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활동하는 철학 동호회에 있는 어떤 분이 쓴 글입니다. 글이 쾌도난마식으로 매우 솔직하고 명쾌하게 쓰여져서, 단숨에 읽히더군요. 글쓴이의 허락을 받아 아크로에도 가져 옵니다. 하긴, 스켑렙 시절부터 진중권은 주요한 화두였지요. 

 원문 출처는: http://club.cyworld.com/50332838168/114082577

"저 새낀 왜 저래?"

    누구한테 할법 한 말인가? 이런 경우를 생각해보자. 친구들 서넛이 모여서 TV를 보는데 마침 추적60분에서 대학의 무분별한 영어 (로 하는) 강의의 확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하자. (방금 TV에 그게 나오고 있더라.) 근데한놈이 진지하게 보면서 진지하게 이런다.

    "아주 한국어를 없애지?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이냐? 영어로 강의하는거 많이 듣는다고 재고있는 녀석들이 태반이니 말 다했지."

    옆에있는 나머지 친구들의 반응.

    "음…….(그런 생각은 그냥 속으로 해.) "

    "음…….(그런 생각은 그냥 속으로 해.) (2) "

    "음…….(그런 생각은 그냥 속으로 해.) (3...) "

    이 친구들이 아마 그럴거다. 

    "저 새낀 왜 저래?"

    적어도 난 이런 구도가 익숙하다. 뭔가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함께 보고나서, 혹은 보는 동안 그 진지함을 함께 나누려는 시도를 불편하게 여기는 분위기. 그냥 다 함께 웃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만 했으면 좋겠는데 저새끼는 왜 지랄이야- 하는 무언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그런 분위기. 도처에서 겪었고, 나도 다수의 쪽에서 '저새끼 왜저러냐. 짜증난다.'의 방식으로 끈끈하게 연대(?)하고 있었던 시절이 있다. 그리고 지금도 편의상 그러는 때가 많다.

    이건 이동네 대중들이 특정 주제를 놓고 진지하게 각자의 의견을 꺼내고 그 의견들을 부딧치게 하는 데에 얼마나 익숙하지 못한지 잘 보여주는 예다. 여럿이 모이면 거기 있는 사람이 모두 동의하는 방향의 이야기만 해야하고, 누군가 아마도 모두가 동의할 거라고 생각하고 꺼낸 이야기가 모두의 동의를 받아내지 못하는 이야기일 경우에는 그 이야기를 꺼낸 사람은 당황하고 나머지는 그 주제를 얼른 묻어버리는거다. 대개 여러 사람이 모여서 술자리 같은걸 가지면 이런 풍경이 연출될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면 '~는 까야 제맛' 이라는 유행어를 좆선일보에 뒤집어 씌워 본 적이 있는 사람이 꽤 많을 것이다. (물론 이 와중에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박정희라고 일갈하며 ROTC면접을 보고 있는 양반도 있긴 있는 모양이지만, 그런 풍조-좆선일보는 까야 제맛이라는-가 분명 있긴 있다.) 좆선일보가 까여야 하는 이유는, 생각을 좀 해서 말을 해야 할, '언론'(지 딴에는)이라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아~무 생각 없이 위에 서술한 저런 분위기만을 고수하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분위기냐면, 'A는 개새끼다' 라는 분위기가 만연한 술판에서 'A가 왜 개새낀데?'라고 물어보면 'A가 개새끼가 아니라고? 너이 씨팔새끼!!!!'라고 나머지 전원이 벌떼같이 일어나 덤비는 그런 분위기란 말이다.

    그런데 과연 '좆선일보는 까야 제맛 :D' 이라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까? '좆선일보는 까야 제맛' 이라는 사람들 5명+알파가 모여서 맥주한 잔 하는데, 좆선일보의 갠춘한 점을 조목조목 이야기 하면 과연 다들 고개를 끄덕이면서 논리적인 담화 모드로 돌입할까. 글쎄~ 안 그런 경우가 더 많을걸. 노빠들 틈에서 노무현이 잘못한 점을 지적하면 노빠들은 감정을 추슬르고 논리적으로 사고하며 젖절한 토의/토론 모드로 대화할까? 글쎄~ 안 그런 경우가 더 많을걸.

    좆선까 밭에서 좆선의 장점 얘기하는것과 노빠들 틈에서 놈현 꼬집는 얘기 하는 것 자체가 병신짓 아니냐고 반론할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 난 그렇게 안본다. 애초에 '~빠' 라는 것 부터 깝깝한거다. 완전무결한 사람 같은건 이 세상에 없다. 따라서 전적인 누구누구(혹은 무슨무슨 신문, 혹은 무슨무슨 회사 등등등등)빠 같은게 말도안되는 개념이다. 그가, 혹은 그 언론이 완벽해서 좋아하는게 아니라 결점까지도 모두 포함해서 좋아하는거라고? 결점을 왜좋아하냐? 그게 결점으로 보이면 그 부분은 까고봐야될것아닌가. 좋은 부분만 좋다고 하면 되는거다. 그와중에 내가 좋게보는 부분을 나쁘게 보는 사람도 만날 수 있는거고, 추적 60분 -영어로 하는 강의가 범람하는 대학가 편 이라든지- 을 보면서 진지하게 의견 얘기 하면 진지하게 듣고 진지하게 공감하거나 진지하게 반론을 해 보고 그러면서 새로운 생각도 해 볼 수 있는거고 그런거 아닌가.

    이번에 한윤형씨가 낸 책, '뉴라이트 사용후기'를 관통하는 작가의 의식또한 위에서 한 얘기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민족주의자들은 지네들 술판을 벌여놓고 그 술판에서 모두의 합의를 깨는 발언을 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정신없이 까대기 바쁘고(이 안에 논리 따위가 설 자리는 거의 없다.), 뉴라이트 쪽도 민족주의자들의 편향된 시각을 비판하면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사관을 가진 것 처럼 선전하면서 기실은 하는짓이 똑같다는 얘기를 책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인정받아야돼! 정당한 나라란 말이야! 왜 까려구 그래! 징징징징!ㅠㅠ' 이러면서 이승만정권 때 벌어진 파시즘적 행태들을 눈감고 지나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한윤형의 표현 대로 가치판단이 사실판단에 선행하는 황당한 꼴인거다. (쓰다보니 독후감이라기보다는 어째 책 간추리기가 되어가는 것 같은데) 

    그럼 대체 이같은 행태는 왜 벌어지는거지? 왜 내가 생각하는 옳은 것 만을 이야기 하고 나와(우리와) 다른 것을 들이미는 사람이 있으면 "저 새낀 왜 저래?" 라며 물리치는거지? 왜 가치판단이 사실판단보다 선행하는걸까? 여기서 다시 이 글의 초반에 예로 들었던 분위기로 돌아가야한다. 사실 노빠들 틈에서 노무현의 잘못을 이야기 했다가 까이는건, 그나마 어떤 특정한 맥락 속에서 의견을 같이하는 자 들의 앞에서 그들과 반대되는 이야기를 했으니까 그런거라고, 쬐끔 더 관대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래도 어쨌든 '~~빠'가 되어 그사람이 한 일은 뭐든 옹호하려는 짓은 한심스럽다.) 그런데 흔히 친구들이나 동아리 멤버들 등 친구나 가까운 선후배들이 모인 자리에서 (10명 이상 단위로 크게 모였든, 너댓명 규모로 작게 모였든) 그저 한없이 가벼운 이야기나, 진지하더라도 전체 성원이 동의하는 이야기만 하려고 하는 태도는 총체적/종합적이다. 민족주의자들과 뉴라이트들의 행태와 근본은 유사하나 어쩄든 차이가 있긴 있는거다.

    뉴라이트 vs 민족주의자 같은 경우는 그나마 윤곽이 잡히는 (그래도 폭이 너무 넓어서 한윤형은 여러가지 곁가지를 생략하고 책을 냈는데) 편이지만, 이런 경우는 맥락도 없다. 현상을 있는 그대로 정리해서 써 보자. 『어떤 집단이 있는데, 그 집단은 집단의 구성원 모두가 암묵적으로 공감하는 어떤 세계인식을 공유하고있고, 누군가 이 공유된 세계에 흠집을 내면 그 자를 배제하려고 한다.』 뭐 이런식으로 정리할 수 있겠지 싶다. 집단의 구성원들은 모종의 환상을 공유하는거다. 예를 들어 보자면 '예쁜 여자가 좋다.' 는 합의, '날씬한 여자가 예쁘다.'는 합의, '이명박은 개새끼.' 라는 합의, 좀 더 나아가면 '우리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이라는 합의 등등이 있겠다. 한도끝도없다, 이런건. 좀더 생생하게 예를 들자면 "막장대학교 삽질동아리의 좆ㅋ망ㅋ군(실제 인물/사건/단체와 전혀 관계 없음.)은 싸가지가 없는 녀석이다." 라는 합의라든지. 

    아무튼 이 집단의 구성원들은 모종의 합의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 합의의 틀 안에서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이야기만을 반복하며 날이면 날마다 웃고만 지낸다는거다. 그게 나쁘다는게 아니다. 친한 사람들 끼리 즐겁게 지내는게 나쁜짓이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나쁜건 이 환상의 틀 안에서만 하하호호 지내지, 누군가 조금이라도 여기에 균열을 내려는 시도를 하면 서둘러 제지하기만 하지, 균열을 허용하고 새롭게 튀어나온 이야기들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는 점이다. 

    나의 경험을 예로 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 좀 옛날 일이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는 많이 다르다.) 퇴근길에 지인과 버스에서 만났다. 지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공익근무요원/사회복무요원의 정치적 활동을 금지한다.》 는 법규는 위헌인것 같은데, 헌법소원을 내 보면 재미있는 경험이 되지 않을까 한다.' 는 얘기. 지인의 반응은 이랬다. '아유~ 둥글게 살어~ 둥글게~ 짧은 인생 험하게 살려구 그래~' 난 그를 싫어하지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약간 호감이 있는 편이다. 선량하고. 하지만 그의 '둥글게 살자' 는 이야기에는 태클 걸 부분이 참 많다. 뭐, 이 글의 논점에 부합되는 부분만 지적하자면, 저런 태도가 바로 언제나 자기가 좋아하는 세계, 자기가 품은 환상의 속에서 늘 웃을 수 있는 이야기만 하려는 태도라는것이다. 정말 별게 아니다.

    자기 마음이 편한, 즉 자기가 원하는 세계에 다른 사람이 맞추어 주길 바라는 마음. 거의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스스로를 투명한 공 안에 가두어 놓는 것 같은 행동이다. 이 공은 마치 자궁 같아서 공 안에 있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주지만 공 안의 사람이 외부와 단절되게만든다. 이 공의 성격은 공을 만든 사람-즉 공 안에 있는 사람-이 자라면서 받아들인 외부 정보들로 결정되는데, 태어나서 성장하면서 점점 견고해 진다. (요즘은 이 외부 정보라는게 매스미디어에서 그야말로 '매스'로 쏟아진다.) 같은 시대,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이 공에 유사한 성격들을 조금씩 포함하게 마련인데, 그래서 사람들이 모이면 각자의 공에서 모두의 공과 공통된 부분들을 결함해 공통의 공을 생성하는것이다. 그리고 이 공에 흠집을 내려는 시도를 싫어한다. 공 안에 있으면 편한데, 바깥바람 들어오면 춥거든.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한두시간 전에 있었던 엄마와의 대화이다. 엄만 아빠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대할때 마다 특정 부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또 요즘엔 내가 아빠의 이야기에 태클을 자주 걸려고 하는 것 같아서 집안에서 누구를 대하든 늘 불안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집안에서도 편안하게 지낼 수 없는 상황이라고 안좋은 심정을 토로했다. 엄마가 원하는 것은 평화로움이다. 자신이 상정한 투명 공이 깨지길 원하지 않는다.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요즘은 사무실에서도 힘든 일이 있는 것 같고. 그 공이 완전히 깨지면 크게 상처받을게 틀림없다. 아빠도 마찬가지다. 다들 자신의 공이 있는거다. 깨지면 누구나 상처입는다. 그렇지만 이런 공이 있다는걸 알기 위해서는 공이 깨질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리고 그들의 공을 지켜주기 위해서 나를 죽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하지만 나역시 공을 가지고 있고, 나역시 공이 산산조각 나 버리면 크게 타격을 입겠지.

   다음은 진중권에 관련하여,

  역시 출처는: http://club.cyworld.com/50332838168/114082856
진중권씨가 요 얼마전에 강원도 강릉(내가 사는)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주제는 '멍청한 명박이' 정도일까. 강연제목은 분명 '미학으로 세상읽기'였는데 내용은 뭐 미학얘긴 없고 그냥 정권 얘기였습니다. 사실 지금 정권이 너무나 심각한 수준의 또라이다보니까 웬만큼 상식적인 수준의 사고만 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진중권씨 얘기에 고개를 끄덕일만한, 그런 내용이었지요.

 

 강연이 끝나고 나서 질의의답시간에 질문을 하나 했는데, 대답이 참 실망스럽더군요. 질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물론 완벽히는 기억나지 않아서 좀 다를 수 있겠지만 대충 내용은 그러합니다.

 

 "진중권씨께서 현대는 창의력의 시대이고, 일률적인, 줄세우기식 '경쟁력' 교육이 아니라 다양성을 창출하는 교육을 통해 선진국과 발맟추어 국제 경쟁력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얘길 하면서 그 예로 스티브잡스를 들면서 그가 목업 제품을 받아들고 '버튼을 다 없애면 어떨까?' 하고 말하면 아래 기술자들이 분주히 움직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선진국의 발전에 뒤쳐지지 않게 발전해야 한다는 얘기는 곧 한국 교육현장에서의 경쟁 위주의 학습방법 철폐가 국가간 경쟁이라는 더 큰 경쟁을 위한 것일 뿐이지 않습니까?"

 

 이에대한 진중권씨의 대답이 다음과같습니다.

 

 "일단 저는 경쟁 자체를 나쁘게 보는것은 아니구요. 그리고 좌파들은 1세계 국가들이 3세계국가를 착취한다는 식으로 얘길 하곤 하는데, 저는 별로 그렇게 보지는 않거든요. 실질적으로 선진국과 제3국 간의 무역량은 굉장히 작습니다. 그리고 행복도 조사 같은걸 해 보면 방글라데시가 최고로 행복도가 높게 나오고 그러잖아요? 꼭 발달해야만 좋은것도 아니고...좋은 질문이었습니다."

 

 이게 지금 한국에서 좌파라고 손가락질(좌파라는 이유로 손가락질 받는것도 황당하지만)을 받는 대표적인 인물의 모습이라는거죠. 이건 보수입니다. 자본주의 구조의 혁파가 선행되지 않으면 그 후의 추가적인 논의들을 현실화 할 수 없을텐데,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지 않는다는(혹은 모른다는) 점에서 이미 충분히 보수라고 볼 수 있는거지요.

 

 한국에서 보수 내지는 우파 소릴 듣는자들은, 좆선일보가 그 필두라고 본다면, 그들의 수준은 전근대 정도밖에 안되는거지요. 합리적으로 생각하지를 않으니까말입니다. 좌파라는 자들은 이제와서 인권 어쩌고 하고 앉았으니, 참 앞날이 막막하기 짝이없습니다.

 

 인권? 인권이 뭡니까. 그건 그냥 어린애를 어린애로 남겨두는 하나의 제도일 뿐이죠. 하늘이 내려준 절대 불가침의 권리 그딴게 어디있습니까. 그건 그냥 인간이 만든것 뿐이지요. 아이가 부모에게 '잉잉 저애가 나 때렸쪄!' 하는것처럼 인권이라는 대타자에게 '잉잉 저사람이 내 권리를 침해했쪄!' 라고 칭얼대는 애어른을 양상할 뿐이지않습니까.

 

 내가 지금 공익요원(정확히는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하고있으니까 그 예를 들어보자면, 복무 감독관이 권익보호라고 해서 복무요원들의 고충상담을 해 줍니다. 예를들어 초과근무를 강요하지는 않는가, 뭐 이런점들을 체크해서 처리를 해 준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게 결국 뭔얘기냐면, 스스로 원하는것, 예를들면 칼퇴근 같은것을 스스로 요구해서 지켜내는 어른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감독관의 권위에 기대어 일을 해결하려고 하는 나약한 인간들을 보호하자는 얘기인겁니다.

 

 애초의 인권은 투쟁의 산물입니다. 어른으로 성장한 사람이 분투하여 얻어낸 결과물인데, 그 결과로 만들어진 인권이라는 개념이 신경증 상태에 진입하지 못한, 도착적인 주체들을 양산해버린다는거죠. (물론 거기에 인터넷의 발달도 한 몫 크게 하고 있지만 그 얘기는 일단 미루고) 슬라보예 지젝의 탁월한 지적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라는것은 맘놓고 간음할 권리를 의미한다. 등 십계명 되짚어보기- 이 바로 이런 점을 가리키고 있는데, 그런 진보적 논의들이 진행되는 와중에 한국의 시계는 여전히 전근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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