저작이나 논문 같은 게 있다면 무엇인가, 이런 걸 물어보지 이런 아크로 같은 게시판에서 (저같은) 순듣보잡들이 말하는 것을 근거로 어떤 (잠정적이나마) 결정적인 결론을 내려보려고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제가 말을 아끼고 대신 자본론 개설서나 던컨 폴리의 대중서나마 소개한 것에는 그런 이유도 좀 작용했습니다.
피노님이 무슨 맑스경제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거나, 평소 매니아급으로 파시는, 맑스 경제학 덕후 급인 분은 아니잖습니까. 학교 다니실 때 <학습>을 하신 분이시지... (피노님, 이거 맞죠?)
제가 이런 말 한다고 피노님 기분이 상한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아닌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물론 피노님과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는 아무 문제 없습니다만 (너무나 당연한 것임), 다만 그걸 근거로 "맑스 경제학은 이렇다 저렇다" 결론 내려고 한다면 그건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원래 주위의 날라리 교인 친구가 기독교 얘기를 뭐 그럴듯하게 하는 걸 듣다보면 기독교도도 되는 거고, 아니면 안되기도 하는거지요. 제가 노동가치설, 그거 좀 웃기는 거더라..혹은 그 노동가치설 뭐 좀 그럴듯하더라, 좀 더 읽어봐야겠더라, 이런 거 전부 다 피노님 탓..ㅋㅋㅋ... 지금은 딱 보더라인이네요. 미뉴에님이 링크해주신 책이 킨들버전이었으면 읽었을텐데, 그냥 웹이라서 너무 읽기가 불편하더라구요. 그냥 사서 읽을까 하고 봤더니, 3명이 리뷰를 한 책이길래, 이 책은 정말 아무도 안읽는 책, 혹시 아니야? 이런 생각이 들어서, 안샀다능...
분량도 적구요.
그리고 읽어두면 차후에 좀 비리비리한 좌좀들 박살내는데 나름대로 도움이 될 거라고 했던 말, 반은 농담이지만 반은 진담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좌좀이 하이에크나 밀턴 프리드먼 같은 사람들 책을 왜 읽어두겠습니까? 허튼 소리, 이상한 소리하는 우좀 발견하면 놀려줄려고 읽어두는거죠 ^^
미뉴에/ "하킴 / 하킴님이 말씀하시는 이상화된 시장경제에서는 고용주에게 고용되어 임노동자가 되는 것이 (나와서 무슨 형태의 사업을 차리는 건, 그것에 비해) 경제적으로 더 나은 선택인 경우 되는 사태가 이론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겁니까? 설마요.".
네. 그런 얘기에요. 이 기업이 이윤을 자본가가 축적하는 한에서는... 왜냐하면 완전경쟁사회라서 이윤이 0이 될때까지 가격을 낮추거나 임금을 올리거나, 뭐 하여간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평형가격이 임금이기 때문이지요. 만일 이 자본가가 이윤을 남기고 임금은 낮게 주었다면, 노동자는 나가서 그 이윤이 제로가 되어서 한계비용이 가격과 같아질 때까지 공급가격을 떨어트려서 시장에 낼테니까요. 그러니까 이윤이 0이 될 때까지는 그 이윤을 노동자, 지금은 자본가가 된 이 노동자가 먹을 수 있는 거지요. 이 노동자가 이 자본가와 그렇게 경쟁할 수 없는 이유는 자본이 없기 때문이지요. 기술력이니 판로니, 하여튼 자본으로 살 수 있으니까요. 여기 브랜드 파워니, 뭐 자본으로 사는게 여의치 않은 것들이 있긴 한데... 자본과 노동, 이걸로 생산하고 판매한다, 이렇다고 가정하면..
기회비용은 아니지 않아요? 경제학에서 말하는 기업이윤하고 회계이윤하고 어떻게 다른 거에요? 전 잘 몰라서.. 그냥 자본에 대한 이자율이 비용으로 잡히는 거지, 기회비용은 어떻게 계산해요?
그리고 자본에 대한 이자율이 비용으로 잡힌다는 말씀은, 자본가가 100만원을 어느 사업에 투자했을 경우, 그 사업에 투자하는 대신 은행에 입금했더라면 받았을 그 이자율을 말씀하시는 것 아닌가요? (명목, 실질 구분하기 귀찮으니까 물가변동 이런 건 다 없다고 치죠)
마지막으로 기회비용은... 지금 그 개념 자체가 뭔지를 물어보시는 건지 아니면 하킴님의 이상적인 시장경제에서 그 기회비용의 크기를 어떻게 계산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설마 전자는 아니겠죠.
그리고 자본가가 경영도 한다면, 자기 임금도 비용이지요. 자영업자들이 손익계산서 쓸 때는, 자기 임금은 안 넣어서 하지 않아요? 경제학에서 이윤을 말할 때는 경영자에게 들어가는 임금도 비용이지요. 자영업자들의 손익계산서가 0이면, 자기자본 이자율, 자기 임금, 다 0이라는 거 아니에요? 아마도 이게 차이인가보네요. 그럼 맑시즘에서 말하는 이윤은 자본가의 이자 비용, 자본가 겸 경영자의 임금은 제로로 보고 거기서 남는 이윤을 자본가가 가져가면 착취란 말이에요? 설마요? 자본가겸 경영자의 임금, 자본의 잠재적 이자수익은 빼고 남는 게 이윤이고, 이걸 다 자본가가 가져가고 노동자에게 안준다고 착취라고 하는 거 아니에요?
하킴님의 이야기가 맞아요. 약간만 더 전문적인 용어을 보태자면, 보통의 통용되는 가정 (constant returns to scale production)에서는 회사의 profit을 0이 될때까지 자본과 노동을 투입하는 것이 최적입니다.
회사의 economic profit이 0이 된다는 말은 회사가 자본에 대한 한계생산(비용) = 노동에 대한 한계생산(비용) 이 일치할 때까지 생산을 하고 나서 회사의 수익(earnings)을 자본가에게 노동자에게 사용한 만큼 지불하고 나면 0이 남게 된다는 뜻이구요.
완전 경쟁시장하에서는 (일반균형에서 보자면) 사실 회사의 주인, 즉 자본가라는 것은 그 시장에 있는 모두입니다. 법적으로는 주주들만 해당하지만, 현재까지 밝혀진 이론상으로는 주주나 채권자나 둘다 자본가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a가 은행에 돈을 넣어둔다는 의미는 a가 은행의 주주라는 소리이고, 은행은 회사에 돈을 투자한 채권자라는 소리고, 따라서 a가 그 회사의 자본가라는 소리이죠. 국민경제에서 개인(또는 가계)라는 것은 노동자이자 자본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본주의 경제학의) 완전경쟁시장하에서는 착취라는 것이 발생할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완전경쟁시장이 아닌 상황에서 착취가 발생하는 것이지요.
(어젠 몸이 안좋아서 일찍 자고, 오전에는 내내 일이있어서 어디 다녔왔는데) 그동안에 무지하게 댓글이 많이 올라왔네요. 도저히 짧은 시간내에 정독해서 무슨 대화를 하셨는지는 다 따라가기는 힘들고, 찬찬히 읽어보고 업데이트를 해야겠네요. 하킴님이 제가 해야할 질문까지 열심히 대답해 해주셨는데, 감사합니다. 꼭 혼자 독박 쓰신 것 같아서 제가 죄송스럽요. :)
(1) 대략보아하니 이윤에 관한 정의가 일반 경제학과 맑시즘과는 좀 다른 것 같네요. 제 느낌상으로는 마르크스 경제학에서는 자본이라는 것은 그동안의 노동의 가치가 축적된 결과이다, 따라서 모든 재화의 가치를 분해해보면 그것을 생산하기 위한 들어간 그동안의 모든 노동의 가치의 합으로 표현이 된다. 이게 맞는 소리인가요?
그렇다면 제가 아리송한 것이 있는데, 돗자리를 만든다고 합시다. 그러면 돗자리 만드는 기계가 있을 거잖아요. 이 기계를 만드는데 그동안 모든 노동력이 합쳐서 100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 기계 하나로 돗자리를 100개를 만들 수 있다고 가정합니다. 그렇다면 돗자리 하나를 만드는데 기계를 통해서 들어온 노동력 1 + 단지 돗자리 만드는 장인의 노동력 3, 결국 돗자리 하나를 만드는 노동력은 4가 된다는 소리네요.
따라서 돗자리의 노동 (내재적) 노동 가치는 4이다. 이게 맞는 소리입니까?
제가 생각한 것이 맞는 말이라면, 주류 경제학이나 마르크스 경제학이나 별반 차이는 없어요. 자, 이제부터 기계를 자본이라고 부르고, 자본가, 즉 돗자리 만드는 기계 주인이 자본(기계)를 대면, 돗자리 만드는 장인이 노동을 제공하고 돗자리 팔아서 이윤이 4가 발생했다면 (파는 것 자체에 노동이 전혀 안들어간다고 가정하면), 자본가는 1을 노동자는 3을 가져가면 되는 것이지요.
아담 스미스의 시장주의라는 것은 완전 경쟁이 보장된다면 저 기계를 만드는 데에 들었던 내재적 가치 - 원자료를 캐는 데에 들었던 노동부터 이 기계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중간 단계 기계를 만드는 데에 들어간 노동등등등 - 를 우리가 일일이 추적해 갈 필요없이 시장 가격으로 정확하게 반영된다는 주장입니다.
아마 마르크스가 생각하는 잉여라는 것은 자본가가 1을 받아야 하는데, 1.5까지 받고 노동자는 3을 받아야하는데 2.5밖에 못받는 상황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까.
(2) 자본주의 경제학에서는 잘 아시다시피 재화를 생산하는 데에 필요한 인풋을 크게 노동+자본으로 정의를 합니다. 자본이라는 것은 돈+기계+... 등등의 노동을 제외한 거의 전부를 축약적으로 대표하는 것이죠. 이 자본안에 그동안의 모든 노동이 들어가 있으니 훨씬 정량화시키기가 편할 뿐 아니겠습니까. (언급했듯이 그 노동이나 재화의 가격은 시장에서 다 파악 가능하죠. 완전경쟁시장이라면...)
(3) 시장에서 개개인이 자본을 어떻게 축적하냐하면 결국 노동을 제공하고 나온 댓가로 자본을 사서 축적하는 것입니다.
(4) 이자라는 것은 돈에 대한 이자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자본에 대한 소득을 다 말하는 것이죠.
(5) 주류 경제학에서 착취(Economic Rent)가 일어나는 이유는 여러가지인데, 크게 두가지라고 보면 됩니다.
첫번째는 불완전 경쟁이 발생해서 인데, 쉬운 예로 독과점이 있죠. 일반 재화의 독과점도 큰 요소지만, 노동을 사는 사측의 바게닝파워가 너무 커서 생긴 불완전 경쟁도 무시할 수 없죠. 예를 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갑을 관계도 한국 사회의 바게닝 파워가 대기업쪽에만 있다보니 생긴 현상이죠.
두번째는 불완전 정보때문에 발생합니다. 노동시장에서만 축약해서 말씀드리면, 회사가 노동자(CEO건 일개 사원이건간에)를 채용할 때 이 노동자의 능력이 얼마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잖아요. 바게닝 파워를 무시하고 이야기하자면, 이 경우에는 노동자가 오히려 자본가를 착취할 수 있는 경우도 허다하게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계약이 잘못되면)
일단 이 정도로 쓰고 시간나는데로 아래에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피노키오님/
반복이 될지도 모르겠는데, 님이 질문하신 것에 대해서 순차적으로 다시 답을 하겠습니다. 어짜피 하킴님이 대부분 답을 하셨는데 - 저는 대부분 괜찮은 답이라고 생각하지만 - 다른 식으로 설명하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요.
1. 효용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추상적인 개념입니다. 제가 아는 한 원류는 어디서 나왔냐하면, 물리학자들이 생각하는 힘과 에너지(일?)의 관계에서 차용해온 것이죠. 힘을 적분하면 에너지가 된다 또는 이공계 백그라운드가 아니시라면 어떤 특정한 태스크를 하는 데에 여태까지 썼던 힘을 다 합치면 총 에너지가 계산된다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니깐 원래는 '효용' 자체보다는 '한계효용'이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자, 재화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합시다. 이때 재화를 한 단위를 소비를 더 하면 할 수록 그 만족도(한계효용)가 감소를 한다라는 것이 자연법칙(Law)입니다. 그렇다면 재화를 일정량까지 소비했을 때 그때까지 누린 만족도(한계효용)을 다 합친것을 효용이라고 정의하자라는 것이 효용이론의 시작이죠.
다시 말하자면, 만족도라는 것을 추상화 시킨 것이 한계효용, 또는 효용이라는 것이지, 경제학자한테 효용이 어디서 오냐라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습니다. 마치 힘은 어디서부터 오냐라고 물리학자한테 물어보는 것과 비슷하죠. 오히려 그것에 대한 대답은 하킴님 말씀처럼 심리학자가 더 잘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2. 잘 아시다시피 화폐라는 것은 교환의 수단일 뿐이죠. 물물교환이 너무 불편하니깐 만들어놓은 수단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화폐를 금고에 넣어두면 아무일도 안 일어나죠. 투자를 한다는 것은 화폐를 준다고 해석하기보다는 화폐로 생산수단을 사서 빌려준다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러니 자본이윤이라는 것은 돈을 투자해서 얻은 이득인데, 정확한 과정은 돈을 이용해서 생산수단을 사서 빌려준 후에 그 댓가를 받는다라는 것으로 해석하면 되지 않을까요. (생산수단(자본)은 네가 알아서 사라, 나는 그냥 그에 해당하는 돈만 줄께라고 하는 것도 비슷한 말이라고 봅니다.)
3. (금융회사가 아닌) 일반적인 회사라는 것은 생산을 해서 수입을 만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생산을 할려면 자본+노동 두가지가 다 필요하니깐 돈만 쌓아둘 수는 없죠. 화폐 자체에서는 가치 창출 능력이 없고, 화폐 생산에 필요한 자본을 사는 데에 이용하여야 가치가 창출이 됩니다. 그것도 노동과 결합하여서 말이죠. 금융회사는 노동이 다른 회사들보다는 더 적게 들어가는 것일 뿐.
4. 이윤 맞습니다. 그런데 질문의 요지가 무엇인지 저도 헤갈리지만.... 추가 설명을 좀 해보자면,
위의 댓글에서도 약간 설명했는데, 지금 현재 상태가 완전경쟁상태였다고 가정하면, 노동자들의 현재 임금은 공정한 임금입니다. 그런데, 50% 임금 감축을 했다면, 당연히 자본가들에게 이득이 되지요. 그런데, 임금이 50% 감소가 되었다는 것은 노동에 대한 한계생산(또는 비용)이 커진 것이나 마찬가지 상황이기 때문에 이 회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노동을 더 고용하면 이윤이 더 커집니다.
5,6은 패스
말씀하신 그 경제학에서의 착취의 경우, 노동자가 받는 대가(이를테면 화폐가치로 환산한 임금)이 노동자가 생산(수익)에 기여한 한계생산(한계수익)에 미치지 못할 때 일어납니다. 제 말이 맞나요? 조잡한 예를 들어, 회사가 노동자 10명을 고용했는데, 마지막 10명 째 고용된 노동자로 인해 발생한 한계수익이 100원이고 또 노동자들 임금도 딱 100원이면 여기서 착취는 없는 거죠.
근데 맑스에서 착취의 개념이랄까 바탕에 깔린 기본 발상은 (과도한 단순화임을 전제하고 말하면) 이것과 달라요.
a) 노동자가 받는 대가(임금)을 노동시간으로 환산시켜 본 값이 우선 있겠죠.
b) 그리고 노동자가 상품생산과정에서 실제로 투하하 노동시간이 있을 겁니다.
a)가 b)에 미치지 못하면 그 때 착취가 일어났다고 하는 겁니다.
노파심에서 덧붙이지만, 여기서 착취가 일어났다고 할 때 뭔가 윤리적, 도덕적으로 나쁜 일이 일어났다는 함의는 없습니다.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아직 미뉴에님이나 피노키오님이 주신 개론서를 제대로 읽을 시간이 없지만, 현재까지 주워들은 바로는 마르크스 경제학에서 말하는 노동의 가치라는 개념이 (주류) 경제학에서 말하는 노동의 가치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착취의 개념도 다를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합니다.
제 느낌으로 마르크스 경제학에서의 노동의 가치는 (다른 재화를 기준으로 한) 상대량이라기 보다는 그것 자체로의 가치, 즉 절대량인 것 같아요.
좀더 풀어보자면 일반 경제학에서의 노동의 가치는 노동한계비용=자본한계비용 이 일치하는 지점에서 결정됩니다. (자본의 가치도 마찬가지로 이 지점에서 결정되지요) 즉, 반대로 말하면 자본이 투하되는 정도가 달라지면 노동의 가치도 달라지게 되는 셈이죠. 그런데, 마르크스 경제학에서는 자본의 투하되는 정도가 달라지는 것과 상관없이 노동의 가치가 내재적으로 이미 결정되어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요.
비행소년/
(만약 신이 주신 계산기가 있다면) 마르크스는 노동의 가치가 내재적으로 이미 결정되어 있고 그 값을 구해낼 수 있다고 말하는 건 맞습니다. 만약 '사회적 필요노동시간' '사회적 평균노동강도' '사회적 평균노동생산성' 등등 이런 것들까지 다 계산해서 값을 구해낼 수 있다면 수학공식에 의해 노동의가치를 화폐 단위의 절대량으로 산출할 수 있다는 의미이죠. 노동의가치란 어디까지나 인간의 의식 바깥에 객관화된 대상으로써 존재하는 물질적 현상이고, 물질적 현상은 인간이 과학적 대상물로 삼을 수 있다는건 유물론의 기본 명제입니다.
주류경제학은 인간의 주관적 만족감인 효용을 수학적으로 산출해낼수 있다는 것 같습니다. 마르크스는 인간에게 주관적 만족감을 제공하는 효용성(노동의가치)를 수학적인 값으로 산출해낼 수 있다는 것이니까 결국 쌍방이 마찬가지죠. 다만 효용이란 결국 인간의 의식이니 간접적인 방식으로 측정될 수 있을 뿐인 것 같고, 효용성은 객관적인 대상으로 다룰 수 있는, 상품안에 고유하게 내재된 속성이자 물질현상이라는게 다를 뿐이죠.
다만 마르크스는 그런 계산기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시장매커니즘에 의해 그 계산결과가 드러날 수 있다는 입장이기도 하고 뭐 그런거 같습니다. 암튼 그래서 이런 저런 과정을 거치는 논리적 추론 과정을 거친 끝에 최종적으로 "노동자는 자신이 생산한 노동의가치의 절대량보다 매우 낮은 임금을 받고 있더라. 오늘 나는 이 사실을 발견했도다. 유레카!!" 하게 된거죠.
7. 교환가치라는 것은 화폐라는 것이 있거나 없거나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화폐가 있으면 계산하기 편한 것이고, 없으면 불편할 뿐이지요. 이것을 전제 조건으로 말씀드리자면, 스미스 이론에 해답이 있습니다. 이미 잘 아시겠지만 결국 시장에서 다 결정이 된다는 것이지요.
일개 개개인들은 효용함수가 다 다릅니다. 선호도도 전부 다 다르구요. 그런데 어떻게 교환이 이루어지냐. 그냥 시장에 나와있는 재화들의 가격을 보고서 선택을 하게 됩니다. 거래를 할 때는 (마찬가지로 생산을 할 때도) 다른 사람들의 효용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일개 개인들은 가격만 보고서 선택을 하고 (price taker), 기업들도 가격만 보고 생산을 하고 (price taker), 그렇게 되면 각 상품 또는 재화들의 교환비율은 저절로 가격대 가격으로 알 수가 있는 것이죠.
다이나믹스를 좀 설명을 해보면, 무시할 수 없는 양만큼의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어떤 이유로 바뀌게 되었거나, 생산 혁신이 일어났거나 하는 등등의 일이 발생하면 주어진 가격에 대해서 각 소비자와 생산자들의 수요와 공급이 변하게 됩니다. 따라서 가격이 움직이게 되죠. 여전히 각 개인과 기업들은 (이 움직이는) 가격만 보고 소비와 생산을 그 가격에 맞추면서 변화시키는 것이죠. 그 과정에서 각 재화들의 교환비율이 적절하게 움직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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