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집 교수 “盧대통령은 개혁리더 아니다”

입력: 2006년 09월 28일 08:10:02

 

최장집 고려대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사실상 정치적 탄핵을 받았다”면서 “따라서 남은 임기 동안 갈등적인 이슈에 더 이상 손대지 말고 비갈등적인 이슈, 합의가 충분히 되어 있는 일상적인 관리 수준의 것만 다뤄야 하며 그것이 국민의 의사에 순응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최 교수는 창간 60주년 특집을 위해 지난 19일 경향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국민 의사에 순응하지 않으면 노대통령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독재자가 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최교수는 “노대통령이 개혁을 한다며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거나 시도하면 안 된다”면서 “노대통령이 그럴수록, 그 내용이 좋든 안 좋든 관계없이 국민들은 단지 노대통령이 했다는 사실만으로 부정하려 들고, 결국 갈등만 심화시킨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정부는 보수파가 집권했을 때보다 더 과격하게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노정부 정책의 특징을 사회구조를 신자유주의로 바꾸는 ‘보수혁명’으로 규정했다. 그는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지지했던 세력과 노무현 정부를 구별해야 한다”면서 민주세력이 노정부와 결별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노대통령의 개혁성에 대해 “처음부터 개혁에 대한 체계적이고 일관된 비전, 아이디어를 가졌던 리더나 정치세력이 아니었다”면서 “처음에는 개혁적이었는데, 나중에 변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권위주의에 반대하는 민주화 세력은 다 모이라는 민주세력 대동단결이 핵심 담론이 되었지만 이제는 권위주의에 반대하느냐, 민주주의에 찬성하느냐는 정치적인 경쟁축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민주개혁 대연합 같은 민주세력 대동단결론은 민주세력내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억압적 담론이자, 노무현 정부를 진보세력과 동일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신 “민주세력이 어떤 경제, 어떤 사회를 만드느냐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민주주의 내용을 얼마나 풍부하게 할까를 고민해야 한다”면서 “보통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키고, 이들의 요구가 반영되도록 하는 게 진정한 개혁”이라고 밝혔다.


그는 노 대통령이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면 역사의 죄를 짓는 것이라고 언급했다는 보도에 대해 “보수 재집권에 대한 우려에 대응하는 게 민주세력의 전략이라면 그것은 공포의 동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특정 정당이 항상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라며 “다시 집권하겠다는 것은 국민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논란에 대해 “언젠가는 이양받는 게 합리적이지만, 대통령이 신뢰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추진했기 때문에 국민의 반대가 많아지고 있다”면서 “이를 구시대 보수의 대단결로 치부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은 구식 정치 게임의 룰을 갖고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정치를 했다”면서 “그러나 노대통령은 정당을 발전시키기보다 해체하는 경로를 택했으며 정당을 소외시키고 정치를 폄훼하는 등 민주주의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현상을 ‘운동에 의한 민주화’의 결과로 분석했다. 반정치적인 정서를 갖고 있는 ‘운동의 문화’가 정치를 도덕화하려 하고, 그 결과 정당의 역할을 중시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민주주의에서는 정치가 활성화돼야 하며 이를 위해 정당체제가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제민기자〉  

 

경향신문은 창간 60주년 특집 대담을 위해 지난 19일 한국의 대표적 지성인 최장집 고려대 교수와 인터뷰를 했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소장실에서 2시간30분간 이대근 정치·국제에디터와 진행한 대담에서 최교수는 한국 사회 60년을 평가하면서 한국현대사에 대한 단선적 해석이 아닌, 다층적이고 성찰적인 이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주제의식은 여전히 ‘민주주의’ ‘정당’이었고, 그 관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 경향신문 창간 60년을 맞습니다. 경향신문 60년사는 한국사회 60년사라고 할 만큼 한국사회의 굴곡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해방, 분단, 이승만정권, 4.19혁명, 유신체제, 전두환정권의 부침과 고비가 경향신문의 역사에도 고스란히 투영되었기 때문이죠. 한국사회 60년을 한마디로 말씀하신다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창간 60년이라니까 경향신문이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한 역할이 생각납니다. 이승만 정권에 맞서다 정간돼 큰 정치적 파장이 있었던 바로 ‘59년 경향신문 폐간 사건’이죠. 50년전 경향신문은 한국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신문이었습니다. 경향신문이 더 잘 돼서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더욱 기여했으면 좋겠어요.


나는 한국 현대사에 대한 ‘성찰적 이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60년은 역사로서 그리 긴 시간은 아닙니다. 이 짧은 시기에 복잡다단하고,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이런 60년을 한 마디로 하면 ‘근대화’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어요. 근대적 국민국가 형성의 문제를 이 시기에 안고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식민통치와 분단으로 인한 혼란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문제를 포괄하고 있는 우리 역사를 하나의 기준, 관점, 규범, 가치로 정리한다는 것 자체가 지난한 일 아닐까요. 나는 우리 역사를 볼 때 상당히 다층적인 구조로 이해하는게 필요하다고 봐요. 역사를 이해하는데 초점이라는 게 있다면 여러 층에서 다양한 초점으로 비춰보는 게 필요하다는 거죠. 그러면 단선적인 역사발전 진행이라는 관점을 거부하게 됩니다. 보는 각도에 따라 정반대의 역사해석도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 역사인식에 있어서 복잡하고 다층적인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최근 역사 재해석 바람이 불면서 역사를 단선적으로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주로 보수적 관점이죠. 이제 현대사를 바라보는 두가지 시각이 팽팽하게 대치하는 상황이 나타난 듯 합니다. 바로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최근 최근 발간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란 두 시각의 대립입니다. ‘재인식’은 최근 보수화바람을 타고 잘 팔리고 있다고 합니다. ‘재인식’을 쓴 분들은 ‘인식’의 역사관을 자학사관으로 간주합니다. 지난 60년을 단선적으로 발전하고 승리해온 역사로 다시 보자, 부정이 아니라 긍정의 역사로 보자는 얘깁니다. 신선한 점도 있고 해서 환영받는 것 같기도 하고 여하튼 관심을 많이 끄는 것 같은데요, 왜 이런 재해석이 등장한다고 보십니까.


“해방 후 우리는 분단을 먼저 경험했어요. 그 것의 부정적 효과는 상당했어요. 분단이라는 게 역사를 이해하는데 갈등 내지 대립적 이해가 많을 수 밖에 없는 구도를 만들어낸 것이죠. 이후 역사 이해 자체가 양극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역사인식의 계기를 제공한 것은 민주화 운동입니다. 해방과 분단, 전쟁 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한국의 분단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에 대해 새롭게 조명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그 전에는 분단이란게 의심의 여지없이 정당한 무엇이었고, 그와는 다른 역사 이해 방법은 억압됐죠. 하지만 민주화는 역사인식의 새로운 운동을 동반했어요.


그러나 오늘날 민주화 운동이 탈동원화되고 민주정부들의 무능력과 리더십 약화를 노정하면서 국민들에게 많은 실망을 안겨주면서 보수적 역사인식이 부활하게 됩니다. 옛날 냉전 반공주의를 부활시킨 건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논리를 다시 불러들이고 있어요. 이런 역사관은 문제가 있어요. 조선 말기 이후의 거시역사적 변화를 ‘근대화’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데 우리의 근대화는 많은 비용을 수반했습니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라는 새로운 보수 사관은 일제식민통치와 분단, 분단국가 건립, 산업화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밝은 측면을 강조했죠. 그러나 사회의 번영과 성장이 가능하기까지 많은 비용과 희생이 수반됐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역사를 일면만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두운 측면, 부정적 측면, 그 비용을 정면으로 감당했던 사회집단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봐요. 분단과 산업화 과정에서 가져온 많은 희생도 마찬가지고요. 오늘의 성장은 그것의 결과물만 놓고 평가하면 안돼요. ‘성찰적 역사이해’라는 것은 근대화와 산업화로 우리가 경제성장을 이뤘다 하더라도 굉장히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많은 희생이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죠.”


- 보수세력들 사이에는 과거 구분에 있어 건국, 산업화, 민주화로 나누고 그 다음 단계는 선진화라는 설명이 일반화돼 있습니다. 60~70년대의 복잡한 사정과 그 시대의 여러가지 비용들을 고려할 때 ‘산업화’라는 게 70년대의 모순과 복잡성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시대구분이라고 봅니까.


“60~70년대를 산업화라고 하는 것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봐요. 왜냐하면 60~70년대 한국사회는 불과 한 세대도 안되는 기간동안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됐다는 점에서 우리사회의 가장 중요한 변화를 말한다는 측면에서 그런 규정은 가능합니다. 동시에 이 시기는 정치의 권위주의화로 민주주의가 억압되고, 탄압이 병행했던 시기였죠. 직접적 생산자 집단인 노동자·농민들은 성과의 배분에서 많이 소외되고, 정치적 참여도 안되는 비민주적 시기와 중첩돼 있는 시기죠. 문제는 선진화라는 개념인데, 무엇을 의미하는지 선뜻 이해가 안됩니다. 역사가 산업화, 민주화 다음으로 아주 단순하게상정된 어떤 지향점이 있는 것으로 상정하고, 그리로 가야 한다는 강력한 목적론적이고 규범적인 규정을 담고 있는 것 처럼 느껴집니다. 그 내용이 무엇이든 근대화, 산업화처럼 어떤 선진국을 모델로 하여 위로부터 국민을 동원하는 일종의 영구적인 ‘따라잡기 식 근대화’ 논리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나누는 분기점으로 87년 체제를 얘기하는데, 지금도 그 체제의 연장선상인 것 같습니다. 87년 체제는 한국사회 60년사에서 획을 긋는 매우 중요한 새로운 레짐의 등장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87년 체제의 의미와 한계에 대해 말씀 해주시죠.


“87년 체제는 아래로부터 올라온 운동의 힘 뿐만 아니라, 위로부터 내려온 기존 정치질서와 제도가 부과하는 제약이 서로 만나 양자 균형이 이뤄낸 결과물입니다. 그러나 그 것을 체제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것은 가능성과 제약을 동시에 안고 있었던 어떤 유동성의 틀을 의미합니다. 한편으로 87년 체제는 민주화의 열망, 운동의 힘에 기반했지만 동시에 기성질서의 틀에 제약되는 특성을 가졌다고 볼 수 있어요. 지내놓고 보면 그 체제는 기존 정치 행위자들 중심으로 구조를 형성시켰다는 특징을 갖습니다. 정당체제는 87년 체제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지만 기본적으로 지역정당체제에 머물렀어요. 87년 체제로 새로운 형태의 정당체제가 나타나지 못했던 거죠. 87년 체제의 정당은 민주화투쟁 운동과정에서 기대했던 정당체제의 모습은 아니었어요.


정치체제 수준이 아니라, 생산체제 수준에서 87년 민주화 이후의 틀을 보면, 60~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권위주의적 산업화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했어요. 재벌이 성장동력이 되고, 노동은 여전히 소외·배제됐어요. 신자유주의는 97년 외환위기 이후 충격적으로 들어옴으로써 민주정부는 신자유주의적 경제독트린과 정책 라인에 따라 권위주의 정부보다 또 어떤 보수정당이 집권했을 때 보다 더 신자유주의를 과격하게 추진했어요.


-87년 체제의 한계로 인해 민주주의는 여전히 미완성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군요. 절차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달성되었지만 실질적 민주주의, 사회경제적 차원에서의 민주주의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이쯤해서 과연 민주주의란 무엇인지를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과연 어떤 것을 민주주의라 할 수 있을까요.


“민주주의는 한 사회, 정치 공동체의 성원들이 참여의 평등, 자유의 실현을 실천하는 가치이자 이것을 현실화하는 제도와 정부 형태를 말합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정치참여의 폭이 평등하게 보편화되는 것입니다. 보통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가 확대되기 때문에, 보통사람들이 자신의 요구와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비약적으로 커지는 제도라고 하겠지요.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적, 사회적 결정과정에서 중산층과 서민의 이익과 요구가 대표될 수 있는 정치적 절차와 메카니즘이 자리잡지 못하고, 이들이 소외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서 정당과 정당체제의 발전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 87년 체제의 한계 때문에 노무현정부의 민주주의도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까. 노무현 정부의 문제는 87년 체제의 구조로 인한 것인가요, 아니면, 노무현 대통령 자신, 혹은 현 정치구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인가요.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를 좀 부탁드립니다.


“노무현 정부의 문제는 87년 체제의 한계라는 구조적 제약에서 생겼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노무현정부가 만들어낸 문제가 더 크다고 봐요. 현 여당은 앞선 정부의 여당 구조에서 주변에 위채했던 그룹이 중심이 됐습니다. 기존 여당이 국민들 기대와 신망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대선에 임하게 되었을 때 누군가 국민들에게 어필 할 수 있는 새로운 인물을 찾게 됐죠. 따라서 정당의 중심에서 지도자를 선출하는게 아니라 변방에서 뭔가 기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상대적으로 미지의 인물을 선정하는 결과를 낳았죠. 그게 바로 노무현 대통령입니다. 한국정당체제의 제도화가 수준이 워낙 낮은 낮았기 때문에, 예측가능한 대통령이 나오지 못했습니다.


정당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선거에서의 기대와 정부에 대한 실망이 되풀이 되는 현상이 아닌가 합니다.


구조적으로는 87년 체제의 문제도 있습니다. 사회 특정의 이익과 요구를 대표하고, 그들이 집권했을 때 그들을 선출해준 지지자에 대해 책임을 지는 정당과 정당체제의 발전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하겠지요. 대표와 책임의 정당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이 책임성의 고리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대통령은 그 것이 자신의 디러십을 강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반대로 그 것은 위험할 뿐 아니라, 대통령의 리더십이 치명적으로 약화되는 원인이 된다고 봅니다. 나는 노무현 정부가 처음부터 개혁에 대한 체계적이고 일관된 비전, 아이디어를 가졌던 리더나 정치세력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노대통령은 스스로 지역주의를 극복한 정치인이라 자임하지만, 앞선 정부 보다 전혀 덜하지 않고, 그 보다 더 협애한 지역주의적 비전을 가지고 정치를 접근해왔습니다. 그의 정치적 동인은 보수적인 야당을 경쟁상대로 하고 그들을 상대하기 보다, 앞선 정부의 힘들을 약화시키고 제어하고자하는 의지에서 나오는 것 처럼 보입니다. 마키아벨리식으로 얘기하자면 노대통령은 ‘포르투나’(행운·환경)는 굉장히 좋았는데 ‘비르투’(개인의 능력, 결단력)가 없었다고 할까요. 나는 개인적으로 원래 개혁적이었는데, 나중에 변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 노대통령이 자신의 노선을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표현했습니다. 좌파 신자유주의는 무엇보다 노무현 정부 정책이 상호 충돌하는 모순적인 내용을 불가피하게 갖고 있다는 의미로도 읽힙니다. 노무현 정부는 출발부터 안보나 대외관계는 진보적으로, 경제는 보수적으로 한다는 큰 틀을 갖고 임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전시작전통제권 이양 문제에서 보듯 경제문제와 대외관계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잡고 있습니다. 정권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하고, 정책간의 상호 충돌을 낳는 이런 현상이 왜 발생했다고 보십니까.


“특정 정권을 평가할 때 말이나 레토릭 보다는 구체적 레코드를(기록) 통해 평가해야 합니다. 한·미관계를 볼까요. 레토릭과 실제의 괴리가 너무 큽니다. 레토릭만 보면 그 어떤 정부보다 반미적이어서 국민이 아슬아슬하게 느낄 때가 한두번이 아니지만 내용적으로 앞선정부와 다른 점이 있었느냐,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미군기지 이전 문제나, 이라크 파병 문제에서 여실히 드러나죠. 미국이 원한 것 안한 게 어디 있습니까. 안보정책에 있어서도 미국에 대한 자주 노선 폈나요. 아닙니다. 노무현 정부가 독자적 정책을 관철시켰다든지, 미국의 이해에 반하는 무언가를 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없어요. 한·미관계에서 얻은 게 무엇일까요. 그리고 정부는 다른 정책에 대해서도 보수적이었습니다. 대연정은 기본적으로 대통령이 민주정치의 기본가치를 부정한 겁니다. 정당이란 게 차이를 대표하는 것이고 좁게는 자신을 지지해준 지지자에게, 넓게는 스스로의 정당에게 책임짐으로써 국민전체에게 책임지는게 아니겠습니까. 연정은 이런 책임에서 자유롭게 행위하는 것입니다. 혼동하지 말아주세요. 연정 자체가 틀렸다는 것이 아닙니다. 연정에서 필수적인 것은 타협해야할 쟁점이 있어야 하고, 그걸 놓고 어떻게 타협할지 논의하고, 타협할 이이 를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없는 전술적 연정은 국민을 우롱하는 것입니다. 노대통령이 다수당으로 만들어준 국민들에게 그런 걸 설명했습니까.”


-노대통령이 국민에게 위임받은 대통령직을 너무 자유롭게 수행함으로써 인기 떨어졌고, 결국 최근 급격한 레임덕에 처해있습니다. 최근 노대통령도 그 심각성을 인식하고 적극 방어하는 듯한 행보를 하고 있습니다. 레임덕 상태를 그대로 두기 보다 적극적 노력으로 벗어나려는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죠. 최근 노대통령의 이런 움직임들을 어떻게 보십니까.


“레임덕이란 건 임기가 있는 한 어느 나라든 있는 것입니다. 레임덕이 어떤 정치적 구실이 될 수는 없어요. 레임덕은 정부의 정책 수행을 통해 줄이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노대통령의 경우는 레임덕으로 볼 수도 없습니다. 이건 레임덕이 아니라, 사실상 정치적 탄핵을 받은 것입니다. 국민의 의사에 순응하고 부응해서 책임지는 것이 대통령의 책무입니다. 그게 민주주의 원리에 부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굉장한 독선이 되는 것이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독재자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나는 현재 노대통령이 국민에게 책임 지는 방법은 새로운 정책을 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노정부는 국민의 판단을 존중해 이제는 새로운 정책을 추진한다거나 시도해선 안됩니다. 노대통령이 그런 걸 하면 할수록, 그게 내용이 좋든 안좋든 관계없이 국민들은 단지 노대통령이 했다는 사실만으로 부정하려 들고, 결국 갈등만 심화됩니다. 최근 작통권 이양 문제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언젠가는 합리적으로 이양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대통령이 신뢰 못받는 상황에서 추진하니까 국민의 반대가 더 많아지고 있잖아요. 이걸 구시대적 보수의 대단결로만 치부해선 안됩니다. 보수도 국민들입니다. 민주주의에는 보수나 진보 어느 한쪽에 가중치가 있는 건 아니쟎아요. 노정부는 갈등적인 이슈에 더 이상 손대지 말고 비갈등적인 이슈만 건드려야 합니다. 합의가 충분히 돼 있고, 일상적으로 가게 돼 있는 국가, 내지 정부의 관리 수준의 것만 해야 합니다. 개혁이라고 해서 새로운 것 들고 나와서 일을 벌여서는 안된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하면, 좌우갈등을 더 격렬하게 만들고, 국민을 더 분열시키게 됩니다.’


- YS, DJ, 노무현 정부를 비교한다면 어떤가요. 선생님은 DJ 시절 정책기획위원장을 하셨고, 노무현 정부 때도 초기에 자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나는 한 사람의 투표자 이상의 노무현 정부와 인연이 전혀 없습니다. 당선자 시절 다른 교수들과 취임사를 주제로 한번 만나 토론한 것 외에는 만난 적이 없어요. 내가 노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는 것은 대통령이 민주주의 원리와 민주정치를 훼손했기 때문입니다. 노대통령이 민주당을 분당하고 열린우리당을 만든 이후 강조해왔던 당정분리라든가, 정치와의 거리두기는 탈정치화로 내닫게 되는 말이고 발상이라고 보지요. 정부와 사회를 매개하는 정당의 역할을 최소화되고, 그 사이 시민사회 담론이 강화됐습니다. 시민사회가 곧바로 정당의 역할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는 동안 정책결정 방식은 정책산출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관료기술적 정책결정방식이 강화도디었지요. 이 과정에서 전문가 집단의 역할이 엄청 강조됐어요. ‘보고서 정치’라 할만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전문가 집단의 결정과정에서의 참여폭 확대가 민주적 참여의폭 확대와 동일시 된 것입니다.


민주정부는 기본적으로 정치가 활성화돼야 하고 이를 위해 좋은 정당, 정당체제의 발전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민주주의 중심제도인 정당을 소외시키고 정치를 약화시켰어요. 그에 비해 YS, DJ는 구정치에 뿌리 두고 성정한 지도자들었지만, 구식 정치게임에 익숙했지만, 기본적으로 정치를 했습니다. 노대통령의 관료기술적 효율성의 정치 보다 나는 그 것이 민주주의의 원리에 더 가까운 것이라고 봅니다. ”


- 한국의 발전 모델을 거론할 미국모델이냐 스웨덴 모델이냐 하듯이 한국인의 인식 속에는 항상 미국이 있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으면 항상 외국을 의식하는데 그 외국이란 것이 일본도 아니고, 독일도 아닌 바로 미국이라는 겁니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곧 미국의 기준과 동의어 아닙니까. 미국적 가치와 같지 않으면 불안해 하는 정서는 있는 것 아닌지요. 우리 안에 미국이 너무 깊이 들어와 우리의 일부가 되어있다는 그런 우려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연하고 정당한 우려입니다. 문제는 미국화가 정치적 상상의 범위, 가치의 다양화를 한정하는 부정적 효과를 준다는데 있습니다. 좋은 대안들을 만들어내고 상상할 수 있는 여지 많음에도 미국에 압도적을 영향을 받다보니, 미국이 전부라는 인식이 강해졌습니다. 자본주의라는게 비인간적인 경쟁으로만 몰아가는 무제한적인 자유시장 일변도가 아니라 그걸 완화시켜줄 수 있는 사회복지, 공동체의 가치를 구현하는 모델을 잘 정착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유럽을 통해 배울 수 있는데도 말이죠.”


- 민주노동당 뿐 아니라, 민노총, 전교조, 시민단체등 진보개혁 세력 전반에대한 시민들의 신뢰와 지지가 현저히 하락했습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진보개혁의 위기라고 할 수 있는지, 위기라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말씀 해주시죠.


“진보세력은 우리사회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비전, 전망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입니다. 이 점에서 진보세력을 위기라고 말한다면, 분명히 위기입니다. 노정부에 관해서 평가한다면, 민주화를 대표하는 정치세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노정부가 보수개혁을 추동하면서 선거를 통해 자신을 지지했던 사회세력, 민주화세력을 대변하지 못하고 양자간의 간격은 좁혀지기 어렵게 됐습니다. 이 두 세력이 분리되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하지 않고는 민주화 세력의 앞날은 없을 것입니다. 민주화를 지지했던 광범한 사회세력이 사실상 정치적 탄핵을 받은 정부와 함께 몰락해서는 안된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민주화를 지지했던 세력은 광범하고, 그 자산은 많은데 그들의 대의를 노무현정부에 맡길수는 없습니다. 노정부가 민주적 대의로부터 벗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기의 원인은 간단하게 생각합니다. 운동이 정당으로 전환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당이란 걸 발전시키기 보다 해체하는 경로를 택했어요. 그동안 내가 글들을 통해 정당의 중요성을 의도적으로 많이 강조해온 측면이 있어요. 그건 민주화라는 건 혁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으로 정책을 통해 만드는 것은 정당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게 민주화의 요체입니다. 부실한 정당으로는 민주주의 요구를 충분히 대표하지 못하고 그러면 민주주의는 실현 난망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졌나. 우리 민주화는 운동 중심으로 형성됐습니다. 그런데 운동의 문화는 깊숙이 반정치적인 정서를 갖고 있어요. 한국사회 운동세력은 정치를 자꾸 도덕화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도덕적인 것이 곧 민주적인 것이고, 정치를 도덕화하면 민주주의 잘 될 수 있다고 보는 거죠. 현실적으로 정치와 권력에 대해 이해하고, 그 매커니즘 이해하는 정도가 매우 약해요.


-진보위기론이 만연해 있고, 실제 민노당도 침체돼 있습니다. 반면 보수세력에서는 뉴라이트 운동이 등장하면서 다시 보수의 조직화양상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계기로 보수세력이 총망라된 조직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나라당 대권주자들의 움직임도 매우 활발합니다. 대권주자 얘기는 곧 야당 주자들의 얘기와 등식이 될 정도이고, 여권 주자들 얘기는 나오지도 않습니다. 여권주자들은 오히려 그 모습을 감추고 있어야 욕을 안먹는 상황이 됐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보수는 보수대로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자’는 차원에서 신보수로의 변신등 나름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와 보수의 향후 대응이 어떻게 전개될 것 같습니다.


“우선 진보세력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한국사회 민주화를 지지했던 사회세력과 노무현 정부는 구별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지금까지는 민주화세력 대동단결이 핵심담론이 되었는데 이제는 그 것이 정치적인 경쟁축이 될 수 없습니다. 노정부는 실제로 보수파가 집권했을 때보다 더 신자유주의적인 노선을 추구해왔습니다. 보수혁명을 추동하고 있는 것이죠. 민주파는 특정의 사회세력이 권위주의냐, 민주주의냐 하는 논쟁에서 탈피해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느냐 하는 비전을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키고, 그들의 요구가 반영되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개혁입니다. 요즘 ‘보수 재집권에 대한 우려’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리고 이를 진보진영의 전략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보수의 재집권’이라는 말 자체에 거부감을 갖습니다. 이건 ‘공포의 동원’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예요. 민주파들 사이에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억압적인 담론입니다. 이게 바로 민주주의가 망가지는 지름길 아닐까요. 우리 내부에서 비판하면 안된다, 모자란 측면 있지만 대동단결해서 맞서야 한다는 식의 담론은 한계가 있습니다. 이건 안됩니다. 이건 바로 노정부와 진보진영을 진영을 동일시하는 담론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닙니다.


보수와 진보가 경쟁해서 보수가 더 지지를 받으면 당연히 집권해야 지요. 그 것이 민주주의 입니다. 민주주의 이론가인 아담 쉐보르스키는 민주주의를 정의하길 ‘정당이 선거에서 패배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특정 정당이 만년 선거에서 이긴다는 것은 민주주의 아니라는 말입니다. 보수가 재집권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 것은 민주파가 실패한 결과이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민주주의가 얼마 안됐기 때문에 권위주의 정권이 재집권하면 안된다고 하지만, 이제는 유효한 말이 아닙니다. 한나라당도 집권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것을 두려워 해선 안됩니다. 이건 누가 뭐래도 내가 꼭 하고 싶은 말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기대하는 건 우리나라의 보수당도 선거 유권자들에 반응하고 책임지고, 새로운 민주정당으로 발전해서, 진보적인 정당과 경쟁하고 갈등하고 타협하는 정치경쟁이 나타나야 민주주의가 발전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담=이대근 정치·국제에디터〉


〈정리 손제민·사진 김문석기자〉


◇최장집은 누구


최장집 교수는 1943년 강원 강릉시에서 태어났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국 시카고 대학교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0년대 초반 한때 대통령비서실 공보비서실 행정관으로 근무하다 이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3년부터는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을 겸임하고 있다.


최교수는 인간과 사회 현실에 기반한 정치학 연구를 지향하고 있다. 또 외국의 정치학 이론을 현실정치에 적용, 국내 정치를 가장 정확하게 분석하고 이론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민의 정부’ 시절 대통령 자문정책기획위원장을 맡는 등 현실정치에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참여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독선적 개혁정치를 비판하며 정부·여당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아왔다. 최근에는 국내 정치와 노동현실을 분석하며 87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가 오히려 퇴보했다는 저서를 잇따라 내놓았다. 저서로는 ‘한국의 노동운동과 국가’(97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2002년), ‘민주주의의 민주화’(2006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