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곳에 달았던 첫 댓글이 숨쉬는 바람님의 <프로이드 주의>라는글에서 프로이트와 프로이트가 말하는 유아기 성(infantile sexuality)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박카스 아줌마"가 다뤄지는 글에서 다시 숨쉬는 바람님과의 댓글에서 "할머니의 성" 혹은 "할아버지의 성"이라는 용어를 썼었네요.

"노인 성"이라는 것이 담론화되기 이전이라면, 상당히 기이하게 들렸을 터이지만, "할머니의 성," "할아버지의 성"이라는 것,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도 성욕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겠죠. 물론, 폐경기를 지난 할머니가 어떻게 성적 욕망(sexuality)이란 것을 지닐 수 있는지 의아해하실 분들도 많겠지만, 인간의 성, 혹은 인간의 성욕이란 것은 근본적으로 동물적인 재생산(reproduction, 새끼를 낳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폐경기를 지났을 지라도, 즉 재생산 기능을 잃어버렸을 지라도 여전히 성욕을 지니고 있다는 가정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겁니다. 단적으로 "노인 성"을 다루는 <<죽어도 좋아>>라는 영화를 보면 쉽게 증명이 되겠죠. (아쉽게도 전 이 영화를 못 봤네요.)

인간의 성(sexuality)이 동물적인 재생산과 관계가 없다는 것은 성관계시 사용되는 콘돔과 같은 피임기구를 떠올리면 됩니다. 인간은 자신을 닮은 새끼를 낳기 위해 성관계를 갖는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쾌락을 얻기 위해 성관계를 하는 것이죠. 물론, 재생산 만을 하기 위한 씨받이와 같은 성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요. 재생산을 넘어서는 것으로서의 인간의 성을 이해하는데, 동성애도 훌륭한 예가 될 수 있겠네요. 혹은 남녀 간에 만나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생각은 안하고 몇 시간 동안 키스만 하는 것도 한 예가 될 수 있겠구요. 프로이트는 키스를 전희(prepleasure)라고 말하는데, 키스는 인간을 동물과 구분지으면서, 인간의 "성"이란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예가 되겠죠. (물론, 몇몇 침팬지에게도 인간의 키스와 유사한 스킨쉽이 존재한다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되겠지만요.) 온갖 도착적인(perverted) 성욕들도 인간의 성을 특징짓는 좋은 예들이 됩니다. 관음증과 노출증이 좋은 예이고, 사디즘과 매저키즘이 또한 좋은 예이죠.

이로부터, 인간의 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릴 수 있겠네요: 한 인간이 다른 인간과 관계를 맺으면서 얻게되는 쾌락이라고 말입니다. 이 정의는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에, 다시 정의를 내리면, 인간의 성적 욕망은 "성욕을 발생시키는 신체 부위(erotogenic zone)"를 통해 얻게되는 쾌락이라고 정의를 할 수 있습니다. 이 신체 부위들은 당연히 남녀의 성적 기관을 포함할 뿐 만 아니라, 눈(eye)과 귀(ear)와 같은 성적 기관이 아닌 기관들도 포함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관음증과 노출증입니다. 노출증은 "바바리 맨"의 방식과 같은 노출증도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타인의 경탄해하는 시선을 즐기는 것이죠. 물론, 여기서 노출을 즐기는 주체는 자신이 노출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면 안됩니다. 그래서 이 노출증을 즐기는 주체는 관음증적 시선과 마주치는 순간, 자신의 노출을 곧 감추게 됩니다. 그리고 또한, 관음증의 시선은 훔쳐보는 것이기 때문에, 들켜서는 안되는 시선이기도 하죠.

이러한 인간의 성에 대한 정의로부터 유아기 성을 정의내릴 수 있습니다. 유아는 일차적으로 엄마와 관계를 맺습니다. 엄마라고 하기 보다는 "엄마의 젖"이라고 말해야겠네요. 자신의 배고품을 해결하는 "엄마의 젖"(음식물)을 통해, 생물학적 욕구인 배고품을 해결했슴에도 불구하고, 유아는 여전히 "엄마의 젖"(성적 욕망의 대상)을 찾습니다. 공갈 젖꼭지가 그래서 필요한 것이죠. 물론, 이러한 설명은 앞에서 한 인간이 다른 인간과 맺는 관계로 인간의 성을 정의 내리는 것에 기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기는 엄마의 품에 안겨 심리적인 안정을 찾기를 원하고, 자신이 보호받고 있다는 심리적인 안정을 찾기를 원하고, 자신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와 자신의 배고품을 달래줄 "엄마의 젖"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를 원하죠. 그리고나서 유아는 똥을 싸면서 얻는 쾌락을 알게됩니다. 이 똥쌈이 쾌락이 되는 이유는 엄마와 아빠가 자신의 똥을 보고 기뻐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유아는 자신의 똥을 엄마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화장실 훈련(toilet training)을 잘 끝낸 26개월 된 남자 조카가 어느 날 아기용 변기에 똥을 싸는 게 아니라, 옷을 입은 체로 서서 똥을 싸는 것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토끼 똥 같이 빨래할 필요도 없을 정도의 된 똥이어서 저의 어머니가 조카에게 "왜 그러냐고" 웃고 넘어가긴 했습니다. 일종의 퇴행(regression)인데, 자신과 잘 놀아주는 저에게 선물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이걸 프로이트는 항문기라고 부르는데, 연애를 하면서 항문기를 못 벗어나는 남녀가 있죠. 이들에게 돈=똥입니다. 그들에게 돈=똥이어서, 똥칠을, 아니 돈칠을 통해 "사랑"을 확인하는 남녀 말이죠.

이러한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유아는 인간이 되지를 않습니다. "늑대 소년"이라는 임상 사례가 있는데, 이 아이는 망상증을 앓고 있는 엄마 밑에서 제대로 수유되지 못하고, 정신병을 앓는 아이었습니다. 대략 3살 반으로 기억하는데, 엄마를 통한 안정적인 영양 섭취를 하지 못해서, 음식물을 섭취하려 들지도 않고(거식증), 배설을 자신의 몸이 파괴되는 것으로 여기는 증상들을 보이는 아이입니다. 자신의 몸에서 무엇인가가 빠져나가는 것을 자신의 몸이 파괴되는 것으로 인식을 한다는 것입니다. 늑대 소년은 유아기에 배고품으로부터 울음을 통해 엄마를 부르지만, 불성실한 엄마는 응답하지 않고, 그것이 반복되다 보니 엄마로부터 배신감을 갖게 되는 것이죠. 그리하여, 응당 자신이 받아야할 것을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되고, 따라서 제대로 배출시키지도 못하는 것이죠. 여기서 응당 자신이 받아야 할 것이란, 엄마의 젖이겠죠. 이는 말 그대로, 음식물을 의미하기도 하고, 엄마의 사랑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늑대 소년"은 자신의 몸이 무엇을 받아들인다는 개념과 무엇을 배출시킨다는 개념을 갖지 못하게 되고, 자신의 신체에 대한 개념을 갖지 못하게 됩니다. 정신분석의가 엄마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통해, "늑대 소년"은 자신의 신체에 대한 개념을 갖게 되긴 합니다. 유아들이 보는 책 중에, 대략 2~3세 쯤에 보는 책일 텐데, 음식을 먹고, 그것이 소화되어서, 똥을 싼다는 것을 그림으로 설명하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을 보면 인간의 신체는 마치 강장 동물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성을 설명하는 중요한 설명방식이기도 하겠네요. 즉, 자신의 신체 바깥의 "낯 선 물체(foreign body)"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의 성 입니다. 물론, 받아들임의 반대인 자신이 가진 어떤 것을 내어주기도 인간의 성이겠죠. 그것이, 엄마의 젖이든, 입술이든, 성적 기관이든, 그 무엇이든지 간에 말이죠.

인간의 성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키스하기, 보듬어 안기, 쓰다듬기, 접촉하기(touching), 스킨쉽, 바라보기, 말하기, 말을 듣기 ......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성이 또한 할아버지의 성과 할머니의 성을 설명하기도 하고, 유아기 성을 설명하기도 하겠네요.

덧글: 위의 글은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라는 것을 덧붙입니다.