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에게 몇분들이 질문을 하셨는데 답변할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총론적인 이야기로 답변을 대신할까합니다. 그리고 저야 여기서는 아는 척 좀 하면서 논쟁에 끼어들기도 하지만, 정말 학문적으로 연구하시는 분들과 마주치면 저명한 신학자 앞에 선 날라리 교인의 수준인 것을 감안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단 마르크스에 대해 비판하시는 분들이나 질문하는 분들은, 마르크스에 대해 상당한 오해나 선입견이 공통적으로 깔려 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우선 이 부분을 해소해야 생산적인 토론이 가능해질 것 같습니다. 또한 그래야만 제가 일일이 '마르크스는 그런 식의 주장을 한 적이 없다' '그건 님께서 마르크스를 잘 몰라서 하시는 이야기다' 로 소모적인 키배를 벌이는 것이 줄어들 것 같기도 합니다.

우선 마르크스에 대한 몇가지 대표적인 오해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오해들은 좌 우파를 가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1.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는 망해야 한다' 라고 주장했다?
'망해야 한다' 와 '망할 것이다'는 결코 같은 말이 아닙니다. 어떤 의사가 불치병 환자에게 '오래 사시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 '당신은 죽어야 한다 (혹은 죽어 마땅하다)' 와 같은 말이 되는게 아닌거죠.  마르크스는 자신의 이론안에서는 그런 무식한 주장을 한 적이 결코 없습니다. '자본주의가 망하는건 필연적이다' '자체 모순으로 스스로 붕괴할 것이다' 등의 주장은 그저 '사람은 언젠가는 병들거나 늙어서 죽게 된다' 와 동일한 성격인거죠. 

물론 박애주의자로써의 마르크스는 과격한 이야기를 많이 하기도 했습니다. "어린애들까지 이렇게 부려먹다니. 이런 미친 세상은 빨리 망해버려야 돼 !" 하는 식이죠. 그러나 마르크스의 그런 개인적인 분노와 마르크스주의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엄격하게 구분이 되어야만 합니다.


2. 마르크스는 시장경제 혹은 시장메커니즘을 부정하거나 무시했다?
자본론 등을 주의깊게 읽다보면, 마르크스가 시장메커니즘 (공급과 수요의 비율에 의한 가격결정 매커니즘) 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아주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서 논지를 전개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마르크스는 공급과 수요가 평형 상태에 도달하면 상품의 시장가격과 실제가치는 일치하게 된다는 매우 주류경제학자스러운(?) 주장도 합니다. 자신의 이론에 대한 공격에 대해 (당시로서는) 매우 정교한 시장메커니즘의 논리로 반격을 하기도 하구요.

또한 마르크스가 상품을 욕망의 충족수단이자 효용성이라 정의했으면서도 그것에 바탕한 시장의 가격결정이론 같은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은, 자신의 이론적 목표를 '자본주의는 왜 붕괴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인가' 를 밝히는 것에 두었기 때문이고 나머지는 사족이라 여겨서 그런 것이죠.   

그리고 마르크스는 한번도 시장경제를 부정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마르크스는 생산력의 발전을 인류진보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기던 사람이고, 사회적 분업과 직능의 전문화는 생산력 발전의 필수 조건이라 했고, 분업과 전문화는 시장에서의 교환이 없으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평생 옷만 만드는 사람이 자신이 만든 옷을 시장에서 교환할 수 없다면 생존할 수 없는거니 당연한겁니다. 따라서 마르크스 본인이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것은 자신이 세운 모든 이론을 밑바닥부터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과 같습니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시장경제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양자가 동일체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시장매커니즘을 엄격하게 분리해놓고, 전자의 모순을 밝히는데에만 주력한 사람이죠.

일부 마르크스의 후예들이 마르크스이론을 잘못 적용하여 시장경제를 자본주의와 동일시하면서 온갖 미친 짓을 해댄 것은 맞지만, 그것은 마르크스의 책임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나찌들이 진화론을 잘못 적용하여 인종차별 주장하고 학살을 했다 해서, 그것이 진화론을 창시한 다윈의 책임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3. 마르크스는 모두가 똑같은 평등 세상을 주장했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이후의 미래 사회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하거나 설명한 것은 제가 아는 한 없습니다. (제가 아직 읽지 못한 다른 책에 있을 수는 있습니다. ) 제가 기억하는건 공산당 선언에서 추상적으로 묘사된 미래의 공산주의 사회, 즉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체' 라고 말한 것 정도가 전부에요. 오히려 평등이 아니라 자유를 이야기했고, 문구만 떼어놓고 보면 차칸노르님같은 리버테리안들의 신조라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죠.  

마르크스는 착취가 사라진 사회를 주장했지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착취란 타인이 생산한 것을 빼앗아가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사람이 열심히 노력하여 100만큼 생산했는데, 게을러서 10을 생산한 사람에게 40을 이동시켜 50:50의 기계적 평등을 구현하는 것도 그 역시 착취이죠.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에 분노한 것은 평등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착취를 정당화하고 기반으로 삼는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은 이상론적 유토피아를 꿈꾸던 사람들의 주장이었고, 그 사람들의 주장을 마르크스가 주장한 것처럼 뒤집어 쓴 것에 가깝습니다. 급진적인 유토피아를 꿈꾸던 많은 사람들이 마르크스주의자임을 자처했기 때문에 그런 오해가 생긴 것도 사실이지만, 그 역시 마르크스의 책임은 아닌거죠.


4.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존재할 필요가 없던 사회였다라고 주장했다?
일부 좌파논자들중 자본주의를 마치 인류역사에서 굳이 필요 없던 체제, 서구의 아주 특수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것일 뿐이라는 등의 주장을 하면서 마치 그것이 마르크스주의에 정통한 견해인 것처럼 설명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상식처럼 아다시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역사 발전의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단계라고 주장했던 사람입니다. 저는 마르크스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그런 주장들이 왜 마르크스의 견해인 것처럼 돌아다니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 외에도 마르크스는 소유를 부정했다거나, 현실사회주의 국가 체제의 설계자였다거나 하는 많은 오해들이 사실인 것처럼 주장되는데 그 역시 아닙니다. 

이러니까 제가 마치 굉장한 마르크스주의 신봉자인 것처럼 오해하시는 분들이 몇 분 보이는데, 그건 웃기는겁니다. 마르크스는 알고보면 깔거리가 굉장히 많은 사람이에요. 특히 변증법적 유물론은 굉장히 이상합니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이론이 과학이기를 바랬던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왜 변증법으로 모든 사물과 현상을 분석하려고 하였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그런 변증법적 사유에서 도출되는 가정적 명제들을 자명한 것처럼 서술하는건 굉장히 과학적이지 못한 태도이죠. 세계 어느나라 과학자가 가설을 세우고 입증하려 할 때 변증법을 사용합니까? 과학적 방법론이면 충분했던거고, 마르크스의 굉장한 삽질이 맞습니다. 알고보면 연금술에 심취하거나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과학자가 되었다는 뉴튼과 비슷했던건데, 굳이 변호한다면 그런 시대적 한계가 있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르크스의 책은 아예 변증법을 공부해서 문법 자체를 이해하거나, 아니면 변증법을 제거하고서 의미만을 취하거나 하는 것이 올바른 독해법이라는게 저의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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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여기까지의 제 견해를 이해하셨다면, 떡밥님과 비행소년님의 질문에 대한 제 답변도 대강 유추될 수 있지 싶습니다. 결론은 마르크스는 시장매커니즘을 부정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단지 생산과정과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노동가치설로 분석하여 설명하려던 사람이죠.

떡밥님의 질문

1) 한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데 여러 가지 과정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빵 하나 생산하더라도 재빵업자, 농부, 제분업자 등등 다양한 노동자들이 관여한다. 만약 노동가치설이 맞다면 그 이윤은 이들에게 어떻게 분배되어야 하는가
 
==> 에노텐님이나 전사님이 훌륭하게 답변을 하셨지만, 제 답변은 "시장에 맡기는게 최선이다" 입니다. 그러면 자신들의 노동의가치만큼 이윤이 분배될 것입니다. 물론 그 전제는 시장이 '탐욕적인 사적 이익 추구' 에 지배당하지 않는 상태라는 조건이 있습니다. 노동가치설은 시장매커니즘과 충돌하지 않습니다. 그랬다면 노동가치설의 신봉자인 아담스미스가 시장경제의 아버지 소리를 듣는 일이 결코 생길 수가 없었겠죠. 

오히려 문제는 생산자가 노동의가치만큼 소득을 올릴 수 없는, 전혀 시장적이지 못한 자본주의 생산 양식입니다. 마르크스가 스미스를 비판했던 측면도,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 자체를 부정하려고 비판한게 아닙니다. 오히려 자본주의적 모순이 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왜곡시킴으로써 '보이지 않는 손은 작동하지 못하고 실패한다'를 보여주려던 것에 더 가깝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수정주의파) 마르크스주의자이기도 하지만, 강경한 시장원리주의자이기도 하죠.

떡밥님의 나머지 질문들도 이 답변으로 대강 대신된 것 같습니다.


비행소년님의 질문

질 문1. 그림이 팔리기 전에 작품 A의 그림값이 100만원인지 어떻게 알 수가 있다는 것이죠. 이게 설명이 되어야 착취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예를 들면, 자본가가 화가 A를 고용할 때 이 사람의 그림값은 아예 안 팔릴 수 있는 확률이 90%, 100만원에 팔릴 수 있는 확률이 10%라고 알고 있었다면 (기대값의 측면에서 보자면) 10만원을 수고비로 주고 고용계약을 맺는 것은 어찌보면 정당한 것이 아닌가요?

문제가 됐던 예시는 카메라에 찍힌 정지화면 같은 상황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만약 질문하신 상황이라면, 그 화가의 노동의가치란 '그림 한장당 10만원' 이 되는거고, 그럴 때 자본가가 10만원을 주고 고용계약을 맺는다면 "아주 착하고 양심적인 자본가" 인 것이죠. 물론, 그런 착하고 양심적인 자본가는 망할 것입니다. 아마도 그런 상황이라면 자본가는 5만원을 수고비로 주고 고용계약을 맺을 것 같습니다. 이윤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자본가는 그 누구도 결코 고용하지 않으니까요.  

나머지 질문들은 여러 회원분들이 훌륭한 답변들을 하셔서 생략하겠습니다. 


PS)혹시 '마르크스학' 박사급 학위를 가지신 분들 (그 분들 마르크스주의 전공한 실제 박사 맞습니다) 에게서 권위있는 지식이 담긴 답변을 듣고 싶은 분들은 이리로. 댓글 달면 친절하게 답변 잘해주십니다.   http://socialandmaterial.net/  저보다는 훨씬 더 정치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긍정하는 입장인 것으로 보여서 저로서는 약간 편향이라는 느낌도 들지만, 지식 자체는 저 따위는 상대도 안되는 분들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