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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profit comes from (By Chris Harman)

이윤은 어디에서 오는가 (크리스 하만)

 

* 출처: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 1995

http://www.marxists.org/archive/harman/1995/madhouse/1-gonemad.htm

 


 

In everyday language we often say that workers are paid ‘for their labour’. But Marx pointed out that the phrase ‘their labour’ means two different things.

 

일상 언어에서 종종 우리는 노동자들이 그들의 노동에 대해지불받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그들의 노동이라는 구절이 두 가지 다른 것들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It means the labour they do, but it also means their capacity to work which he baptised ‘labour power’.

 

그것은 그들이 하는 노동을 의미하지만 그것은 또한 그들의 노동 능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것을 그는 노동력이라고 명명했다.

 

The two things are very different. People’s capacity to work depends on them getting enough food, shelter, clothing and rest time to enable them to arrive at work each day fresh enough to put in the required effort and pay sufficient attention to the tasks facing them. They will be physically incapable of work unless they get paid enough to buy these things. As Adam Smith noted:

 

그 두 가지는 매우 다르다. 사람들의 노동 능력은 그들이 충분한 음식, 거처, 의류 그리고 휴식 시간 - 요구받는 노력을 기울이고 할당된 업무들에 집중할 수 있을 만한 활력을 지닌 채 매일 작업장에 출근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들 - 을 얻는 것에 달려있다. 그것들을 구입하는데 충분할 만큼 지불받지 못한다면 그들은 육체적으로 노동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처하게 될 것이다. 아담 스미스가 특기한대로:

 

There is a certain minimum below which it is impossible to reduce for any considerable time the ordinary wages of even the lowest species of labour. A man must always live by his work, and his wages must be enough to maintain him. They must even on most occasions be somewhat more; otherwise it would be impossible for him to bring up his family and the race of such workmen could not last beyond the first generation.

 

가장 저급한 노동이라도 그것에 대한 통상적 임금을 다소간 오래 동안 그 아래로 깎는 것이 불가능한 일정한 최소치가 있다. 노동자는 언제나 노동을 해서 생계를 이어가야 하며 그의 임금은 그를 유지하는데 충분해야 한다. 게다가 임금은 대개의 경우 약간이라도 더 높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그의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며 그러한 노동자들의 족속은 첫 세대를 넘어서 지속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ly what counts as ‘enough’ for workers depends on the job they do and the general conditions in the society in which they live. So workers in Western Europe, the US, Japan or even South Korea today normally expect to get better food, shelter and clothing and more rest time than did the Manchester workers Engels met in the mid-1840s or, for that matter, many workers in India or Africa today. And the more farsighted employer sometimes recognises that he must provide his workers with certain minimum conditions if they are to toil productively, just as the clever farmer knows he has to give his cows an adequate amount of hay if he is to get a high milk yield. An article in the Financial Times in January 1995 reported, ‘Many managers realise... that unless their staff take their holidays and maintain a life outside work they will fail to perform effectively. “I insist on my staff taking their holidays,” explained a partner at one leading British accountancy firm. “Otherwise they become less productive”.’

 

정확히 어느 정도가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것으로 셈되는지는 그들이 행하는 직무와 그들이 사는 사회의 전반적 조건들에 달려 있다. 이를테면 서유럽, 미국, 일본 또는 심지어 한국에서도 노동자들은 오늘날 대개 1840년대 중반에 엥겔스가 만났던 맨체스터 노동자들보다 - 또는 그 문제라면, 오늘날의 인도나 아프리카의 노동자들보다 - 더 나은 음식, 거처, 의류와 더 많은 휴식 시간을 얻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더 멀리 내다보는 고용주들은 때때로 생산적으로 노동하게 하려면 노동자들에게 어떤 최소 조건을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한다. 똑똑한 농부가 고품질의 우유를 얻으려면 소들에게 적당한 양의 건초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말이다. 19951<파이낸셜 타임즈>의 한 기사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많은 경영자들이 직원들이 휴일을 누리며 노동 외의 생활도 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효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한 주요 영국 회계 회사의 한 간부 사원은 저는 제 부하 직원들에게 휴일에는 반드시 쉬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덜 생산적이 됩니다라고 설명했다.’

 

Of course, many employers do not see it like this. They resent every penny they spend on wages and every minute workers are not toiling for them. And the workers certainly do not see their wage as being just a means to enable them to work for the employer. They see it as something which gives them the chance to buy what they want whether it is a few pints of beer, a secondhand car, toys for the kids, or a couple of weeks holiday. That is why there is always a continual struggle between employers and workers, with employers trying to force wages down below the minimum needed to sustain the lives of the workers’ families, and the workers trying to force wages above this minimum, to give themselves a little more ‘free time’ and a few ‘little luxuries’.


물론, 많은 고용주들은 달리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임금으로 지불하는 단 1원과 노동자들이 그들을 위해 일하지 않는 단 1분도 아까워한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확실히 임금을 그들이 고용주를 위해 노동하도록 하는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그것을 그들이 원하는 것 - 몇 병의 맥주일 수도 있고, 중고차일 수도 있고 자녀들을 위한 장난감일 수도 있고 2주 동안의 휴가일 수도 있다 - 기회를 주는 무엇인가로 본다. 그것이 언제나 고용주들과 노동자들이 계속 싸움을 벌이는 이유이다. 고용주들은 노동자와 그의 가족의 생계를 지탱하는데 필요로 되는 최소치 아래로 깎으려고 시도하고 노동자들은 이 최소치 위로 올리려고, 그래서 약간의 더 많은 자유 시간과 약간의 소소한 사치재를 누리려고 시도한다.

 

But the reality under capitalism today, just as much as in Marx’s time, is that the mass of manual and white collar workers are physically or mentally exhausted when they finish work, spending their money on things that do little more than restore them to a condition to resume work the next day or the next week. You don’t see many manual or white collar workers who are not tired when they crowd into the buses or trains to work in the morning, or when they crowd into them again to return home in the evening.

 

그러나 마르크스의 시대만큼이나 오늘날 자본주의 하의 현실에서도 육체 및 화이트 칼러 노동자들 다수는 하루 일을 마칠 때쯤이면 심신의 활력이 고갈된다. 그들은 임금으로 다음 날이나 다음 주에 노동을 재개할 수 있을 만한 상태로 그들을 회복시켜주는 작용 이상은 거의 하지 않는 것들을 구매한다. 아침의 출근 버스나 기차에서 북적이는 사람들 틈새에 끼어 있을 때, 저녁에 다시 퇴근 버스나 기차에서 사람들 틈새에 끼어 있을 때 지쳐 있지 않은 육체노동자나 화이트칼러 노동자들은 많지 않다.

 

The wage or salary the worker gets depends on the cost of restoring this capacity to work the cost of replenishing ‘labour power’. If wages are too low, workers will be ill nourished and too tired to work adequately. They won’t want to work and the capitalist won’t be able to get as much production out of them as he wants. If, on the other hand, the wage is greater than the cost of restoring the workers’ capacity to toil, the employer will do his utmost to replace them with other workers he can get more cheaply.

 

노동자가 얻는 임금이나 봉급은 이 노동 능력을 회복시키는데 드는 비용 - ‘노동력을 재충전하는데 드는 비용 - 에 따라 결정된다. 임금이 너무 낮으면 노동자들은 충분히 먹고 마시지 못해 노동을 제대로 하기에는 너무 피곤할 것이다. 그들은 노동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고 자본가는 그들로부터 원하는 양 만큼의 제품을 얻지 못할 것이다. 다른 한편, 임금이 노동자의 노동 능력을 회복시키는데 드는 비용보다 크다면, 고용주는 그들을 더 싸게 부릴 수 있는 다른 노동자들로 대체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Just as with any other good that is bought and sold, the value of the worker’s labour power depends on how much labour is needed to produce it. That is, it depends on how much labour goes into producing the sustenance needed to keep the worker fit, healthy and ready to work how much is needed to provide three meals a day, transport to work, a little relaxation in the evenings and at weekends, the upbringing of children who become the next generation of workers. But the amount of labour required to produce the goods that make you fit and able for work is not the same as the amount you can actually do once you start working. It may only take four person hours of society’s total labour to produce your family’s food, shelter and clothing. But you are capable, under pressure, of putting in eight, ten or even 12 hours a day. And the capitalist will refuse to pay you your wage unless you do so.

 

구매되고 판매되는 여느 재화와 마찬가지로, 노동자의 노동력의 가치도 그것을 생산하는데 얼마나 많은 노동이 필요한가에 달려 있다. , 그것은 노동자를 노동할 준비가 되어 있고 건강한 상태로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생산하는데 얼마나 많은 노동이 들어가는가에 - 하루 세끼 식사, 출퇴근 교통편, 저녁과 주말 동안의 약간의 휴식, 다음 세대의 노동자들이 될 아이들의 양육을 제공하는데 얼마나 많은 노동이 필요한가에 - 달려 있다. 그러나 노동자를 건강하고 노동할 수 있게 하는 재화들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노동의 양은 노동자가 일단 노동을 시작할 경우 실제로 할 수 있는 노동의 양과 동일하지 않다. 노동자 가족의 음식, 거처 그리고 의류를 생산하는 데는 사회의 총노동 시간중 노동자당 네 시간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는 압력을 받을 경우 하루에 여덟, 열 또는 심지어 열두 시간 동안도 노동할 수도 있다. 자본가는 노동자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임금을 지불하는 것을 거부할 것이다.

 

He pays you the going rate for your labour power. But he gets from you a day’s labour and that is worth much more than the going rate for a day’s labour power.

 

그는 노동자에게 노동력의 현재 시세를 지불한다. 그러나 그는 노동자로부터 하루의 노동을 얻는다 - 그리고 그것은 하루치 노동력의 현재 시세보다 훨씬 더 값어치 있다.

 

So if it takes four hours work to produce the goods you live on but you work an eight hour day, then the capitalist is taking four hours work a day off you for nothing.

 

따라서 노동자의 [하루] 생활에 필요한 재화들을 생산하는데 네 시간의 노동이면 되지만 노동자가 하루에 여덟 시간을 노동한다면, 자본가는 노동자로부터 하루 네 시간의 노동을 공짜로 가져가는 것이다.

 

Because he controls the means of production he is able to pocket a surplus of four labour hours a day. This surplus Marx called ‘surplus value’ the source of profit, interest and rent.

 

생산수단을 통제하기 때문에 그는 하루 네 노동시간의 잉여를 [하루 네 시간의 잉여노동을] 자기 주머니로 가져갈 수 있다. 이 잉여를 [상품의 가치 중 이 잉여노동이 생산한 가치 부분을] 마르크스는 잉여가치라고 불렀다 - 이윤, 이자 그리고 지대의 원천.

 

The capitalist grabs this value off the worker every day. And by doing so, he continually puts himself in a position to grab still more surplus value. For the surplus value provides him with the wherewithal to get further means of production and to force workers to slave for him in future.

 

자본가는 매일 노동자로부터 이 가치를 가로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신을 훨씬 더 많은 잉여가치를 가로챌 수 있는 위치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있게 한다. 잉여가치가 그에게 더 많은 생산수단을 마련해 노동자들을 미래에도 계속 그에게 예속되도록 강제할 수 있는 자금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Yet, after all this has happened, the capitalists claim they are doing the workers a favour by allowing them to work. They claim they are the ‘work providers’, as if no social labour could take place without their prior robbery. And some people within the working class movement are stupid enough to refer to them as ‘partners in production’, as if the slave owner is the ‘partner’ of the slave or the feudal lord the ‘partner’ of the feudal serf.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게 노동을 허용함으로써 그들이 노동자들을 이롭게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들이 [자신들이] ‘노동 공급자들이라고 주장한다. 마치 그들의 사전 약탈 없이는 아무런 사회적 노동도 행해질 수 없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노동계급 운동 내의 일부 사람들은 그들을 생산 파트너들이라고 부를 정도로 어리석다. 그것은 노예 소유주가 노예의 파트너라거나 봉건영주가 봉건농노의 파트너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The reality is that, each time the worker works, he adds to the control which the capitalist exercises. This is true even if conditions are such as to allow an improvement in the workers’ living standards. As Marx puts it in Capital:

 

실상은 노동자의 모든 노동 시간은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행사하는 통제력을 증대시킨다는 것이다. 이것은 노동 조건이 개선되어 노동자의 생활수준이 향상되더라도 진실이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대로 말이다:

 

Just as little as better clothing, food and treatment do away with the exploitation of the slave, so little do they set aside that of the wage worker. A rise in the price of labour only means that the length and weight of the golden chain the wage worker has already forged for himself allow of a relaxation of the tension of it.


더 나은 의류, 음식 그리고 대우는 노예의 착취를 제거하지 않은 것처럼 임금 노동자의 착취도 폐기하지 않는다. 노동가격의 상승은 임금 노동자가 이미 스스로 단조한 황금 사슬의 길이와 무게가 그것의 팽팽함이 약간 완화되는 것을 허용한다는 것만을 의미할 따름이다.

 

* 노동가격: 마르크스에 따르면 노동자가 자본가한테 판매하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노동력이기 때문에 노동가격이란 표현은 허위적이다. 위 인용문에서 마르크스는 그 점을 깜박 잊은 것이 아니다.

 

This enables the capitalists to get into their hands all the plant machinery and raw materials needed for further production. They can then pretend to be the ‘wealth creators’, the people who ‘provide work’ for others. In fact, what they have done is steal the product of the labour of others and then forbid it to be used for further production unless they are allowed to steal again.

 

이렇게 해서 자본가들이 생산증대에 필요한 모든 공장 설비와 원료들을 수중에 넣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들은 그러면서 부의 창조자들인 체, 타인들을 위해 노동을 공급하는이들인 체 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이 하는 것은 타인들의 노동생산물을 도둑질하는 것이고 그들이 다시 도둑질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한 그 노동생산물을 추가 생산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