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칸노르님과 유익한 논쟁을 했다. 꽤 입장이 다르면서도 합의점에 도달하는 기분 좋은 경험을 했다. 서로 공통적으로 우리 사회가 "시장경쟁 사회안전망 복지확대의 추구를 지향해야 한다"에 찬성한다는 점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념 삼아 합의점의 내용에 담긴 의미를 짚어보고 싶었다.  

http://theacro.com/zbxe/free/799884


1. 사회안전망과 복지확대

만약 자본주의 사회가 아무런 문제가 없는 최적의 사회라면, 그래서 모두가 수고하고 노력하여 생산에 기여한만큼의 댓가와 보상을 받는 사회라면 (일부 노동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을 제외하고서) 사회안전망이나 복지제도등은 원칙적으로 반대를 해야 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도덕적으로 타당하다. 그것들은 불로소득이기 때문이다. 불로소득은 타인의 수고와 노력을 훔치는 절도행위와 같고, 그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되기 힘들다.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무오류성을 신봉하는 사람일 수록 사회안전망이나 복지등에 강한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래서다.

따라서 사회안전망 구축과 복지확대를 찬성하려면, 우선적으로 자본주의의 무오류성을 부정해야 하고 뭔가 보정이 필요한 체제라는 인식이 선행되어야만 비로소 가능해진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특히 사회적 약자가) 수고와 노력 만큼의 댓가와 보상을 받지 못할 수도 있으며, 그 것이 시스템적인 고유한 문제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그런 인식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공통된 컨센서스를 이뤄야만 비로소 사회안전망과 복지등을 국가적 과제로써 큰 저항없이 진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지 못한다면 각종 사회적논쟁에서 쉽게 패배할 수 밖에 없으며 또한 단순히 약자에 대한 배려나 동정 여론만으로는 그 것들은 결코 장기간 지속될 수가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그런 인식을 사회 보편적으로 가능케하는 설득력 있는 이론 체계가 반드시 필요하고, 필자 개인적으로 몇가지 서술해보겠다.

첫번째로 마르크스주의다. 마르크스주의는 이론 체계의 대부분이 자본주의의 모순점을 설명하는 것으로써 가장 확실한 후보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어설픈 지식은 굉장히 선동적이고 급진적으로 재구성되기가 쉽고, 현실적으로 우리 국민들이 일반적 교양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에서 상품론 노동가치설 잉여가치설 이윤율저하경향 거대독점자본출현 생산력정체설등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나머지 변증법적유물론이나 역사적유물론 등에는 상당 부분 오류가 끼어 있어 참고사항 정도로만 인정하는 입장이다. 아마도 그 정도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충돌하지 않고 자유주의적 입장을 견지할 수 있는 최대치일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를 그렇게 딱 잘라 구분해서 인식을 공유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두번째는 케인즈주의다. 케인즈주의는 대공황이후 수정자본주의의 이론적 토대로써 보다 관용적인 자본주의를 가능케한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 사상이라기 보다는 경제를 다루는 방법에 치우친 이론체계로써 서두의 불로소득 문제를 깔끔하게 방어해내기 힘들다. 그 결과 신자유주의 진영과의 사상 투쟁에서 패퇴했으며, 80년대 들어 거의 비주류로 밀리는 바람에 아직은 복지시대를 받쳐줄 수 있는 이론 체계로써 부족한 감이 많이 있다.

세번째는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갑을관계론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들이 구성하는 사회이고, 모든 인간관계에는 권력이 동반되어 필연적으로 갑을관계가 생성된다. 따라서 갑과 을 사이에는 결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핵심인 등가교환이 이뤄지기 어렵고, 이익의 편취와 손실의 전가가 동반된다. 이러한 부등가교환은 개인 대 개인 뿐만 아니라 사회적 집단과 계층 사이에서도 벌어지며, 그 결과 갑이 취한 불로소득과 을이 입은 손해를 보정해 줄 수 있는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 논지는 필자의 주변 지인들에게 매우 강력한 설득력을 보여준 바 있으며, 개인적으로 적극 지지하는 입장이다.

네번째는 공동구매론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인간은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공통요소들을 대부분 공유하고 있으며, 육아 교육 의료 주거 노후대비 실직대비 비용들이 그것들이다. 이런 생활의 필요들을 개인 각자가 알아서 해결하는 것은 낭비적 요소가 굉장히 크다. 이런 것들을 국가적 공동구매 형태로 묶어 보편적으로 제공하면, 매우 효율적이고 저렴한 이용이 가능해진다. 실제 이 방식은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보편적 형태이며, 별다른 도덕적인 문제제기 없이 잘 운영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같은 비용을 납부해도 개인간에 이용률에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불로소득 문제를 말끔히 해소하기는 어렵지만, 그런 부작용보다 이익이 더 크기에 별 어려움없이 유지될 수 있다.

참고로 공동구매론을 다룬 필자의 과거 글.
http://theacro.com/zbxe/659071

열거한 것들 말고 다른게 있으시면 추천.


2. 시장경쟁

흔히 자본주의와 시장경제가 마치 동일체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자본주의는 시장경제가 없으면 존립 불가능하지만, 시장경제는 자본주의를 반드시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시장경제를 자본주의와 동일시하여 백안시하는 것도 오류이고, 시장경제의 장점을 자본주의의 장점인 것처럼 오도하는 것도 오류이다. 때문에 진보진영 일각에서 자본주의의 단점을 마치 시장경제의 단점인 것처럼 설명하며 혼란을 일으키고 잘못된 견해를 갖게 만드는 것은 매우 옳지 않은 태도이다. 필자는 시장경제에 대한 정체불명의 그런 설명이 무엇을 근거로 하는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시장에서의 교환은 사회적 분업과 경쟁을 촉발시켜 생산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인간의 삶을 훨씬 풍요롭게 해준다. 또한 수요와 공급을 가장 합리적인 상태로 조정하고,  인간의 오만가지 필요를 능동적으로 생산에 반영시키며, 사회를 보다 자유롭고 공정하고 투명하게 만들어주며 민주주의와 함께 인류 역사 최대의 발명품이다. 일부에서 지적하는 무엇이든 상품화해버리는 물신성이나 물질만능주의 등의 부작용은 인간의 잘못이지 결코 시장경제의 잘못이 아니다. 

시장경제는 이렇게 인간의 능력으로 생성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자율 통제 시스템이며, 따라서 가능한 외부에서 개입하여 질서를 교란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시장은 그 자체로 완전하게 홀로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으며, 갑을관계등 인간들의 사회적 관계가 빚어내는 온갖 노이즈들이 전파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 결과 도처에서 부등가교환이 발생하는 부작용이 벌어질 수 밖에 없고, 정부는 그것을 교정하기 위해 개입해야만 한다. 따라서 정부의 시장 개입을 결벽증적으로 교조적으로 거부하는 것도 오류이고, 시장의 특성을 무시한 막무가내의 정부 개입도 결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없다.

사민주의든 뭐든, 설사 마르크스의 예언대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다른 그 무엇으로 대체되어도 시장경제와 자유 경쟁은 현재보다 훨씬 더 발전된 형태로 계속 남아있을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보수 진보 사이에 시장경제에 대한 견해차이로 대립하는 지겨운 모습도 이제는 끝내야한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는 별개이고, 인간의 잘못을 시장경제에 떠넘겨 누명을 씌우면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