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 역시도 펌글 토론입니다. 출처는 싸이엔지네요. 이공계 분들 중에는 읽어본 분들도 있으시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원문 출처: 작성자 Avaritia 님. 이 분 어떻게 아크로에 모셔올 방법이 없을까요?

http://www.scieng.net/zero/view.php?id=now&page=1&category=&sn=off&ss=on&sc=on&keyword=&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5289

이게 웬 육식동물이 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부르디외라면 프랑스의 철학자로, 책 좀 읽었다-이런 말에서 과학/기술 계열 전문서는 이유없이 배제되곤 한다-는 인문사회계 출신들이나 가끔 부르는 이름 아닌가. 하지만 이 사람의 소위 전공분야가 '현대사회에서의 계급'과 관련된 것이니, 인문사회계 입장에서는 구닥다리 얘기요, 이공계 입장에서는 아직 써먹을 일이 좀 있겠다.

부르디외 철학에 관해 어려운 얘기, 우리랑 크게 상관없는 얘기는 생략하고 단도직입적으로 할 얘기로 들어가자.

부르디외는 한 사람이 갖게 되는 -갖고 태어날 수도 있고 노력해서 얻을 수도 있는- 자본을, 돈 빼고,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문화자본, 학력자본, 그리고 사회(관계)자본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문화자본은 주로 '취향'의 형태로 드러나고, 계급간 '구별짓기'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 - 도구일 수도, 지표일 수도-을 한다. 말하자면 돈이 많거나 권력이 많더라도 저질 취향을 가졌다면 상류 계급이라 보기 어렵다던가... 그 반대로, 갑부는 아니지만 고상한 취향의 집에 태어났다면 상류층 어드메에 자리매김할 수도 있는 것이다. (느낌이 좀 오기 시작하는가? 그렇다. 재미있는 얘기다)

사회(관계)자본 역시 계급에 따라 크게 다르다. 우리는 주변에서, 부모로부터 '돈' 말고도 사회관계망과, 그것을 효과적으로 기를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을 받는 사람들을 종종 발견한다. 상류 계급의 자제들은 관계망을 활용하는 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쉽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사립학교 등을 통해 유효한 지인들-사회관계자본을 많이 가진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를 가질 수 있도록 트레이닝되며, 그들의 관계망은 무한대로 중복되고 확장되고 증폭된다.

학력자본 역시 세습된다. 고학력 부모, 상류 계층 부모가 자녀에게 좋은 교육을 시켜줄 수 있다. 또한 오랜 기간 지원해 줄 수 있기에 높은 교육 수준과 자격을 갖추는 데에도 유리하다. 하지만 학력자본은 앞서의 두 가지 자본과 비교하자면, 개개인의 노력으로 얻기에 가장 쉬운 것이다. 따라서 학력자본을 (뒤늦게) 갖추게 된 사람들은 문화자본과 사회관계자본을 확보하여 (출신보다) 더 높은 계급으로 올라 서고자 하는 욕구를 갖게 된다.


다음으로, 부르디외는 현대 사회-주로 프랑스-의 계급을 다음과 같이 구분했다. 일단 상층 계급, 중간 계급, 민중 계급으로 구분을 했는데, 이것은 경제적 위치로 대충 해석해도 무방하다. 흥미로운 것은 각 계급 내의 세부 구분이다.

상층계급은 다시 '지배분파'와 '피지배분파'로 나뉜다. 교수, 상급기술직, 예술가 등은 피지배분파다. 이공계로서 CEO나 고위관리(상층 지배분파)가 되지않는 경우 '잘 풀리면' 상층 피지배분파에 속하는 것이다.

중간계급은 신흥쁘띠부르주아지, 상승쁘띠부르주아지, 구쁘띠부르주아지라는 다소 난해한 세 계층으로 나뉜다. 이중 이공계에 해당하는 계급은 '상승쁘띠부르주아지'로, 일반기술직, 사무노동자, 일반관리직 등이 속해 있다. 이름에 '상승'이 붙은 이유는 -내 맘대로 재해석하기로는- (그 이하의 계층으로부터) 학력자본을 확보함으로써 상승 진입할 수 있는 계급이며, 이들의 경우 '더 잘 풀리면' 더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기반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민중계급은 생산노동자, 소농부, 저임금노동자(일용직)로 구분하고 있다.


다시 이공계 얘기로 돌아가 보자.
힌극에서 7-80년대 이공계 진학률이 높았던, 그리고 지금 중국에서 높은 이유는 상류계급이 두껍게 형성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화자본과 사회관계자본은 다들 고만고만하다. 학력자본을 확보함으로써 상층-피지배분파, 중간-상승쁘띠부르주아지 계급을 비교적 쉽게 확보할 수 있는 길이 바로 이공계에 진학하여 대학을 나오고, 나아가 석박사를 하는 것이었다. 한국 상황에 대입을 해 보면 학-석사는 상승쁘띠부르주아지를 확보하고 상층계급 진입을 노릴 수 있고, 박사 후 교수나 출연연 책임급에 이르면 상층-피지배분파에 도달하고 지배분파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 스토리는 대략 90년대초 정도까지나 유효했다는 것이다. 경제 발전에 따라 중산층이 두터워지고 상층계급에 속한 사람들도 늘어났다. 다시 말해, 문화자본과 사회관계자본의 '상속'이 시작된 것이다. 많은 이공계인들이 학력자본에 크게 매달리고-또는 집착하고- 있는 동안 문화자본과 사회관계자본이 학력자본 이상으로 파워를 갖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가장 먼저 일어난 현상은 문화자본, 사회관계자본에서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가졌다고 자신하는 계급으로부터 이공계를 탈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 노골적으로 말해서, 소위 강남출신들부터 '의사가 낫다. 아니, 최소한 인문사회계가 이공계보다는 낫겠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이공계에 일단 들어온 이들도 다른 진로를 모색하는 유행이 불기 시작했다. -이후, 이공계에서조차 문화자본과 사회관계자본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이 있을 경우 약간의 변화가 보일 조짐도 있다-

뜬구름잡는 얘기로 새는 것을 틀어 쥐며, 개개인의 전략에 대한 얘기로 전환해 보자. 이공계인들이 인문사회계인들에 비해 문화자본과 사회관계자본이 부족한가? 이 질문에 대해 선뜻 그렇다고 할 수 없다. 그럴 이유도 없다. 하지만 질문을 바꾸어 보자.

"이공계에서, 학력자본을 많이 축적했을 때, 이와 비슷한 수준의 학력자본을 가진 타분야 사람들에 비해, 문화자본과 사회관계자본이 부족한가?" 이 질문에는 '그렇다고 본다'고 답하겠다. (부르디외는 이 문제에 대해 아주 진지하게 실증적인 연구를 수행했다. 학력수준이 동일한 집단에 대해 출신계급에 따라 문화자본의 차이가 나는지 조사한 것이다.)

이공계인들은, 다는 아니겠지만, 같은 학력수준을 가진 사람들은 '비슷한 수준이어야 한다' 또는 '비슷한 사회적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맘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바꾸어 말하자면, 만약 내가 높은 학력수준의 소유자라면, 다른 사람보다 더 대우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기업 연구소의 석사급 연구원 초임이 금융권 학사급 신입사원 초임보다 낮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여긴다. 이때, 금융권 신입사원에게 이공계 연구원보다 높은 수준의 문화자본과 사회관계자본이 요구되었을 수 있다는 것은 간과한다. -금융권보다도, 이건 어떤가? 한국에 들어온 여러 해외 명품 브랜드 지사들 말이다. 까르띠에, 구찌, 루이비통, 샤넬 등등... 여기에 입사해서 몇년 일해 실장 직함을 달고 억대 연봉을 받는 사람들의 학력자본은 별 것 없다. 하지만 이들의 문화자본과 사회관계자본은 어떨까.

결국 이공계인들에게 전략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문화자본과 사회관계자본을 확충할 것, 그리고 (부르디외가 지적한 것처럼) '계급탈락'을 막기 위해 다양한, 새로운 직업군을 개발할 것이다. -이 새로운 직업군은 이공계의 학력자본과, 함양된 문화 및 사회관계자본을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담급 첨언 한마디 추가. 부르디외가 문화자본의 핵심으로 '취향'을 논하면서 함께, 말하는 매너의 차이를 언급하기도 했다. 말하는 매너에는 '학교적'인 경우와 '사교적'인 경우 (각각 학자의 것, 사교가의 것)가 있다고 한다. 나는 집사람에게 이런 지적을 자주 당하는데, 바로 "당신 말은 너무 논문투야. 부드럽고 쉽게 말하도록 해" 라는 것이다. 성격이 유들유들하다는 말은 못 듣고 살고, 직설적이고 날카롭다는 말은 듣는다. 학력자본을 주기반으로 하는 이공계적인 특성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것이다. '세련된 사교 매너'는 문화자본과 사회관계자본의 지표이기도 하고 도구이기도 하다. 닭살 돋는 그런 것이 부럽다는 건 아니지만, 이공계인의 '계급 개선'을 위해 "부르디외씨가 말씀하신 것을 그냥 응용했습니다" 라는 얘기다.

이 글에서 지나친 일반화를 많이 사용했다. 혹시 불쾌하게 읽은 분이 있다면 사과를 드리며(사교적 말하기?), 이에 대한 비판은 정중히 사양한다. 참고로 이 글에서 언급되고 인용된 대부분의 내용은 부르디외 저, 최종철 옮김 '구별짓기' 상, 하권에서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지은이나 옮긴이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이공계 상황이라던가 지식자본기반 노동자(지식노동자)의 문제에 새롭게 적용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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